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가 살인범이다>의 한 장면.

영화 <내가 살인범이다>의 한 장면. ⓒ 쇼박스


* 이 기사엔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있습니다.

영화 '내가 살인범이다'는 반전이 훌륭한 플롯의 구성으로 스릴러물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영화는 연쇄살인 사건을 다룬다.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이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 경찰과 국가에 대한 비판이 담긴 풍자였다면, 정병길 감독의 것은 공소시효가 지난 범인을 공개적인 장소로 유인하여 벌이는 복수극이라 볼 수 있다.

사건의 공소시효가 지난 어느 날 연쇄 살인범 이두석(박시후 분)은 피살자 10명을 어떻게 죽였는지 쓴 책을 내면서 시민들 앞에 나타난다. 책은 날개 돋친 듯이 팔려 나가고 이두석은 수려한 외모와 참회의 행동이 매체에 집중 보도되며 연예인과 같은 인기를 얻는다.

오직 연쇄 살인범을 잡기 위해 한시도 긴장을 놓치지 않았지만 버젓이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는 범인을 이제 처벌할 수 없는 상황이 된 최형구(정재영 분) 형사에게도 언론의 관심이 쏟아진다. 체포할 수 없는 범인과 사소한 인과관계라도 찾아내 체포하기 위해 벼르는 형사와의 대결이 다시 시작된다.

 영화 <내가 살인범이다>의 한 장면.

영화 <내가 살인범이다>의 한 장면. ⓒ 쇼박스


그리고 영화는 봉준호 감독이 놓쳤던 유가족들에게 관심을 집중한다. 그들은 뼛속까지 스민 복수심으로 이를 갈며 살인범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려왔다. 자신들의 혈육을 살해하고 그 내용을 책에 담아 낸 대가로 호텔에서 지내며 호의호식하는 그를 죽이기 위해 한데 모여 철저하게 납치를 계획하고 실행한다. 이로써 범인을 놓고 형사와 유가족의 삼각 대결구도가 팽팽하게 벌어진다.

그러나 형사와 범인이 대면하는 TV토론 생중계에 걸려온 시청자 전화 한통. 형사와 범인의 추격을 직접 보지 않았거나 범인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상황을 묘사를 하며 자신이 범인이라고 공언하며 나타난 얼굴 없는 목소리의 주인공. 형사 어머니를 이용하여 형사에게 경고를 가하며, 플롯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긴장감은 상승한다.

시청률 높이기에 혈안이 된 방송국이 야심차게 만든 토론회에서 스타가 된 살인범과 얼굴 없는 목소리의 주인공 J, 그리고 사건 담당형사가 대면하여 영화의 긴장감과 흥미는 최고조에 이른다.

감독은 액션스쿨 출신답게 납치과정의 자동차 추격 장면과 몸싸움 액션을 화끈하게 보여준다. 달리는 자동차 보닛과 천장에 매달린 상태에서 싸우는 장면과 차끼리 추격하며 충돌하는 장면, 달리는 차 사이로 떨어질 듯 말 듯 옮겨 다니는 장면은 조금 덜 다듬어진 부분이 있지만 아주 스릴이 넘친다. 그리고 10톤 트럭과 시티100 오토바이의 추격 장면도 상당히 새로웠으며, 오히려 오토바이 탑승자가 트럭 운전수를 제압하는 것은 신선했다. 살인범과 최형구 형사와 비오는 날 격투와 추격 장면은 사실감이 좋았다.

 영화 <내가 살인범이다>의 한 장면.

영화 <내가 살인범이다>의 한 장면. ⓒ 쇼박스


경기 보도를 하는 듯한 언론의 행태를 영화에 활용하여 이야기 전개를 빠르게 한 것이 영화의 재미를 높이기도 했고, 다른 한편 언론의 모습을 비판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모든 연기자들의 연기도 훌륭했다. 특히 스크린에 첫 선을 보인 박시후는 살인 이야기로 인기를 얻는 뻔뻔해 보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참회하는 살인범의 표정연기와 액션연기를 잘 보여줬다. 김영애는 딸 잃은 엄마의 심정을 얼굴 표정과 목소리와 몸짓으로 아주 잘 표현했다. 또 한명의 살인범 J역의 정해균, 엄마의 복수를 위해 석궁을 갈고 닦은 최강숙 역의 조은지나 마지막 피살자 역의 민지아, 방송국 국장역의 장광 등 모든 배우의 연기가 영화에 유기적인 어울림을 만들었다.

영화의 흠은 중간 중간에 중심 플롯의 흐름과 긴장감을 흐리는 요소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스릴러물인 만큼 긴장감에 가장 초점을 맞춰야 하는데, 웃음 포인트를 필요 이상으로 많이 넣어 오히려 긴장감이나 영화적 흥미를 떨어뜨리는 면이 있다. 그리고 살인범의 팬클럽을 연예인 팬클럽이 활동하듯 묘사하여 오히려 쓴 웃음을 주거나, 영화를 가볍게 만들기도 한다. 물론 요즘 세태를 풍자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말이다.

뻔한 영화를 만들어 뿌리는 할리우드 감독들을 능가하는 창조적 아이디어로 첫 상업영화를 성공적으로 선보인 정병길 감독의 차기작이 기대된다. 


내가 살인범이다 정병길 정재영 박시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본주의 문제와 기후위기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은 새로운 사회경제체제(사회주의)의 건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