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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 어제(26일) 방송뉴스는 좀 당혹스러웠습니다. 군사정권 시절 '땡전뉴스'를 보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MB정부 집권 이후 민주주의에 경고등이 켜지고 언론자유가 많이 후퇴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긴 했어도 언론보도에 있어 '최소한의 마지노선'은 있었습니다. 그래도 '땡전뉴스' 시절만큼 최악으로 가지는 않았다는 거지요.

하지만 어제(26일) 방송뉴스, 특히 KBS-MBC의 메인뉴스는 이 '최소한의 마지노선'을 무너뜨렸습니다. '청와대발 대북 안보 아이템'이 갑자기 머리기사로 등장하더니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 도발시 강력 응징' 지시가 주요내용으로 보도됩니다. 북한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전하는 리포트가 이어지더니, 우리 해군의 연평도 인근 기동훈련이 자세하게 그려집니다. 그리곤 이명박 대통령의 64주년 국군의 날 행사 참석 리포트로 마무리.

북한 서해 NLL 침범, 머리기사로 등장할 만큼 긴박했나

올해 대선 민심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는 추석이 코앞인 상황에서 이런 리포트를 무리해서 내보낼 만큼 보수층의 위기의식이 심각한 걸까요. KBS-MBC의 어제(26일) 메인뉴스는 한국 언론의 자유도가 어디까지 후퇴할 수 있는 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줬습니다.

26일 KBS <뉴스9>와 MBC <뉴스데스크>가 머리기사로 주목한 건 '북한 어선의 서해 NLL 침범'이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북한의 최근 잇단 서해 NLL 침범이 대선을 겨냥한 기획 도발일 가능성이 크다고 정부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고했고, 정부는 최근 잇따르고 있는 북한의 서해 북방한계선 침범을 정략적인 기획 도발로 규정하고 강력 응징하기로 했다"는 내용입니다.

2012년 9월26일 KBS <뉴스9>
▲ KBS 2012년 9월26일 KBS <뉴스9>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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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26일 MBC <뉴스데스크>
▲ MBC 2012년 9월26일 MBC <뉴스데스크>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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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서해 NLL 침범은 분명한 사실이고, 정부가 대비태세를 분명히 하는 것은 '잘한 일'이지요. 절대 나무랄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최근 북한의 움직임이 우리의 안보상황을 위협할 만큼 심각한지 그리고 대선에 개입할 의도가 있는지를 따져보는 것은 면밀한 분석을 요하는 일입니다. 단순히 정부 발표만 믿고, 이를 대서특필해서 보도하는 건 언론이 경계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어제(26일) KBS-MBC 메인뉴스에선 이런 판단이 빠져 있습니다. 정부가 최근 사태를 심각하게 판단했다면 그것 자체가 뉴스가 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판단과 언론의 판단은 달라야 합니다. 정부의 판단이 어떤 근거를 통해 결정됐는지 그리고 그것이 합당한 지를 따지는 것이 바로 언론의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청와대발 대북 안보아이템' 확장기로 전락한 KBS-MBC

물론 최근 북한 어선들의 잇단 서해 북방한계선 침범이 심상치 않다는 판단에 따라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외교안보장관 회의를 소집한 것 자체가 이례적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방송사 메인뉴스 머리기사로 등장하기 위해선 '그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단순히 이례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머리기사에 관련 리포트까지 배치할 수는 없다는 얘기지요.

그런 점에서 어제(26일) KBS-MBC의 메인뉴스는 여러 측면에서 의심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청와대발 대북 안보아이템' 확장기 역할을 했다는 의구심을 떨치기가 쉽지 않다는 겁니다. 정부 발표 외에 사안의 심각성을 느낄 만한 특별한 근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특히 두 방송사 메인뉴스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모습이 제일 먼저 등장했다는 점도 걸리는 부분입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어제(26일) KBS MBC 메인뉴스에서 방송된 아이템을 한번 보시기 바랍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KBS <뉴스9>
<"대선 겨냥 기획 도발"…"철저 대비"> (머리기사 : 이명박 대통령 제일 먼저 등장)
<NLL 철통 사수> (두 번째 리포트 : 서해 연평도 인근 해군 기동훈련 장면)

