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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부산 가덕도 신공항 유치 희망지역인 새바지 앞바다로 어선이 조업을 나가고 있다. 이곳에 공항이 들어서게 되면 어민들은 더이상 이곳에서 조업을 할 수 없다.
 8일 부산 가덕도 신공항 유치 희망지역인 새바지 앞바다로 어선이 조업을 나가고 있다. 이곳에 공항이 들어서게 되면 어민들은 더이상 이곳에서 조업을 할 수 없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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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도(加德島)의 '가덕(加德)'은 '크게 더한다'는 뜻으로 이는 북측으로는 동북아 허브항만(부산 신항)이 들어서고 동측으로는 동북아 제2허브 공항이 들어섬으로써 '부산은 물론 대한민국의 국운을 더 크게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나아가 가덕도의 행정구역은 강서구 천가동(天加洞)에 속하며 여기서 '천가(天可)'란 '하늘로 더한다', 즉 '하늘 길(항로)이 가덕도 위로 열린다'는 뜻으로 이곳에 허브공항이 들어올 것을 선조들이 미리 예견하고 '천가'라 이름 지었다."

지난 8일 찾은 부산시 강서구 천가동 '부산 가덕신공항 전망대'의 안내판은 가덕도의 명칭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었다. 가덕도가 동남권 신공항 건설의 최적지임을 강조하기 위해 부산시가 설치한 안내판이었다. 신공항 유치 후보지를 내려다보고 세워진 안내판에는 조망도와 신공항의 건설규모, 가덕 신공항 후보지의 특징도 빼곡히 적혀있었다.

8일 부산 강서구 가덕도에 위치한 부산 가덕신공항 전망대에서 바라본 신공항 유치 희망 지역.
 8일 부산 강서구 가덕도에 위치한 부산 가덕신공항 전망대에서 바라본 신공항 유치 희망 지역.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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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판 너머로는 탁 트인 남해바다가 펼쳐졌다. 부산시는 동남권 신공항 입지로 이곳 가덕도 새바지 해안을 들고 나왔다. 해안 일대를 매립해 해상공항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반면 경남·경북·대구·울산 등의 다른 영남권 지자체들은 밀양을 유치 희망지로 내세웠다.

때문에 매번 선거 때마다 영남권 민심은 미묘한 신경전을 벌였고, 덩달아 정치권도 갈팡질팡했다. 이번 대선도 변함이 없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번만큼은 가덕으로 공항을 가져오겠다는 부산 시민들의 의지가 더 높아졌다는 점이다.

전망대에서 돌아서서 나오는 길, 낚시 가방을 멘 양명석(53·사상구)씨를 만날 수 있었다. 양씨는 새바지 방파제로 낚시를 하러 가는 길이었다. 자주 이곳에 와 낚시를 한다는 양씨는 이미 이곳이 신공항 유치 희망지임을 잘 알고 있었다.

"당연히 부산으로 와야지예."

신공항 이야기를 꺼내자 양씨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동남권 신공항을 가덕에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양씨는 "아무래도 신공항 건설이 (민심에) 영향을 주지 않겠어요"라고 되물었다. 양씨와 이야기를 하고 돌아서는데 그물을 손질하고 있는 한종식(49)씨가 보였다.

신공항 두려운 가덕도 주민... 다리 건너 부산시민은 '대환영'

가덕도 새바지마을 한종식(49)씨는 가덕 신공항 유치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는 정든 고향을 떠나는 것과 어업을 포기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신공항이 밀양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가덕도 새바지마을 한종식(49)씨는 가덕 신공항 유치에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는 정든 고향을 떠나는 것과 어업을 포기해야 한다는 점 때문에 신공항이 밀양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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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가 제철이라 출어로 앞두고 그물을 손보고 있다는 한씨는 가덕도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한씨에게 신공항은 정든 고향을 떠나야한다는 말이고, 천직으로 알고 살아온 바다를 버려야 한다는 소리와 같았다. 그래서 한씨의 대답은 "싫다"였다. "마을 사람들이 자신과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라는 한씨의 말은 맞는 듯했다. 새바지 비탈길에서 낚시꾼을 상대로 음식을 파는 주수복(68)씨도 "신공항이 달갑지 않다"고 말했다.

