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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했다. 대학생들이 무소속 안철수 대선 후보의 '강연정치'에 열광하는 이유가 말이다. 안 후보의 강연 내용을 담은 녹화영상이나 짧은 기사로는 그 이유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한국사회와 정치권의 개혁을 주문하는 '뻔한 말'에 대학생들이 왜 저리도 열광하는지 의아했다. 사실 안 후보의 어눌한 말투는 그런 의문을 더욱 부채질 했다. 그래서 17일 오후 세종대학교에서 열린 '새로운 변화, 새로운 미래'라는 제목의 안 후보 강연회를 찾았다.

강연 1시간 전인 오후 6시 30분부터 1층 객석 앞자리는 이미 꽉 찼다. 강연 직전에는 1500여 명의 강연 참가자들이 세종대 대양홀을 가득 메웠다.

강연 초반, 안 후보는 정치개혁 과제를 20여 분 동안 기조연설 형식으로 밝혔다. 안 후보는 이후 사회자의 진행으로 약 1시간 동안 참석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세종대 대양홀에서 청중들과 강연이후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 세종대 강연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세종대 대양홀에서 청중들과 강연이후 질의응답을 하고 있다.
ⓒ 이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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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후보는 강연에서 "당론이라는 명분으로 당리당략을 위해 거수기로 전락한 양대 정당"을 비판하며 "계파 나눠먹기"로 전락한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직접 민주주의 요소 강화'를 강조했다.

이어 안 후보는 "지난 4.11총선에서 각 당이 경쟁적으로 약속하고도 현재는 나 몰라라 하고 있는" 국회와 정당의 '특권 내려놓기'를 주요 정치 개혁과제로 제시했다.

사실 이는 안 후보뿐만 아니라 기성 정당 정치인들도 이야기하는 개혁의 과제다. 연말 예산안등 쟁점 법안 처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물리적 마찰 끝에는 늘 여러 정치인이 TV토론 등에 나와 "당론에 구애 받지 않는 소신정치가 필요하다"고 말하곤 했다.

그 탓이었을까? 강기정 민주당 최고위원은 "이 정도를 정치쇄신이라고 한다면 국민이 실망할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특별할 것 없는 정치쇄신안에 환호하는 학생들

그러나 강연 내내 나의 관심을 끌었던 지점은 다른 데 있었다. 바로 정책수립 과정에서 국민과의 소통 방식에 관한 안 후보의 철학이었다.

안 후보는 "지극히 상식적인 위와 같은 정치개혁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떻게 하면 국민들의 민의를 반영할 수 있는 시스템을 잘 구축 할 것인지를 고민했다"며 정책 네트워크 '내일'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정책 네트워크 '내일'은 각 분야 현장의 전문가와 이해 관계자들이 자발적으로 구성한 500여 개의 정책포럼으로 각 포럼이 네트워크 형태로 연결돼 안철수 후보의 진심캠프에 정책을 제안하고 이를 캠프가 수렴하는 형태다.

안 후보는 정책네트워크 '내일'에 대해 "변화된 미래를 뜻하는 내일(TOMORROW)과 정치를 '나의 일'로 국민 참여를 끌어내겠다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소개했다.

안 후보는 "다원화된 사회에서 정책 전문가만으로는 각 분야의 연관성을 이해하고 조정하기는 힘들다"며 "골방에서 10여 명의 정책전문가들이 모여 정책을 수립하는 시대는 이미 과거"라고 지적했다. 

동시에 안 후보는 "현장의 이해관계자들이 자발성을 수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전문가들은 큰 틀에서 방향을 제시하고 충돌하는 정책 부분을 교통정리 하는 역할"이라고 현장 중심성도 강조했다.

사실 안 후보는 정치개혁 과제에 대해 "각 분야 현장의 국민들에게 답을 구하겠다"는 지극히 평범한(?) 철학을 이야기 한 셈이다. 하지만 강연 참석자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강연에 참석한 진희영(24)씨는 "안 후보의 정책철학이 김종인씨 등 정책전문가들이나 유명인들이 주도하는 기성 정당의 굵직한 정책보다 개방적이고 수평적"라며 "생활밀착형 정책이 나올 것 같다"고 기대를 나타냈다.

