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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총·대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한국 대선 판은 참 재미있다. 얼마 전까지 박근혜 대세론이 말 그대로 대세이더니, 이제는 그의 대선가도에 빨간불이 켜졌다고 이곳 저곳에서 난리도 아니다. 여권은 여권대로 대책을 세우느라 부산한 것 같고, 야권은 야권대로 새 희망에 들떠있는 듯 희망가가 널리 퍼지고 있다.

새누리당을 향한 <조선일보>의 훈수

여당의 위기의식은 <조선일보>의 사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22일자 <조선일보> 사설을 보면 야권 단일화가 이뤄질 것을 전제하고 자력으로 50% 이상의 지지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새누리당에 충고를 하고 있다. 대선 승리를 위하여 새누리당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공식적인 사설을 통해 훈수를 둔 것이다.

조선일보 9월 22일자 사설
 조선일보 9월 22일자 사설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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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재미있는 일이다.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신문이 특정 정당의 집권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구체적으로 전략을 지도하고 있다. 요즘 추석을 앞두고 나온, 양자 대결에서 뒤집힌 여론조사를 바라보는 여권의 총체적인 조바심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흔히들 스포츠 경기를 보고 한국인의 냄비 근성을 비판하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만, 한국 정치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한번 돌이켜보자. 작년에 있었던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연이어 이어진 서울 시장 보궐 선거에서 야권이 승리하자 야권은 총선과 대선 승리가 눈앞에 있는 양 의기양양했었다. 올해 치러진 총선에서 여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하자 이번에는 박근혜가 대통령이라도 된 것처럼 대세론이 확산되었다. 그리고 대선 3자구도가 정립이 되자 이번에는 야권단일후보 필승의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작금의 현실은 성찰이 없는 한국 정치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성찰이라는 고상한 용어를 썼지만, '인간만사 새옹지마'라고 하는 누구나 아는 고사성어를 현실 정치에 적용할 줄만 알면 된다. 새옹의 말이 집을 나가 슬퍼하다가 얼마 안 있어 다른 말을 데리고 돌아오자 기뻐하고, 다시 그 말로 인해 자식이 다쳐서 슬프다가 또 그로 인해 전쟁에 끌려가는 것을 면하는 인간사의 행보는 정치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나고 있다.

야권의 총선 패배, 이미 예견된 결과였다

작년 10.26 재보궐 선거를 보자. 서울 시장 선거에서 박원순 후보를 당선시킴으로써 야권은 선거에서 승리했다는 평가를 얻었지만, 동시에 치러진 강원과 충청, 영남에서 치러진 기초자치단체장 선거에서는 패배하였다. 당시에는 기쁨에 들떠 이것이 주는 정치적 의미를 간과하였지만, 이것은 어김없이 다음 총선에서 야권의 패배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총선 승리 기대감에 들떠 있던 야권은 새누리당의 과반 의석을 지켜보며 말 그대로 '멘붕'에 빠져야 했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지만, 냉철히 따지고 보면 10.26재보궐선거에 나타난 경향성이 그대로 나타난 것에 불과했다. 승리했던 서울 시장 선거와 마찬가지로 총선 판세 중 수도권에서 민주통합당은 새누리당에 두 배에 가까운 의석을 차지하였다. 이 정도면 대승이나 마찬가지였다.

마찬가지로 민주통합당이 10.26재보궐 선거에서 패배하였던 강원, 충청, 영남 지역은 역시나 총선에서도 대패를 하였다. 이곳에서의 패배가 수도권 대승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판세를 새누리당에 완전히 기울어지게 만든 요인이 되었다. 작년 10.26재보궐 선거와 올해 총선이 달라진 것이 무엇인가? 달라진 것은 없었다.

새누리당이 4.11 총선에서 의석 과반을 넘는 152석(비례대표 25석)을 확보하며 원내 제1당을 차지한 가운데, 4월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기자실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중앙선대위원장이 기자회견을 마친뒤 황우여 원내대표와 이혜훈 선대위 종합상황실장, 당직자들의 축하를 받으며 당사를 나서고 있다.
 새누리당이 4.11 총선에서 의석 과반을 넘는 152석(비례대표 25석)을 확보하며 원내 제1당을 차지한 가운데, 4월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 기자실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중앙선대위원장이 기자회견을 마친뒤 황우여 원내대표와 이혜훈 선대위 종합상황실장, 당직자들의 축하를 받으며 당사를 나서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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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지금 나타나고 있는 양자 대결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후보가 밀리는 것은 지난 총선 결과와 많이 동떨어진 것일까? 그것도 역시 아니다. 총선 당시에 새누리당은 과반 의석을 확보하여 대승이라는 판정표를 받았지만, 비례대표 정당 지지율을 살펴보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

당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얻은 비례대표 득표율을 합산하면 46.75%가 나오고, 새누리당이 얻은 득표율은 42.8%였다. 어디서 많이 본 지지율 아닌가? 그렇다. 대통령 선거 지지율 여론 조사에서 양자 대결 시에 박근혜 후보가 패배로 나오는 결과와 거의 일치하고 있다.

