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는 지금 누적된 피로와 입안에 난 '빵구'(구내염) 4개와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 내가 볼 때 하루 이틀 쉰다고 해서 회복될 게 아니다. 더군다나 입안에 난 상처는 '식사'라는 생리적 혹은 사회적 활동을 '고통의 시간'으로 만들고 있다. 덕분에 며칠 더 '겔겔'거릴 예정이다. 이게 다 지난 17일부터 2박 3일동안 함께한 '그 녀석'들 때문이다.

그래, 어쩌면 그의 전화를 받지 말았어야 했다. <오마이뉴스> 인턴기자 동기(필자는 <오마이뉴스> 15기 인턴기자)에게 전화가 와 '더불어 졸업여행'에 인솔교사로 참여해 달라고 할 때 "난 애들 싫어해"라고 단칼에 잘랐어야 했다. 그놈의 '동기애'가 뭔지. 어쨌든 나는 다른 인솔교사 4명과 함께 지난 17일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그 녀석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2008년부터 '더불어 졸업여행'을 진행하고 있다. 이 행사는 익년 2월 홀로 졸업식을 치르게 될 초등학교 6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치러진다. 그런데, 올해 '더불어 졸업여행'에는 '나홀로 5학년' 학생들도 참가했다. 그렇게 나는 총 21명의 그 녀석들과 함께하게 됐다.

어색한 첫 만남... 사투리 한 마디에 '빵' 터져

제 5 회 더불어 졸업여행
 제 5 회 더불어 졸업여행
ⓒ 조재현

관련사진보기


그 녀석들은 초등학교 졸업을 앞둔 5학년 혹은 6학년이었다. 녀석들의 공통점은 모두 '혼자'라는 점. 학교에서 같은 학년의 친구가 없단다. 흔히 '분교'라는 단어가 녀석들이 다니는 학교의 이름을 대체하곤 한다.

나는 25년을 살면서 이런 유형의 친구를 사귀어 본 적이 없다. 혼자였던 적도 물론 없다. 때문에 녀석들이 어떤 생각으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첫 만남은 물론 2박 3일 동안 어떻게 데리고 다닐지 걱정이 앞선 것은 당연지사. 그래서 내가 맡은 B조 5명의 이름을 보며 '진지한 첫인사'를 속으로 준비했다. 가장 먼저 할머니 손을 꼭 잡고 시온이(전남 여수 화태초등학교 두라분교장)가 도착했다.

"니가 여수 사는 시온이냐, 오느라 수고했다잉."

'더불어 졸업여행'에 참여한 필자와 아이들. 오른쪽 위부터 반시계방향으로 필자, 승범이, 승준이, 우재, 현모, 영은이, 시온이. 그리고 뒤쪽 긴 머리의 남자는 C조 인솔 교사 최한울씨.
 '더불어 졸업여행'에 참여한 필자와 아이들. 오른쪽 위부터 반시계방향으로 필자, 승범이, 승준이, 우재, 현모, 영은이, 시온이. 그리고 뒤쪽 긴 머리의 남자는 C조 인솔 교사 최한울씨.
ⓒ 소중한

관련사진보기


진지한 첫인사는 무슨. 광주 사는 사람 티를 '팍팍' 냈다. 필자는 광주 사람 중에서도, 더군다나 같은 또래 중에서도 전라도 사투리가 좀 심한 편이다. 첫인사를 통해 선생님 이미지를 굳히는 데 실패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시온이가 옅은 미소와 함께 "선생님, 어디 사세요?"라고 묻는다. 녀석이 서울까지 와서 동네 사람 말투를 들으니 친근했나 보다. 이것저것 물어보고, 사진도 찍어 달라고 하는 거 보니 시온이와의 첫인사는 나름 성공적이었다.

나는 '사투리 전략'을 2박 3일 내내 유지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유지됐다. 그냥 내 일상의 말투가 녀석들에게 먹혔다. 무심코 튀어나온 "거시기" 한 마디에 깔깔거리는 모습을 보니 내 '남도 유전자'가 자랑스러웠다. 선주(강원 춘천 남산초등학교 서천분교장)에게는 지금도 "쌤 때문에 내 말투 이상해요, 어쩔 거예요"라고 문자가 온다. 춘천 사는 선주는 어설프게 나오는 전라도 사투리와 원래 말투가 섞여 2박 3일 동안 자괴감을 느껴야 했다. 녀석, 내게 중독된 게 분명하다.

