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전람회를 보러 갈 때에는 걸어서 가야 한다. 특히 미술관이 넓은 공원 안이나 광활한 자연 속에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게다가 꽃피는 봄이나 단풍 물드는 가을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자가용을 몰고 들들털털 달려 곧장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는 것과 꽃구경 단풍놀이를 해가며 그림 앞에 서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10월 31일부터 오는 11월 10일까지 대구두류문화예술회관 전시실 전관 및 광장에서 열리는 '대구 아트 페스티벌 2012'를 구경하러 가는 길도 마찬가지다. 자가용을 몰고 곧장 주차장으로 달려 들어가서는 두류공원에 황홀하게 찾아온 가을의 정취를 맛볼 수 없다. 자연의 아름다움도 즐길 줄 모르면서 어찌 그림을 감상하러 들 것인가.
당연히 화백들의 그림에도 가을의 풍광을 담은 작품들이 많다. 정세완 화백의 수묵담채 <오색향연>은 짙게 물든 우리나라 단풍의 아름다움을 황홀하게 보여준다. 찬란하게 물든 나뭇잎들은 마침내 바위들까지도 붉은 빛으로 채색하고 있다.
정화백은 김삿갓의 '그윽한 숲에 돌아와 홀로 누우니 묵은 허무 벗겨가고 외로움 맑아지네'라는 노래를 인용한 초대말을 통해 '황금만능의 시대에 세속적인 골칫거리들을 잠시 내려놓고 포근한 엄마품 같은 곳으로 추억여행을 한번 떠나봄도 괜찮을 것 같다'는 화두를 밝혔다.
김정애 화백의 <그윽한 향>과 <결실>도 두류문화예술회관을 가을꽃의 향기와 빛깔로 가득 채웠다. 연보랏빛 국화꽃과 전통적인 황국, 그리고 조금은 늦가을의 기운을 쐰 듯한 분홍빛 가을꽃들이 활짝 피어나 전시장 안에 가을을 몰고 왔다. 김화백은 '서리 내리는 늦가을에야 소리없이 피어나는 꽃, 진한 국화의 향기로 은자(隱者)의 기품을 담아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대구미술협회와 대구문화예술회관이 공동으로 주최하고 대구문화재단이 후원하는 '대구아트 페스티벌 2012'는 '중견작가 프로젝트'를 주제로 열렸다. 세대와 장르의 벽을 허물고, 지역과 지방의 경계도 넘어 소통을 통하여 '미술'만으로 서로 하나가 되어 행복해지려는 꿈을 가진 가을 축제다. 그래서 모두 159명이나 되는 작가들이 서양화, 한국화, 서예, 문인화, 공예 등 미술의 다양한 장르의 합을 이루었고, 거주지도 가리지 않고 참여했다.
여러 가지 부대행사도 개최된다. 이미 11월 3일(토)에는 두류문화예술회관 일대에서 제2회 대구학생미술실기대회가 열렸고, 3일과 4일에는 미술 체험행사인 '미술과 놀자'가 이어진다. 또 6일(화) 오후 5시에는 계명대 이유경 교수를 초청하여 <우리집에는 어떤 그림을 걸까> 특강도 가진다.
특히 재미있는 부대행사는 6일(화) 오후 4시 30분에 두류문화예술회관 1층 증정홀에서 열리는 '응모권 추첨'이다. 응모권 추첨이 뭐 그리 재미있는 행사인가 싶지만, 그렇지 않다. 뽑힌 사람에게는 유명작가의 작품 원화를 준다. 미술 애호가에게 이만한 선물은 달리 없다. 물론 전시회를 본 후 '인기 작가 선정' 설문지를 제출한 관람자에게만 추첨권이 주어지며, 뽑혔더라도 시상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으면 무효로 간주되어 다른 응모자에게 기회가 넘어간다.
부대행사 중에는 '한 집 한 그림 걸기'도 눈길을 끈다. 본 전시실과 특별 전시실 이외의 별도 공간을 마련하여 '균일가 행사'를 열었다. 집집마다 그림 한 점씩 걸어가며 사는 문화도시를 만들기 위해 그림값을 30만원으로 정했다. 우리나라 미술의 동향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아트페스티벌도 보고, 저렴한 가격으로 그림 한 점까지 집에 가져올 수 있는 좋은 전시회가 대구두류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리고 있는 것이다.
30만원으로 그림 한 점 집에 걸어보세요그런 점에서, 정승화 화백의 작품 <그대가 보고 싶어>에서 보는 화제는 관람객들의 마음을 소롯이 끌어당긴다. 그림은 '그대가 / 보고 싶어 / 내 마음 / 연못에 / 두고 왔어요' 하고 속삭인다.
두류문화예술회관 입구에 넓은 연못이 있다. 사방으로 산책길이 나 있고, 길을 따라가며 붉은 가지와 잎새들을 땅까지 드리운 가을 나무들은 한껏 달아오른 가을의 정취로 휘영청 흐드러져 있다. 연못 한복판의 정자까지는 반달 같은 다리가 걸려 있고, 그 아래 맑은 물에는 청동오리들이 물살을 가르는 모습도 보인다.
멍하니 가을에 빠져 들었다가 문득 예술회관 안으로 들어서면 자연을 한 단계 예술로 끌어올린 그림들이 맞이해준다. 이만하면 가을 하루를, 굳이 멀리 갈 것 없이 두류문화예술회관에서 보낼 만하지 아니한가. 아마도 다녀온 뒤로 한동안은 마음을 연못과 그림에 두고 온 여운이 진하게 남으리라.
연못과 그림에 마음을 두고 온 가을 하루아직 대구 두류문화예술회관에 가보지 못한 분들을 위해 몇 점의 그림으로 '지상 미술전'을 열까 한다. '대구아트 페스티벌 2012'는 오는 10일이면 아주 문을 닫는다. 발걸음을 서두르지 않으면 1년을 다시 기다려야 한다.
피천극의 수필 <인연>은 '소양강 가을 경치가 아름다울 것이다'로 끝난다. 그 표현을 원용한다면, '두류공원의 단풍과 그림이 무척이나 아름다울 것이다.' 미루지 말고 오늘, 부랴부랴 서둘러서 두류공원으로 가보시라.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 속담처럼 이종훈 화백의 그림 속 두 마리 소가 뿔이 빠지도록 싸우고 있는 모습도 두류문화예술회관은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