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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사회투자 상품을 취급하는 펀드 백화점, Social Investment Business

SIB(Social Investment Business)는 런던 교통 중심지역 중 하나인 킹스크로스(King's Cross)역에서 불과 5분 거리에 있는, 이면도로의 작고 허름한 건물 1층에 있었다. 숙소가 바로 근처에 있었기 때문에 맞은편에 있는 런던 국립도서관(British Library)에서 기관탐방 자료를 정리하다가 약속시간보다 조금 늦게 사무실을 찾았다. 단아한 키에, 마음씨 착한 이웃집 아줌마를 연상시키는 중년 부인이 현관 입구에서 반갑게 우리를 맞아준다. 영국의 대표적인 자선투자기관이며, SIB의 모기업이라 할 수 있는 ACF(Adventure Capital Fund)의 최고 운영책임자인 캐롤라인 포스터(Caroline Forster) 여사다. 

2012. 5. 31일 방문
▲ Social Investment Business 사무실에서, 캐롤라인 이사와 함께 2012. 5. 31일 방문
ⓒ 문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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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SIB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SIB는 자선투자기관인 ACF(Adventure Capital Fund)가 만든 사회적기업입니다. ACF는 2002년에 커뮤니티 발전을 위한 지역밀착형 마을기업(community enterprise)에 대한 투자를 목적으로 설립된 기관이며, SIB는 ACF에서 분리된 사회투자 중개를 전문으로 하는 자회사입니다.

주로 '지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ACF, 더 넓은 의미에서 소셜벤처를 포함한 제 3섹터를 대상으로 활동하는 SIB, 이렇게 두 개의 기관이 SIB그룹의 양대 축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현재까지 영국 전역에 걸쳐 시민사회 영역에 속한 기관, 단체들을 상대로 약 1300개의 크고 작은 투자 프로젝트를 지원했습니다."     

www.sibgroup.org.uk
▲ SIB그룹 Homepage www.sibgroup.org.uk
ⓒ www.sibgroup.org.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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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마어마한 수준이군요. 주로 어떤 사업(영역)에 투자를 하고 계신가요?
"사회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혁신기업, 지역공동체 발전을 위해 일하는 마을기업들에 대한 투자가 가장 많습니다. 이들의 아이디어를 현실화하기 위한 지식 및 컨설팅 제공, 자금 지원 등 잠재력 있는 소셜벤처들이 자신들의 이상을 실현해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저희들의 임무입니다. 이를 위해 다양한 종류의 사회투자펀드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유망한 사회혁신기업가들을 위한 펀드(Social Enterprise Investment Fund), 시민들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발굴, 현실에 적용하기 위한 펀드(Social Action Fund), 전문성과 경험을 갖춘 뛰어난 사회적경제 조직들의 성장, 발전을 위한 펀드(Futurebuilders England Fund) 등이 대표적인 것들입니다."

- 펀드 운영을 위한 자금은 어떻게 조달하고 계신가요?
"펀드의 구성 목적에 따라 투자자들도 달라집니다. (중앙)정부로부터 전액 자금 지원을 받는 펀드가 있는가하면, 민간 기업으로부터 지원을 받는 경우, 매칭(matching)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경우 등 추구하는 사업목표에 따라 각각 다르며, 부문(Sector)을 넘나들며 다양한 파트너들과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사례 중 두 개의 펀드는 영국 시민사회청(The Office for Civil Society)으로부터 자금지원을 받았습니다. ACF가 위탁 운영하고 있는 지역개발펀드(Communitybuilders Fund)의 경우, 주로 지방정부가 투자하는 일이 많습니다. 최근 출범한 큰 사회기금(Big Society Capital)도 향후 저희들에게 주요한 투자자그룹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 (지방)정부가 투자자로 참여하는 경우, 특별한 어려움은 없습니까?
"자금의 사용처나 자금 운용기간의 탄력성이 부족하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일례로, 잉글랜드 북부의 웨스트요크셔(West Yorkshire)주에서 활동하는 한 비영리단체가 낡은 마을회관을 새로 보수하여 지역주민을 위한 공공장소로 활용하고자 하니 건설자금 중 일부를 지역개발펀드에서 지원받고 싶다는 요청을 해왔습니다.

총 공사비용 400만 파운드 중 절반에 해당하는 200만 파운드(약 36억 원)가 필요한 큰 사업이었는데, 문제는 펀드 운용기간과 이 사업에 필요한 자금 투입시기가 맞지 않아 사업승인을 한다 하더라도 집행에 어려움이 생긴다는 점이었습니다. 정부(투자자)와 상의한 결과, ACF가 정부로부터 해당 투자금액을 '증여'받는 것으로 합의를 보고 최종 지원 결정을 내렸습니다. 나름 합리적인 방법을 찾은 것이죠."       

