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안성 서운면은 포도의 고장이다. 해마다 포도축제가 열린다. 올해도 9월 15~16일에 포도축제가 열렸다. 이처럼 포도축제 고장이 된 것은 포도농사를 누군가 시작했기에 가능하다. 서운면 인처동에 사는 김광석· 박춘자 부부의 25년 포도농사가 그 한 예다.

올해로 5회 째인 안성마춤 포도축제는 서운면 포도 농가들이 벌이는 축제 한마당이다.
▲ 안성마춤 포도축제 올해로 5회 째인 안성마춤 포도축제는 서운면 포도 농가들이 벌이는 축제 한마당이다.
ⓒ 축제위원회

관련사진보기


포도가격에 얽힌 농민들의 아픔

이들 부부는 결혼 28년차다. 아내 박춘자씨가 시집 올 당시엔 벼농사 농가였다. 그 무렵은 농가들이 벼농사에서 과수농사로 많이 전환하는 시기였다. 이들 부부도 과감하게 결단을 내렸다. 25년 전 이야기다.

25년 전 포도가격과 지금 가격을 물었다. 김광석씨가 "그 때나 지금이나 비슷해유"란다. 헉, 설마. 물가가 얼마나 올랐는데. 그의 증언에 따르면 "25년 전 우리가 처음 포도 농사 시작할 때 2kg 포도가 2만원 정도 했는데, 요즘은 2만5000원 정도 나가유"란다.

에게, 겨우 5000원 정도 올랐다는 것인가. 그는 "다른 물가는 잘만 올라가도 농산물 가격은 거북이 걸음이쥬. 과수 농산물 가격은 더군다나..."라며 말을 잇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소비자들은 과일 값이 여전히 비싸다고 한다. 참 세상은 요지경 속이다.

하지만 포도 가격을 비싸게 받을 때가 있다. 그는 "다른 곳에서 절단 나면 포도 값이 올라가유"란다. 그렇다. 다른 농가에 우박이라도 내리거나 병충해가 심할 때다. 다른 곳의 포도 농사가 망해야 상대적으로 포도가격이 올라간다는 것. 포도를 비싸게 팔았음에도 기분이 좋기만 할 수 없는 농민의 아픔이 여기에 있다. 이런 말을 해주는 김광석씨의 얼굴도 살짝 일그러진다.

여름 우박에 무릎 꿇은 농가들

말이 나왔으니 우박이야기를 해볼까. 그의 말에 의하면 2000년 7월 여름에 우박이 엄청나게 왔단다. '마른하늘에 날 벼락'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렷다. 때 아닌 우박에 서운면 포도 농가 전체가 휘청했다. 김광석씨가 운영하는 '나라농원'도 비켜갈 수 없었다. 이 때 포도 농사를 그만두어야 하나를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어렵게 시작한 포도농사를 천재지변 때문에 접어야 하다니. 하늘도 무심하시지. 전통적으로 짓던 벼농사를 포기하고, 포도 농가로 탈바꿈하기 위해 낸 빚이 얼마인데. 그 때를 기점으로 많은 농가들이 포도농사를 포기했단다. 다행히 이들 부부가 운영하는 '나라농원'은 질기게 살아남았다.

김광석, 박춘자 부부가 키우는 포도들이다. 올해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농장을 찾아 포도를 이용했다. 이들 부부는 순전히 입소문으로 포도를 직거래한다고 말했다.
▲ 포도 김광석, 박춘자 부부가 키우는 포도들이다. 올해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농장을 찾아 포도를 이용했다. 이들 부부는 순전히 입소문으로 포도를 직거래한다고 말했다.
ⓒ 김광석

관련사진보기


하지만 그 우박 이후로 포도농사 전성기는 갔다며 혀를 끌끌 차는 이들 부부. 그 전엔 포도 농사 소출도 괜찮았고, 포도로 인한 소득도 짭짤했단다. 그 해 우박은 서운면 포도 농사의 큰 분수령이었다고나 할까.

