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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15일 오전 서울 면목동 녹색병원을 방문해 삼성전자 LCD기흥사업장에서 근무하던 중 암에 걸린 한혜경(35세, 직업성 암 추정환자)씨를 만나 고충을 듣고 위로하고 있다.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15일 오전 서울 면목동 녹색병원을 방문해 삼성전자 LCD기흥사업장에서 근무하던 중 암에 걸린 한혜경(35세, 직업성 암 추정환자)씨를 만나 고충을 듣고 위로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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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수정 : 30일 오전 9시 10분]

"대선에 출마하고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을 만난 것이 가장 보람 있었다. (줄임) 제가 찾아간 후 해당 대기업에서 반올림 측과 만난다는 기사가 떴다. 선거 과정 중에도 세상을 조금이나마 바꿀 수 있다는 보람을 느꼈다."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가 10월 16일 세종대 강연에서 한 말이다. 안 후보는 전날 반도체 노동자 한혜경씨가 백혈병으로 투병 중인 녹색병원을 찾았다. 그 자리에서 안 후보는 "대기업이 유해물질 쓴 적 없다며 거짓말을 하고…. 우리 딸이 쓰다버리는 컵이냐"며 절규하는 한씨의 어머니를 위로하며 '국가의 품격과 그에 걸맞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안 후보가 언급한 '해당 대기업'은 삼성전자다. 매출 52조 원, 영업이익 8조 원. 삼성전자의 2012년 3분기 실적이다. 분기사상 최고 기록을 갈아치웠다. 매출과 영업이익이 쌓이는 만큼 암투병으로 사망하는 삼성전자 근무경력 노동자들도 늘어났다. 올해만 5명의 노동자를 비롯하여 총 58명의 노동자들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안 후보의 '보람'은 결과적으로 반쪽짜리가 되었다. 안 후보의 강연 이틀 뒤 18일에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는 국정감사에서는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가 중요하게 다뤄졌다. 하지만 증인으로 출석한 삼성전자 최우수 부사장은 끝내 전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백혈병과 삼성과의 직무연관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삼성 직업병 문제' 이슈 된 국정감사, 그러나...

반올림 사무실에서 이종란 노무사
▲ 이종란 노무사 반올림 사무실에서 이종란 노무사
ⓒ 이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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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후보와 한혜경씨의 만남부터 국정감사까지 한씨와 유가족을 위로하며 자리를 지키던 사람이 있었다. 반올림 상근 활동가인 이종란 노무사다. 이 노무사와 반올림은 유족들과 함께 정부와 삼성전자를 상대로 직업병을 인정받기 위해 5년 6개월을 싸웠다. 삼성전자 기흥공장에서 근무하다 2007년에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유미씨와 고 이숙영씨의 산재인정 투쟁이 첫 시작이었다. 

결국 2011년 6월, 반올림은 산재인정을 거부하는 근로복지공단과 삼성에 맞서 행정소송에서 승소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항소했고 삼성은 피고(근로복지공단)의 보조참가인으로 참여했다. 이후 반올림은 삼성 본관 앞에서 경비들과 다퉈가며 수백 회가 넘는 규탄 집회를 이어가고 근로복지공단과 지난한 법적 투쟁을 진행 중이다.    

국정감사가 끝나고 찾아간 서울 사당동 반올림 사무실에는 전국 각지에서 보내 온 탄원서가 잔뜩 쌓여 있었다. 11월 판결을 앞두고 고등법원에 제출할 '직업병 인정 촉구 탄원서'였다. 가깝게는 안암동의 고려대 학생들부터 멀리는 부산에서까지. 시민들은 탄원서와 함께 기운 내라고 알뜰하게 비타민도 챙겨 보냈다. 이 노무사는 탄원서 정리를 걱정하면서도 뿌듯함을 감추지 않았다.

반올림은 대선을 앞두고 '응답하라 2012, 반도체 노동권을 향해 달리다'라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각 대선후보 캠프에는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 해결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이종란 노무사에게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를 다룬 국정감사에 대한 평가와 11월로 다가온 산재인정 행정소송 2심 판결 전망을 들어봤다.

