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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에게 분유를 먹이는 과정에서 이물질을 발견했다면? 엄마들은 대부분 다음 몇 차례 감정 변화를 거쳐 분노에 이른다. 먼저 놀라움이다. 그 다음은 물론 걱정이다. 당장 '지금'도 지금이지만, 이물질로 인한 나쁜 영향이 혹시 나중에도 있지 않을까, 밤잠을 설치기 마련이다.

그래서 허탈함이 뒤따른다. 더 좋은 분유를 먹이고 싶은 마음에 비싼 제품을 선택했는데, 분유를 탈 때 쓰는 물도 따로 구입해서 아기에게 지금껏 지극 정성을 다했는데, 이런 노력이 이물질 탓에 물거품이 된 것 아닌가 하는 허탈감과 자책이 이어진다.

서울에 사는 나○○(35·여)씨 사례가 꼭 그러했다. 지난 11일 분유를 먹이는 과정에서 젖병 벽에 붙어 있는 벌레로 의심되는 이물질을 발견했다. 길이 0.6∼0.7mm 정도 이물질. 분유를 자꾸 안 먹으려는 아기,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분유는 출산 당시 병원에 있을 때부터 이용한 남양유업 제품이었다. 한 통에 3만 5천원 한다는 고가 분유였다.

그들은 왜 한결같이 명함을 주지 않았을까

최근 분유에서 나온 이물질로 인해 남양유업과 정면으로 맞서고 있는 나○○씨
 최근 분유에서 나온 이물질로 인해 남양유업과 정면으로 맞서고 있는 나○○씨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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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만난 나씨는 그때만 해도 용기에 큼직하게 붙어 있는 '100% 보상 품질보증제'란 말을 믿고 싶었다고 한다. 이물질을 발견한 11일 즉시 고객상담실로 전화를 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나씨는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과 마주하기 시작한다. 도무지 '큰 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았다는 것.

나씨는 "전화를 했더니 언제 가면 되겠느냐고, 대수롭지 않은 식으로 말하더라"며 "아기가 괜찮으냐는 말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집으로 방문한 직원은 벌레 사진을 찍고, 검사를 원하면 분유를 가져가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실랑이가 이어졌다. 남양유업 직원은 검사를 위해 100g 정도가 필요해 다 가져가야 한다고 했고, 회사를 무작정 믿을 수 없던 '엄마'는 절반만 가져갈 것을 요구했다.

R&D 업종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남편 서○○(32)씨에게는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는 전화통화에서 "수 백 가지 검사한다고 해도 가져갈 수 있는 만큼 가져가면 되는 것이지, 100g이 안 된다고 분석을 할 수 없다는 그 쪽 말이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갔다"고 말했다.

더 이해하기 어려웠던 일은 집에 방문한 남양유업 직원이나, 남편 회사로 찾아온 직원이나 모두 한결같이 명함 한 장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덕분에 이름과 연락처만 알고 있을 뿐, 지금도 부부는 그들의 정확한 직책을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일방적으로 놓고 간 분유 두 통은 화를 더 키웠다. 나씨는 "남양유업 직원이 돌아간 후 이물질이 나온 분유와 같은 제품 두 통을 쇼핑백에 놔두고 간 것을 뒤늦게 알게 됐다"며 "회사에 전화를 걸어 내가 그 분유를 먹일 상황이겠냐고 따지니까 남편이 그렇게 하라고 했다고 하더라"고 했다. 남편 서씨가 한 말은 "말이 전혀 통하지 않아 화가 나서 마음대로 하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남양유업 측 "이물질 나올 수 없는 공정"

지난 11일 분유를 먹이는 과정에서 발견한 이물질
 지난 11일 분유를 먹이는 과정에서 발견한 이물질
ⓒ 제보자 나모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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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유업 측은 제조공정을 감안하면 분유에서 이물질이 나올 리 없다는 입장이다. 관계자는 전화통화에서 "미세한 여과막으로 여러 차례 거르기 때문에 분유에서 이물질이 나올 수 없는 공정"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혹 분유를 따자마자 이물질이 있었다면 분유 안에 있는 게 맞지만, 이번 경우는 한 캔을 거의 다 먹인 상태에서 젖병 안에서 발견되지 않았느냐"며 "분유를 타면서 충분히 이물질이 들어갈 수 있는 여건"이라고 말했다.

관계자는 "그렇다고 소비자 과실에 의한 것이라고 단정하긴 어렵지만, 아무래도 고객이 원하는 대로 다 들어줄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응대 과정에서 소비자의 불만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며 "자체적으로 확인해보니 함부로 대하거나 그런 부분은 결코 없었고 정중하게 대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들 부부가 명함조차 받지 못했다는 주장에는 "고객상담실을 통해 소비자 대응이 일원화돼 있고, 대표전화로 해도 바로 담당자와 연결이 된다"며 "명함을 꼭 줘야 하는 건 아니지 않나. 의무사항은 아니다. 연락이 안 된 적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다.

또한 관계자는 회사의 보상 규정을 묻는 질문에 "소비자 신고로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 이물질에 대한 성분 검사나 생산공정 등에 대한 임검을 실시해서 그 결과 종합적으로 회사 과실의 개연성이 있다고 판명되면 그에 따른 시정조치와 함께 소비자에 대한 보상도 이뤄지는 절차가 있다"고 답했다.

"이 제품 정말 너무 싫은데, 한꺼번에 바꾸면 탈이 나니..."