 Communitybuilders Fund Homepage
ⓒ www.communitybuildersfund.org.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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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별 기관들에 대한 투자는 주로 어떤 형태로 이루어지나요?
"경우에 따라 다릅니다. 100% 융자(loan) 방식으로 추진되는 사업도 있지만, 필요한 자금대부분을 기부(grant)해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융자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지만, 대체로 두 가지가 혼합된 형태로 지원이 이루어진다고 보시면 됩니다.

신규로 융자를 받는 기관의 경우 상환의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일정 부분을 기부금 형태로 제공하기도 합니다. SIB의 핵심적인 역할은 이자수익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는 기관들의 자본접근성을 높이고 간극(capital gap)을 줄이는 것입니다. 따라서 일부 손실을 보더라도 3섹터 조직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투자계획을 수립하고 있습니다."

- 펀드 설정 시, 목표수익률을 산정하실 때 어떤 기준을 적용하십니까?
"펀드의 대상과 목표, 사업내용이 달라 '일반적' 기준이라 할 만한 것은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이자율+운영비' 구조를 가져가며, 동시에 자금 미회수에 따른 연체율(default rate)도 반영을 합니다.

SIB는 시장에서 자금조달이 어려운 기관이나 단체들을 주요 고객으로 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높은 재무위험을 감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기금 액 중 일정 부분의 손실을 감수해야 합니다. 기부금으로 제공되는 돈 역시 미회수를 전제로 한 것이니까요. 지역개발펀드의 경우 대손 기준은 2.5%입니다. 정부가 지원하는 자금 중 열악한 상황에 놓여있는 기관들을 구제하기 위한 펀드 가운데는 대손 기준을 14%까지 설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 채러티뱅크도 융자 중심으로 운영되는데, SIB와 비교할 때 어떤 차이점이 있을까요?
"체러티는 은행이기 때문에 고객예금을 가지고 순수한 융자방식으로 운영하지만, SIB는 대부분의 자금을 정부로부터 지원받고 재무위험이 높은 고객을 상대로 '융자+기부' 방식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작동되는 방식이 다릅니다.

조직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채러티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이율을 적용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정부가 제시한 기준을 따라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대손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경주해 왔습니다. 고상한 표현이 아니라 우리를 찾는 3섹터 기관들의 '구두에 발을 넣으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도움을 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 융자 심사 시에, 대상자를 판단하는 특별한 기준을 가지고 계신가요?
"우선, 그간의 경험이 반영된 정형화된 질문지(form)를 통해 가능한 많은 정보를 파악하고자 노력하는 편입니다. 어떤 기술과 전문성을 보유하고 있는지, 직원들의 숙련도는 어느 정도인지, 사회적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인지, 사업계획은 얼마나 구체적인지 등을 확인하는 것은 필수 과정입니다.

기초조사, 인터뷰, 사업계획 발표 등 필요한 절차를 거친 후 심사기준 항목별 점수를 합산한 다음, A부터 E까지 등급을 매겨 투자여부를 최종 판단합니다. 빌려간 돈을 잘 갚을 수 있을지에 대한  '증거자료'를 모으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 지원을 희망하는 사회적경제 주체들이 계획서에 나온 바대로 충실하게 과업을 실천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포괄적 '믿음'을 주고 있는가가 중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Communitybuilders 융자신청서 양식
ⓒ www.communitybuildersfund.org.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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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원이 이루어진 이후에는 어떤 과정이 진행되나요?
"지원을 받은 기관은 통상 매 분기 단위로 재정보고서를 제출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현금흐름 및 재무상황을 알 수 있도록 매월 보고서를 요청하기도 하는데, 감독을 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객관적인 상황을 들여다보면서 혹시 모를 재무적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모든 피투자자(Investee)에게는 전담 투자분석가(analyst)가 있어서 정기적인 미팅을 통해 상황을 공유하고 적절한 대안을 함께 모색해가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과정이 진행되지 않을 경우, 우리는 융자를 받은 기관이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고 따라서 도움을 줄 수도 없습니다. SIB에게 고객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핵심 업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주기적인 미팅을 통해 이루어진 피투자자 평가내용은 어떻게 활용하시나요?
"예를 들어, 어떤 기관이 최초 대출시점에 C등급을 받았는데 1년 후 좋은 평점을 받아 B등급으로 상향되었다면 추가 지원을 해줄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됩니다.

역으로 만일 D등급으로 평가가 하향될 경우, 계속 지원을 할 것인지에 대해 '위원회'에서 재심을 하게 됩니다. D등급은 최하등급이기 때문에 위험한 상황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피투자자들이 직접 상환유예 요청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도 해당 기관의 상황을 진단하여 원금상환만 유예할지 이자까지 유예할지 등을 판단하여 알려줍니다.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기 보다는 유연하게 대응하는 편입니다."

