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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와 참여연대, 생활정치실천의원모임이 함께 '나는 세입자다' 기사 공모를 실시합니다. 가슴 아픈 혹은 깨알 같은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기사를 기다립니다. 세입자와 관련된 사례라면 어떤 것이라도 좋습니다. 반지하나 옥탑방 이야기도 좋고 해외에서 경험한 사례도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아파트
 아파트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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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원이네(가명) 집주인이 아 글쎄 전세금을 2000만 원이나 올려 달라고 했다는데?"

"정말이에요 언니? 전세금이 한꺼번에 왜 그렇게 많이 올랐대요?"

"아직 소식 못 들었어, 옆 동네 아파트 재건축하잖아."
"그래서요, 옆 동네 재건축하는데 왜 우리 동네 전세값이 오르는 건데요?"

"아~참, 아파트 다 지을 때까지 어딘가로 가서 살아야 할 거 아냐, 재건축 아파트 사람들 말이야, 호연이 엄마 생각보다 세상물정 어둡네."
"아~그렇구나……이거 큰일 났네요. 우리도 계약기간 다 돼 가는데."

아내와 아내가 언니라 부르는 은영이(가명) 엄마 대화가 귓속에 날아와 박혔다. 소근소근 거리는 소리가 어찌 그리도 크게 들리는지, 그 소리에 얕은 잠이 확 달아나 버렸다. 베개를 두 개나 괴고 누워서 책을 보다가 막 잠에 빠지려던 찰나였다.

그랬다. 당시 2007년 즈음 옆 동네 주명(가명) 아파트 재건축이 시작되자마자 우리 동네 전세값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주변 아파트에 살던 사람들이 우리 동네 전세 시장에 뛰어 들었기 때문이다.

수천 세대가 한꺼번에 쏟아지다 보니 때 아닌 '전세대란' 이 일어났다. 전세 집이 턱 없이 부족했다. 공급이 달리면 가격이 뛴다는 경제 원리 'ABC'에 따라 전세값이 개구리 점프 하듯 펄쩍펄쩍 뛰기 시작했다.

전세시장 최약자는 당연히 원래 세입자들이다. 그들, 재건축 아파트에 살던 사람들은 재건축 조합에서 전세금을 지원받고 나온 터라 주머니가 두둑했다. 좀 먼 곳으로 가면 좋으련만, 그들은 절대 먼 동네로 가지 않으려 했다. 수십 년 터 잡고 살던 곳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당시 난 그 동네 전세시장 최약자인 '원래 세입자'였고, 주머니는 고린 땡전 한 푼 없이 텅텅 비어 있었다. 만약 집주인이 '요즘시세'를 들먹이며 전세금을 올려 달라고 하면 꼼짝없이 더 싼 집을 찾아 이사를 해야 할 형편이었다. 그러니 얕은 잠이 확 달아날 수밖에.

주머니가 텅텅 빈 이유는 수입의 대부분을 빚 갚는 데 사용했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무리하게 이사를 하면서 은행에 많은 빚을 지게 되었다. 반지하에 살다가 물난리를 겪은 후 간신히 물난리 걱정 없는 지상 3층으로 이사를 한 후 3년 9개월 정도 지난 시기였다.

옆 동네 재건축에 우리 동네 세입자들 등만 터지고

도시의 가장 넓은 그늘은 집이다.
 도시의 가장 넓은 그늘은 집이다.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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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뾰족한 수가 없다고 걱정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난 두 아이의 아빠였다. 무언가 대책을 세워야 했다. 우선 집주인 의중을 떠 보기로 했다. 며칠 후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저 3층 사는 호연이 아빤데요. 그동안 별고 없으셨지요?"
"아~네 잘 지내고 있어요. 별 일 없으시지요?"
"네,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다른 게 아니라 수도 요금이 너무 많이 나와서요. 아무래도 어딘가 새는 것 같아요."
"아~그래요, 내 조만간 한번 들를게요. 그리고 계약 기간 끝나가는 것 같은데… 부동산에 알아보니 전세금이 많이 올랐다고 해서, 내 그렇잖아도 전화를 하려던 참인데……."