녀석들을 위한 선생님의 임무는 '24시간 사주경계'

전국 각지 '나홀로 학년' 학생들이 모여 함께 하는 기쁨을 즐기는 제5회 <오마이뉴스> 더불어 졸업여행이 17일부터 2박 3일 동안 진행된다. 참가자들이 18일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놀이기구를 체험하고 있다.
 전국 각지 '나홀로 학년' 학생들이 모여 함께 하는 기쁨을 즐기는 제5회 <오마이뉴스> 더불어 졸업여행이 17일부터 2박 3일 동안 진행된다. 참가자들이 18일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놀이기구를 체험하고 있다.
ⓒ 조재현

관련사진보기


하지만 모든 첫 만남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더불어 졸업여행'에 참가한 21명의 그 녀석들은 총 4개 조(A·B·C·D조)로 편성됐다. 내가 인솔교사로 담당하게 된 조는 B조. 우리 조의 인아(충북 보은 수정초등학교 삼가분교장)라는 여학생은 필자를 같은 극의 자석이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다가가서 말을 걸려면 쪼르르 민주(경북 경주 양남초등학교 상계분교장) 뒤에 숨곤 했다. 어렵게 말을 걸면 돌아오는 건 대답 대신, 저 멀리 가 민주와 귓속말하는 인아의 모습. '설마 쟤네가 내 호박씨를 까나'라는 멍청한 생각까지 했다.

무엇보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우리 조 5명의 아이들을 인솔하는 일이었다. 모든 일행들 안에서 우리 조의 주된 포메이션은 '2-2-1 전술'이었다. 남학생인 시온이와 승준이(전남 신안 압해초등학교 고이분교장)는 저 앞에 달려가고, 여학생인 민주와 인아는 차분히 일행의 중간쯤에서 걸어가고, 유독 엄마를 따르는 수미(경북 경주 강동초등학교 단구분교장)는 엄마와 함께 저 뒤에 따라오는 게 주된 모양새였다. 군대에 있을 때도 이처럼 열심히 '사주경계'를 열심히 하진 않았다. 첫날에는 중간서 걷는 민주에게 앞서 가는 승준이를 불러오라 하고, 뒤의 수미를 엄마에게서 떼어 내는 일이 반복됐다.

사주경계의 절정은 둘째 날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에서의 5시간이었다. 누군가 초등학교 교사가 되고 싶다면 아이들 5명 데리고 에버랜드에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인솔의 신'이 있다면 분명 에버랜드에서 태동했으리라. 아이들마다 다른 '놀이기구학 개론'과 체력을 고려해 최대 효율로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자아내야 했다.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 5분 만에 우동을 흡입하는 승준이와 무서우니 회전목마를 타자는 선주(에버랜드에선 선주도 B조와 함께했다) 사이의 간극을 좁혀주기에는 내 능력이 너무 모자랐다.

결국, 나는 선주를 울리고야 말았다. 착시 현상으로 360도 돌아가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놀이기구에서 나오자마자 선주는 펑펑 눈물을 쏟았다. 나는 선주를 마주 보며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며 두 손으로 눈물을 닦아줬다. 하지만, 너무 방심했다. 한 손으로만 눈물을 닦아줬어야 했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갈비뼈 사이의 명치 쪽이 아렸다. 녀석의 주먹이 내 복부에 꽂혀 있었다. 공포에서 막 벗어나 증오로 변한 감정이 주먹에 가득 실린 것. 13세 아이의 힘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묵직함을 맛봤다. 눈물을 닦느라 방어를 할 수 없었던 내 손은 허공에 떠 있었고 몸은 'ㄱ자'가 됐다.

"그래, 이걸로 '쌤쌤' 하자."

레크리에이션 때문에 진땀 뺐는데... 너희 이러기야?

전국 각지 '나홀로 6학년' 학생들이 모여 함께 하는 기쁨을 즐기는 제5회 <오마이뉴스> 더불어 졸업여행이 17일부터 2박 3일 동안 진행된다. 17일 강화도 오마이스쿨에서 캠프파이어 중인 참가자들
 전국 각지 '나홀로 6학년' 학생들이 모여 함께 하는 기쁨을 즐기는 제5회 <오마이뉴스> 더불어 졸업여행이 17일부터 2박 3일 동안 진행된다. 17일 강화도 오마이스쿨에서 캠프파이어 중인 참가자들
ⓒ 조재현

관련사진보기


개인적으로는 '더불어 졸업여행'에서 첫 경험을 했다. 첫날 저녁 캠프파이어를 하면서 녀석들이 지루하지 않게 하기 위해 레크리에이션 강사 노릇을 했다. 누구에게나 남 앞에 나서 진행을 맡는 게 익숙한 일은 아닐 터. 말은 꼬이고(당연히 사투리는 심해진다), 얼굴은 화끈거렸다. 준비한 시나리오대로 진행이 안 되자 표정은 자꾸 굳어졌다. 더군다나 준비한 선물을 골고루 나눠줘야 하니, 여간 쉬운 게 아니었다. 녀석들의 웃음을 이끌어 내는 게 이렇게도 힘든 일인 줄 몰랐다. 초등학생 21명을 모아놓고 '재미있게' 게임을 진행하라 하면 아마 유재석도 힘들 것이다.

