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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홍 작가와 뒤로 그의 신작 '아리랑 2012_1' 캔버스에 유화, 드로잉잉크, 혼합매체 249×362cm 2012
 안창홍 작가와 뒤로 그의 신작 '아리랑 2012_1' 캔버스에 유화, 드로잉잉크, 혼합매체 249×362cm 2012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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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에 있는 더 페이지갤러리(대표 성지은)에서는 12월 9일까지 안창홍의 개인전 '아리랑'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인물사진을 바탕으로 기존의 통념과 가치관을 뛰어넘어 한반도의 역사를 보다 깊게 성찰한 20여점의 신작을 소개한다.

미술계의 이단아로 불리는 안창홍(1953-) 작가는 틀에 박힌 제도권에서 벗어나 자유분방하게 자기만의 회화세계를 구사해왔다. 그는 야성과 광기, 뚝심과 신념의 소유자로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차별성을 갖춰 필요불가결한 작가가 되었다.

가려진 역사 재조명, 묻힌 사람들 재발견

안창홍 I '아리랑 2012_4' 캔버스에 유화 99×142cm 2012. 박제된 인간에 숨결을 넣다
 안창홍 I '아리랑 2012_4' 캔버스에 유화 99×142cm 2012. 박제된 인간에 숨결을 넣다
ⓒ 안창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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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작가는 골동가게나 인터넷사이트 등 여러 경로로 수집한 근현대 사진을 회화로 재해석한다. 우리 윗세대의 졸업식이나 동창회, 결혼식이나 가족사진을 바탕으로 그들이 힘겹게 살았던 시대의 기억을 불러와 그 한과 상처를 형상화한 연작이다.

그는 "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원동력은 내 주변의 보통사람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번 작품 속 주인공도 우리 역사 속에서 있으나마나한 하찮은 존재로 보이나 이들이 바로 우리나라의 주역으로 여기고 이들을 부각시킨다.

한 장의 사진은 그 시대를 읽어내는 기호라고 하는데 위 작품을 보면 바로 이해가 된다. 여기에 두 명의 한국여성이 등장하는데 한 여성은 한복을, 한 여성은 기모노를 입고 있다. 그 정황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분명히 그 까닭이 있을 것이다. 하긴 당시에 그 정도의 애환과 사연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우리내면 보게 하려 눈 감기다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사람은 다 눈을 감고 있다. 왜 그렇게 그렸냐는 기자들 질문에 "사진의 대상이 된 이들은 당시 사는 것이 너무 버거워 본인의 뜻과 관계없이 황폐할 수밖에 없었다"며 "자신을 돌아보라는 뜻의 반어법"이라는 설명한다.

안창홍 작가가 23년 전부터 경기도 양평에 들어가 작업을 해왔다. 문명 비판적인 그가 시골로 들어간 것이 의아해 물어보니 그는 "도시를 더 잘 보기 위해서 시골로 들어갔다"고 간단히 대답한다. 그런 맥락에서 사람들 눈을 감긴 것은 결국은 역사도 거리를 두고 봐야 제대로 보인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이번 전시제목이 '아리랑'인건 역시 일제와 분단, 6 25, 4 19, 군사독재, 유신, 광주항쟁, 87항쟁 등 근현대사의 아리랑 고개를 넘으면서 겪은 시련과 도전을 상징하리라. 이는 동시에 그런 격동의 세월 속에 묻힌 사연도 희생자도 많다는 뜻도 된다.

시대의 증언자로서 사회적 책무

안창홍 I '아리랑 2012_16' 캔버스에 아크릴, 피그먼트프린트, 혼합매체 255×400cm 2012
 안창홍 I '아리랑 2012_16' 캔버스에 아크릴, 피그먼트프린트, 혼합매체 255×400cm 2012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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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간담회에서 안 작가는 "작가는 시대의 증언자로 개인의 영달만 아니라 사회적 책무를 다 해야 한다"며 "피카소 같은 세계적 거장도 그런 면에서도 충실했다"고 말한다. 또한 "작가라면 이웃과 사회와 함께 아파할 줄 알아야 하며 시대정신을 읽어낼 때 예술이 존재가치가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는 최근 큰 전시회를 연달아 열어 도무지 이번 전시를 열 여력이 없었음에도 어떤 의무감도 작용한 모양이다. 그런 동기에는 "역류하는 역사 속에 진실이 파묻히는 걸 보면 울화가 터지고 무력감에 빠지나 작업을 통해 이를 이겨냈다"고 토로한다.

위 사진을 보면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고 수학여행 가서 찍은 사진인데 그 시대가 보인다. 일제가 우리를 근대화시킨답시고 주입한 황국주의와 식민사관도 엿보인다. 불행히도 이런 후유증은 지금도 교육계, 법조계, 언론계 등에 남아있다.