이 얘기를 들으며 올 것이 드디어 왔다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했다. 집주인은 이미 전세금이 왕창 뛰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집이 낡았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집 상태가 부실하니 세를 올리지 말아 달라는 뜻을 넌지시 전달하기 위해 '수도배관'을 들먹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집 주인 의지는 확고했다. 

"그럼 얼마나?"
"시세대로 하면 6500 정도는 받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데…아~그리고 수도배관은 내 조만간 고쳐 줄게요."

어이가 없었다. 6500만 원은 불과 3년 전만 해도 이 집(내가 살고 있는 집) 매매가격과 거의 같은 금액이었다. 그게 전세금으로 둔갑한 것이다. 다 쓰러져 가는 열댓 평짜리 연립주택 전세금이 6500씩이나 한다는 게 이해가 되질 않았다.

집주인과 전화 통화를 한 이후, 도저히 평정심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자그마치 2000만 원을 올려 달라는 얘기였다. 부아가 벌컥벌컥 치솟았고, 이사할 걱정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도 저도 안 되면 더 싼 곳으로 이사할 작정을 하고 전세 시세를 알아보았다. 아뿔싸! 그 새, 불과 3년 9개월 만에 전세금이 얼마나 많이 올랐는지, 4500만 원으로 갈 수 있는 곳은 반지하나 월세 집밖에 없었다.

은행 이자보다 훨씬 부담이 큰 월세를 내면서 살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다시 반지하로 갈 수도 없었다. 몇 년 전, 반지하에 살다가 물난리를 겪었던 터라 길거리에 나앉는 한이 있어도 다시 반지하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4500만원으로 갈 수 있는 곳은 '반지하'뿐

알고 보니 전세금이 오른 이유가 옆 동네 아파트 재건축 때문만은 아니었다. 뉴타운 바람도 한몫했다. 뉴타운 지역이 된다는 소문이 일자 집값이 갑자기 크게 올랐고 덩달아 전세금도 펄쩍펄쩍 뛴 것이다. 집값을 올려놓은 건 개발 이익을 기대하며 몰려든 투기꾼들이었다.

뉴타운 지역이 된다는 소문이 나를 더 급하게 만들었다. 그 당시 서울 뉴타운 지역에 살던 주민 대부분이 쫓겨났다는 뉴스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었다. 원주민이 다시 자기가 살던 동네에서 사는 비율은 고작 20% 안팎이었다. 그러니 세입자는 말해서 무엇 하랴. 보나마나 뉴타운이 시작되자마자 쫓겨날 게 불 보듯 훤한 일이었다. 

어쨌든 난 세상만 원망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절망도 사치였다. 내 아이가 다니는 학교가 있고, 십 년 넘게 살아서 이미 제 2의 고향이 돼 버린 동네를 떠나지 않기 위한 뭔가를 해야 했다. 고민 고민 끝에 아예 집을 한 채 사기로 결심했다. 오두막 같은 집이라도 하나 있어야  쫓겨나지 않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눈 질끈 감고 경매를 해 보기로 했다. 경매로 나오는 집은 최소한 뉴타운 따위로 인한 거품은 없을 것이란 생각에서다. 막상 마음은 먹었지만 경매는 그리 만만한 게 아니었다. 복잡하고 위험했다. 부동산에 대한 기본 지식과 경매 절차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궁하면 통한다고, 난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했다. 그 재미없는 경매 서적을 단 며칠 만에 독파했다. 그런 다음 경매로 나온 부동산에 대한 권리 분석을 시작, 딱 2주 만에 내가 원하는 집을 찾아냈다. 내가 원하는 집은 조건이 그리 까다롭지 않았다. 우리 동네에 있고 가격만 적당하면 그만 이었다. 내가 찜한(점찍은) 집은 지은 지 5년 밖에 안 된 새 집이었고 가격도 적당했다.

