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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집이 겨우내내 먹을 김장배추입니다
 네집이 겨우내내 먹을 김장배추입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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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오나?"
"어머니 어제 내린 눈 때문에 길이 미끄러워서요. 해 나면 갈게요."
"아침 먹지 말고 오랬는데. 고마 눈이 와가꼬."

토요일, 어머니는 아침부터 전화입니다. 김장 때문이라고 하지만 손자와 손녀를 조금이라도 더 빨리 보기 위해서입니다. 지난 금요일 갑작스레 내린 눈은 겨울 한철 눈구경을 하기 힘든 진주 사람들에게는 환호와 동시에 두려움입니다.

몇 년 전 딱 이맘때입니다. 새벽에 비가 잠깐 내렸는데 고속도로에 살얼음이 얼어 100대 이상 추돌사고가 나 길이 마비가 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 아침부터 나설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하염없이 기다리는 어머니 때문에 11시쯤에 나서려다가 한 시간을 앞당겼습니다. 지난 수요일 배추 뽑고, 금요일 건져낸 배추가 평상 위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난해보다는 배추가 적어요."
"그렇지 배추 속이 덜찬 것들이 많아요."
"어제 먹어보니까 배추가 좀 짰어요."
"그럼 양념을 조금 싱겁게 하면 돼요."

배추에 들어갈 양념을 만들고 있습니다.
 배추에 들어갈 양념을 만들고 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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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절임배추를 먹어보니 조금 짠 맛이 났습니다. 김장 10년 노하우가 발휘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경남은 멸치젓갈을 많이 넣는데 저는 조금 싫어합니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 '별종'으로 소문났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멸치젓갈을 잘 먹는데 유독한 '김동수'만 안 먹으니 타박 아닌 타박을 많이 받습니다. 어떤 때는 어머니가 제 입맛을 이렇게 만들었다고 화살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하겠습니까? 멸치 젓갈이 입맛에 맞지 않는 것을.

"김장 시작입니다."
"길고양이도 왔네."

"어머니 집 길고양이는 깨끗해요. 진주 우리 집 옆 길고양이들은 더러운데."
"이곳은 깨끗한 동네고, 진주는 매연 때문이겠지. 어제는 강아지만 한 길고양이를 봤어요."
"아마 젓갈 냄새를 맡고 '얻어 먹을 것이 있나' 왔나 봐요."

김장하는 데 길고양이도. 우리 집에는 길고양이가 많습니다. 새우젓갈 냄새가 났는지 주위를 기웃거렸습니다.
 김장하는 데 길고양이도. 우리 집에는 길고양이가 많습니다. 새우젓갈 냄새가 났는지 주위를 기웃거렸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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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보니 살이 오통통합니다. 도시 길고양이보다 훨씬 살찐 모습입니다. 생김새도 훨씬 예쁩니다. 옛날에는 시골쥐가 도시에 놀러갔는데 요즘은 도시 길고양이가 시골로 놀러와야겠습니다. 시골 길고양이들이 도시 길고양이들도 훨씬 따뜻한 겨우살이를 할 것입니다.

10년 전부터 김장 담그는 일에 함께 했습니다. 고무장갑을 낀 모습은 제가 봐도 김장을 한 두 번 해본 사람 모습은 아닙니다. 이제 양념간도 맞출 수 있고, 절임도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옹기에 김치를 나르는 일은 제가 없으면 안 됩니다.

해마다 김장을 해야 나중에 김치 한 포기라도 얻을 먹을 수 있습니다.
 해마다 김장을 해야 나중에 김치 한 포기라도 얻을 먹을 수 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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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김치냉장고가 좋아도 옹기보다는 못합니다. 옹기에 김치를 옮기는 것은 제 몫입니다.
 아무리 김치냉장고가 좋아도 옹기보다는 못합니다. 옹기에 김치를 옮기는 것은 제 몫입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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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냉장고가 아무리 좋아도 옹기보다는 못합니다. 옹기가 무조건 좋다는 것이 아니라 옹기에 담아두었던 김치와 김치냉장고에 담아두었던 김치를 다음해 봄에 먹어보면 확연히 다릅니다. 입맛 까다로운 저만 아니라 무엇이든 잘 먹는 아내와 우리 아이들도 비슷합니다. 옹기에 담아둔 김치를 먹으면 '사각사각' 소리가 다 납니다.

"김치는 그래도 옹기에 담아야지."
"당연하죠. 옹기에 담아둔 김치와 김치냉장고에 담아둔 김치를 나중에 맛보면 거짓말 조금 보태 '하늘과 땅' 차이죠."

올겨우내내 먹을 김장. 보기만해도 입안에 침이 고입니다.
 올겨우내내 먹을 김장. 보기만해도 입안에 침이 고입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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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김치냉장고가 좋아도 옹기보다는 못합니다.
 아무리 김치냉장고가 좋아도 옹기보다는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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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기에 공기구멍이 있어 그런 것 같습니다. 김치가 스스로 호흡을 하기 때문입니다. 김치냉장고는 공기와 직접 호흡을 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옹기는 호흡을 합니다. 당연히 자연이 주는 맛 그대로입니다. 올해 담근 김치가 약 100포기입니다. 그 중에 속이 덜 찬 배추는 내년 여름에 먹습니다. 속이 꽉 찬 배추도 맛있지만 덜 찬 푸른 빛이 많이 도는 배추도 맛있습니다. 아내는 이런 김치를 잘 먹지 않지만 저는 좋아합니다. 물론 아내보다 좋아하는 것이지 속 찬 배추김치보다 더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이 김치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생각보다 맛있잖아요."
"나는 속 찬 배추김치가 더 맛있어요."
"물론 나도 속 찬 배추김치를 더 좋아하지만 그래도 푸른김치로 밥을 싸먹으면 얼마나 맛있는데."


배춧잎이 파란 것은 내년 봄 이후에 먹습니다. 이게 더 맛있습니다.
 배춧잎이 파란 것은 내년 봄 이후에 먹습니다. 이게 더 맛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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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겨우내내 먹을 것이라며 열심히 김장을 하고 있습니다.
 아내 겨우내내 먹을 것이라며 열심히 김장을 하고 있습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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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자기가 좋아하는 김치가 아니라며 투덜거렸지만 그래도 열심히 담갔습니다. 그리고 김장김치 맛을 더 돋구는 것은 배추김치 사이사이에 무를 넣는 것입니다. 정말 맛있습니다. 배추김치를 시원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무가 다 익으면 무김치도 최고입니다. 김치를 듬뿍듬뿍 넣고, 배추김치를 옹기에 꺼내 먹을 때마다 무김치도 꺼내 먹으면, 먹어보지 않은 사람을 절대(?)로 그 맛을 알 수가 없습니다.

겨우내 먹을 김장김치를 다 담그고 나니 겨울 걱정이 다 사라졌습니다. 이제 먹으면 됩니다. 맛있는 겨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올겨울도 참 행복할 것입니다. 더 행복하려면 제가 바라는 분이 꼭 대통령에 되는 것입니다. 아이들에게 한턱내기로 했습니다. 한턱내도 아깝지 않습니다.

배추김치 사이 사이에 무를 넣으면 한결 시원한 김장김치가 됩니다.
 배추김치 사이 사이에 무를 넣으면 한결 시원한 김장김치가 됩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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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김장, #옹기, #배추,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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