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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진강을 건너는 아이들
 탐진강을 건너는 아이들
ⓒ 마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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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장흥의 사진작가 마동욱씨가 사진집 <탐진강의 속살>(2012, 호영, 이하 속살)을 냈다. 강의 발원지에서 하구까지를 모두 담은 역작이다. <속살>에는 네 계절의 탐진강이 넘실대고, 강 주변의 마을들이 옹기종기 자리잡고 있다. 댐 건설로 수몰되기 이전의 풍경도 눈물처럼 박혀 있다. 물리적인 맥락의 탐진강뿐만 아니라 지나간 시간, 그 시간이 만들어 낸 이야기까지를 기록한 것이다.

결코 적지 않게 품을 들인 작업이지만, 실상 마 작가가 사진집을 냈다는 사실 그 자체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미 그는 세 번에 걸쳐 사진집을 선보였고, 글과 사진이 어울린 책 두 권을 세상에 헌사했다. 그 중 수몰 이전 유치면의 산자락과 사람살이를 담은 <아! 물에 잠길 내 고향>(1998, 이하 고향)은 최고의 작업으로 평가받고 있다.

늘 그러했듯이 또 한 권의 사진집을 내 놓은 셈이다. 그럼에도 <속살>의 발행은 충분히 놀라운 사건이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강산이 변하듯, 이번 <속살>이 보여주는 마 작가의 사진 또한 그 시각이 이전과는 다르다. 그 다름이 놀라운 것이다.

<고향>에는 사람과 풍경, 마을과 풍속, 작고 사소해 보이는 미물들에 이르기까지,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끈끈한 애정이 담겨 있다. 대상을 아름답게 담아내려는 섬세한 손길도 감지할 수 있는 게 <고향>의 특징이다.

반면에 <속살>은 매우 평범하다. 사진의 주요 대상은 풍경이다. 애써 아름다운 풍경을 잡아내려는 노력도 느껴지지 않는다. 산책을 하거나 가벼운 마음으로 찍은 것처럼 평안하다. 대상의 끌텅까지를 파고 들어갔던 <고향>에 견주면, <속살>의 이미지들은 퇴행한 것처럼도 느껴진다. 힘이 빠졌나? 잠깐 의심도 해본다.

장흥읍을 가로 지르는 탐진강
 장흥읍을 가로 지르는 탐진강
ⓒ 마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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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들. 장흥읍 순지리 독실포에서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들. 장흥읍 순지리 독실포에서
ⓒ 마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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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속살>의 평범함은 마 작가의 지론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안다. 엄청난 산고 끝에 <고향>을 내 놓고 나서 그는 말했다. "사진은 장난을 치면 안돼, 끝까지 남는 사진이 뭔 줄 알아? 초등학교 소풍가서 차렷 하고 찍은 사진이야." 이 진술은 '작품'을 만들고자 했던 <고향> 작업에 대한 자기반성의 의미도 담고 있었다.

과연 <속살> 속에 담긴 탐진강은 모두 '차렷' 자세를 하고 있다. 작가의 개입이 최대한 배제된 있는 그대로의 탐진강이다. 그래서 평범하고, 그렇기 때문에 보는 이로 하여금 그 강물 속으로 뛰어들 여백의 공간을 제공한다. 작가의 해석 없이 사진과 독자가 알아서 만나고 연애할 수 있는 여유가 담겨 있다. 여기서 마 작가는 예쁜 아가씨, 혹은 멋진 총각을 소개하고 나서 조용히 퇴장하는 중매쟁이에 다름 아닌 셈이다.

바꿔 말하자면 <속살>은 탐진강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그냥 탐진강을 보여준다. 아름다움을 찾는 것은 보는 이의 몫이다. 그리고 보는 이는 '쌩얼'의 탐진강에서 어렵지 않게 아름다움을 찾아낼 수 있다. 화려하지는 않음으로써 미(美)의 본질에 도달할 수 있는 이미지들을 <속살>은 펼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겉을 찍었지만, 보이는 것은 속이다. 한 순간의 탐진강이 아니다. 시간과 바람, 햇빛과 구름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낸 오래된 퇴적물로서 탐진강이다. 그런 면에서 제목으로서 '탐진강의 속살'은 탁월하다.

무려 25년 가까이 고향의 풍경을 기록해 온 셔터의 장인이 오늘에 이르러 도달한 지점은 '절제의 미학'이다. 나를 드러내지 않고 보는 이에게 기회를 주는 '배려의 마음'이다. 사진작가 마동욱은 앞으로도 기록할 것이다. 그의 미학과 마음이 어떻게 진화할지 많이 궁금하다. 다음 사진집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바다에 이른 탐진강. 강진읍 학명리에서.
 바다에 이른 탐진강. 강진읍 학명리에서.
ⓒ 마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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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향하는 탐진강. 강진읍 목리에서
 바다로 향하는 탐진강. 강진읍 목리에서
ⓒ 마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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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마동욱 사진작가의 더 많은 사진은 blog.ohmynews.com/biccal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태그:#탐진강, #장흥, #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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