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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하게 의수를 드러낸 석창우 화백
 당당하게 의수를 드러낸 석창우 화백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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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한결 느려진 내 모습이 좋다. 뛸 듯이 기쁜 일이 있어도 뛰지 않을 수 있게 되었고, 땅이 꺼질 듯 슬픈 일이 있어도 땅이 꺼질 만큼 한 숨을 쉬지 않게 되었다. 이렇듯 좀 덕이 되는 일이 있어도, 좀 억울한 일을 당해도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게 된 것을 나는 마침내 '성숙'이라고 치부하게 되었다.

그것은 시간의 속성을 깨닫고부터다. 중국 역사를 통틀어 가장 엄정한 판관으로 이름난 청백리 포청천(包靑天)보다도 더욱 공평한 판관이 시간이다. 아무리 교묘한 속임수를 가진다고 해도 시간을 속일 수는 없다.

시간은 모든 것을 명백하게 해준다. 바른 것은 바르게, 그릇된 것은 그릇되었음을 드러내어준다. 지금 당장 기쁜 일이 기뻐할 일인지, 지금 당장 억울한 일이 억울한 일인지는 시간이 흐른 뒤에 그 시간이 가려줄 뿐이다.  

밥 먹는 훈련 대신 붓을 잡는 훈련에 매진한 쇠갈고리 화가

가을이 한창일 때 석창우 화가가 내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 '모티프원'을 방문했다. 원래 전기공학을 전공하고 중소기업 전기실에 근무하던 전기기사였다. 어느 날 자신의 몫이 아닌 일을 솔선해 고장 난 고압차단장치를 수리하다가 2만2900V의 고압전기에 노출됐다. 1984년의 그 특별고압 전기는 양팔과 왼발가락 2개를 앗아갔다. 목숨은 건졌지만 재활을 위해 1년 6개월을 병원에서 지냈다. 퇴원 후에도 물 한 모금조차 부인이 먹여주어야 하는 절망의 상황이 계속됐다.

옷을 갖추어 입었을 때는 의수만 드러나기 때문에 석창우 화백의 팔이 얼마나 손상되었는지를 알 수 없다.
 옷을 갖추어 입었을 때는 의수만 드러나기 때문에 석창우 화백의 팔이 얼마나 손상되었는지를 알 수 없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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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으로 집에 있던 그에게 어린 아들이 종이를 내밀었다.

"아빠, 그림 좀 그려주세요."

그는 갈고리에 펜을 끼워 혼신으로 그림을 그렸다. 그 그림을 보고 아들도 놀라고, 부인도 놀랐다. 본인도 마침내 할일이 생겼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 길로 남편을 대신해 일을 해야 했던 부인은 일조차 접고 남편이 글씨 쓰고 그림 그리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보조했다. 7년간 석 화백을 태우고 스승를 찾아 붓을 잡게 했다.

지금은 쇠갈고리로 능숙하게 붓을 잡고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는 중견작가 반열에 올랐지만 본인은 아직도 스스로 밥을 먹지 못한다. 밥을 먹는 것을 훈련하기보다 붓을 잡는 훈련이 먼저였고 갈고리조차 밥숟가락을 잡기 위함이 아니라 붓을 잡기 좋도록 조정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석창우 화백의 수족이 되어 주고 있는 아내 곽혜숙과 함께.
 지금도 석창우 화백의 수족이 되어 주고 있는 아내 곽혜숙과 함께.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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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등을 기대고 있는 모습의 석 화백의 서명. 모든 사람은 서로가 서로에게 기둥이 되어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서로 등을 기대고 있는 모습의 석 화백의 서명. 모든 사람은 서로가 서로에게 기둥이 되어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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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배도 부인이 대신해 준다. 그리고 석 화백은 오른쪽 쇠갈고리를 상대의 잔에 살짝 부딪혀 '쨍'하는 소리를 만들어 준다.
 건배도 부인이 대신해 준다. 그리고 석 화백은 오른쪽 쇠갈고리를 상대의 잔에 살짝 부딪혀 '쨍'하는 소리를 만들어 준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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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은 것에의 갈구, 인체 드로잉과 움직임

다시 모티프원에서 석 화백을 대면할 기회가 있었다. 가을볕이 따가운 날이었다. 실내에 들어온 뒤 잘 차려입었던 외투를 벗었다.  

갈고리만 보였던 그의 팔 전체가 드러났다.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양팔이 없는 밀로의 비너스 조각상과 꼭 같은 모습이었다. 손목과 척골 부위만을 잃은 것이 아니라 위팔뼈의 일부만 남은 상태였다. 그가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거반 어깨뼈의 힘을 빌려야 했다. 그가 의수화가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도전과 좌절이 있었을지는 어깨에 매달린 의수가 증언하고 있었다.