알고 보니 뉴타운 바람도 전세금 올리는 데 한 몫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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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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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내가 찜한 집 경매일이 다가왔다. 웬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지, 경매가 이루어지는 법원은 그야말로 북새통이었다. 가격을 적어 넣어야 할 순간이 왔다. 떨리는 손으로 0000원이라고 적어 넣었다. 잠시 후 낙찰자가 발표됐다. 예상했던 대로 내 이름은 없었다.

법원에 들어서면서부터 왠지 자신감이 떨어졌다. 그곳은 투기꾼들의 세계였다. 나 같은 풋내기가 감히 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직업적으로 경매를 하는 사람들이 돈다발을 들고 다니며 이 집 저 집에 마구 배팅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낙찰에 실패한 건 참 잘된 일이었다. 알고 보니 경매는 망치로 두드려도 끄떡없는 철 심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잘할 수 있는 일이었다. 손톱으로 살짝만 건드려도 움츠러 드는 새가슴은  결코 잘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경매에 나온 집은 대부분 대출금을 갚지 못한 것들이었다. 결국, 낙찰을 받는다는 것은 그 사람(대출금을 갚지 못한 사람)을 내쫓아야 하다는 의미였다. 경매장에서 만난 사람과 잠시 대화를 나누고 난 후, 난 내가 찜한 집을 낙찰 받지 못한 걸 천만다행이라 생각하게 됐다. 

"처음이세요?"
"네, 오늘 처음 왔어요."
"저는 가끔 오는데, 오늘은 공친 것 같아요."
"공치다니… 혹시 이게 직업이세요?"
"직업은 아닌데, 재테크로 가끔 해요."
"언제부터 하셨어요?"
"한 십 년 전, 내가 살던 집을 경매로 뺏기고 난 다음부터요."
"아~그때 심정 어떠셨어요?"
"딱 죽고 싶었지요. 아무리 사정해도 그 사람(낙찰 받은 사람) 눈 하나 꿈쩍 안 했어요."
"어차피 누구에겐가 넘어갈 집 아니었나요?"
"그야 그렇지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낙찰자를) 쿨 하게 맞아주려 했는데, 막상 닥치니까 그게 그렇지 않더라고요. 눈에서 불부터 나는 게 어휴 그때만 생각하면…… 그 때 경매라는 걸 알게 됐어요. 얼른 돈 벌어서 빼앗긴 집도 찾고 싶었고…… 나도 그리 모진 사람은 아닌데 바닥에 떨어지고 나니 나도 모르게 독해지더라고요."

등잔불 밑이 어둡다더니, 우리가 찾던 집은 바로 옆에...

그게 내 인생 마지막 경매였다. 그(경매장에서 만난 사람)와 헤어지고 경매 법원을 나서면서 다시는 이곳에 발을 들이지 않을 것이라 다짐했다. 그곳은 나하고 맞지 않는 장소였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전셋집 계약 만료일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그 때부터 잠 못 이루는 밤이 계속됐다. 입이 바짝바짝 타들어가고 눈은 퀭해졌다.

경매를 포기하고 나니 남은 방법은 어떻게든 지상에 있는 아주 싼 전셋집을 찾는 것뿐이었다. 그러다가 이도 저도 안 되면 다시 반지하로 가는 것이고. 반지하가 아닌 지상에 있는 싼 전셋집을 구하는 게 정말이지  쉽지가 않았다. 부동산을 내 집 드나들 듯 뻔질나게 드나들었지만 우리가 찾는 집은 좀처럼 나오지 않았다.

조건이 까다로운 것은 결코 아니었다. 전망 같은 것에는 애초부터 관심이 없었다. 그저 반지하만 아니면 됐다. 반지하가 아니고 내가 지니고 있는 돈으로 얻을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었다.

