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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봉 새섬봉 정상에서...울려퍼지는 찬송소리...
▲ 사천 와룡산 최고봉 새섬봉 정상에서...울려퍼지는 찬송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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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재봉 정상에서...
▲ 사천 와룡산... 민재봉 정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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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봄이라서 가을은 가을이라서 자꾸만 마음이 밖으로 불려나간다. 가을은, 특히 시월은 사람 마음도 몸도 자꾸만 밖으로 불러낸다. 창밖을 내다보노라면 째지게 푸른 하늘과 선선한 바라, 시나브로 물들어가는 산빛과 들녘과 찹찹한 바람이 마음을 자꾸만 밖으로 향하게 한다. 몸이 근질근질하게 만든다. 쨍하고 금이 갈듯 맑고 푸르른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경남 사천 와룡산을 만나러 간다.

사천 와룡산은 <신사참배를 거부한 그리스도인>(조수옥권사)을 통해 들었다. 이 책에서 일제시대 때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순종하고 죽기로 각오하고 기도했던 조수옥 권사 이야기를 알았고 그가 사천 와룡산 정상 높은 바위에서 일주일 동안 기도했다는 것도 알았다. 몇 년(2007) 전에 만났던 와룡산은 그땐 짙은 안개 때문에 그 무엇 하나 보이지 않았고 특별한 감동도 미련도 없었다. 남편은 가끔 와룡산을 다시 가고 싶어 했고 이번엔 조수옥 권사의 기도바위를 꼭 찾을 수 있다고 장담한데다 마침 동행이 있어 함께 했다.

째지게 푸르고 맑은 날에...
▲ 경남 사천 와룡산... 째지게 푸르고 맑은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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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룡산 정상에서 기도하였던 조수옥 권사(1914년 12월 1일 출생) 일제치하에서 신사참배를 거부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지만 목사도 장로도 신사참배에 응하는 것을 목도하면서 죽더라도 떨면서 죽는 것이 아니라 승리자로 죽고싶다고 생각했고 특별히 와룡산에서 기도하기로 결정하고서 할머니 한 분과 한분의 집사와 셋이서 함께 산에 올라 산 정상 바위에 앉아 기도로 여러 날 부르짖었다.

"주여-주여-' 목이 터져라 외치며 주를 불러봤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나는 완전히 두려움에 사로잡힌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마침내 보는 모든 것과 들려오는 모든 것들이 걷잡을 수 없도록 나를 공포의 도가니 속으로 끌고 들어가 전신이 마비되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참으로 불상하고 가엾은 나의 모습이었습니다. 경찰에 잡혀 죽기보다는 산에서 기도하다 죽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했기에 그래서 더욱 강하고 용기 있는 신앙인이 되기 위해 산 위에 기도하러 올라온 나였지만 오히려 집에 있을 대 보다도 훨씬 나약해진 나의 모습, 불안에 시달리는 모습이 되어버렸던 것입니다....(중략).....혼자서 얇은 모포 한 장으로 몸을 감고서 기도하려 했지만 울기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두려워 말라. 내거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43:1)하는 성경말씀이 생각났습니다."(p50)

민재봉에서...
▲ 사천 와룡산... 민재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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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조수옥 권사는 공포와 두려움이 사라지고 기쁨과 평안으로 충만했고 이젠 모든 것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적고 있다. 믿음의 선배의 기도바위가 있는 사천 와룡산을 만나러 가는 길에 마음이 설렜다.

1995년 사천광역시가 생기기 전까지는 삼천포 와룡산이었던 현 사천 와룡산은 조수옥 권사의 기도바위가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한려수도의 절경을 한 눈에 조망하기에 탁월한 산이며 봄이면 진달래와 철쭉으로 유명한 곳이다. 서부 경남 해안에 위치한 와룡산은 북서쪽으로 진주와 하동군에, 남동쪽으로 남해군과 고성군에 접하는 한려해사관광권의 중심도시이다.

