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비바람에 떨어진 단풍의 낙엽, 그들의 삶은 단풍의 색처럼 치열했다.
▲ 단풍의 낙엽 비바람에 떨어진 단풍의 낙엽, 그들의 삶은 단풍의 색처럼 치열했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여름 소낙비를 닮은 가을비가 내렸습니다. 이른 봄부터 자신을 키워준 나무와 이별하기가 못내 아쉬우면서도 어떻게 작별 인사를 해야하는지 고민하던 이파리들은 비바람을 핑계로 그들을 키워준 나무와 이별을 했습니다. 이별이란 아픈 것이지만, 이별을 해야 나무도 겨울을 날 터이니 그 이별이 아픈 것만은 아닙니다.

비바람에 느티나무 작은 가지가 부러져 고목 위에 앉았다. 그 언젠가 고목의 그를 잉태한 어머니였을 터이다.
▲ 고목과 느티나무 가지 비바람에 느티나무 작은 가지가 부러져 고목 위에 앉았다. 그 언젠가 고목의 그를 잉태한 어머니였을 터이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비바람에 잔가지들도 부러졌습니다. 그 언젠가는 자신을 품었던 나무였을 고목, 그 밑둥만 남아 검은 속내를 드러내며 흙이 되어가는 순간, 어머니 품에 잠시라도 안겨보고 싶었는가 봅니다.

그가 눕는 곳은 어디건 예술작품이 된다. 어느 화가가 이토록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 단풍의 낙엽 그가 눕는 곳은 어디건 예술작품이 된다. 어느 화가가 이토록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을까?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바람이 불면 이리저리 움직이는 낙엽들, 어느 한 순간도 머물러 있지 않기에 늘 같은 모습처럼 보이지만 늘 다른 모습니다. 그들 하나하나의 얼굴들, 그것들을 제대로 그려줄 화가는 없을 것입니다. 자연이 그린 가을 그림, 그들은 자신의 삶을 던져 그림을 그린 것입니다.

지난 여름부터 끊임없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미국자리공, 가을의 기운을 받아 여느 시절의 열매보다 빛깔이 진하고 열매는 단단하다.
▲ 미국자리공 열매 지난 여름부터 끊임없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미국자리공, 가을의 기운을 받아 여느 시절의 열매보다 빛깔이 진하고 열매는 단단하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빨간 배풍등의 열매가 탐스럽다. 그들은 사람의 몫이 아니라 새들의 몫으로 신이 선물한 것이다.
▲ 배풍등 빨간 배풍등의 열매가 탐스럽다. 그들은 사람의 몫이 아니라 새들의 몫으로 신이 선물한 것이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느티나무의 씨앗, 그 작은 씨앗에 나무가 들어있다.
▲ 느티나무 씨앗 느티나무의 씨앗, 그 작은 씨앗에 나무가 들어있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이런저런 떨어진 열매들이 많았습니다. 아직 떨어진 것들보다는 나뭇가지에 달려있는 것들이 더 많습니다. 이 열매들의 공통점은 작거나 독성이 있거나 사람이 먹을 수 없는 것이더군요. 신이, 날짐승들의 몫으로 준비한 열매인가 봅니다. 그들의 것은 그들의 것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몫으로 자족할 줄 안다면 더 많은 이들이 행복할 수 있을 터입니다.

지의류 식물인 이끼는 추울 수록 푸른 빛을 더한다. 그들은 말 그대로 땅의 옷이다.
▲ 이끼 지의류 식물인 이끼는 추울 수록 푸른 빛을 더한다. 그들은 말 그대로 땅의 옷이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지의류, 이끼. 그들은 제법 추워야 푸르름을 덧입습니다. 그렇게 땅의 옷이 되어 추운 겨울 씨앗을 품었다가 봄이면 내어주는 것입니다. 차가운 바위도 그들이 감싸면 오랜 세월지나 부드러운 흙이 되지요. 어미 품을 떠나 아직은 가능성을 품고만 있는 씨앗들이 이끼사이로 파고 듭니다. 아니, 가을이 깊어지면서 그들의 푸름이 더 짙어졌으니 그들이 씨앗들을 품어준 것이겠지요.

떨어진지 오래된 낙엽, 그 삶을 이어주었던 길들은 모두가 그들의 삶의 흔적들이다.
▲ 낙엽 떨어진지 오래된 낙엽, 그 삶을 이어주었던 길들은 모두가 그들의 삶의 흔적들이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더러는 떨어지고, 떨어진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은 남아있다. 추운 겨울까지 가지에 달려 날짐승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줄 터이다.
▲ 낙산홍 더러는 떨어지고, 떨어진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은 남아있다. 추운 겨울까지 가지에 달려 날짐승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줄 터이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언제나 아침에 만나는 풍광은 신비롭습니다. 또 하루가 시작되었다는 새로움, 촉촉한 공기, 거기에 가을 아침이라면 더욱 더 신선하지요. 세상에는 우리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것들이 참 많은데, 욕심에 이끌려 살다보면 그런 것들을 보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수많은 이들이 이런 것들을 보고 싶어하지요. 그래서 비움, 느릿느릿, 작은 것 등등을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그 비움이 더 채우기 위한 욕심이고, 느릿느릿이 더 빨리가기 위한 욕심이고, 작은 것이 더 큰 것을 얻기 위한 욕심이하면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도 이런 것들을 보지 못하고 살아갈지도 모릅니다.

아직은 덜 익어 떨는 고염, 한 입 베어무니 떫은 맛이 입 안에 가득하다.
▲ 고염 아직은 덜 익어 떨는 고염, 한 입 베어무니 떫은 맛이 입 안에 가득하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고염나무의 꽃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저도 그냥 무심하게 지나쳤고, 열매를 보면서 꽃이 어떨까 싶었습니다. 감꽃을 닮았는데 작고 연분홍 립스틱을 바른 듯 하다가 점점 엷여지고, 거기서 열매들이 달립니다.

고염나무는 감나무를 닮아서 가지가 약합니다. 그래서 그냥 먼 발치에서만 바라보았는데 조금은 후회가 됩니다. 감또개가 떨어질 무렵, 고염나무의 꽃도 떨어질 터이니 내년엔 꼭 그를 담아봐야 겠습니다.

한 입 베어 물어 봤습니다. 혹시나 단맛이 들었으면 떨어진 고염 몇 알로 감칠맛을 느껴볼 심산이었지요. 그런데, 떫은 맛이 입 안에 가득해지고, 입이 텁텁해 집니다. 다행입니다.

맛있었다면 얼마나 제가 탐하겠습니까? 물론, 잘 익으면 맛있다는 것은 압니다. 그래도 떫은 맛 한 번 보니, 새들의 몫으로 남겨두는 것이 예의다 싶더군요.

가을이 깊습니다. 이런저런 열매들이 지천으로 익어가고 있습니다. 나는 무슨 열매를 맺었는지 돌아보는데 별다른 열매가 없는 듯 하여 이 가을이 씁쓸합니다. 그렇게 또 나이를 먹는구나 싶으면서도 난생 처음으로 경험하게 될 그 나이가 그리 싫지도 않습니다.


태그:#가을, #단풍, #고염, #낙엽, #배풍등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