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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에는 시내 곳곳을 벽화로 치장하는 어르신들이 있다. 이름 하여 '안성 실버 벽화예술단(단장 류은자). 연령대는 55~77세. 그렇다. 일명 '어르신 벽화예술단'이라 부른다. 그들의 신명나는 벽화현장을 가봤다.

포스는 젊은 전문가들 포스

오늘(지난 11일)의 미션은 '안성 내리사거리 육교 벽화 완성'이다. 멀리서 바라보니 젊은이인지, 어르신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웬 젊은 전문가들이 벽화를 그리나 싶었던 것. 가까이 가봤다. 그제야 '아하, 잘못 온 게 아니구나'싶었다.

지금은 가을 햇볕 아래서 어르신들이 페인트칠 삼매경에 빠졌다. 멀리서 보면 웬 광고업체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나 싶다.
▲ 작업 삼매경 지금은 가을 햇볕 아래서 어르신들이 페인트칠 삼매경에 빠졌다. 멀리서 보면 웬 광고업체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나 싶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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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 넘게 어르신 11명이 벽화를 그려온 육교. 오늘은 벽화가 미완된 부분을 완성하는 날이라 어르신 몇 분만 나섰다. 소위 '완성 특공대'라고나 할까. 그들의 붓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의 쌓은 깨알 같은 노하우가 있다.

육교다 보니 동네 사람들이 많이 지나간다. 육교 아래로 차들도 씽씽 달린다. 이런 야생의 느낌들이 어르신들에겐 오히려 에너지가 되는 듯 보였다. 멀리서 바라보면 그들의 붓 삼매경과 어우러져 육교의 아기자기함을 드러낸다. '화룡정점'이라 했던가. 마무리 작업이라 정점을 찍는 집중력이 필요한 시간이다.

쉽지 않은 작업, 인근 육교도 변화 시켜

쉬운 일이 어디 있던가. 육교 벽화 작업 준비가 만만찮았다. 청소만 꼬박 이틀 걸렸다. 새벽부터 나와 불순물을 긁어냈다. 1차 도색작업에 이어 2차 도색작업까지. 순전히 어르신들만의 기술이 아닌 어느 정도 전문가의 도움이 어우러지는 대목이다.

처음엔 평면에 그리는 벽화만 생각했다가 난관에 부딪히기도 했다. 계단 전부를 통일성 있게 처리하려면 상당한 각도 감각이 있어야 하기에 그렇다. 시행착오는 성공을 가져온다 했던가. 몇 번의 실수가 완성의 날을 가져왔다. 이젠 어떤 육교라도 자신 있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선물 받았다.

하지만 어려운 일인 만큼 영향력도 생겼다고. 이들의 노력은 인근 육교도 변화 시켰다. 이 덕분으로 중앙대학교 앞 육교에도 육교 미화작업이 이루어졌다고. 인근 육교들이 새 옷을 갈아입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모든 작업에 11명의 어르신들이 참여했다. 하지만, 마무리 작업엔 위의 특공대원들이 투입되었다고 류은자 화백이 말한다. 중간에 밀짚모자를 쓴 여성이 류화백이다.
▲ 특공대원들 모든 작업에 11명의 어르신들이 참여했다. 하지만, 마무리 작업엔 위의 특공대원들이 투입되었다고 류은자 화백이 말한다. 중간에 밀짚모자를 쓴 여성이 류화백이다.
ⓒ 류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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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 그리는 날은 소풍 가는 날

시민들이 지나가면서 "그림 전시장 같아요. 어머, 정말 수고하세요"란다. 이런 한마디가 어르신들에겐 청량제다. 나이 들면 칭찬 먹고 산다는 거 젊은이들은 알까 몰라.

멤버 중 한 여성 어르신은 집 밥만을 고집하는 분이 있다. 작업 하는 날엔 항상 도시락을 싸온다. 그것도 1인분이 아니라 항상 푸짐하게. 사람은 길들여지기 마련. 아침이 되면 은근히 어르신들의 기대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오늘은 저 양반이 어떤 맛난 음식을 싸왔을까'.

머리에 그려 보라. 일단의 어르신들이 보람 있는 일을 땀 흘려 한다. 그 땀 흘리는 현장을 지나는 동네 주민들이 칭찬해준다. 바로 그 현장에서 동료들과 함께 맛난 도시락을 먹는다. 그 도시락은 수십 년 손맛으로 만든 도시락이다. 그래서 그들은 벽화 작업하는 날을 소풍가는 날로 기억한다.

이번 추석엔 한 어르신은 친척 모두를 데려와 기념촬영까지 했단다. 그러면서 "이거 내가 했다"고 자랑했다고. 한 여성 어르신의 남편은 아내를 지원하기 위해 간식거리를 한 아름 사와서 동료들에게 나눠 주기도 했단다. 먹을거리가 풍성한 작업이 아닐 수 없다.

시골에서 전원생활 하는 한 노부부는 이날만 손꼽아 기다리기도 했단다. 도시에서 이사와 적적했던 시골생활에서 도시에너지를 얻어간단다. 평소 유일한 바깥나들이이기에 더 그렇다고. 아하, 단순한 벽화 작업이 아니라 노년기 우울증 치유작업이었구나. 그것도 자가 치유 작업을.

이것이 안성 내리 사거리 육교의 비포 사진이다.
▲ 비포 사진 이것이 안성 내리 사거리 육교의 비포 사진이다.
ⓒ 류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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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바로 육교의 애프터 사진이다. 당신은 어느 육교로 올라가고 싶은가.
▲ 애프터 사진 이것이 바로 육교의 애프터 사진이다. 당신은 어느 육교로 올라가고 싶은가.
ⓒ 류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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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은자 화백과 안성어르신의 만남이 일을 내다

이 모든 작업을 이끄는 이가 바로 류은자 화백이다. 30년 세월을 서울에서 그림활동을 해온 류화백은 고향 안성에서 뭔가 뜻있는 일을 만들고 있다. 고향지역에 봉사한다는 맘으로 이 예술단을 이끌고 있다.

"요즘 예술은 대중과 호흡해야 해요. 요즘은 작업실 예술을 넘어서 거리예술, 실용예술이 대세라고나 할까요."

이렇게 말하는 류 화백. 그녀와 안성 어르신들의 만남이 안성을 이렇게 상큼하게 디자인해나갈 줄 누구도 몰랐다. 어쨌든 안성 내리 사거리 육교를 지나는 사람들은 당분간 행복할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 안성 실버 벽화 예술단은 2011년에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문화원연합회가 실시한 ‘어르신 문화 프로그램 개발’ 전국 공모사업 우수 프로그램으로 선정되어 보조금을 지원받아 교육 중인 실버문화교실 프로그램이다.



태그:#안성 실버 벽화예술단, #어르신 벽화예술단, #류은자, #안성,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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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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