"1989년 가덕도가 부산에 편입되면서 땅은 벌써 외지 브로커들이 다 샀어요. 우리같이 집 하나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공항 들어선다고 나가라고 하면 밖에 나가서 집 한 채 못삽니다. 나고 자란 고향 버리고 이 나이 들어서 어디 가서 삽니까?"

물론 마을 주민 중에서는 공항을 찬성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망을 손보던 50대 여성은 "나이도 먹고 이제는 힘들어서 물고기도 못 잡겠고, 잡히지도 않는다"며 "차라리 어업 보상금을 받고 다른 일이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그는 신공항을 가덕에 건설하겠다는 후보가 나타나면 "당연히 찍는다"고 말했다.

"4·11 총선 때 야권 강세는 신공항 때문"

8일 김해국제공항 국제선 청사에서 이용객들이 도착 안내판을 보고있다. 군사공항을 겸하고 있고 민가가 가까운 김해공항은 보안과 소음 문제로 야간 이착륙이 불가능하다. 때문에 부산시는 24시간 공항 운영이 가능한 해상 공항으로 김해공항을 이전해야한다는 입장이다.
 8일 김해국제공항 국제선 청사에서 이용객들이 도착 안내판을 보고있다. 군사공항을 겸하고 있고 민가가 가까운 김해공항은 보안과 소음 문제로 야간 이착륙이 불가능하다. 때문에 부산시는 24시간 공항 운영이 가능한 해상 공항으로 김해공항을 이전해야한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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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덕도를 빠져나와 이번에는 김해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가덕 신공항 부지와는 직선거리로 20km가량 떨어진 곳. 정부는 2027년 김해공항이 포화 상태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가파르게 치솟는 해외 여행객 추이를 지켜봤을 때 김해공항의 포화는 빨라질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이를 반영해 한국공항공사는 2015년까지 공항 확장 공사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하지만 도심과 가깝고 군사 공항의 기능을 겸하고 있는 김해공항의 특성상 야간 비행이 불가능해 신공항 건설 요구는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국제선 터미널에서 가족을 기다리는 한영만(49·남구)씨는 김해공항을 가덕으로 이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군 공항은 인근 사천공항과 합치고 여객과 물류는 가덕도로 이전하고 기존 김해공항 부지는 다른 용도로 개발해야 한다"는 게 한씨의 생각. 한씨는 "지난 총선에서 야권이 40% 이상을 부산에서 가져갈 수 있었던 것도 신공항 때문"이라며 "이번에도 표심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8일 오후 필리핀으로 출국하기 위한 탑승객들의 수속절차가 김해국제공항 국제선 터미널에서 진행되고있다. 정부는 2027년 김해국제공항이 포화상태에 이를 것이라 전망했지만 가파르게 증가하는 이용객들로 인해 수치가 앞당겨 질 것으로 보인다.
 8일 오후 필리핀으로 출국하기 위한 탑승객들의 수속절차가 김해국제공항 국제선 터미널에서 진행되고있다. 정부는 2027년 김해국제공항이 포화상태에 이를 것이라 전망했지만 가파르게 증가하는 이용객들로 인해 수치가 앞당겨 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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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 밖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기사들은 신공항 이야기가 나오자 너도나도 '신공항은 부산이 적지'라고 강조했다. 그중 민주호(60)씨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부산 곳곳에 남아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치적을 자랑하던 민씨는 스스로를 여당 지지자라고 말했다.

그런 민씨도 밀양이 신공항을 가져가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씨는 "밀양에 신공항 주면 인자는 여당 안 찍습니데이"라고 말했다. 항공사 파일럿들을 많이 태운다는 김대수(60)씨가 "파일럿들도 신공항은 가덕도에 생기야 된다고 캅디다"라고 말하자 모여든 기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같은 지역 민심은 부산시가 지난 9월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에 공약 채택을 요구한 10대 공약 과제에도 그대로 묻어난다. 당시 부산시는 '김해국제공항 가덕 이전'을 첫 번째 과제로 요구했다. 부산시는 "김해공항이 현재 포화상태에 다다르고 발전에 한계가 있어 우리 지역내인 가덕도로 이전해 국가 경쟁력을 높여 나간다는 것"이라고 선정의 이유를 밝혔다. 부산시는 2년 전부터 부산 국제공항기획단을 운영 중이기도 하다.