남양유업의 고가 분유 제품. 나○○씨는 출산 후 줄곧 이 제품을 사용했다고 한다
 남양유업의 고가 분유 제품. 나○○씨는 출산 후 줄곧 이 제품을 사용했다고 한다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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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이들 부부가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많지 않다. 일단 1:1 교환이나 환불, 분유에서 이물질이 나왔다고 주장하는 그들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안이다. 보상을 요구하려면 분유에서 이물질이 나왔다는 '자체'부터, 그 이물질이 아기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객관적으로 입증해야 한다. 회사를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 결국 이를 위한 금전적·물리적 부담은 고스란히 부부의 몫이다.

이런 부담을 감수한다고 해도 업체 과실을 입증하기가 어려운 것 또한 현실이다. 남편 서씨는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까 비슷한 사례가 많았는데 소비자에게 유리한 결과가 나온 적이 없었다"며 "이물질이 분유에서 나온 것으로 확인돼도 인체에 무해하다는 결과가 나오면 별다른 조치를 취하기 어렵더라. 그냥 넘어가긴 너무 억울한데, 결국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에 답답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고민거리는 분유를 바꾸기 어렵다는 점이다. 아내 나씨는 "인터넷을 찾아봐도 그렇고 병원에서도 아기들은 예민하기 때문에 분유를 한꺼번에 바꾸면 탈이 난다고 하더라"며 "지금 이 제품 쓰기 너무 싫은데 어쩔 수 없이 다른 제품과 절반씩 섞여 먹이고 있다. 만약 그래도 아기가 못 받아들이면 원래 먹던 분유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고 한다"는 말로 답답함을 전했다.

이어 나씨는 "결국 '복불복' 아니겠나. 그저 이런 경우가 나한테 걸리지 않길 바라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서 "이런 현실이 너무 잘못됐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외국 분유를 먹였어야 한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고 말했다. 이들 부부보다 상대적으로 경제적 여유가 더 없는 부모라면, 그야말로 '울며 분유 먹이기'가 되는 셈이다. 인터뷰 중에도 아기의 거듭된 설사로 엄마는 안절부절못했다.

"경제 민주화의 핵심은 결국 소비자"

지난 11일 분유를 먹이는 과정에서 발견한 이물질
 지난 11일 분유를 먹이는 과정에서 발견한 이물질
ⓒ 제보자 나모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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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홍 녹색소비자연대 정책팀장은 전화통화에서 "분유 이물질 문제는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제기돼 왔지만, 블랙 컨슈머(악성 민원을 제기하는 소비자) 문제가 대두되면서 해당 업체에 대한 과징금 처분이나 영업정지, 삼진아웃제 도입 등 강도 높은 규제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며 "이물질로 인한 피해 역시 의학적으로나 법적으로 보수적인 판단이 나타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소비자의 입장이 반영될 여지는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 팀장은 "하지만 영유아 제품군은 아기들의 건강과 직결되는 문제이고, 특히 분유의 경우는 쉽게 제품을 바꾸기 어렵다"면서 "업체와 소비자의 주장이 충돌할 경우 이를 체계적으로 규명하고, 보상이 이뤄지는 체계에 대한 소비자의 접근이 지금보다 훨씬 쉬워져야 한다. 동시에 분쟁 절차를 간소화하고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법적 대응이 쉽지 않은 점을 감안하여 집단 소송제를 적극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 팀장은 "요즘 경제민주화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는데, 그 대부분은 대기업 규제나 중소기업 상생 등 주제로 국한되고 있다"며 "하지만 소비자의 피부에 와 닿는 문제, 상대적으로 힘에서 절대적 우위에 있는 사업자와 소비자 간의 평등 관계 역시 경제민주화에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주제"라고 강조했다.

윤철한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국장도 "분유 이물질 문제의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절차나 체계가 더 간소화될 필요가 있다"며 "기업이 더 정의롭게 물건을 생산하고 결국 그 혜택을 소비자들이 얼마나 누리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경제민주화의 핵심은 결국 소비자"라고 말했다.

"블랙 컨슈머? 보험회사가 보험 사기 밝혀내듯..."

나○○씨는 인터뷰 중에도 아기의 거듭된 설사로 안절부절 못했다.
 나○○씨는 인터뷰 중에도 아기의 거듭된 설사로 안절부절 못했다.
ⓒ 이정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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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부부를 더욱 화가 나게 하고 동시에 무력감을 느끼게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절대적인 힘의 열세, 나씨는 "보상을 얼마 받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아기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업이 엄마에게는 정말 '큰 일'을 큰 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 자세, 또 해 볼 테면 해보라는 식의 대응에 너무 화가 났다"고 말했다.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 물론 화가 많이 나시겠지만, 기업 입장에서도 대응에 한계가 있지 않을까요. 특히 블랙 컨슈머 문제를 생각해보면...
"진짜인지, 가짜인지… 그건 그 사람들이 잘 판단해야 하는 문제 아닐까요. 솔직히 어떤 엄마가 아기를 키우면서 이물질을 일부러 집어넣을까요. 그런 나쁜 사람들은 손에 꼽지 않겠어요? 그런 소수의 사람이 다수의 소비자를 대하는 핑계가 되어선 안되잖아요. 그건 잘못된 것이라고 봐요. 보험회사에서 보험 사기치는 사람들 밝혀내듯, 그건 자신들이 밝혀야 하는 문제예요. 소비자의 몫이 아니라는 거죠. 100% 품질 보증제라고 크게 적어놓고, 이렇게 하는 건 정말 아니라고 봅니다."

나씨 부부는 성동구청 보건위생과에 이물질과 분유에 대한 성분 검사를 의뢰했다.


태그:#남양유업, #분유, #소비자, #경제민주화, #분유 이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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