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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그 끔찍했던 교통사고로 뇌병변 영구 2급 장애를 얻어 3년의 병원치료와 5년의 자가 재활을 하여 재활의 최종 목표인 하프 마라톤 완주를 위해 <오마이뉴스>를 통해 예고한 대로  '제11회 김제 지평선 새만금 전국 마라톤 대회'에 지난 14일 출전했다.

스스로 마음을 다잡기 위해 면도도 하지 않은 채 오전 오후 두 번씩 전주 삼천천에 나가 운동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14km를 뛰며 준비했다. 달리는 동작이 정확히 되지 않아 4번을 넘어졌고 급기야 넘어져 코에 상처까지 생겼지만, 하프 마라톤을 완주하고 결승선을 기운차게 들어오는 모습을 그리며 최선을 다해 연습했다. 장애를 입은 후 그 지난한 세월 동안 그려온 일이기에 힘들었지만 즐거웠다. 머릿속에는 80여일 만에 의식을 회복한 일부터 8년여 재활을 해온 외롭고 힘들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매일 운동을 하며 생각을 가다듬다 보니 연로하신 부모님을 비롯한 내 가족들도 마음 속에 트라우마를 지니고 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특히, 사고 당시 갓 세 살이었던 사랑하는 딸 형서는 밤에 엄마와 자다가 경찰의 전화를 받고 병원 응급실에 온 엄마와 그 길로 헤어져 1년을 낯선 이모네 집에서 생활해야 했다. 그때 받은 정신적 충격으로 인한 트라우마는 없는지 늘 걱정을 해오던 터였다.

온전히 달리기 자세는 되지는 않았지만 제자리 달리기를 해보면 자연스러워 3시간 안에 21.0975km를 완주할 수 있다는 자심감이 점점 생겼다. 가족들 앞에서 늠름하게 완주를 하게 되면 가족들의 트라우마도 치유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들을 초대하고 <오마이뉴스>에 게재해 많은 반향을 받은 내 기사 '무섭고 외로웠던 8년간의 재활, 기적이 일어났다' 를 본 이 지역 민방 텔레비전의 한 프로그램 제작팀에서 연락이 와 연습 과정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장애를 입은 삼촌의 재활을 어린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도와준(걷는 모습 등 내 자세를 알 수 없어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보고 자세를 교정해가며 자가 재활을 했는데 조카가 큰 도움을 줬다) 조카 이준석(15, 서울 상계중학교)은 금요일 수업을 마치고 밤차(작년에 서울로 이사)로 전주에 와 토요일 아침부터 삼촌을 도와줬다.

당일 대회장인 김제로 이동하는 차 안에서 하프 마라톤을 준비하게 된 이유와 과정 그리고 초대한 이유를 가족들에게 이야기했다. 처참했던 사고 순간부터 함께해 온 가족이기에 모두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대회장에 도착해 기다리던 촬영팀과 합류했다.

한참을 뒤쳐저 운동장을 빠져 나가자 재활 과정에 도움을 주던 어린 조카와 함께 기다리고 있던 둘째형이 내 곁에서 전 과정을 나와 함께했다.
 한참을 뒤쳐저 운동장을 빠져 나가자 재활 과정에 도움을 주던 어린 조카와 함께 기다리고 있던 둘째형이 내 곁에서 전 과정을 나와 함께했다.
ⓒ 서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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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로하신 아버지부터 어린 조카와 함께 뛴 하프마라톤

몸을 푸는 내 옆에서 가족들과 인터뷰를 하는 가운데 내 흥분은 최고조에 올랐고 출발 신호가 울려 기운차게 출발했다. 그러나 아직은 달리는 동작이 온전치 않아 건각들은 순식간에 나를 앞서나가 운동장 트랙을 다 돌기도 전에 이미 난 까마득하게 처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대열에 내가 끼어 있다는 사실 자체가 꿈만 같았고, 8년여 동안 머릿속에 그려온 일이기에 힘차게 한발 한발 디뎌 운동장을 빠져 나갔다. 늘 나를 응원해주는 둘째형이 조카 준석이와 기다리고 있다가 내 옆에 붙었다. 내 딴에는 뛴다고 하지만 건강한 사람들에겐 좀 빠른 걸음 정도의 속도 밖에 되지 않아 형과 조카는 힘들이지 않고 옆을 지키며 내게 힘을 주었다.