- 한국에서도 3섹터 조직들을 위한 투,융자 방식의 사회투자기금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특별히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알려주시겠습니까?
"새로운 실험을 많이 해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일정한 위험을 감수할 수 있어야 대응능력이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이 일을 시작할 때, 우리가 했던 일은 초보 병아리 기업가(entrepreneur)에게 사업개발 자금을 기부(grant)해주고 실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었습니다. 기관별로 15,000에서 25,000파운드 정도의 '씨앗기금'을 지원했는데, 목표는 이들이 어떻게 사업을 진행하는지를 관찰하고 연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개별 기관들은 자신들의 약점을 보완하고 기술을 함양하며 사업계획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고 믿습니다. 영국에서 이런 방식을 적용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는 이 방식이 사회적경제 조직들을 성장시키는데 매우 유용한 방법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ACF가 이런 지원방식을 처음으로 도입했다는 뜻인가요?
"맞습니다. 저희들이 첫 개척자인 셈입니다. 독립성을 추구하면서 새로운 혁신을 시도하는 기업가들을 믿어주고 특별한 조건 없이 이들을 지원해주는 것은 조직의 성장 발전에 강력한 동기부여가 됩니다. 얼마 전 SIB가 출시한 펀드 중 훈련기금(Contract Readiness Fund)이란 것이 있습니다.

시민사회청(Office of Civil Society)이 출연하여 만든 기금인데, 앞서 말씀드린 씨앗기금을 진화시킨 것으로, 3섹터 조직들이 공공 민간위탁사업이나 기업의 투자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만든 펀드입니다. 이 일을 밀도 있게 추진하기 위해 별도로 조언자(Advisor) 그룹과 협약을 맺고 현재 구체적인 프로세스를 설계중입니다."  

 Investment and Contract Readiness F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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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언자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역할을 수행하게 되나요?
"사업개발비를 지원받은 병아리 기업가들이나 기관들을 대상으로 정부와 어떻게 협력 사업을 진행하는지, 기업의 투자를 받으려면 무엇이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지 등 실용적인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며 코칭하는 역할을 수행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개별 기관들의 사업 위험을 줄이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습니다.

공공사업을 위탁받으려면 거버넌스의 원리와 방법론을 이해하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공공영역에 대한 학습이 필수적입니다. 민간영역의 경우 투자자들에게 위험의 종류와 내용을 제대로 설명해주는 것만으로도 투자를 받을 가능성은 높아집니다. 투자란 위험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관리할 것인가의 문제이니까요." 

- 끝으로, SIB그룹이 추구하는 미션과 향후 비전에 대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SIB는 설립 초기부터 기금을 활용한 크고 작은 실험들을 해왔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많은 종류의 펀드를 출시하고 운영하고 있지만 여전히 '파일럿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사회적경제 영역이 활성화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많은 부문에서 새롭고 창의적인 도전들이 지금보다 더 왕성하게 이어져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런 면에서 새롭게 제 3섹터를 키우고자 하는 한국과 큰 차이가 없다고 봅니다. SIB는 부문 간 경계를 뛰어넘는 융합펀드(mixed portfolio)라는 기제를 통해 '거버넌스'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목표는 사회적 편익을 추구하는 다양한 사회적 펀드들을 실행시키고, 그 돈이 다시 지속적으로 재활용될 수 있는 지속가능한 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사회적경제 생태계를 구축하는데 있어 가장 긴급하고 중요한 요소는 인적 자원이다. 무엇보다 먼저 사람을 키워야 한다는 말이다. 영리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사업가든 비영리에서 일하는 활동가든, 이 당연한 명제를 부정하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양'이 아니라 양이 만들어내는 '양털'에만 관심이 있고, 양들이 자랄 수 있는 초지(草地)는 제공해주지 않으면서 털을 생산하지 못하는 양들만 탓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 사이 양들은 하나 둘 소리 없이 우리 곁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난 수년간 정부와 기업이 주관하는 수많은 사회적기업 아이디어 모집과 경진대회가 있었고 또 지금도 많은 곳에서 진행 중이다. 이 등용문을 통해 선발된 우수한 기업가들은  모두 어디에 있는가. 사회를 바꾸려는 이들의 높은 열정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현실과 접맥시키기 위한 새내기들의 치열한 노력에 더해 우리는 어떤 지원을 하였는가.

사회적 기업 창업 아이템을 들고 온 청년기업가에게 계획서의 비현실성을 탓하며 '훈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잘 만들어 오라는 '격려'와 함께 사업개발을 위한 돈을 쥐어줄 수 있다는 '무모함'이 이 나라와 우리의 진정한 차이가 아닐까. 캐롤라인 이사의 따뜻한 영접을 받으며 사무실을 나오면서 '제대로 한방 맞은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물어보자. 양들을 지키고 또 이끄는 목동들이여, 당신들은 진정 양들을 사랑하는가?


태그:#사회적기업, #사회적경제, #영국 사회투자기관, #사회투자펀드 백화점, #SIB GRO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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