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방영한 SBS 월화드라마<드라마의 제왕> 한 장면

지난 5일 방영한 SBS 월화드라마<드라마의 제왕> 한 장면 ⓒ SBS


김명민 주연의 SBS 월화드라마 <드라마의 제왕>이 첫 걸음을 내딛었다. 드라마를 둘러싼 다양한 직업의 인간 군상들을 실감나게 그려낸 첫 회는 시청자들의 흥미를 자극하며 시선몰이에 성공한 모양새다. 특히 정려원이 연기할 방송작가의 치열한 삶은 <드라마의 제왕>이 자랑하는 흥행 포인트 중 하나다.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실제 방송작가의 세계는 어떠할까.

심해지는 양극화, '회당 1억'과 '한 달 60만원'

우리나라 방송작가의 수는 대략 2000여명 정도로 추산되는데 이 중 400여명 정도가 드라마 작가이고, 1500여명이 종합구성작가, 100여명이 외화번역 작가이다. 이 중 평균적으로 가장 좋은 대우를 받고 있는 집단은 단연 드라마 작가들이다. <드라마의 제왕> 첫 회 중 회사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김명민이 '톱클래스' 드라마 작가 포섭에 공을 들인 이유도 그들이 갖고 있는 영향력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드라마 작가들이 좋은 대우를 받는 것은 아니다. 그 중에서도 선택받은 몇몇만이 흔히 말하는 'A+급' 대우를 받는다. 대한민국에서 드라마 작가로 가장 대성한 인물은 단연 '언어의 마술사' 김수현이다. 45년간 무수한 히트작을 쏟아내며 당대 최고의 방송작가로 군림한 그녀는 최근 종편 드라마 <무자식 상팔자>로 회당 1억 원이라는 천문학적 원고료를 받아 화제가 됐다.

'방송사 사장은 바뀌어도 김수현은 영원하다'는 우스갯소리처럼 각 방송사는 예나 지금이나 김수현 모시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방송국 사장이 직접 챙기는 몇 안 되는 작가인 그녀는 간단한 시놉시스만으로도 원하는 시간대에 편성을 받을 수 있고, 자신이 일하고 싶은 감독과 배우를 지명할 수 있는 방송가 최고의 문화 권력이다.

 드라마작가 김수현

드라마작가 김수현 ⓒ SBS


김수현의 뒤를 이어 최고 대우를 받는 작가로는 김은숙을 들 수 있다. 회당 3000~4000만원의 고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진 그녀는 <파리의 연인><프라하의 연인><연인><온에어><시크릿 가든><신사의 품격> 등 최고의 히트작들을 줄줄이 쏟아내며 단기간 내 엄청난 성공가도를 달린 입지전적 인물이다. 이런 흥행성 덕분에 그녀는 국내 내로라하는 톱스타들이 가장 선호하는 드라마작가로 손꼽히고 있다.

이 외에도 <대장금><서동요><선덕여왕><뿌리깊은 나무>의 김영현, <종합병원><허준><올인><빛과 그림자>의 최완규, <바람은 불어도><소문난 칠공주><장밋빛 인생>의 문영남, <보고 또 보고><인어아가씨><하늘이시여>의 임성한, <미안하다 사랑한다><고맙습니다><착한남자>의 이경희, <거짓말><화려한 시절><그들이 사는 세상>의 노희경, <여명의 눈동자><모래시계><태왕사신기>의 송지나 등이 초특급 대우를 받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작가들은 어떨까. 중앙대 성동규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방송작가 중 30%가 1년에 1000만원이 채 안 되는 수입을 올리고 있으며, 2000만원 미만의 연봉을 받는 사람도 50%를 넘어서는 수준이라고 한다. 창작의 고통에 시달리는 대부분의 방송 작가들이 고작 200만원도 안 되는 월급으로 생활을 연명한다는 이야기다.

메인 작가가 아닌 서브 작가나 스크립터(자료조사원)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부산교통방송에서 근무하고 있는 방송작가 박선영은 <고함20>과의 인터뷰에서 "1997년, 한 달 동안 프로그램 오프닝 작성을 해 받은 첫 월급이 4만원이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당시 최저시급이 1400원, 하루 최저임금액이 11200원이었으니 월급 4만원은 말도 안 되는 대우였던 셈이다.

현재는 사정이 조금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서브 작가들 대부분은 주당 10만원에서 30만원이라는 돈을 받고 있다. 메인 작가가 되기까지 적어도 3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고 봤을 때 이 정도 금액은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하기에 턱 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특히 최하위 클래스인 스크립터는 아르바이트 신분으로 취급돼 4대 보험, 야근 수당 등의 혜택마저 포기해야 한다. 이들에게 상위 1% 작가들이 누리는 삶은 그저 '환상'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2일 오후 서울 상암동 SBS프리즘에서 열린 월화드라마 <드라마의 제왕>제작현장 공개에서 드라마 외주제작사계의 천재적 경영종결자 앤서니 김 역의 배우 김명민과 드라마 보조작가 이고은 역의 배우 정려원이 촬영에 앞서 리허설을 하고 있다.

