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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농장
▲ 민들레 농장 민들레 농장
ⓒ 김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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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의선 철길 옆 공터에 스무 평 남짓한 채마밭을 개간했다. 방치된 폐지였기에 악전고투하며 땅을 일구었다. "뭘 심을려구 그 고생이우? 온전히 땅노릇이나 하겠우?" 지나가던 동네 사람들이 한 마디씩 던진다. 정말 자갈 반 흙 반이었다. 도무지 삽이 들어가지 않았다. 포기할까 싶다가도 다시 시작하고 그렇게 며칠을 공력을 들였다. 골라낸 돌탑이 높아질수록 땅은 옥토로 변했다. 그렇게 만든 것이 '민들레 농장'이다. 나의 보물농장 1호가 탄생한 것이다.

고구마 꽃이 피었네!

철망 쪽 자투리땅에는 옥수수, 호박, 도라지를 심고 본토에는 고구마를 심었다. 사월 내내 가뭄이 계속 되었다. 바짝 마른 농심이 연일 뉴스를 탔다. 고구마는 착근이 되지 못하고 시들어갔다. 안쓰러운 마음에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저씨 집에 안 가세요? 어두운데 또 물주세요!"
"식물이든 자식이든 밤에 물을 줘야 잘 자라는 법이라우."

고구마 꽃
▲ 고구마 꽃 고구마 꽃
ⓒ 김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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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아주머니들의 입방아에 나도 농섞인 화답을 했다. 나는 어느새 동네에서 "밤에 물주는 아저씨"로 통하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퇴근 후 야간 물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용수시설이 없기에 농수로에서 차로 실어 와 물을 주다 보면 어느새 밤 열시가 훌쩍 넘곤 했다. 어떻게든 살려 보려는 애착이 도를 넘어 그만 집착이 되어버린 것이다. 수혈 하듯이 포기마다 막대기로 구멍을 내어 물을 주었다. 흙신발을 끌고 천근만근 무거운 허리로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만 작작하쇼 잉! 물 싣는 기름 값도 안나오겠수."

아내의 눈홀김도 묵묵히 감내했다. 맞긴 맞는 말이다. 소출로 따지면 절대 못할 짓이다. 가뭄이 끝나고 지루하게 쏟아지던 장대비가 그치던 날, 나의 고구마 밭에도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주인의 정성에 감복했는지 백년에 한 번 정도 핀다는 귀한 꽃소식이 온 것이다. 나팔 같은 연보라 꽃잎, 마치 나와 연애 하자는 듯 그 도톰한 입술을 내 터럭 가슴으로 쑥 내미는 것이다.

4kg짜리 고구마 대통령!

어느 볕 좋은 날 고구마를 캤다. 예상 외로 대박이었다. 큼지막하고 실한 호박고구마들이 밭고랑에 가득했다. 마치 오랜 고행 끝에 나온 해탈한 스님들처럼 반들반들한 고구마들이 헤살스럽게 뒹굴었다. 거북이 닮은 놈, 도마뱀 닮은 놈, 두꺼비 닮은 놈, 모양도 제 각각이다. "요놈은 영락없이 우리 집 막내 놈의 심술이네" 하면서 아내가 고구마 꼬랑지를 흔들며 연신 생글거린다. 살면서 이만한 즐거움이 또 어디 있을까.

동생이 고구마를 캐다 말고 탄성을 지른다. 달려가 보니 돌부처 같은 놈이 가부좌를 틀고 있지 않은가? 캐어보니 참으로 기괴하고 못생겼다. 움푹 파인 눈들이 마치 태백준령을 넘어가는 거인의 발자국처럼 가파르다. 만져보니 속내는 야무지고 단단한 것 같다. 저울에 달아보니 4kg이나 되었다. 가히 대통령 감이다. 옆 고랑에서 2.7kg 되는 자색고구마를 하나 더 캤다. 아내는 흙을 털어내며 "에고 이게 금덩이였으면 백 년은 먹고도 남을 양식인데…"라며 생뚱맞은 욕심을 낸다.    

도대체 고구마에게 무슨 짓을 한거야

4kg 짜리 호박고구마
▲ 4kg 짜리 호박고구마 4kg 짜리 호박고구마
ⓒ 김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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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 고구마를 캔 즐거움을 어찌 나만의 비밀로 할까? 몇몇 친구들에게 문자로 자랑했다. "도대체 고구마에게 무슨 짓을 한거야?" 한 친구의 답신에 피식 웃음이 났다. 정말 나는 고구마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일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무슨 짓을 하긴 했다. 척박한 땅을 개간했다. 돌을 골라내고 상처 난 자리를 부드러운 흙으로 메웠다. 한 포기 한 포기 지극 정성으로 물을 주었다. 진자리 마른자리, 삐딱한 놈 이뿐 놈 가리지 않고 보듬어 주었다.

약한 놈에게 더 많은 물을 주었다. 햇빛도 골고루 들게 날 순을 쳐 주고 엉켜있는 줄기를 싸우지 말라고 풀어 주었다. 그리고 밭둑에 앉아 간간히 휘파람도 불어 주었다. 그렇게 긴 가뭄과 우기를 머금은 칠흑의 밤이 지나고 드디어 결실의 가을이 왔다. 척박한 땅에서 저렇게 단단하고 야무진 고구마 가 나온 것이다. 내가 신심을 다해 정성을 주니 고구마가 튼실한 대통령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대통령 선거 유세가 한창이다. 대통령의 자리가 고구마 키우는 일과 무에 그리 다를까? 각진 돌을 고르고 상처 난 땅에 부드러운 흙의 숨결을 채워 넣는 일, 삐딱한 놈 예쁜 놈 가리지 않고 보듬으며 자나 깨나 고구마 걱정에 물을 주는 일, 밭둑을 서성이며 즐거운 휘파람을 불어 주는 일, 그런 것들이 대통령이 국민에게 할 도리가 아닐까?

역사의 태풍에 상처 난 민초들의 마음을 녹여주는 대통령, 생각이 다른 자들에게 신심을 다하여 설득하고, 약한 자 들에게 더 많은 물을 주는 대통령, 옳고 그름은 바로 세우되 흑백에 집착하지 않아 마침내 상하좌우를 아우르고 미래로 성큼 걸어가는 대통령, 난장의 투구 꽃을 내려놓고 백년 만에 국민의 가슴마다 화합의 고구마 꽃을 피우게 하는 대통령, 그리하여 자라나는 아이들의 샛푸른 꿈 속에도 나타나는 대통령, 그런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

그런 대통령의 탄생이 임박했음을 나는 믿는다. 가장무도회처럼 전국을 돌며 국민들의 가슴에 유쾌한 웃음을 주며, 덩실덩실 어깨 춤추며 국민 속으로 걸어가는, 그런 담대한 대통령이 지금 저기 걸어오고 있다. 그 대통령의 단비를 먹고 5년 뒤에는 국민이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 온 국민이 속이 꽉찬 4kg짜리 고구마 대통령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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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백이 익어가는 마을! 민들레농장, 농장지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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