"안철수 '반도체 노동자 건강권 취지 공감' 발언, 큰 성과"

- 사무실을 올해 처음으로 마련했다고 들었다.
"WHO(세계보건기구)에서 활동하시는 김록호 의사선생님께서 예전에 운영하시던 '사당의원' 자리를 내주셨다. 너무 감사하게도 무상임대다. 지방에 살고 있는 백혈병 피해 노동자분들과 유족들이 삼성본관 앞 1인시위를 하거나, 서울에서 재판이 있을 때 거점으로 활용한다. 반올림의 회의공간도 생기고 활동이 안정화되는 데 도움이 된다. 혹자는 공장(삼성전자 기흥공장)하고 멀어지는 것 아니냐고 걱정도 하더라.(웃음)"

- 현재 대선을 앞두고 반도체 노동권에 대한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취지를 설명해달라.
"이 싸움이 시작된 지 5년이 넘었다. 사망자만 58명이고 전체 피해자가 150명을 넘어서고 있다. 피해자와 활동가만 싸워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반도체 백혈병을 비롯한 전체 직업병에 대해 우리 사회가 응답하고 행동하고 책임져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때마침 올해 대선에서 각 후보 진영이 사회적 약자에 관심을 두고 재벌개혁을 이야기하더라. 하기에 가장 큰 재벌인 삼성의 문제점, 삼성으로부터 가장 심각한 피해를 본 사망 노동자들의 문제에 대선 후보들의 답을 들으려고 하는 거다."

- 대선을 앞두고 안철수 후보가 백혈병으로 투병 중인 한혜경씨를 찾았다. 대화에 함께했는데 소감이 어땠나?
"우리가 먼저 연락하려 했는데 갑작스럽게 안 후보 측에서 연락이 왔다. 한혜경씨를 만나고 싶다고. 우리로서는 이 문제를 더 잘 알릴 수 있는 기회였다. 안철수 후보가 한혜경씨를 위로하고 어머니의 얘기를 경청하는 등 나쁘지는 않았다.

대화 도중에 산재인정 행정소송에 제출할 탄원서 작성을 안 후보에게 부탁했다. 더 많은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취지를 설명했더니 안 후보가 '예 작성하겠습니다' 하더라. 그런데 나중에 부득이한 사정으로 탄원서를 쓸 수 없겠노라고 연락이 왔다. 그래도 취지에 공감한다고 말했으니 큰 성과라고 본다.

무엇보다 안 후보가 직업병이 아니라는 것을 밝힐 책임이 노동자가 아니라 공단에 있다고 강조한 것이 인상 깊었다. 대선후보의 입을 통해서라도 산재문제가 알려진 것이 성과라 생각한다. 10월 29일에는 문재인 후보 캠프를 방문할 예정이다. 그날을 '반도체 노동자의 날'로 선언하고 산재사망 피해 노동자들을 형상화하는 퍼포먼스도 진행할 것이다."

반올림 활동을 격려하며 부산시민이 보낸 탄원서와 물품
▲ 탄원서와 격려물품 반올림 활동을 격려하며 부산시민이 보낸 탄원서와 물품
ⓒ 이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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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유족 대화' 기사, 사실 아냐... 삼성, 국감 전 물타기"

-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가 중요하게 다뤄졌다. 많은 언론이 주목했는데 어떻게 평가하나?
"좀 씁쓸했다. 피해 당사자 2명이 아픈 몸을 이끌고 출석했고 삼성전자 부사장이 나왔다. 그 사람이 결정권이 있는지 의문이지만 여야가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에 대해 책임공방을 치열하게 다투고, 삼성이 잘못한 것을 크게 혼도 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심상정 의원 정도가 삼성 부사장에게 호되게 야단을 쳤지만 결국 삼성전자 부사장은 어떤 확답도 하지 않고 돌아갔다.

더욱이 그날은 근로복지공단과 산업안전공단의 국정감사이기도 했다. 산재를 인정하지 않은 근로복지공단에 왜 산재가 안 되는지 의원들이 좀 더 세게 따져 물었어야 했다.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에게 좀 더 집요하게 법원의 산재인정 판결에도 왜 근로복지공단이 항소하며 산재인정을 거부하는 것인지 책임추궁을 해서 다시는 그런 일이 재발되지 못하도록 약속을 받아내야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새누리당은 거의 질문도 안 하더라. 국정감사가 오후 7시 30분까지 진행됐다. 증인으로 출석한 백혈병 피해자 송창호씨와 한혜경씨 모두 몸이 불편한 분들인데 혹시라도 의원들이 삼성 측에 좀 더 책임추궁을 할까봐 증언이 끝나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그런데 결국 초반에 몇가지 질문 외에는 더 이상 질문은 이어지지 않았다."