아직도 진행중인 식민과 냉전 씻기

안창홍 I '아리랑 2012_14' 캔버스에 유화 162×103cm 2012
 안창홍 I '아리랑 2012_14' 캔버스에 유화 162×103cm 2012
ⓒ 안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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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작품의 나온 인물이 기생인건 의미심장하다. 기생이란 부과 권력을 가진 자에게 붙어사는 존재다. 일제 강점기 우리의 처지와 다르지 않았다. 안 작가는 기생처럼 손가락질 당하고 외면 받아온 익명의 개인을 우리 역사의 주체로 다시 세운다.

그러면서 그는 "새 작품을 시작할 때는 항상 막막함을 느끼는데 몰입하다 보면 어깨의 통증이 와도 그게 오히려 달콤하게 느껴다"라고 털어놓는다. 그가 이런 작업에 끌리는 건 청산되지 않는 식민과 냉전을 씻김굿 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인가.

또한 그는 "이번 전시를 위해 하루에 3시간만 잘 정도로 작업에 몰입했다"며 "저녁과 새벽의 빛이 같아 시간을 혼돈할 때가 많았고 지난여름 폭염으로 거의 반 누드로 작업을 했다"고 전한다. 그는 이렇게 그림으로 근현대사를 다시 썼다.

긁히고 찢기고 뜯어지고 얼룩진 얼굴

그가 그린 그림의 표면은 균열이 나거나 얼룩이 너덜너덜하고 칼자국도 나 있다. 그래서 찢기고 긁히고 뜯겨지고 구겨져진 것처럼 보인다. 이는 과도기에서 사람들이 처절하게 겪은 상처와 고통을 상징한다. 그런 아픔의 기억을 각인시킨다.

지금도 우리는 세계냉전의 마지막 희생양으로 분단된 채 살고 있다. 지금의 상황이 이전의 처지가 나아지기는 했지만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음을 보여준다.

시대의 얼굴 '표현주의'로 구현

안창홍 I '아리랑 2012_21' 캔버스에 드로잉 잉크 51×42cm 2012
 안창홍 I '아리랑 2012_21' 캔버스에 드로잉 잉크 51×42cm 2012
ⓒ 안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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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사회에서 불편하고 꺼리는 주제를 많이 다뤄왔는데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 그의 내면의 억눌린 감정을 표출시키는 데는 표현주의가 제격이다. 독일에서 표현주의가 나온 건 독일이 1차 대전과 나치즘 그리고 혹독한 냉전을 치렀기 때문이리라.

그의 작품을 보면 또한 밀레가 '만종'에서 처음으로 농민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점이나 그의 제자인 고흐가 '감자먹는 사람들'을 그려 땅을 발을 딛고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부각시킨 점과 다르지 않다.

이번 전시서문을 쓴 독일의 미술평론가 베레나 리히터는 "안 작가는 죽음이 좋던 싫던 삶과 함께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고야처럼 악몽을 창조적으로 재해석하고 가면 속 인물을 통해 사라진 유령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고 적고 있다.

개인사진을 사회적 문맥으로 재해석

안창홍 I '아리랑 2012_17' 캔버스에 아크릴, 피그먼트프린트, 혼합매체 138×209cm 2012. 노란 필터를 사용하여 과거의 망령을 현재로 불러오는 효과를 낸다. 60대를 바라보며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 안창홍 작가
 안창홍 I '아리랑 2012_17' 캔버스에 아크릴, 피그먼트프린트, 혼합매체 138×209cm 2012. 노란 필터를 사용하여 과거의 망령을 현재로 불러오는 효과를 낸다. 60대를 바라보며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 안창홍 작가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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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홍 I '가족초상(Family Portrait)' 종이에 유화 109×65cm 1982. 박제된 사진 속에 역사의식을 불어넣어 그 시대의 우울과 공포감을 끄집어낸다
 안창홍 I '가족초상(Family Portrait)' 종이에 유화 109×65cm 1982. 박제된 사진 속에 역사의식을 불어넣어 그 시대의 우울과 공포감을 끄집어낸다
ⓒ 안창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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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작가는 개인의 사진을 자신이 이해한 시대적 관점에 담아 사회적 회화로 바꾼다. 그러면서 익명의 주체들, 이름 없는 사람들의 부재가 아닌 존재를 재확인한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근현대사 아니 전체역사를 총체적으로 보게 한다.

이번에 새로 발표한 '아리랑' 연작은 70년대 후반에 착상되었으나 그동안 여러 사정으로 미뤄졌단다. 그는 이 연작을 자신의 운명을 걸고 평생 해야 하는 작업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80년대 '가족초상'을 통해 이런 경향을 살짝 선보이기도 했다.

결론으로 말해 그는 역사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주목받지 못하는 사람을 예술이라는 그릇에 담아 우리시대의 중심인물로 부활시킨다. 그가 이 연작에 몰두하게 된 건 어둠과 굴욕의 역사 뒤로 빛과 영광의 시대가 꼭 오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리라.

덧붙이는 글 | 더페이지갤러리 강남구 서초동 1316-5 부띠끄모나코 B1 www.thepage-gallery.com 02)3447-0049
안창홍 작가에 대한 더 많은 정보는 그의 홈페이지 http://ahnchanghong.com/ 참고



태그:#안창홍, #사진회화, #아리랑 연작, #표현주의, #식민과 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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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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