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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역 유일의 정리해고 파업 사업장인 풍산마이크로텍 노동자들이 투쟁 400일을 맞았다.
 부산지역 유일의 정리해고 파업 사업장인 풍산마이크로텍 노동자들이 투쟁 400일을 맞았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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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400일이네요."

몇 번이나 쓰고 지우기를 반복했을 화이트보드 달력이 12월 5일을 '투쟁 400일'이라 알렸다. 문영섭 전국금속노조 풍산마이크로텍 지회장이 달력을 보더니 쓴웃음을 지었다. 2010년 12월 말 회사는 직원들에게 연말휴가를 가라고 했다. 들뜬 마음으로 휴가를 다녀온 노동자들은 공장을 잃었다. 노동자들이 공장을 비운 사이 모기업이던 풍산기업은 풍산이 갖고 있던 주식을 팔아버렸다.

그렇게 회사가 넘어가고 노동자들의 운명도 새로운 경영진 손에 넘어갔다. 첨단 부품 소재인 반도체 리드프레임을 만들던 풍산마이크로텍은 피에스엠씨(PSMC)로 이름도 바꾸었다. 지분을 인수한 새 주주는 불특정 다수에게 지분을 매각했다. 재무건전성을 이유로 해외법인도 팔았다. 줄어가는 회사 곳간에 우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문영섭 전국금속노조 풍산마이크로텍 지회장. 부산지역 유일의 정리해고 파업 사업장인 풍산마이크로텍 노동자들이 투쟁 400일을 맞았다.
 문영섭 전국금속노조 풍산마이크로텍 지회장. 부산지역 유일의 정리해고 파업 사업장인 풍산마이크로텍 노동자들이 투쟁 400일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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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세 차익을 노린 투기자본의 전형적 수법"이라는 소리가 증권가 안팎에서 터져 나왔다. "경영진이 회사 경영에 관심이 있느냐"는 볼멘소리도 커져 갔다. 한켠에서는 모기업인 풍산이 애초 방위산업공장 부지로 싸게 구입했던 땅을 개발해 막대한 이윤을 챙기려 한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급기야 지난해 11월 7일 회사는 200여 명의 노동자 중 58명을 해고했다.

그날로부터 해고 노동자들은 부산 반여동 공장 주차장에 천막을 쳤다. 400일간 노동자들과 함께해 온 천막이 지금은 이들의 보금자리다. 400일을 하루 앞둔 4일, 노동자들의 천막이 시린 겨울 바람에 너풀거렸다. 웃바람이 거센 천막 안에서 그나마 따뜻한 곳이라며 손님을 맞이한 문 지회장은 전기장판에 불을 올렸다.

전혀 웃기지 않는 우스갯소리 "우리도 올라갈까?"

부산지역 유일의 정리해고 파업 사업장인 풍산마이크로텍 노동자들이 투쟁 400일을 맞았다.
 부산지역 유일의 정리해고 파업 사업장인 풍산마이크로텍 노동자들이 투쟁 400일을 맞았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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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조합원들은 요즘 "우리도 사직야구장에 올라갈까?"하는 이야기를 우스갯소리로 주고받는다고 했다. 철탑에는 올라가야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웃긴 현실을 우스갯소리로 받으며 그와 조합원들의 생각은 깊어졌다. 그는 이런 사회가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치와 경제가 외면하면 당사자들은 이목을 끌기 위해 강도를 높일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노동 열사가 나는 거 아닙니까. 사실 투쟁은 힘듭니다. 그래서 그런 것도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거기까지 밀려 올라가야 합니까?"

부산 해운대구 반여동에 위치한 풍산 공장 입구 모습. 부산지역 유일의 정리해고 파업 사업장인 풍산마이크로텍 노동자들이 투쟁 400일을 맞았다.
 부산 해운대구 반여동에 위치한 풍산 공장 입구 모습. 부산지역 유일의 정리해고 파업 사업장인 풍산마이크로텍 노동자들이 투쟁 400일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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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풍산마이크로텍 조합원들은 시민을 많이 만난다. 400일 전에는 한진중공업이나 쌍용차냐고 물어오던 시민이 지금은 풍산마이크로텍 해고 사태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위안이다. 조합원들은 부산 시청 앞에서 노숙하고 상경 천막 농성을 해가며 알렸다. 그래도 회사는 묵묵부답이다. 부산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가 잇따라 이들의 해고가 일부 혹은 전원 부당하다는 판결을 내렸음에도 변함이 없다.

"우리는 정리해고를 '엑스칼리버'라고 부릅니다. 만능의 칼이죠. 징계 해고보다도 쉬운 게 정리해고에요. 비정규직 만들고 싶어도 정리해고, 회사 옮기고 싶어도 정리해고, 회사의 미래에 위협이 된다고 해도 정리해고... 정리해고 뒤에는 비정규직이 연동되고 사람들이 낮은 임금에 물건을 못사니 시장이 가라앉고 그렇게 사회를 운영하면 국민이 살 의미를 못 갖는 겁니다."

"대선 후보들, 경제민주화에 진정성 있다면 당장에라도 해결해야"

부산지역 유일의 정리해고 파업 사업장인 풍산마이크로텍 노동자들이 투쟁 400일을 맞았다.
 부산지역 유일의 정리해고 파업 사업장인 풍산마이크로텍 노동자들이 투쟁 400일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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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산업체에서 공무원과도 같은 생활을 할 수 있었다는 문 지회장은 "400일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며 세상을 다시 배웠다"고 말했다. "우리 것이 해결되면 당연히 좋겠지만, 이대로 가면 이 나라는 안 됩니다"는 말을 문 지회장은 한 시간여 대화에서 몇 번이나 반복했다.

그는 풍산마이크로텍 해고 사태의 1차적 책임은 풍산기업이 지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경련 부회장으로 있는 류진 풍산 대표이사를 나서게 하기 위해서는 대선 주자들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가 강조한 것은 이번 대통령 선거였다.

그는 "정리해고는 경제민주화와 직결되어 있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누가 대통령이 되도 국가 운영이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대선 후보들도 경제민주화에 진정성이 있다면 당장에라도 풍산사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조합원들에게 "이 투쟁이 실패하면 이민 가라"는 말을 한다. 이번 투쟁이 실패하면 이 나라는 안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런 그는 마지막으로 모든 일이 끝나면 "가족들과 밥을 먹어보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을 밝혔다. 그와 조합원들은 이날 프라이팬에 김치를 볶아서 만든 반찬 하나를 두고 밥을 차려 먹으면서 이루어지지 못한 바람을 대신했다.

부산지역 유일의 정리해고 파업 사업장인 풍산마이크로텍 노동자들이 투쟁 400일을 맞았다.
 부산지역 유일의 정리해고 파업 사업장인 풍산마이크로텍 노동자들이 투쟁 400일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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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풍산마이크로텍, #대선, #정리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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