- 국정감사를 앞두고 '삼성과 백혈병 피해가족이 첫 대화를 한다'는 기사가 크게 보도됐다.
"<한겨레>가 삼성 쪽 얘기만 듣고 기사를 썼다. 당사자가 아니라고 얘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과 다른 기사를 써서 매우 유감이다. 그로 인해 삼성으로부터 공식적으로 대화제의를 받고 우리가 거기에 응한 것처럼 보도되었는데 결론적으로 사실이 아니다.

기사에서 삼성 고위관계자의 말을 빌려 삼성은 우리(반올림)가 소송을 취하하고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가기를 원한다고 하더라. 삼성 스스로가 소송에서 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다. 이후 국정감사에서 부사장이 하는 얘기 들어보니, '국감 전 물타기를 하려고 했구나'라는 생각이 절실하게 들더라.

반올림과 피해자들은 공식적 산재인정 싸움을 멈추지 않을 거다. 산재인정을 얻어내는 것이 협력업체와 더 많은 노동자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재인정 판결을 얻어내고 (삼성으로부터) 사과를 받아내는 것이 먼저다. 그래야 대화가 가능하다."

"소비자가 죽었다면 어땠을까... 노동자도 같은 사람"

삼성전자 블로그에 올라온 '백혈병 논란 오해와 진실' 코너에 삼성전자 근무경력 노동자들의 질병과 직무연관성을 부인하는 동영상이 올라와 있다.
▲ 삼성전자 블로그의 직업병 연관성을 부인하는 동영상 삼성전자 블로그에 올라온 '백혈병 논란 오해와 진실' 코너에 삼성전자 근무경력 노동자들의 질병과 직무연관성을 부인하는 동영상이 올라와 있다.
ⓒ 삼성전자 블로그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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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초에 산재인정을 위한 행정소송 2심 판결을 앞두고 있다. 결과를 어떻게 예상하나?
"1심보다 더 불리해질 이유는 없다. 2011년 6월 23일에 고 황유미씨와 고 이숙영씨 둘만 산재로 인정받았다. 송창호씨등 나머지가 불인정을 받았는데 이후 증거가 더 보강되었다. 올해 2월에 고용노동부에서 발표한 연구결과도 있다. 내용에서 발암물질인 벤젠, 포름알데히드, 전리방사선, 비소 등이 삼성전자 공장에서 생성되고 노출될 수 있다고 발표 했다.

또 하나 희망적인 것은 올해 4월에 삼성전자 온양공장에서 재생불량성 빈혈로 투병중인 김지숙씨가 산재승인 받았다는 것이다. 근로복지공단도 온전하게 인정한 최초의 산재승인 사례다. 고 김지숙씨와 같이 작업을 했던 사람이 1심에서 산재승인을 기각당한 송창호씨다. 근로복지공단에서도 산재로 보는 마당에 2심 결과가 더 나빠질 이유는 없다고 본다."

- 삼성전자의 대응이 어떨 것이라고 예상하나?
"삼성의 반응은 예측 불가능하다. 그러나 정부 발표로도 발암물질이 있다고 했고, 지난 5년 동안 사회적 물의 일으킨 만큼 더 이상 산재가 아니라고 법적으로 이의제기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근로복지공단도 마찬가지다. 상고를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문제는 삼성이 진심으로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블로그를 통해 '직업병 주장은 허위고 삼성전자 사업장은 안전하고 깨끗하다'고 홍보하고 있더라. '백혈병 논란의 오해와 진실'이라는 코너를 만들어서 왜곡된 사실들을 유포하고 있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이종란 노무사는 "반도체 노동자의 죽음을 숫자로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현실이 억울한 감이 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우리 사회가 그 숫자 하나하나에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이 담겨 있는지 기억해줄 것을 부탁했다.

"이런 문제가 소비자에게 발생했다면 우리 사회가 훨씬 더 격하게 반응했을 거예요. 노동자라고 하면 너무 경시하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노동자도 같은 사람이거든요."

덧붙이는 글 | 이동철 기자는 2012 시민기자 대선특별취재팀입니다.



태그:#반올림, #삼성, #삼성백혈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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