2012년 9월26일 KBS <뉴스9>
▲ KBS 2012년 9월26일 KBS <뉴스9>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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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뉴스데스크>

<"정략적 기획도발 … 강력응징"> (머리기사 : 이명박 대통령 제일 먼저 등장)
<NLL 경계령 고속정 비상훈련> (두 번째 리포트)
<태풍 북 미사일․핵 시설 직격탄> (세 번째 리포트)
<건군 64주년 국군의 날> (네 번째 리포트)

2012년 9월26일 MBC <뉴스데스크>
▲ MBC 2012년 9월26일 MBC <뉴스데스크>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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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건 일단 논외로 하고, 어제(26일) KBS-MBC가 얼마나 무리수를 뒀는지는 오늘자(27일) 조중동을 보면 대략 알 수 있습니다. '대북 위기의식 고조의 선두주자'인 이들 수구언론마저 최근 북한의 북방한계선 침범 사건을 주요기사로 보도하진 않았기 때문입니다. 동아일보 정도만이 1면 하단에 관련 기사를 배치했을 뿐, 조선일보(3면 하단)와 중앙일보(6면 탑)는 크게 무게중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북풍'에 의한 선거개입, 누구에게 이득이 되는지는 자명

조선일보 2012년 9월27일자 3면
▲ 조선일보 조선일보 2012년 9월27일자 3면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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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대북 위기의식 고조' '안보'와 같은 이슈가 대선을 앞두고 의제화가 되면 보수진영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자(27일) 조선일보를 보면 "여권에선 북한의 도발이 대선 국면을 '전쟁 대 평화' 구도로 몰고 가 박(근혜) 후보의 당선을 막아보려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지만, 솔직히 말해 '북한이 박근혜 후보 당선을 막으려 한다'는 전략(?)이 언론에 많이 알려질 경우 대선에서 가장 유리한 사람은 박근혜 후보입니다. 이걸 모를 리 없는 조선일보가 여권 관계자 입을 빌어 이런 식으로 보도하는 것도 어찌 보면 정말 코미디 같은 상황인 거지요.

남북간 위기의식이 고조될 경우 경제민주화나 복지논쟁 같은 담론들은 안보에 밀리거나 자취를 감추기 십상입니다. 이건 그동안 치러졌던 몇 번의 대선에서 이미 증명된 사안입니다. 다만 요즘 들어 좀 달라진 건 '북풍 효과'가 예전만큼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국민들의 의식이 그만큼 성숙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KBS와 MBC는 추석을 앞둔 상황에서 '북한 도발'과 '대북 위기의식 고조'를 강조하는  리포트를 머리기사로 내보냈습니다. 백 번을 양보해 정부야 그럴 수 있다고 해도 언론이 거기에 부화뇌동해 오버하는 건 곤란합니다. 어제(26일) SBS가 <8뉴스>에서 다섯 번째 리포트로 전하면서 '뭔가 의도가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라고 보도한 정도면 충분하다는 얘기입니다.

'북한 도발'은 어디까지나 과거에 통하던 문법이었고, 이제 '북풍과 대선'은 국민들에게 잘 통하지 않는 '낡은 공식'이 됐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낡은 공식'을 청와대가 다시 꺼내들었고 KBS MBC가 메인뉴스 머리기사로 배치, 의제화를 시도했습니다. 두 방송사의 이날 메인뉴스를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북풍 조성을 통한 정부의 대선개입'과 '땡전뉴스'부활 - 어제(26일) 두 방송사의 메인뉴스는 한국의 민주주의와 언론자유가 거꾸로 가고 있다는 것을 사실로 증명해 보였습니다. 그래서일까요. KBS와 MBC에 있는 기자들에게 이런 말을 전해주고 싶습니다.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재단 홈페이지에도 올린 글입니다.



태그:#북풍, #KBS, #MBC, #이명박, #조중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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