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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이 사라진 곳에는 자전거도로와 산책로가 자리잡았다. 녹지가 늘어 도시민들의 피로를 푸는 좋은 장소다. 그러나 힘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소리를 낼 수 있던 공간이 사라지는 것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것은 오프라인 뿐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마찬가지다.
▲ 여의도공원의 모습 광장이 사라진 곳에는 자전거도로와 산책로가 자리잡았다. 녹지가 늘어 도시민들의 피로를 푸는 좋은 장소다. 그러나 힘없는 사람들이 자신의 소리를 낼 수 있던 공간이 사라지는 것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것은 오프라인 뿐 아니라 온라인에서도 마찬가지다.
ⓒ 한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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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이 사라졌다

광장이 우리네 몸과 마음을 한 데 모아주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광장은 사라지고 공원 등의 시설이 늘어나 민의를 가감없이 드러낼 공간이 사라져버렸다. 여의도광장과 시청 앞 광장이 그 대표적인 곳이다.

여의도의 경우, 집회가 있을 때 그야말로 백만의 사람들이 모일 수 있던 곳이었다. 지금의 여의도공원에는 규모가 크지 않은 공터만이 남아있고, 시청 앞 광장은 잔디가 깔리고 각종 화분들이 즐비한 공간이 되었다.

무엇보다 문제는, 예전에는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도 그곳에 무슨 일이 있는지, 어떤 이슈가 있어 사람들이 모여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나무로 둘러싸여 외부에서는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여간해서는 잘 알 수 없다. 녹지는 많아졌으되, 세상을 향한 사람들의 외침은 잘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힘들게 소를 끌고 와 비싼 사료값에 항의하는 농민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부당한 처우에 항의하는 사람들,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자고 하는 다수의 국민들의 외침도 이제 광장에서는 잘 들을 수 없다. 지나가는 차들도 나무 사이로 간간이 걸려있는 플래카드를 남의 일 바라보듯 무심코 바라볼 뿐이다. 그렇게 광장은 이제 우리에게서 사라져 버렸다.

온라인은 그들만의 리그가 되었다

인터넷이 눈부시게 발달하기 전, 0141x으로 아주 어렵게 인터넷 접속을 하던 시절에는 모두가 한 데 모일 수 있는 광장(plaza)가 있었다. 정치, 경제, 연예 등 다른 부문의 카테고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광장은 그 중 가장 활성화되던 곳이었다. 익명의 공간이었지만 각종 사안에 대한 의견개진이 활발했다. 당시는 정액제요금의 혜택이 없던 터라 거의 모두가 전화요금을 두려워하면서도 밤새 토론을 벌이기도 하였다.

당시의 제한된 인터넷 사정은 그저 한 군데 모여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다. 역설적으로 말해, 여러 곳의 창구가 난립한 지금에 비해 민의를 쉽게 수렴할 수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 민주화가 치열하게 진행되던 시절과 지금은 시대상황이 많이 다르다는 이유도 있겠다. 모든 상황이 절박하던 그 시절에는 상대적으로 지금보다는 민의의 합일이 쉬웠던 탓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가 골방에 모여 이야기하는 형국이다. 계층, 남녀, 연령대별로 고르게 사이트들이 만들어져 각자의 이야기들로 문화를 만들어간다. 가장 발달해 있다는 트위터의 사정도 마찬가지다. 그저 한쪽의 의견만 열심히 실어나를 뿐, 흥겨운 토론의 장이 되지는 못한다. 비록 합일점은 찾지 못하더라도 서로의 의견에 대해 생산적인 논박을 벌일 수 있는 공간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서로에 대해 배타적이 되어간다. 왜냐하면 자신들만의 리그에서는 별다른 의사충돌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입맞에 맞는 의견들만 취사선택하여 듣고 살아도 세상은 잘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조금이라도 다른 의견이 나오면 그 의견에 맞는 곳으로 가라고 친절히 안내해 주기도 한다. 주로 정치와 그 외의 골치아픈 문제들일 경우가 해당된다. 모든 일의 유기성을 알지 못하거나, 알더라도 외면하고픈 현실이어서이기도 할 것이다.

광장의 부활을 꿈꾼다

광장은 온라인에서도, 오프라인에서도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고대 그리스로부터 광장은 끝없는 민의의 수렴장소였고 힘없는 이들이 하소연을 늘어놓을 수 있는 곳이었다. 온, 오프 어디에서도 모두가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없다면 합일점을 찾을 수 있는 기회는 점점 멀어져 갈 뿐이다. 다변화된 현재의 상황에서 그런 곳을 찾는다는 것은 그저 유토피아적 환상일 따름일까?

더욱 중요한 것은, 사라져버린 것은 물리적 공간만이 아니라 심리적 공간도 함께라는 것이다. 골방에 모여 서로 자신들의 취향에 맞는 이야기만 취사선택하는 곳이 아닌, 모두가 모여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 '당신한테 맞는 곳으로 가라'가 아닌, 의견충돌로 때론 격렬하게 부딪히기도 하지만 결국은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힐 수 있는 공간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초라한 몰골로 퍼질러 앉아 있어도 곁에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많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세상의 부조리에 항거하던 외침이 생생히 살아있던 그 곳, 그리고 키보드를 통해서도 서로의 마음을 나눌 수 있었던, 그 광장의 부활을 꿈꾼다.


태그:#여의도광장, #플라자,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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