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수목드라마 <아랑사또전>을 보다 보면 작가의 책상을 상상하게 된다. 20부작이 도표처럼 붙어있고, 20개로 나뉜 각 칸에는 매회 시청자를 낚을 떡밥이 하나씩 쓰여있는 건 아닐까?

학창 시절 미술 시간에 동양화의 특징을 배웠던 기억이 나는가. 동양화의 멋은 바로 '여백의 미'다. 열심히 무술 연습을 하는 나졸들을 제외하면 <아랑사또전>은 비어있는 동헌처럼 언제나 여백의 미를 자랑하는 '동양화 같은' 드라마다. 

이 드라마가 내보이는 여백의 미는 단지 비어있는 화면만이 아니다. 떡밥이 하나 주어져서 "다음 회에선 일 좀 하려나 보다" 하면 주인공도, 주변 인물도 어정어정 거리를 배회한다. 그러다 결국 혼잣말을 하며 또 한 회를 끝내곤 한다. 

 <아랑사또전>의 한 장면

<아랑사또전>의 한 장면 ⓒ MBC


지난주 은오 사또(이준기 분)가 드디어 악의 주구가 자신의 엄마(강문영 분)라는 걸 알게 되었다. 시청자들은 일찍 눈치채고 있던 것을 뒤늦게 알게 된 것이다. 이후 은오 사또는 기억 실조증에 걸린 아랑(신민아 분)은 내팽개치고 엄마가 왜 그렇게 됐는지 알아보려 '눈이 돌아가' 뛰어다닌다.

게다가 아랑은 양반댁 규수 코스튬플레이를 하는지 뒷마당이나 거닐며 추리 놀이를 한다. 시청자들은 이 처녀가 1, 2회에 펄펄 날아다니던 그 아랑이 맞는지, 이제 보름밖에 남지 않은 그믐달을 보면서 정말 자신의 사연이 궁금하기나 한 건지 갸웃거리게 된다.

시청자들은 이미 천상에서 그들을 내려다보는 옥황상제처럼 다 알고 있다. 은오 엄마의 몸 속에 누가 들어앉았는지, 주왈(연우진 분)이 무슨 짓을 했는지. 그러나 <아랑사또전>은 딱 한 회에 하나씩만 이야기를 풀어간다. 

 <아랑사또전>의 한 장면

<아랑사또전>의 한 장면 ⓒ MBC


귀신 이야기가 재미있는 것은 그 귀신의 죽음에 얽힌 원한이 궁금해서다. 원한이 맺히기까지 억울한 사연이 애달프고 안쓰러워 눈과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귀신 이야기로만 놓고 봐도, <아랑사또전>은 이야깃거리가 많은 드라마였다. 아랑을 필두로 동헌 마당에 누운 백골부터 은오 사또를 찾아다녔던 원귀까지 얼마나 많은 사연이 있겠는가. 하지만 그들을 모른 채 외면했던 은오 사또처럼 <아랑사또전>은 그 많은 사연을 꾹 참고 외면한다. 마치 '한 놈만 팬다'는 무식한 싸움법처럼.

귀신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아랑사또전>은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품고 있다. 서자도 아닌 얼자였다가 사또가 된 은오, 거리의 아이였다가 최 대감 댁 도령이 된 주왈, 양반댁 규수였다가 하루아침에 노비가 된 은오 엄마, 그리고 최 대감의 횡포에 숨죽여 사는 백성들. 시대의 사회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듯한 소재인데 15회가 지나도록 뭐 하나 시원하게 풀려나가는 것이 없다.

그런데 또 입맛이 쓰다고 채널을 돌리자니 상에 올려진 반찬이 아쉬운 거다. 그래서 또 이렇게 기만당하는 느낌이 들면서도 한 회에 하나씩 감질나게 풀어내는 떡밥을 받아먹으며 다음을 기약한다.

아랑사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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