새섬봉 가는 능선길에서...
▲ 와룡산... 새섬봉 가는 능선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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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커다란 용 한 마리가 누워 있는 모습이라 와룡산이라 불렀다고도 하고 고려 제8대 현종이 등극하기 전 어릴 때 이곳에 귀양 와 있던 아버지 욱과 같이 생활하던 곳, 즉 잠용지처라 해서 그런 이름을 얻었다는 설도 있다. 와룡산이라는 지명을 맨 처음 언급한 것은 도선국사의 시(詩) 중에 '방수시산무한경 와룡산하 남양동(訪水深山無限景 臥龍山下南陽洞) 깊은 산 명경지수의 무한경지를 찾아와 보니 여기가 바로 와룡산 아래 남양 땅이로구나' 가 있고 경상도지리 진주목 사천현 명산조에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사천의 특산물로는 화어, 쥐치포, 명태포, 생선회, 멸치, 학꽁치, 문어, 단감, 참다래, 포도, 토마토 등이 있다.

와룡마을 와룡저수지 위쪽 주차장에 차를 주차해두고 덕룡사로 들머리 삼았다. 높은 산을 울타리 삼고 깊이 안긴 듯한 와룡마을은 평온해보였고 적요했다. 고운 햇살 받고 있는 돌담길을 지나자 덕룡사가 나왔다. 흐르는 샘물에 목을 축이고 걷는 길. 숲속 길로 접어들었고 울창한 숲길엔 그늘이 드리워져 있어 걷기에 좋았다. 이 길은 곧장 능선까지 곧바로 치고 올라가는 길로 제법 가팔랐다. 숲길엔 밤나무가 많았다. 우리는 길 주변에 떨어진 밤을 줍느라고 한동안 등산도 잊고 밤 줍기에 여념이 없었다. 온통 떨어진 밤송이들이었고 발로 뭉개서 가시바늘 같은 밤 껍질 속에 있는 밤을 주웠다.

이모저모
▲ 사천 와룡산... 이모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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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막길 끝에 닿은 트인 능선길엔 상쾌한 바람이 솔솔 불어 땀을 식혀주었다. 멀리 내다뵈는 민재봉과 새섬봉, 새섬봉 옆에 상사바위가 있고 멀리 떨어져 있는 이쪽 능선길 끝에서 우리는 이제 사자바위, 기차바위도 지나고 구 정상인 민재봉도 만나고 현 정상인 새섬봉도 만날 것이다. 잠시 한 숨 돌린 후 능선길을 걷기 시작했다. 사자바위도 만나고 기차바위도 만났다. 햇빛 쏟아지는 시월의 맑고 푸르른 하늘과 상쾌한 바람, 사방으로 트인 능선길에서 파도 물결치듯 펼쳐진 산, 산들과 하늘과 바다와 들녘을 두루 돌아보았다.

능선 길엔 요즘 흔하지 않은 하얀 구절초가 피어 지천이었다. 걷는 길 내내 들국화 향기 나는 꽃길이어서 걸음이 더욱 상쾌했다. 능선길은 밋밋하지 않았고 제법 오르락내리락 하며 걸었다. 째지게 푸른 하늘엔 눈이 시리도록 흰 구름들이 시나브로 모양을 바꾸며 그림을 그렸고 바람은 상쾌하고 햇볕은 투명하게 빛났다. 하늘에 시를 쓰듯, 편지나 그림을 그리듯 흰구름들은 시시때때로 멋진 이미지를 연출했다. 발은 와룡산 산마루 길을 밟고 눈길은 푸른 하늘과 발치에 피어 흐드러진 구절초에 가 닿았다.

새섬봉 가는 능선길에서...
▲ 사천 와룡산... 새섬봉 가는 능선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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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민재봉(799m)에 도착. 민재봉 정상은 넓은 안부로 되어 있어 넉넉하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정상 주변엔 구절초가 피어 흐드러졌고 맑은 날씨에 동서남북 사방이 툭 트여 사량도, 수우도, 신수도 등  크고 작은 섬들이 점점이 박혀 있는 바다와 멀리 지리산 천왕봉도 아슴아슴 보였다. 높낮은 산들이 파도처럼 굽이굽이 펼쳐진 모양이며 쨍하게 푸른 하늘 가을 수놓은 구름들이며 상쾌한 바람과 햇빛, 삼천포항구와 바다. 그 어느 것 하나 막힌 것 없이 멋진 풍경을 연출했다.

맑고 푸르른 날에 동서남북 그 어디에도 막힘없이 탁 트인 조망, 하늘과 바다와 산과 섬과 섬들. 예전엔 미처 몰랐던 민재봉 아니 와룡산의 진면목을 이제야 제대로 알 수 있었다. 글로도 말로도 다 형용할 수 없는 장쾌한 와룡산의 매력에 우리는 황홀해하며 망중한에 빠져들었다. 와룡산이 이렇게 좋았었나? 생각하면서. 예전에 미처 몰랐던 민재봉의 아름다움을 이제야 보게 된 감격과 와룡산의 재발견에 한동안 선 채로 있었던 나는 소나무 그늘아래 점심도시락을 펴고 앉은 일행들이 나를 불러서야 다가갔다.