반환점을 돌아 나를 지나치는 많은 건각들이 내게 큰 소리로 격려를 해주었고, 난 그들에게 '곧 따라갈게요!'라고 응답하곤 했다.
▲ 반환점을 돈 건각들이 나를 지나치며 큰 소리로 격려를 해주었다. 반환점을 돌아 나를 지나치는 많은 건각들이 내게 큰 소리로 격려를 해주었고, 난 그들에게 '곧 따라갈게요!'라고 응답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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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연습했지만 대회 제한 시간인 3시간에 내가 갈 수 있는 거리는 14km 남짓 했기에 스스로 그날의 목표를 15km로 정했다. 후에 출발한 5km 코스 주자들에게 추월 당하고 3km를 지나니 반환점을 돈 주자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나를 지나치며 큰 소리로 격려를 해주었다.

연로하신 아버지께서도 늦게 도착한 큰형과 택시로 논길을 가로질러 오셔서는 코스에 합류하셔서 8Km 정도를 곁에서 함께 하셨고 이후에는 촬영 차량에서 끝까지 함께 하셨다.
▲ 연로하신 아버지(81)께서도 8Km 정도를 옆에서 함께 하셨다. 연로하신 아버지께서도 늦게 도착한 큰형과 택시로 논길을 가로질러 오셔서는 코스에 합류하셔서 8Km 정도를 곁에서 함께 하셨고 이후에는 촬영 차량에서 끝까지 함께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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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km의 음료대를 지나자 통제되지 않는 도로를 이용해 택시로 이동한 연로하신 아버님과 늦게 열차로 김제역에 도착한 큰 형이 또 합류해 내게 더 큰 힘을 주었다. 그렇게 형들과 조카가 곁을 따르며 내게 힘을 주었고 연로하신 아버지(81)까지 8km를 함께 하시며 내게 힘을 주시다가 방송 촬영차에 탑승해 끝까지 함께 하셨다.

김제 시내를 벗어나 외곽에 들어서자 만개한 형형색색의 코스모스들이 하늘거려 그간의 내 노력에 경의를 표하는 듯했다. 구급차는 내뒤를 따르며 나를 호위했고 길 모퉁이마다 경찰들이 철수를 미루고 나를 기다리다가 격려해줘 참으로 고마웠다.
▲ 만개한 코스모스가 내게 경의를 표하는 듯했고 구급차가 내 뒤를 따랐다. 김제 시내를 벗어나 외곽에 들어서자 만개한 형형색색의 코스모스들이 하늘거려 그간의 내 노력에 경의를 표하는 듯했다. 구급차는 내뒤를 따르며 나를 호위했고 길 모퉁이마다 경찰들이 철수를 미루고 나를 기다리다가 격려해줘 참으로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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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외로 나오자 5Km, 10km 주자들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반환점을 돈 하프코스 주자들이 반대편에서 힘차게 뛰어와 내게 파이팅을 외치며 연신 격려를 했다. 나 역시 큰 소리로 응답하며 힘차게 앞으로 나아갔다.

시간이 지나고 하프코스 주자의 후미를 호위하던 경찰차가 지나고 교통통제가 풀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약속된 교통 통제시간이 지나도 김제 외곽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대회 주최 측에선 구급차를 보내 내 뒤를 따르게 했다. 안전을 확보하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배려를 해준 것이다. 지나는 길목마다 배치되어 있던 경찰관들이 나로 인해 철수하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다가 소리치며 내게 격려를 해주었다.

