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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신임 검사가 주말에 검사실로 피의자를 소환하여 유사성행위를 했다.(문제의 검사는 24일 오후 긴급체포 됐다.) 그 대담하고 창조적(!)인 발상이 경악스럽다. 궁금한 것은 그 신임검사가 그런 대담한 발상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점이다. 이제 갓 법조계에 입문하여 툭 건드리기만 해도 "초심" 하고 외칠 것 같은 신임 검사는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일까? 만일 그가 단순한 '똘아이'에 불과하다면 이 문제는 그저 검찰의 검사임용시 필터링(걸러내기)을 개선·강화하는 방향에서 해법이 모색되어야 한다. 그러나 만일 그가 청운의 부푼 꿈을 안고 검찰조직에 입성한 이후 체득한 검찰문화 속에서 '아! 이 정도는 내가 검사로서 해도 되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면 해법은 달라진다. 이렇게 되면 검찰조직 자체에 대한 근원적 점검과 처방이 따라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검찰조직의 오만과 원죄

이번 신임 검사의 성추행 파문을 검사 전체의 문제로 볼 수는 없다. 이번 사태에 대하여 검찰의 익명게시판에 올라온 자괴의 글과 여기에 달린 200여개의 댓글은 이를 방증한다. 그렇다고 하여 이번 성추행 파문을 해당 검사 개인만의 돌출적 행동으로만 볼 수도 없다. 그 신임 검사가 검사로 임용될 수 있었던 것은 로스쿨을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했고, 검사로써의 기본적인 정의관념, 국가관을 가지고 있었다고 검찰조직이 판단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문제의 원인은 그가 어떤 경로로든 '이 정도는 내가 해도 된다'고 무언가 단단히 오해할만한 단서를 검찰조직이 그에게 제공한 것이라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해석일 것이다. 물론 부당하고 악의적인 추론이라는 비난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검찰조직은 이런 의심을 받기에 충분한 원죄가 있다.

기소를 독점하고 경찰의 수사를 지휘한다. 수사종결권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비대한 권한을 가지고 있으면서 강자에 비굴하고 약자에 가혹하다. 살아있는 권력에 잘 보이려 죽은 권력을 사납게 물어뜯는다. 검찰조직을 축소하거나 통제하려는 시도는 유무형의 방법으로 제압한다. 대검 중수부를 동원한 수사나 검찰출신 의원들을 통한 집요한 로비는 그 대표적인 방법이다. 검찰은 자신들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정의롭고 청렴한 집단인 것으로 생각하는 모양인데, 국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매년 실시하는 국가기관 청렴도 조사결과를 보면 검찰은 최하위권에 위치해 있다. 그랜저 검사, 벤츠 여검사, 성검, 떡검 등등의 검찰관련 신조어들은 검찰에 대한 국민의 인식의 정도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문제는 검찰조직이 조직논리에 치우친 나머지 국민들의 검사에 대한 인식수준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조직이나 집단에 속해 있는 사람들의 경우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어느 누구든 자기가 속한 집단 내지 조직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인지상정이다. 그렇지만 어떤 문제가 생겼을때 외부의 시선으로 자기의 조직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문제의 원인이 어디있는지 객관적으로 사태를 직시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올바른 처방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결국은 눈높이의 문제인 것이다. 검찰에 대한 개혁논의가 결정적 대목에서 한계에 봉착하는 것은 검찰조직의 강한 저항 때문이다. 저항의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는 정의롭다'는 착오와 누구로부터도 통제받지 않겠다는 오만이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착오상태와 오만스러운 검찰조직의 문화가 한 새내기 검사로 하여금 '내가 이 정도는 해도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오판을 하게 한 것이 아니냐는 점이다.

 현직 부장검사에 대해 수뢰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가운데 한상대 검찰총장이 19일 오후 굳은 표정으로 서초동 대검찰청을 나서고 있다.
▲ 굳은 표정의 한상대 검찰총장 현직 부장검사에 대해 수뢰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가운데 한상대 검찰총장이 19일 오후 굳은 표정으로 서초동 대검찰청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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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수부 폐지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가 필요한 이유

사실  김광준 부장 검사 사건은 문제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늘 보던 검찰의 모습이 재현되던 것이어서 신선도가 떨어졌다. 특임검사는 경찰을 의식해서라도 엄격하게 수사할 수 밖에 없었고, 대선뉴스에 묻혀 여론도 곧 잠잠해질 터였다. 그런데 이번 성추행 파문은 그 발상의 대담함이라는 측면에서 국민들은 물론 같은 검사들의 어안까지 벙벙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이 사건은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되어버렸다.

지금 국민들 중 누구도 군부가 결정적 시기에 나서서 쿠데타같은 방식으로 정권을 찬탈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전두환·노태우 정권시절 군부는 정치의 상수였다. 정치군인들이 판을 쳤다. 그래서 육군장성들이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 그것도 집권 여당의 실력자 중의 한사람인 원내총무를 폭행하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었다. 무소불위의 군부였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김영삼 정부의 하나회 척결과 민주주의의 확립으로 군부에 대한 문민통제의 기풍이 조성되었다. 지금 검찰도 이런 전광석화 같은 강력한 개혁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중수부 폐지와 같은 정책을 통하여 비대한 권한을 정상화하고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같은 정책을 통하여 검찰조직도 통제받도록 하여야 한다.

진실로 정의로운 검찰을 보고 싶다. 거악에 타협하지 않는 검찰, 강자에 강하고 약자에 관용하는 검찰을 기다린다. 국민들이 진정으로 신뢰하는 검찰 말이다. 그러자면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자신을 돌아보기 바란다. 그러면 국민들이 납득할만한 해법이 무엇인지 보일 것이다. 권력과의 거래처로 전락한 중수부를 폐지하고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받아들여야 한다. 무엇보다도 당신들은 국민에게 봉사하는 공무원임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검찰은 국민들 위에 군림하는 특권세력이 아니라 헌법에 따라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은 검찰권을 대신 행사하는 조직이다. 검찰조직은 지금 이 점을 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 검찰은 초조하게 대선결과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검찰조직의 운명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검찰이 가장 두려워하는 후보가 누구인지를 생각해본다면, 그리고 그의 검찰개혁공약이 무엇인지를 살펴본다면 검찰이 대선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검찰과 관련된 대선관전 포인트를 살펴보는 것도 이번 대선에서 주요한 대목이다. 하나회를 위시한 정치군인들이 그랬듯이 역사의 도도한 진전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검찰은 하나회의 몰락에서 어떤 교훈을 찾을 수 있을까?

덧붙이는 글 | 필자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변호사입니다.



태그:#검찰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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