작년 10.26재보궐 선거에서 이번 대선 3자 정립 구도 하의 여론조사 결과에 이르기까지 전체적인 흐름이 크게 바뀐 것은 없다. 바뀐 것이 있다면 각종 선거와 여론조사 결과에 일희일비하는 자발없는 우리들의 마음뿐이다. 이쯤에서 새옹지마에 견줘 '역사는 반복된다. 한번은 희극으로, 한번은 비극으로'라고 하는 맑스의 경구를 색다른 의미에서 되새김질 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여기까지 오면 그럼 올해 대선은 어떻게 될 것 같으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정답을 이야기하자면 '아무도 모른다'이다. '점쟁이가 저 죽을 날 모른다'는 속담을 오늘날의 관점에서 재구성하자면, '선거 결과 맞히는 정치평론가 없고, 주식으로 돈 버는 애널리스트 없다'는 것쯤 되지 않을까 싶다. 의학 드라마에서 큰 수술을 앞 둔 의사가 환자와 보호자 앞에서 자신하는 것을 봤는가? 사람의 목숨을 두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지, 자신을 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어떤 분야이든 전문가가 취해야 할 바른 자세이다.

747공약과 경제민주화가 다르지 않은 이유

필자가 지난 1년간 벌어진 한국 정치의 롤러코스터를 설명하는 이유는 섣부른 예측이나 무책임한 승리의 희망가를 위해서가 아니다. 나 자신과 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역사에 대한 성찰을 주문하기 위해서이다.

성찰은 대선 후보들에게 당연히 필요한 덕목이지만 대한민국의 정치를 위해서는 그들을 대통령으로 만들려는 세력들도 후보 못지않게 갖춰야 할 덕목이다. 이제는 이 땅의 진보와 보수 세력 모두 정권을 잡아본 경험과 놓아본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

사상 유례가 없는 높은 지지율로 당선되었던 이명박 대통령과 그 세력들의 실패가 예감되었던 것은 인수위 시절부터였다. 집권 준비를 위한 인수위가 마치 점령군 행세 하듯이 나서는 것을 보면서 걱정이 앞섰던 것은 정치적으로 편향되어 있던 필자만의 생각은 아니었을 것이다. 인수위원장이 '어륀지'를 외쳤고 대통령은 공교육만으로도 영어로 대화가 가능하게 하겠다고 큰 소리를 쳤다. 이후 국민들의 영어 실력이 향상되고 공교육의 영어 교육이 크게 좋아졌다는 이야기는 어디서도 듣지 못하였다.

5년 전에 국민을 열광시켰던 747 공약을 필두로 한 고도성장의 공약은 이제 간 곳이 없고, 그 빈자리에 '경제 민주화'라는 화두가 자리를 잡고 있다. 이데올로기상으로는 정반대의 공약이지만, 희극과 비극이 반복된 새옹의 말처럼 본질은 하나도 다르지 않다. 근저에 우리 좀 잘 살게 해달라고 정치권을 향한 요구가 있는 것이다. 747과 경제민주화는 같은 목소리를 향한 서로 다른 처방일 뿐이다.

대통령은 권력의 정점이지만, 실상 포지티브하게 할 수 있는 것은 그리 많지가 않다. 일거에 많은 권력이 주어져 이에 취해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이 인지상정이겠지만, 나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에게 그럴 때에도 권력에 대한 차분한 성찰을 할 수 있기를 원한다. 특히 검찰과 국세청과 같은 집행 권력은 권력자에게 많은 것을 갖다 줄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런 권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란 기껏해야 천박한 복수심만을 충족할 수 있을 뿐이다. 그 복수심의 끝을 이미 역사가 돼버린 현실에서 목도하지 않았는가?