솔직한 연설과 어눌한 말투로 '호감상승'

안 후보의 강연에 청중들이 환호하고 있다.
▲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의 세종대 강연 안 후보의 강연에 청중들이 환호하고 있다.
ⓒ 이동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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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방적 정책철학이 정치적 믿음을 불러왔다면, 안 후보의 솔직한 연설과 어눌하지만 차분한 말투는 인간적 호감을 상승시키는 듯했다. 

가령 이런 식이다. 청중과의 질의응답에서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연봉 격차 문제에 대해 안 후보는, 중소기업 근무 경력자가 공무원이나 대기업 입사 시험을 보면 가산점을 주자는 대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안 후보는 잠깐 생각하더니 손을 내저으며 "아니, 대기업은 취소 대기업은 아니고요!"라고 솔직하게 정책적 한계를 인정했다. 대선후보로서 준비 부족으로 비춰질 수 있는 상황. 하지만 안 후보의 솔직함에 청중들은 오히려 유쾌하게 웃으며 박수를 보냈다.  

질의응답 시간 중 사회자가 "상의를 벗고 편안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어떠냐"고 제안하자 안 후보는 마지못해 양복 상의를 벗으며 "추운데"라고 혼잣말을 던졌다. 객석에서는 다시 웃음이 터졌다. 

"생활에 지칠 때는 어떻게 이겨내느냐"는 한 학생의 질문에 안 후보는 "~요" "~죠"의 어미를 사용하는 부드럽고 차분한 말투로 "일에 지치고 힘들었을 때는 무작정  걸었노"라고 특별할 것 없는 자신의 슬럼프 극복기를 담담하게 말했다.

안 후보만의 슬럼프 극복방법이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강용경(25)씨는 "안 후보도 그저 우리와 다를 것이 없구나, 그래서 우리를 더 잘 이해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기대를 가졌다"고 말했다.  

국민만 보고 간다? "두루뭉술하다"는 비판도

"국민만 보고 간다고 했지만 여전히 두루뭉술하다. 소속 정당도 없고 함께 하는 국회의원도 많지 않은데 대통령이 된다며 기성 정당을 어떻게 캐어(care)하여 정책을 구체화할 것인가?"

한편에서는 여전히 정치개혁의 구체적 내용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민영기(22)씨는 안 후보 정책의 모호성을 지적하며 안 후보가 "정치개혁의 구체적 내용을 법안으로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고 물었다. 

이에 안 후보는 "60일 정도 남은 대선기간 동안 저에 대해 우호적인 국회의원들이 많이 생겨날 것"라며 "국민이 만들어 줄 것이기에 별로 걱정하지 않고 자연스레 기반이 만들어 질 것"이라고 자신을 보였다.

"안 후보를 지지하지만 모호한 화법이 불만이었다"는 홍성협(28)씨는 안 후보의 강연을 듣고 "안 후보 정책방향에 관한 의문은 어느정도 해소되었다"면서도 "지지기반 없이 이상적 정책 실현은 불가능하다"고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지난 2010년 지방선거 이후 2030세대가 정치의 주요 변수로 떠오르며 이들의 표심을 잡기 위한 각 대선 후보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특히 대학생을 상대로 하는 '강연정치'에는 모든 후보가 뛰어드는 양상이다. 하지만 자연스레 학생들의 참여와 호응을 끌어내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가천대 강연에 학교 측이 학생을 동원했다는 논란이 좋은 예다.

강연을 마친 이후에도 수백 명의 학생들은 돌아가는 안 후보를 에워싸고 악수를 하고 인사를 나누며 환호했다. 강연장에서는 행사 관계자들이 강연장을 정리했다. 이들 대부분은 인터넷 홈페이지와 SNS 등으로 모집한 자원봉사자들이었다. 현장에서 지켜본 안 후보의 강연정치는 확실히 '공기'가 달랐다. 

덧붙이는 글 | 이동철 기자는 2012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대선특별취재팀입니다.



태그:#안철수, #18대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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