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동 시인은 대학생 신분으로 교복을 입은 채 월남한 뒤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다. 따라서 그의 시작품에 들어 있는 그리움이나 아픔이나 사랑 등은 개인적인 것이면서도 역사적이고 민족적인 것이 된다.
그가 1951년 이후 '후반기' 동인활동을 한 것이나, 1974년 '민주회복국민선언대회'에 참가한 이후 독재정권에 맞선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머리말> 몇 토막, 연구서 5쪽
2011년 9월 28일 폐렴으로 이 세상을 떠난 시인 김규동(1925. 2. 13~2011. 9. 28) 선생을 자나 깨나 스승으로 모시며 잘 따랐고, 선생 또한 그를 아들처럼 여긴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맹문재. 그가 여러 시인과 문학평론가과 더불어 '깊이 읽기' 시리즈 첫 번째 연구서인 <김규동 깊이 읽기>(푸른사상)를 엮어냈다.
이 연구서에는 올해 타계 1주기를 맞은 고 김규동 시인이 1948년 <예술 조선>에 '강'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한 뒤 2011년 이 세상을 떠나기까지 선생이 남긴 모든 작품을 드넓고 깊이 있게 읽은 평론과 대담이 영정처럼 실려 있다. '나는 시인이다'라고 외치며 저승으로 떠난 김규동 시인을 기어이 이승으로 불러내고야 말겠다는 듯이.
이 책은 제1부 '문학사론', 제2부 '주제론', 제3부 '시인론', 제4부 '대담' 등 모두 4부에 15꼭지가 시인 김규동 선생 삶과 문학, 그 안팎을 샅샅이 빗질하고 있다. '김규동 시세계의 변모과정과 회복의 시정신', '분열과 부정에서 통일 염원에 이르는 도정', '1950년대 김규동 시론에 나타난 현실성 인식', '시인 김규동', '먼 이야기보다 가까운 이야기를 쓰자' 등과 자세한 연보가 그 연구자료들.
이 연구서에 글을 실은 문인들은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이동순(영남대 교수), 문학평론가 김홍진(한남대 교수), 문학평론가 한강희(전남도립대 교수), 시인 박몽구(순천향대 강사), 문학평론가 김효은(경희대 강사),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맹문재(안양대 교수), 문학평론가 강정구(경희대 교수), 문학평론가 김종회(경희대 교수), 문학평론가 윤여탁(서울대 교수), 문학평론가 박윤우(서경대 교수), 문학평론가 김지연(가톨릭대 교수), 문학평론가 김은영(경남도립남해대 교수), 시인 김시철(전 한국펜클럽 회장), 시인 문창길(<창작 21> 발행인)이다.
이 책을 엮은 맹문재는 '머리말'에서 "김규동 시인은 한국 현대 시문학사의 산증인이었다"고 되짚는다. 그는 "1948년 <예술 조선>에 '강'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온 뒤 2011년 타계하기까지 남긴 시작품과 시론, 그리고 실천행동은 격동의 시대와 함께한 것이어서 더욱 소중하기만 하다"고 쓴다.
그는 "김규동 시인의 작품세계를 본격적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는데, 이 책이 그 시발점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며 "김규동 시인은 시작품뿐만 아니라 시론에도 매우 깊은 인식을 보여주었다. 그가 다수의 시론집과 평론집에서 제시한 과학정신이며 저항정신은 오늘날의 시인들이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김일성대학 중퇴한 사실 탄로날까 전전긍긍하는 세월이 계속되었다
"김규동의 시들이 목소리가 높고 선이 굵은 시인들의 시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것은 그의 마이너리티로서의 저력으로부터 나온다고 할 수 있다... 김규동은 북녘에서 민주청년동맹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등의 이유로 탄압을 받자, 스물세 살에 단신 월남한 사람이다.
하지만 자유를 찾아 내려오자마자 취조를 받았음은 물론, 그 후로도 오랫동안 김일성대학을 중퇴한 사실이 탄로날까봐 전전긍긍하는 세월이 계속되었다 한다." -박몽구, <모더니티와 비판정신의 지평> 몇 토막, 연구서 114쪽
시인과 문학평론가 14명이 함께 쓴 <김규동 깊이 읽기> 제1부 '문학사론'은 김규동 시인이 남긴 시세계를 아우르는 깊이 있는 글들이다. 제2부 '주제론'은 1950년대 김규동 시인이 쓴 초기 시를 가로 세로란 잣대로 꼼꼼하게 잰 글들이다.