"신공항, 대선 당락 결정하는 캐스팅보트"

부산광역시청 1층에 위치한 미래도서관(홍보관)에서 관람객들이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가덕 신공항 모형을 지켜보고 있다.
 부산광역시청 1층에 위치한 미래도서관(홍보관)에서 관람객들이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가덕 신공항 모형을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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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시민단체들도 신공항 유치에 적극적이다. 180여 개 시민단체가 모여 구성된 김해공항 가덕이전 범시민운동본부 박인호 공동대표는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김해공항의 가덕 이전은 반드시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대표는 "신공항 문제가 대선에 당락을 결정하는 캐스팅보트가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사정이 이렇자 각 정당들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그중 민주통합당이 동남권 신공항 문제에 가장 적극적이다. 동남권 신공항 건설의 필요성을 여러 차례 말해온 문재인 후보는 지난 10월 25일 부산 방문 당시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이 표류시킨 동남권 신공항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반면, 안철수 무소속 후보와 박근혜 후보는 적극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안 후보는 신공항 백지화에는 반대 입장을 나타내면서도 대선표 계산 차원에서 신공항 문제를 접근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역 민심에 놀란 새누리당, 가덕공항 유치에 '골치'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수차례 부산을 할 때도 신공항 이전에 대해서는 극도로 말을 아꼈다. 최근 새누리당이 '남부권 신공항'(주로 동남권 신공항에 대응해 밀양 유치를 희망하는 다른 지자체들이 사용하는 명칭)을 대선 공약으로 추진한다는 소식이 지역에 알려지면서 부산 지역 새누리당 의원들이 대책회의까지 열어 진화에 나서기도 했다.

지난 3일 새누리당 의원들은 "남부권 신공항을 대선 공약에 반영하겠다는 입장은 중앙당 확인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며 "새누리당 부산선대위는 김해공항 가덕이전 범시민운동본부, 김해공항 가덕이전 시민추진단 등 시민단체들과도 유기적 협조를 통해 시민기대에 부응할 것"이라는 성명까지 발표했다.

부산시가 김해국제공항의 대체 공항으로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동남권신공항 (예상도). 부산 강서구 가덕도 연안에 2개의 활주로와 터미널 등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하고있다.
 부산시가 김해국제공항의 대체 공항으로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동남권신공항 (예상도). 부산 강서구 가덕도 연안에 2개의 활주로와 터미널 등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하고있다.
ⓒ 부산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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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새누리당이 결합을 윈하는 시민단체들의 눈길은 싸늘하다. 시민단체·지역 경제계·학계 인사들이 모여 만든 김해공항 가덕이전 시민추진단 김희로 공동대표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새누리당 이야기를 들어봤지만, 박근혜 후보의 의지는 변함없는 것으로 안다"며 "부산 출신 새누리당 의원들이 자신의 몫을 못하면서 자신들이 어렵다고만 말한다"고 섭섭함을 드러냈다.

김 대표는 "삭발과 촛불시위 등을 계획하고 있고, 부산시민 전체가 이 문제에 대해 인식하고 함께 행동하는 게 우리의 목적"이라며 "변화가 없을 경우 한 옥타브씩 (대응 수위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지역의 민심을 고려해 박근혜 후보가 어떤 식으로든 입장을 꺼내야 한다는 소리가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당장 9일 부산 방문에서 박 후보가 신공항에 대한 말을 꺼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부산의 손을 들어줄 경우 박 후보의 텃밭인 대구·경북을 비롯한 경남·울산 지역의 반발을 무시할 수 없다. 이래저래 박 후보와 새누리당에게는 난감한 상황인 셈이다.

동시에 신공항 이슈를 선점한 민주당이 지금의 승기를 대선까지 이어갈 수 있을 지도 의견이 분분하다. 적극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던 안철수 후보의 선택에도 눈길이 쏠린다. 이번 대선에서 최고 이슈로 떠오른 신공항을 사이에 둔 각 후보들의 발걸음을 부산시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태그:#동남권신공항, #가덕도,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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