박근혜와 문재인의 공통점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공통점을 하나 꼽으라면, 그것은 과거의 영광과 부채에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잘 알다시피 박근혜의 과거는 박정희요, 문재인의 과거는 노무현이다. 과거는 오늘을 있게 한 원동력이자 미래를 향해 가는 여정에 큰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박근혜의 지지율이 인혁당 발언 이후 폭락한 것은 바로 이점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9월 16일 서울지역 순회경선에서 누적특표율 과반을 획득하며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문재인 후보가 지지자들을 향해 두손모아 인사하고 있다.
 9월 16일 서울지역 순회경선에서 누적특표율 과반을 획득하며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된 문재인 후보가 지지자들을 향해 두손모아 인사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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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후보들은 과거보다는 미래의 비전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다. 투표를 하는 국민들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갈 미래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박근혜도 과거보다는 미래를 보자는 식의 이야기를 하고, 문재인은 출마 선언문에서 노무현이라는 이름을 내세우지 않았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안철수에게 불안한 점이 있다면 그가 성공가도만을 달려온 사람이란 점이다. 그것이 오늘의 안철수를 있게 했지만, 한편으로는 실패에 대처하는 그의 자세를 전혀 검증할 수 없었다는 것은 오히려 나 같은 사람에게는 큰 약점으로 보인다. 물론 성찰이라는 것은 직접적인 개인의 실패 경험만이 아니라 역사와 간접 경험을 통해서도 가능한 일이니 혹독한 검증 과정을 지켜보면 될 일이다.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기에 우리는 그 사람의 과거를 보고 미래를 판단할 수밖에 없다. 더 정확히 하자면 그의 과거가 아니라 과거를 바라보는 성찰의 능력을 살펴봐야 한다. 성찰은 그나마 과거보다 나은 미래를 보장해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인간의 능력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22일 오후 경기도 수원 못골시장을 방문해서 시장자체 방송국에 출연하고 있다.
 안철수 무소속 대선후보가 22일 오후 경기도 수원 못골시장을 방문해서 시장자체 방송국에 출연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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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후보는 민주통합당 경선에서 참여정부 실정의 책임자라는 공격을 받았다. 어느 시대나 공도 있고 과도 있다고 본다면, 참여정부의 공과를 막론하고 문재인의 책임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가 중요하게 보는 것은 집권 경험이다. 성공의 경험도 중요하지만 현 시점에서 미래를 위해 필요한 것은 실패의 경험이 더 중요할 지도 모른다. 물론 그것은 성찰이 들어가 있는 실패의 경험이 되어야 할 것이다.

문재인에게 바라는 것이 있다면 친노의 대표 주자임을 인정하되 그의 정치적 식견은 열혈 노빠의 그것보다 넓고 높아야 한다는 것이다. 참여정부의 실정이 전혀 없다는 강변보다는 집권 경험에서 오는 안정감과 권력에 대한 성찰이 그로부터 묻어나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인기가 떨어진 김대중 대통령과의 차별화를 요구받을 때, 국민의 정부의 자산과 부채를 모두 인수하겠다는 말로 대신한 적이 있다. 그런 안목이 노무현이란 정치인을 일국의 대통령으로 이끈 것이 아닌가 싶다. 동전의 앞뒷면처럼 역사에서 자산과 부채는 따로 인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역사의 결과물은 모두 밝음과 어두움을 동시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24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해 "5·16과 유신, 인혁당 재건위 사건 등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 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며 사과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24일 오전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해 "5·16과 유신, 인혁당 재건위 사건 등은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의 정치 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생각한다"며 사과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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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그동안 있었던 과거사 발언은 그녀에게 성찰된 과거가 있는지를 의심하게 만들었다. 거의 모든 국민이 동의할 만한 박정희 시대의 과에 대해서도 그녀는 전혀 인정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었다. 고초를 겪은 사람에 대한 인간적 연민은 말 그대로 연민일 뿐 역사에 대한 성찰이 아니다.

다행히 그는 24일 긴급 기자회견을 통하여 "5.16, 유신, 인혁당 사건이 헌법 가치가 훼손되고 대한민국 발전을 지연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며 사과하는 모습을 보였다. 과거사에 대하여 꿈쩍 않던 그동안의 언행에 비하면 진일보한 발언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아직까지 그것이 진정한 성찰의 결과가 아니라 지지율 하락에 따른 임기응변적 대응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혹자들은 아니 진보의 편에 서 있는 많은 사람들이 박근혜의 집권이 역사의 후퇴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런 생각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일면적으로 그런 측면이 있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올해 대선이 사생결단을 할 만큼 결정적인 역사의 한 국면인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이명박 정부 아래에서 권력의 칼춤에 희생된 많은 사람들을 생각할 때 진지하게 대선에 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할 뿐이다.

다만 걱정스러운 것은 문재인 후보는 자신이 모셨던 노무현을 넘어서고 극복해야 한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박근혜 후보는 아버지 박정희를 넘어서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이다.

올해 박근혜는 대통령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직까지는 그래도 가능성이 제일 높은 대통령 후보이다. 그러나 그녀의 내면에 아버지 박정희의 명예 회복과 영광을 재현하겠다는 생각만 가득하고, 권력에 대한 진정한 성찰이 부족하다면 민주화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설사 대통령이 된다 해도 대한민국은 물론 박근혜 개인에게도,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 박정희에게도 그것은 참 불행한 일이 될 수도 있다.


태그:#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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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고등어 사전(메디치미디어)>, <나의 권리를 말한다(뜨인돌)>, <세상을 보는 경제(인포더북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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