그의 양팔에는 초록과 노란색의 팔찌가 끼여 있다. '2012 런던 올림픽'의 문화행사에 참가해서 시연을 보일 때 자원봉사자들이 기념품으로 준 고무밴드다.
 그의 양팔에는 초록과 노란색의 팔찌가 끼여 있다. '2012 런던 올림픽'의 문화행사에 참가해서 시연을 보일 때 자원봉사자들이 기념품으로 준 고무밴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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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컴퓨터와 전자기기 사용에도 능하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경우 쇠갈고리의 터치로 잘 되지 않는 기능이 있다. 이 경우는 어쩔 수 없이 엄지발가락을 사용한다.
 그는 컴퓨터와 전자기기 사용에도 능하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경우 쇠갈고리의 터치로 잘 되지 않는 기능이 있다. 이 경우는 어쩔 수 없이 엄지발가락을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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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스마트폰의 경우 쇠갈고리의 터치로 잘 되지 않는 기능이 있다. 이 경우는 어쩔 수 없이 엄지발가락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스마트폰의 경우 쇠갈고리의 터치로 잘 되지 않는 기능이 있다. 이 경우는 어쩔 수 없이 엄지발가락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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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수묵 크로키 중에서 유독 인체에 매달리는지, 그리고 정지된 모습이 아니라 움직임에 몰두하는지를 짐작할 만했다. 누구나 잃고 보면 없어진 것이 그리워지고 불가능해진 것이 있으면 그 불가능에 다시 도전하고 싶어지는 그 마음 말이다.

그는 주로 먹 크로키로 사람을 그린다. 그중에서 움직임이 있는 스포츠가 그 대상이다.
 그는 주로 먹 크로키로 사람을 그린다. 그중에서 움직임이 있는 스포츠가 그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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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와 경륜, 피겨스케이팅의 연작이 이어졌다. 경륜을 표현하기 위해 그는 경륜경정사업본부의 특별허가를 얻어 광명스피돔에서 1년을 보냈다.
 축구와 경륜, 피겨스케이팅의 연작이 이어졌다. 경륜을 표현하기 위해 그는 경륜경정사업본부의 특별허가를 얻어 광명스피돔에서 1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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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한담을 즐긴 뒤 막 일어서려는 그에게 물었다. 

"28년 이전의 석창우와 현재의 석창우 중 어떤 자신이 더 행복합니까?"
"물론, 지금입니다." 

그는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팔을 잃기 전의 전기기사 석창우보다 팔이 없는 현재의 의수화가 석창우가 더욱 행복하다고 답했다. 전기에 감전되고 양팔과 발가락을 잘린 상태로 회복실에서 마취에 깨어났을 때 그는 생각했을 것이다.  

'이 세상에 나보다 불행한 사람이 있을까?'

고독한 中心 달리는 線
한국문화정품관 개관 기념 석창우 초대전
석창우 화백의 34회 초대전이 한국문화정품관 갤러리에서 열립니다. 이번 전시는 도자타일에 작업한 도화입니다. 11월 8일 오후 5시의 오프닝에서는 갤러리에서 석 화백의 작품시연이 있을 예정입니다.  

석창우 34회 초대전
기간 | 2012 11월 8일(목)~11월 27일(화)
장소 | 한국문화정품관 갤러리
문의 | 02-747-5634(서울시 종로구 운니동 1번지 3층)
28년이 지난 지금 그는 일말의 의심도 없이 본인의 지복(至福)을 말한다. 석화백의 호는 유빙(流氷, 성엣장)이다. 

"누가 지어준 호입니까?"
"제가 지었습니다."

"하필이며 '흘러가는 얼음덩이'입니까?"
"유빙은 물 위를 떠서 흘러가다가 언젠가는 녹아 없어지잖아요. 저는 녹아서 자신을 버리고 흔적 없이 강물에 동화되어가는 그 성엣장의 모습이 좋아요." 

시간이라는 판관 앞에 서기 전까지는 어떤 것도 먼저 판단할 일이 아니다. 시간은 두 팔을 잃은 불운의 전기기사를 지복을 고백하는 화가로 만들고 그 행복한 화가도 언젠가는 유빙처럼 존재를 짐작조차할 수 없는 강물로 만들어 버릴 것이다.

유빙 석창우, 그는 시간이라는 속성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화가임에 틀림없다.

석 화백과 얘기 중에 마침 모티프원에 한 모자가 방문했다.
 석 화백과 얘기 중에 마침 모티프원에 한 모자가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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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기꺼이 그 어린이를 위해 덕담을 써주었다. "배원준님께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세요." 그에게 '감사'는 일상이었다.
 그는 기꺼이 그 어린이를 위해 덕담을 써주었다. "배원준님께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세요." 그에게 '감사'는 일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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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림을 바닥에서 그릴 수밖에 없다. 발바닥을 손처럼 쓰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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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창우 화백 바로가기
http://www.cwsuk.com
http://blog.joinsmsn.com/cwsuk
http://cafe.daum.net/cwsuk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석창우, #크로키, #의수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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