형들과 상의해 대회 제한 시간이 지나면 뒤따르던 구급차에 오르기로 하고 열심히 나아갔다. 제한시간이 되어 구급차에 오르니 15km 남짓 뛴 것 같았다. 구급차를 타고 대회장에 와 기다리던 가족들과 기쁘게 해후했다.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전주로 이동해 꿀 같은 점심식사를 하였다.

실패에도 불구하고 8년간 가꿔온 꿈이 구체적인 현실로 다가오게 되었다. 2006년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휠체어에 의지한 채 꿈꿔오던 하프마라톤에 드디어 도전했다. 긴 시간의 준비에도 불구하고 실패했지만 나는 이번 도전을 통해 더 큰 성취를 얻을 수 있었다.

긴 시간을 재활에 매달리며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려 왔는데 <오마이뉴스>의 기사를 통해 지역 민방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대회 당일 낯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의 격려를 받다보니 사회 속으로 성큼 다가섰다는 확신을 얻었다.   
 
사고의 처음부터 같이한 사랑하는 가족들이 함께해 '치유와 회복의 가족 축제'로 꾸밀 수 있었고 그런 시간을 통해 가족들 마음에 자리한 트라우마를 각자가 치유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연로하신 부모님, 내 재활에 큰 힘을 준 형들, 어린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재활에 도움을 준 조카, 지난한 재활의 동기이며 지금껏 묵묵히 가장의 역활을 다하는 아내와 딸이 함께한 축복된 시간이었다.
▲ 온 가족이 함께해 '치유와 회복의 가족축제'로 꾸밀 수 있었다 사고의 처음부터 같이한 사랑하는 가족들이 함께해 '치유와 회복의 가족 축제'로 꾸밀 수 있었고 그런 시간을 통해 가족들 마음에 자리한 트라우마를 각자가 치유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연로하신 부모님, 내 재활에 큰 힘을 준 형들, 어린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재활에 도움을 준 조카, 지난한 재활의 동기이며 지금껏 묵묵히 가장의 역활을 다하는 아내와 딸이 함께한 축복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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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당시 갓 세살이었던 딸 형서는 엄마와 자다가 헤어져 수원의 이모집에서 일년을 살아야 했고 지금도 광명의 이모집에서 생활하며 초등학교 4학년이 됐다. 형서는 오빠와 둘이 행사장 곳곳을 누비며 즐거워해 나를 기쁘게 했다.
▲ 신이나 행사장 곳곳을 누비는 형서와 조카 사고 당시 갓 세살이었던 딸 형서는 엄마와 자다가 헤어져 수원의 이모집에서 일년을 살아야 했고 지금도 광명의 이모집에서 생활하며 초등학교 4학년이 됐다. 형서는 오빠와 둘이 행사장 곳곳을 누비며 즐거워해 나를 기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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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고로 씻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받았던 가족들이 참여해 그 간의 내 노고를 격려해 주었다. 비록 온전히 뛰어서 하프 마라톤을 완주하지는 못했지만 제한시간에 15km 남짓 달린 내 모습을 보며 연로하신 부모님부터 제일 어린 형서에 이르기까지 마음 속에 굳건히 자리해 있던 트라우마를 치유 받을 수 있었다고 확신한다.

반환점을 돌아 거침없이 질주하며 내게 마음의 응원을 해준 건각들에게 난 이렇게 대답했다.

"곧 따라 가지요!"

덧붙이는 글 | 다음 비유와 티스토리 전북인 닷컴에 중복 게재 합니다.



태그:#김제 지평선 축제, #아리아리 재활, #김제 지평선 새만금 전국 마라톤 대회, #휠체어에서 하프 마라톤 까지, #마라톤 하는 장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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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병변2급 장애를 가진 전주시 공무원으로 하프마라톤 완주를 재활의 목표로 만18년째 가열찬 재활 중. 이번 휠체어 사이클 국토종단애 이어 장애를 얻고 '무섭고 외로워'오마이뉴스에 연재하는 "휠체어에서 마라톤까지"시즌Ⅱ로 필자의 마라톤을 마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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