땅을 살리면 포도는 저절로 산다

25년 정도의 경력이면 달인이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농사 잘 짓는 비법을 묻자 "뭐 특별나게 잘 짓지도 못해유"라며 너털웃음을 웃는 김광석씨. 자랑할 만도 한데 그는 여전히 우리나라 농민 특유의 겸손이 몸에 배어있다.

그래도 "포도 맛의 비결은 바로 토질 덕분"이라며 하늘의 덕택으로 돌린다. 토질, 그것은 일단 천운을 타고나야 한다. 특정지역에 특정작물이 잘 자라나는 것은 모두 타고난 토질 때문이다. 그것은 인위적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다. 맞다. 이들 부부가 사는 서운면 땅의 토질은 포도 농사짓기에 좋은 토질이었던 게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으면 거둬지는 혜택이 아니다. 해마다 포도순, 포도 열매 등을 재료로 만든 미생물을 토지와 나무에 준다. 될 수 있는 대로 농약은 뿌리지 않는다. 이런 노력으로 땅을 살려야 포도 농사도 오래가고 좋은 품질의 포도를 거둬들인다고.

그렇다. 포도나무를 살리려면 포도나무도 중요하지만, 땅을 살려야 한다는 것. 땅을 살리면 포도나무는 저절로 좋은 열매를 맺는다. 땅을 살리는 것은 포도 농사꾼의 생존과 직결된다. 땅을 살려야 포도가 살고, 땅을 살려야 농민도 산다는 평범한 진실을 보여준다. 25년 농사 노하우가 있다면 그건 순전히 토질을 잘 유지하고 가꾸는 데 있었다. 

포도농사, 욕심내면 망한다

포도나무에 포도가 많이 열리면 좋을 거 같지 않은가. 하지만, 이들 부부는 당장 말한다. "천만의 말씀"이라고. 한 해는 욕심을 부려서 한 나무에 포도를 많이 열리게 했던 적이 있었단다. 포도가 천천히 익고 당도도 떨어지더라는 것. 물론 그해 농사는 재미를 못 봤다고.

"포도나무에 포도가 많이 열리면 품질이 떨어져요. 수확도 늦어지고요. 적게 열리면 품질은 좋을지 몰라도 농가소득에 도움이 안돼유. 적당하게 열려야 좋은 법이쥬."

이들 부부가 활짝 웃고 있다. "25년 내내 하루 종일  같이  생활했어도 농사를 짓는 재미가 우리를 웃게 만든다"고 이들은 말한다.
▲ 김광석,박춘자 부부 이들 부부가 활짝 웃고 있다. "25년 내내 하루 종일 같이 생활했어도 농사를 짓는 재미가 우리를 웃게 만든다"고 이들은 말한다.
ⓒ 송상호

관련사진보기


적당하게? 그게 어느 정도일까.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이 부분을 잘 해내는 게 농사의 비법일 듯싶다. 이들 부부는 그 때의 경험을 통해 "농사도 욕심 부리면 망한다"는 깨우침을 얻었단다. 

포도송이는 위쪽부터, 그러니까 가지에 가까운 쪽부터 아래로 서서히 익어간다고. 당연히 위쪽이 당도가 더 좋단다. 같은 송이에 열린 포도 알의 당도도 각각 다르다. 하물며 한 나무에 열린 포도 알들의 당도는 천차만별이라고.

이런 포도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이들 부부의 얼굴이 해맑다. 포도 농사짓느라 25년 내내 하루 종일 붙어서 생활한 이들 부부. 오늘도 그들은 내년 포도농사를 준비하기에 하루해가 짧다.

덧붙이는 글 | 이 인터뷰는 지난 18일, 안성시 서운면 인처동에 있는 나라농원에서 김광석, 박춘자 부부와 함께 이루어졌다.



태그:#포도, #안성마춤 포도축제, #서운면 인처동, #나라농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