가장 두려웠던 것은 장기자랑이었다. 대학생 수련 모임을 가도 망하기 십상인 게 장기자랑이다. 아마추어리즘에 박수를 보내기엔 우리네 청중은 지나치게 눈이 높다. 그런데 한 녀석이 손을 든다. 진성이(전남 영광 홍농서초등학교)다. 녀석은 신발을 벗고 흙밭 위에서 현란한 발놀림을 선보인다. 나도 한번 도전해 보지 못한 '셔플 댄스'가 열셋 먹은 아이에게서 익숙하게 구사되고 있었다. 진성이 아버지는 연신 "우리 아들이 춤으로 학교서 유명하다"며 흐뭇해하셨다. 아이들은 물론, 현장에 모인 모든 이들은 입을 벌린 채 박수를 쳤다. 어쨌든 진성이가 '레크리에이션 트라우마'에 사로잡힐 수도 있었던 나를 살렸다.

하지만, 다음날 나는 녀석들에게서 약간의 배신감을 느꼈다.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개그맨 예재형과 이상준씨가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마련됐는데(관련기사), 속으로 전날의 캠프파이어를 생각하며 '너희라고 되겠어?'라 생각했다. 그런데 녀석들, 두 개그맨이 한마디만 하면 '빵빵' 터진다. '그래, 쟤네는 프로니까'라며 자기 위안을 했다. 어쨌든 마지막 날 내 롤링 페이퍼에 누군가가 "캠프파이어 화르르, 지도자였죠? 재미있어요. 깨알 재미?"라고 써줘서 만족하고 있다.

녀석들과 나, 삶의 '보너스'를 받았다

'더불어 졸업여행'에 참여한 아이들이 써 준 롤링페이퍼. 글귀 하나하나에 아이들 얼굴이 크로스오버된다.
 '더불어 졸업여행'에 참여한 아이들이 써 준 롤링페이퍼. 글귀 하나하나에 아이들 얼굴이 크로스오버된다.
ⓒ 소중한

관련사진보기


나는 내 초등학교 졸업식을 생각하며 당시의 사진을 찾아봤다. 가족들이 모여 있고, 친구들이 함께하고 있다. 어린 내 손에는 꽃다발 여러 개가 쥐어져 있다. 녀석들의 졸업식은 어떨까. 분명 나와 비슷한 풍경은 아닐 듯하다.

그렇다고 녀석들이 맞을 졸업식이 의미가 덜한 것은 아니다. 다만 조금 다른 졸업식을 하는 것일 뿐. 때문에 내가 아이들을 만나기 전, '혼자였던 녀석들'을 어떻게 대할지 고민했던 것을 반성하게 됐다. 2박 3일 함께한 녀석들은 그냥 그 또래의 아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고민을 했다면 그냥 '초등학생 아이들과 어떻게 좋은 시간을 보내지?'라는 물음만 던졌으면 됐다.

일반 학생과 다소 다른 녀석들의 환경은 내 것이 아닌 녀석들의 것이다. 그 때문에 외로움을 느끼는 것도 녀석들의 자유다. 내가 그 환경과 감정에 뛰어들어 '이래라, 저래라' 할 만큼 이는 쉽게 생각하고 재단할만한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속했던 광주 계림초등학교 6학년 1반의 30명 각자가 다 다르듯, 녀석들도 똑같은 차원에서 다른 것이다.

그래서 이번 '더불어 졸업여행'이 녀석들에게 '더하기'의 의미가 됐으면 한다. 혼자인 녀석들에게 모자란 점을 채워줬다는 의미보다 특별한 여행을 선물했다는 일종의 보너스 같은 것 말이다. '홀로' 지냈던 녀석들이 모여 '더불어'가 됐고, 삶에 있어 새로운 것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는 당연히 2박 3일 동안 동고동락한 내게도 해당될 것이다. 아직도, 그리고 며칠간 더 입안에 난 '빵구' 때문에 고생 좀 해야 할 것 같다. 밥 먹으면서 입안이 아릴 때마다 녀석들 생각이 날 것이다. 다시 생각해보니... 인턴 동기의 전화를 받은 게 참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태그:#더불어 졸업여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