제3부 '시인론'은 김규동 시인이 겪었던 삶과 문학을 되짚는 글이다. 제4부 '대담'은 김규동 시인이 이 세상을 떠나기에 앞서 후배 시인인 맹문재와 문창길과 나눈 이야기다.
제1부 '문학사론'은 이동순, 김홍진, 한강희, 박몽구, 맹문재가 쓴 글이다. 이동순은 '김규동 시세계의 변모 과정과 회복의 시정신'에서 김규동 시인이 펴낸 시집 아홉 권을 하나 하나 불러낸다. 그는 김규동 시인 시세계에서 드러나는 검은색(분단과 죽음)과 나비(분단 극복), 어머니(분단 상황 다독이기) 등 세 가지 이미지를 평론이라는 그물에 담았다.
김홍진은 '모더니티에서 민중적 현실인식으로서의 시적 갱신-김규동의 시적 편력과 변신의 의미 자장'에서 모더니스트였던 김규동 시인이 리얼리스트로 나아가는 길을 따라 걸었다. 한강희는 '분열과 부정에서 통일염원에 이르는 도정-김규동론'에서 김규동 시인이 생전에 펴낸 시집을 꼼꼼하게 걸러내면서 김규동 시인이 쓴 시의 뿌리를 찾았다.
박몽구는 '모더니티와 비판정신의 지평-김규동론'에서 김규동이 시인이 쓴 모더니즘 시와 리얼리즘 시가 지닌 그 차이점과 공통분모를 걸러냈다. 김규동 시인이 쓴 모더니즘 시는 단순하게 "도시적 감수성이나 미적 자의식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속물주의가 고착화된 기득권 계급에 대한 저항 의지를 담은 것이고, 김규동의 민중시는 다른 시인들에 비해 시어의 조탁과 고도의 상징 등을 통해 독특한 시 세계를 확보했다"는 것이다.
김효은은 '허망의 광장에서 희망의 느릅나무에게로-김규동의 후기 시세계'에서 마지막까지 '나는 시인이다'라고 외친 김규동 시인 후기 시에 눈길을 던졌다. 김규동 시인은 초기에 모더니즘을 밟으면서도 우리 민족 상황과 지구촌 현실을 내팽개치지 않았다는 것을, 민족 통일을 피울음처럼 읊은 후기 시를 통해 다시 되짚었다.
맹문재는 '나비와 광장의 시학-김규동의 시'에서 "김규동의 '나비와 광장'은 김기림의 모더니즘을 계승한 것이면서 최인훈의 모더니즘 세계를 이루는 토대가 된 것이고, 또 김기림의 리얼리티를 반영한 것이면서 최인훈의 리얼리티에 거울이 된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는 곧 김규동 시인이 시인 김기림, 작가 최인훈과 함께 분단문학 족보를 만들었다는 것.
모더니즘 시론을 시도하면서도 고향과 어머니와 조국을 품었다 "김규동 시론에 나타난 모더니즘의 자기 반성은 당대의 혼란한 상황에서 시문학이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인식으로서 혼란과 무질서를 뚫고 새로운 질서를 형성하는 것을 모더니즘의 사명으로 이해하도록 하는 데까지 이르고 있다." -박윤우, <1950년대 김규동 시론에 나타난 현실성 인식> 몇 토막, 연구서 252쪽 제2부에는 김규동 시인이 1950년대에 쓴 모더니즘 시에 숨겨져 있는 리얼리즘에 대해 강정구, 김종회, 윤여탁, 박윤우, 김지연, 김은영, 김효은이 평론이란 돋보기를 들고 꼼꼼하게 살폈다. 강정구, 김종회는 '1950년대 김규동의 문학담론에 나타난 과학 표상 고찰'에서 "김규동의 과학 표상은 1930년대 주지주의 시론으로 제기되었던 비평의 방법론 차원을 넘는 것으로, 한국전쟁과 분단으로 야기된 역사적, 사회적 혼란과 불안한 상황을 극복해내려는 지적인 사고방식의 일환"이라고 보았다.
