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수목극 <아랑사또전>

MBC 수목극 <아랑사또전> ⓒ MBC


'되련님~' 하는 거 외에는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던  돌쇠(권오중 분)가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갑자기 동헌 마당에서 군졸들을 모아놓고 군사 훈련을 시키질 않나, 이방 등이 요즘 저잣거리에서 제일 인기가 있는 게 돌비장이라고 할 때부터 혹시나 했었다. 그랬더니 역시나 20부에 드디어 돌쇠, 돌비장은 밀양 백성들의 투표를 거쳐(귀신 사건으로 인해 밀양 사또는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될 수 있다!) 사또가 되었다. 아마도 <아랑사또전>에서 최고의 위너를 꼽으라면 바로 이 사람, '돌쇠'가 아닐까?

이처럼 노비 돌쇠를 '돌'사또로 만든 것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아랑사또전> 제작진의 야심은 만만치 않았다. 때는 바야흐로 조선시대인데, 홍길동도 아닌 것이, 매관매직도 아닌 것이, 미천한 신분의 인물도 사또를 할 수 있는 이른바 신분 혁명을 드라마를 통해 실현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랑사또전>에서 가장 많이 들을 수 있었던 대사가 무엇이었나? 바로 '영감탱이!'였다. 그런데 영감탱이가 누군가? 바로 옥황상제(유승호 분)다. 옥황상제에 비하면 조선 따위는 저리가라다. 이승과 저승의 드넓은 명계를 다스리는 바로 그 분이 옥황상제다. 그런데 그 옥황상제를 갓 스물에 들어선, 하지만 여전히 꽃도령같은 유승호에게 맡겼다.

인간 세상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그 사람이 바로 아리따운 소년의 이미지라니! 게다가, 이 도령의 쌍둥이 염라대왕(박준규 분)이 번번히 못마땅해 하듯이 옥황상제는 천상의 계율보다도 자꾸 인간들의 정리에 흔들린다. 귀신 아랑이 옥황상제랑 '딜'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이다.

또한 선녀 무연(임주은 분)이 인간이 되고자 한다는 설정에서 볼 수 있듯이, 오욕칠정의 인간사가 해탈의 천상계보다도 더 살만한 곳으로 그려졌다. 우리가 지긋지긋해마지 않는 인간 세상이 사랑하는 사람을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아름다운 '욕망'의 장소로 환원되었다. 그리고 이것은 무연의 갈망에 이어, 아랑(신민아 분)의 진실을 알고자 하는 의지조차도 꺾는 강력한 무기로 등장한다. 이처럼 <아랑사또전>은 인간 세상의 신분은 물론 인간과 천상이라는 경계조차도 인간의 마음으로 뒤흔들 수 있다는 식으로 그 구분을 모호하게 만들었다.

 <아랑사또전>의 은오

<아랑사또전>의 은오 ⓒ MBC


그런가 하면 무엇보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 아랑, 그녀는 귀신이다. 드라마 시작부터 귀신이었다. 다짜고짜 관아에 들이닥쳐 사또들을 죽어 나자빠지게 하고, 저승 사자로부터 도망을 다니고, 옥황상제를 서슴없이 '영감탱이'라 불러제끼는 겁없는(?) 귀신이다. 그런 귀신이 인간 김은오(이준기 분)를 만나 사랑을 한다. 또 하나의 경계가 허물어 진다.

이렇듯, <아랑사또전>에 등장한 모든 것들은 그것이 본래 가지고 있는 경계, 규율, 성격 등이 드라마를 통해 허물어 지고 재창조된다. 노비는 그 능력에 걸맞게 사또가 되고, 귀신은 인간을 괴롭히는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그 역시 인간 못지않은 고뇌의 존재요. 인간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아름다운 대상인 것이다. 뿐만 아니다. 천륜이라 일컬어 지는 모자의 관계조차도 그것을 승화시키기 위해서는 아들이 어미를 죽음에 이르게 해야 하고, 인간의 삶과 죽음의 계율조차도 그의 의지와 노력으로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

이렇게 보았을 때 <아랑사또전>은 '전복적 사고'가 혁명적이 되고, 모든 것의 경계가 불분명한 오늘날에 가장 어울리는 철학적 세계관을 지닌 드라마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러한 <아랑사또전>의 철학이 드라마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전달 되지 못했다. 융통성있는 사고 방식을 가진 옥황상제는 일찌기 인간 은오를 훗날 아랑 사건을 위해 예비해 둔 인간을 도구화시킨 음모론자처럼 비췄고, 무연의 무영(한정수 분)에 대한 사랑에서 부터 비롯된 인간에의 갈망은 요괴의 헛짓 이상으로 비춰지지 않았으며, 은오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갈구는 다 자란 사내에게는 무람하지 못한 행동으로 비춰졌으며, 사또가 된 돌쇠는 신분 해방이라기 보다 뜬금없는 결론으로 헛웃음이 나왔다.

 <아랑사또전>의 한 장면

<아랑사또전>의 한 장면 ⓒ MBC


안타깝게도, 작가가 의욕적으로 드라마를 통해 내보이고자 했던 시도들이 20부작이라는 긴 시간을 통해 하나씩 차곡차곡 설득력있게 쌓아져 오지 않으니 결말에 이르러서 허무하게 다가온 것이다. 그렇다고 이 드라마가 시청자를 설득하기에 20부의 시간이 너무 짧았냐고? 아니다. 전에 언급했던 것처럼 <아랑사또전>은 4부작이었어도 충분히 할 이야기를 제대로 풀어낼 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20부 안에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풀어내지 못했다.

범람하는 사극들 속에서 <아랑사또전>의 시도는 색다르고 신선했다. 하지만 <아랑사또전>이 이렇게 봉황을 그리려다 참새도 못그린 모양새가 되버리면, 또 다른 <아랑사또전>에게 기회가 주어질 지 그 점이 안타깝다.

아랑사또전 신민아 이준기 유승호 연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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