동서남북...탁 트인 조망...와룡산의 멋진 풍경...
▲ 사천 와룡산... 동서남북...탁 트인 조망...와룡산의 멋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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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트인 멋진 풍경 속에 앉아 점심 도시락을 먹은 우리는 이제 다시 일어나 와룡산 현 정상인 새섬봉을 마주 바라보며 걸었다. 한 걸음씩 걸음 옮길 때마다 새섬봉은 점점 가까워졌다. 호젓한 능선길 이어지다가 새섬봉과 민재봉 중간쯤에 있는 헬기장을 만났다. 새섬봉은 지척이었다. 새섬봉 가까이 도착하자 밧줄 타고 올라가는 암봉 구간이 정상까지 이어졌다. 위험 구간이었다.

마침내 우린 새섬봉(801.4m) 정상에 올랐다. 새섬봉 정상에 서보니 우리가 걸어온 능선길이며 민재봉이며 삼천포항이며 저녁노을 물들기 시작하는 바다며 크고 작은 섬과 섬들이며 골짜기 마을이며 저수지들과 산빛들이 두루 조망되었다. 해는 기울고 저녁노을이 엷게 번져가고 있었다. 이곳이 조수옥 권사가 일주일동안 머물며 기도했던 기도바위라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또한 죽으면 죽으리란 일사각오로 믿음을 지켰던 믿음의 선배들의 신앙과 현재 우리의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우리들 신앙의 현주소를 생각하며 마음 숙연해졌다.

오후의 하늘...그리고 새섬봉...
▲ 사천 와룡산... 오후의 하늘...그리고 새섬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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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함께 정상 바위 꼭대기에 올라 앉아 찬송을 불렀다. '하늘가는 밝은 길이~내 앞에 있으니~슬픈 일을 많이 보고 늘 고생하여도·~하늘 영광 밝음이 어둔 그늘 헤치니 예수 공로 의지하여 항상 이기리로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해는 져서 산에 오른 사람들이 모두 내려갔을 시간에 우린 봉우리에 앉아 찬송을 불렀고 찬송소리는 멀리 멀리 높이높이 퍼져나갔다. 함께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고 난 후에야 하산 길에 섰다.

내려오는 길은 가팔랐다. 암릉길 이어지다가 곧 숲으로 접어들었다. 한려수도가 한 눈에 바라보이는 곳이기도 하거니와 믿음의 선배의 기도바위를 만난 기쁨으로 우리는 힘든 줄도 모르고 즐거운 마음으로 경쾌하게 발걸음 옮겼다. 해는 서녘 하늘로 꼴깍 넘어가고 노을은 점점 번져갔다. 산그늘은 더욱 짙어졌다. 마을로 내려서자 굴뚝에서 나는 매캐한 연기냄새가 고향의 냄새처럼 정겨웠다. 벼가 익어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들판도 어둠이 물들고 있었다.

새섬봉에서 내다본 사천 항...
▲ 사천 와룡산... 새섬봉에서 내다본 사천 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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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산행수첩
1. 일시: 2012년 10월 3일(수).아주 맑음
2. 산행: 이명화 포함 5명
3. 산행기점: 사천 와룡마을
4. 산행시간: 7시간 35분
5. 진행:
(사천 와룡마을 와룡저수지 위 주차장)덕룡사.청룡사 갈림길(10:55)-덕룡사(11:00)-능선길 안부(11:55)
-사자바위(12;15)-기차바위(1:00)-철용사갈림길(1:15)-민재봉(799m)(2:10)-점심식사후 출발(3:15)-
헬기장(3:25)-수정굴갈림길(3:40)-새섬봉(801m)(4:10)-하산(4;40)-너덜지대(5:00)-나무데크(5:05)
-돌탑(5:20)-도암재(5:30)-납골당(6:05)-와룡마을(6:15)-덕룡사 앞 주차장(6:30)

특징; 덕룡사-안부; 밤나무 군락
민재봉(799m) 옛 정상
새섬봉(801.4m) 현 정상
* 저녁식사: 사천시 서동 311-30번지, 귀빈식당



태그:#사천 와룡산, #조수옥권사의 기도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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