윤여탁은 '1950년대 모더니스트의 자기 모색-김규동의 경우'에서 "김규동 시인이 모더니즘 시론을 시도하면서도 고향과 어머니와 조국을 품은 면"을 찾아냈다. 박윤우는 '1950년대 김규동 시론에 나타난 현실성 인식'에서 "김규동 시인은 청록파를 위시한 순수시 운동이 과학적 사고에 입각하지 않았기에 비판했는데, 그와 같은 관점으로 당대의 혼란한 현실 또한 비판했다"고 밝혔다.
김지연은 '1950년대 김규동 시의 시정신'에서 한국전쟁으로 인한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도 새로운 정신과 신화라는 세계를 찾는 김규동 시인이 쓴 시를 비추었다. 김은영은 '김규동의 시세계 연구-초기 시와 영화의 친연성을 중심으로'에서 "김규동 시인이 과학적 시의 방법론으로 초현실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아방가르드 영화에 집중했는데, 한국전쟁 후의 암울하고 절망적인 상황을 표현하려는 것이었고, 나아가 당대의 현실을 비판하려는 것"이었다고 귀띔했다.
죽는 그날까지 고향에 있는 느릅나무를 애간장 녹이며 그리워한 노시인"김규동 시인의 시에는 애당초 기교 따위는 배제돼 있고, 가식이나 군더더기 없는 것이 특징이다. 이를테면 사슬이 없다는 말이다. 다소 직감적이고 직설적인 기법이기는 하나 언제나 그의 시에서는, 독자를 향한 강렬한 메시지를 감지할 수 있어서 때로는 짜릿할 만큼 공감대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김시철, <시인 김규동> 몇 토막, 연구서 329~330쪽제3부는 김규동 시인이 살아온 삶과 시를 김시철이 참깨 털듯이 톡톡 털었다. 김규동 시인 출생지에서 문단활동, 시세계, 시론, 전각활동, 자식사랑, 후배 챙겨주는 마음 등이 그 글들이다. 제4부는 김규동 시인이 후배 시인들과 나눈 이야기다. 김규동 시인은 문창길에게 함경도 두만강변에 자라온 유년시절과 집안형편, 학교생활, 8·15해방, 한국전쟁, 동인지 <백안> 발간과정, '후반기' 동인활동, 민주화운동, 환경문제, 민족분단 및 통일과제 등에 대해 들려준다.
맹문재에게는 박인환 시인과 첫 만남, '후반기' 동인 활동, 박인환 시인과 일화, 박인환 시인과 김수영 시인 관계 등을 자세하게 들려주고 있다. 맹문재는 "'다시 보는 박인환 시인'이라는 주제를 내걸고 김규동 선생님과 나눈 이 대담은 박인환 시인 탄생 80주년 타계 50주년을 기념하면서 이루어진 특별대담이었다"고 귀띔했다.
시인과 문학평론가 14명이 함께 쓰고 맹문재가 엮은 <김규동 깊이 읽기>는 해방과 분단, 전쟁과 분단을 겪으며 고향마저 잃어버린 시인 김규동 선생이 걸어온 발자취와 올곧은 시정신을 고스란히 쓸어 담고 있다. 우리는 죽는 그날까지 고향에 있는 느릅나무를 애간장 녹이며 그리워한 노시인이 속울음을 꾹꾹 눌러 쓴 시를 통해 제대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왜 통일한국이 되어야만 하는 것인지 저절로 깨닫게 된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 맹문재는 1963년 충북 단양에서 태어나 1991년 <문학정신>으로 작품횔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먼 길을 움직인다> <물고기에게 배우다> <책이 무거운 이유>가 있으며, 시론 및 비평집으로 <한국 민중시 문학사> <패스카드 시대의 휴머니즘 시> <지식인 시의 대상애> <현대시의 성숙과 지향> <시학의 변주> <만인보의 시학> <여성시의 대문자>를 펴냈다.
편저로는 <박인환 전집><박인환 깊이 읽기><김명순 전집-시·희곡><한국 대표 노동시집>이 있으며, 공편으로는 <페미니즘과 에로티즘 문학><한국 근대여성의 일상문화>(9권) <한국 현대여성의 일상문화>(8권)<한국 현대 대표 시선>이 있다. 1993년 제5회 전태일문학상, 1996년 제6회 윤상원문학상 받음. 지금 안양대 국문과 교수를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