아내는 참 대단했다. 내가 지쳐서 거의 포기할 즈음에도, 어디서 그런 힘이 나는지 틈만 나면 여기저기 수소문하며 우리가 살 집을 찾아 다녔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아내의 부지런함에 드디어 보답이 왔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그렇게 오매불망 찾던 '딱 맞는 집'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집 바로 옆에 있었다. 집 주인이 사업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팔려고 내놓았는데 가격이 무척 저렴했다. 당시 우리 부부는 몇 달간 동네 부동산을 이 잡 듯이 뒤지고 다닌 터라 전세 시세뿐만 아니라 매매시세도 훤히 꿰고 있었다. 그래서 그 집이 아주 싼 가격에 나왔다는 걸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내가 살 만한 집은 어디에 있을까
 내가 살 만한 집은 어디에 있을까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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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두 말할 것 없이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아주 작은 집이지만 생애 최초로 내 집을 장만 하는 순간이었다. 돈이 부족해 은행에서 꽤 많은 대출을 받았다. 하지만 그 순간엔 대출금 갚을 걱정 같은 것은 강 건너에 있는 불 끌 걱정만도 못한 아주 사소한 걱정에 불과했다. 이렇게 해서 우린 지긋지긋한 세입자 생활을 '잠시' 끝내게 된다.

'잠시'라는 말에서 이미 눈치 챘을 터. 난 지금 다시 세입자로 살고 있다. 대출 이자를 내지 못해 경매에 넘어가거나 하는 불상사가 일어 난 건 아니다. 몇 년 전 고향집에 사는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다시 세입자가 됐다. 어머니를 모시기엔 너무 집이 작았다. 해서, 그 집을 다른 사람에게 전세로 주고 약간 큰 집에 세 들어와서 살고 있다. 

아쉬운 건,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서 이사를 한 큰 집에서 달랑 우리 네 식구만 산다는 것이다. 팔순이 넘으면서 어머니는 갈대가 됐다. 몸이 아프거나 할 땐 당장이라도 우리 집으로 올 것 같다가도, 그 시기가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고향집에서 산다고 고집을 부리신다.

뉴타운이 취소된 건 좀 웃긴 일이다. 주민들의 결사적인 반대로 작년에 취소됐다. 하지도 못할 거면서 공연히 여러 사람에게 고통만 준 꼴이니, 이거야 말로 웃지도 못할 코미디 아닌가. 더더욱 웃긴 건 뉴타운을 공약했던 정치인이다. 반성하고 자숙하기는커녕 오히려 대통령이 되기 위해 000당 대선 경선에 참여했었다. 그 정치인 이야말로 21세기 최고의 코미디언이다. 이래서 투표를 잘 해야 편히 살 수 있는 것인가?

어쨌든 뉴타운 열풍과 옆 동네 재건축은 나를 세입자에서 집 주인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고맙냐고? 천만에 그 덕(?)에 난 엄청난 이자를 지불하며 사는 빚쟁이가 돼 버렸다. 정든 마을에서 쫓겨날 위기감이 없었다면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일은 절대로 없었을 것이다. 이런 처지에 처해 있는 건 나만이 아닌가 보다. 가계 빚이 1000조를 넘었고, 그 빚의 대부분이 주택 대출이라니, 우리나라에 빚쟁이가 얼마나 많은지 알고도 남음이다.

난 집주인이면서 동시에 세입자다. 그래서 치솟는 전세 값 때문에 울기도 애매하고 웃기도 애매하다. 난 이렇게 '애매남(애매한 남자)'으로 은행 대출금 악착 같이 갚으면서 오늘을 살고 있다. 내일의 태양이 오늘보다 더 밝기를 바라며.

덧붙이는 글 | '나는 세입자다' 공모글



태그:#세입자, #도시 ,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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