2일 오후 서울 상암동 SBS프리즘에서 열린 월화드라마 <드라마의 제왕>제작현장 공개에서 드라마 외주제작사계의 천재적 경영종결자 앤서니 김 역의 배우 김명민과 드라마 보조작가 이고은 역의 배우 정려원이 촬영에 앞서 리허설을 하고 있다. ⓒ 이정민


'시청률 스트레스'에 폭언까지, 각박한 현장 분위기

적은 월급만큼이나 방송작가들을 괴롭히는 것은 '시청률 스트레스'다. 톱클래스 작가들조차 자유롭지 못한 이 시청률 스트레스는 방송작가라면 누구나 겪어야 하는 압박중 하나다. 2006년 암으로 안타깝게 세상을 등진 드라마 작가 조소혜(대표작 <젊은이의 양지><첫사랑>)는 "암보다 더 무서웠던 것이 매일 받아드는 시청률 표"라고 이야기했다.

성동규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시청률과 작품성은 비례한다고 보는가?"라는 질문에 방송작가 중 93%가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작품을 쓰면서 시청률에 신경을 쓰는가?"라는 질문에는 무려 95%의 방송작가들이 "그렇다"라고 대답했다. 방송 작가들 스스로 시청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고백한 셈이다.

문제는 채널 경쟁이 심화되면서 시청률 지상주의가 더욱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각 방송사는 시청률이 잘 나오지 않는 작품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말도 없이 조기종영을 결정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작품의 질을 높이려는 노력보다는 불륜, 출생의 비밀 등 자극적 소재로 시청자 포섭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이런 세태에 대해 김수현은 "오로지 '시청률' 밖에 없다는 것이 점점 더 실감으로 다가온다. 만약 시청률이 신통치 않다면 '개똥'도 아닌 작품이 되는 허탈감이 참으로 쓰디쓰다. 우리는 이렇게 가고 있다. 모두 다 찌그러진 빈 깡통이 되어가고 있다. 이럴 때 나는 이 일이 참으로 싫증이 난다"고 고백했다.

 2일 오후 서울 상암동 SBS프리즘에서 열린 월화드라마 <드라마의 제왕>제작현장 공개에서 드라마 보조작가 이고은 역의 배우 정려원이 촬영에 앞서 리허설을 하고 있다.

2일 오후 서울 상암동 SBS프리즘에서 열린 월화드라마 <드라마의 제왕>제작현장 공개에서 드라마 보조작가 이고은 역의 배우 정려원이 촬영에 앞서 리허설을 하고 있다. ⓒ 이정민


드라마 작가들 뿐 아니라 매 주 색다른 소재와 기획에 매달려야 하는 구성작가들 역시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2008년에는 <긴급구조 SOS>의 막내작가가 서울 목동 SBS 본사에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투신자살 해 주위의 안타까움을 샀다. 열악한 방송 환경과 처우, 과도한 업무가 꿈 많던 젊은 작가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다.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인 구조의 문제다.

일부 작가들은 폭언과 무시에도 시달리고 있다. 2007년 방송작가 P씨는 제작사의 모욕적 언사를 참을 수 없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해 주목을 받았다. P씨는 "제작사가 남는 게 하나도 없는 작품으로 적자를 봤다"는 식으로 힐책했고, 제작비를 아낄 수 있도록 소재를 선정하고 등장인물 수도 줄일 것을 강요했다"면서 "시청률을 놓고 '기여도가 없는 작가'라는 비난을 들었다"고 주장했다. 작품을 인질로 저당 잡힌 채 인격적인 모독마저 당한 것이다.

 최고은 감독의 영화 <격정소나타>의 한 장면.

고 최고은 작가의 영화 <격정소나타>의 한 장면. ⓒ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방송사와 작가 사이의 불공정 계약도 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 콘텐츠 조정위원회의 발표에 따르면 집필 전 계약서를 작성하는 방송작가의 비율은 고작 25%에 불과하며, 불공정 조항이 포함된 계약서를 강요받은 경험은 무려 67%에 이른다고 한다. '슈퍼 갑'인 방송사와 제작사에 대해 '을'인 방송작가들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는 실정인 것이다. 씁쓸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지금도 방송작가들은 이와 같은 부당한 대우를 참아가며 작업에 임하고 있다. 그러나 방송작가라는 이유만으로 방송사의 숫자 놀음에 작품을 훼손당하고, 폭언과 무시를 참아가며 글을 쓰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방송작가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고, 그들의 작품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마련되어야 진정한 질적 발전이 이뤄질 수 있다. 보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방송사와 작가 모두 상생하는 길을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방송 작가 지망생들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그들이 맞이할 미래는 장밋빛일까, 아니면 잿빛일까. 중요한 것 하나는 방송사가 변하고 시청자가 변할 때, 작가들이 제 목소리를 내고 스스로의 작품을 지켜낼 수 있을 때 더욱 좋은 방송이 탄생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 모두의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때다.


드라마의 제왕 김수현 정려원 김명민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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