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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997년 8월 결혼했으니까, 올해로 15년이 되었습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으니 한 번 반이 변했습니다. 이렇게 강산은 끊임없이 변했지만 사위로서 제 삶은 변한 것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변한 것이 없다는 말이 좋은 의미가 아닙니다. 장모님께 사위노릇 제대로 한 적이 없다는 말입니다

명절마다 아주 적은 용돈을 드리거나 1년에 약 10번(명절 포함) 찾아뵙는 것 외에는 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명절 포함 10번이면 엄청나게 많이 찾아뵙는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차로 30분 거리니 말 다 했습니다.

그럼 장모님과 아내가 저에게 잘못하거나 부족할까요? 아닙니다. 아내는 13년 동안 하루 세 끼 따뜻한 밥을 해줄 정도였습니다. 요즘은 조금 덜 하지만. 이런 아내를 주신 장모님이라면 만날 만날 업고 다녀도 부족할 것인데 저는 전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안 했습니다. 불효도 이런 불효가 없지요.

몇 년 전부터는 장모님 몸이 편찮아도 따뜻한 말 한 마디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한 번씩 대구에 갈 때 차로 모셔다 드린 것이 사위로서 한 일의 전부였습니다. 장모님은 올해 일흔셋입니다. 일흔셋이면 지병이 없어도 점점 시력이 떨어집니다. 백내장이 온 것입니다. 녹내장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백내장이 온 것은 몰랐습니다.

"여보, 엄마가 전화하셨는데 12일 2시에 눈 수술을 받는다고 해요."
"알았어요."

이렇게 짧은 대화로 끝났습니다. 당연히 전화를 드려 눈이 얼마나 좋지 않느냐, 건강이 좋지 않는데 수술 받아도 되냐고 물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못내 섭섭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사위가 되어가지고 장모가 눈 수술을 받는데 안부 전화도 하지 않느냐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내는 내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12일 오후 안과로 갔습니다. 장모님은 벌써 와 계셨고, 수술 절차를 밟고 계셨습니다.

장모님의 백내장 수술... 사위 노릇 좀 해야 할 텐데 

백내장 수술 장면입니다. 붉은 동그라미가 눈동자입니다.
 백내장 수술 장면입니다. 붉은 동그라미가 눈동자입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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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모님 괜찮으세요? 수술 받아도 된다고 해요?"
"대구 병원에서 서류 다 받아 왔네. 수술 받아도 괜찮다고 했다."

"잘 안 보이세요? 녹내장이라고 하셨잖아요."
"녹내장은 없고, 백내장 수술."
"다행이네요."
"앞이 뿌옇게 보여서 영 불편하네."

수술실로 들어가는 장모님을 보면서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더 문안드리고, 보살펴야할 것인데, 사위로서 아무것도 한 일이 없었다는 자책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수술이 의외로 빨리 끝났습니다. 10분 정도 걸렸습니다. 요즘은 백내장 수술 장면을 텔레비전을 통해 다 보여주었습니다.

"이제 잘 보이세요?"
"아직은 잘 안 보여. 벌써 보일 수 있나."
"오늘은 제가 모셔다 드릴게요. 아니 그러지 말고 우리 집에서 주무세요. 내일 또 수술 받아야 하잖아요."
"그러고 싶은데 약을 안 가지고 왔네."
"하루쯤 드시지 않아도 되잖아요."
"안 먹으면 안 돼."
"그럼 내일 아침 일찍 모시러 갈게요."

그런데 어처구니 없는 것은 수술비를 장모님이 계산하는데도 제가 옆에서 '멍청하게' 서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게 말이 되는 일입니까? 장모님이 수술비 계산하는데도, 사위가 돼서 "제가 할게요"라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빈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제 딸이 이런 사위 만날까 겁납니다.

집에 모셔다 드리고 오면서 마음 한켠이 답답했습니다. 무엇보다 아내에게 미안했습니다. 그리고 다짐했습니다. 내일 수술비는 어떤 일이 있어도 내가 지불하겠다고. 물론 아내에게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13일 아침 일찍 장모님을 모시고 다시 병원으로 갔습니다.

"장모님 이제 잘 보이세요?"
"뿌옇게 보였는데 이제 밝게 보이네."
"수술이 좋기는 좋은 것 같습니다."

수술을 끝내고 수술비를 지불했습니다. 장모님은 끝까지 당신이 내겠다고 하셨지만 제가 냈습니다. 15년 만에 처음으로 사위 역할 '아주 조금' 했습니다. 아내는 함박웃음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못난 사위라고 생각했던 남편이 수술비를 직접 내는 모습이 놀라웠을 것입니다. 제 마음도 편안했습니다. 장모님도 기분이 좋은지 맛있는 아귀찜을 사주셨습니다.

장모님 건강하게 오래 오래 사세요. 그동안 잘 섬기지 못해 죄송합니다. 앞으로도 별다르지 않겠지만 조금씩 사위다운 사위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태그:#장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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