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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에는 연극 줄거리가 들어 있습니다.

포스터
▲ 연극 <연기가 눈에 들어갈 때> 포스터
ⓒ 극단 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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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으면 몸은 땅에 묻혀 흙이 되거나 화장로 불 속에서 다 타고 한 줌 재로 남는다. 그럼, 우리 영혼은 어떻게 될까. 어디로 갈까. 죽음준비교육 현장에서 만나는 어르신들도 이 지점에서는 각기 다른 생각과 의견을 펼쳐 놓곤 하신다. 여기에는 개개인의 죽음관과 종교관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같다.

죽음준비교육 강사인 내게 사람들이 가장 많이 묻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내 대답은? 우선 영혼이 어떻게 되어 어디로 갈 것인지는 그가 믿는 대로 된다고 생각한다. 천국에 간다고 믿는 사람은 천국에, 극락세계로 가는 것이라고 믿는다면 극락세계로, 혹 죽음 이후는 아무것도 없는 무(無)라고 여기는 사람은 무(無)의 세계로 진입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어디에 존재하든 지금 여기서 살아가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리라는 믿음 또한 가지고 있다. 그러니까 지금 이곳에서 울고 웃고 배고파하고 힘들어하고 좋아하고 슬퍼하는, 이 모든 것을 느끼고 누리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존재가 될 거라고 믿는다는 뜻이다.

화장장에서 만난 두 영혼, 어떤 말을 더 하고 싶었을까

일본 작가의 원작으로 만든 연극 <연기가 눈에 들어갈 때>는 그 누구도 피하지 못하고 마지막에 거쳐가는 화장장에서 벌어지는 죽은 자와 산 자의 한바탕 소동극이다.

같은 화장장에서 같은 시간대에 화장을 하게 된 인연으로 만난 김진우와 기영식의 영혼. 각각 53세와 65세에 세상을 떠났다. 한쪽은 가족과 친척이 많지만, 한쪽은 반대로 외동딸뿐이라 외롭다. 공통점은 두 사람 모두 갑작스레 숨을 거두는 바람에 가족과 주위에 아무런 말도 남기지 못했다는 점.

그런데 놀랍게도 치매에 걸린 김진우의 어머니 눈에 고인들이 보이고 서로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 치매 어머니의 통역으로 고인들은 남은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숨겨진 인생사도 하나씩 드러난다. 결국 두 사람의 몸은 한 줌 재가 되고, 남은 가족들이 모여 찍는 사진에 두 사람의 영혼도 함께한다.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산 사람은 아무리 슬프고 아파도 살아야 하니 부산스러울 수밖에 없지만 연극에서는 죽은 자까지 나서서 말을 섞으니 어찌나 소란스러운지 모른다. 귀가 아플 정도로 소리 지르고 싸우고 울고…. 하도 시끄러워서 보는 내내 머리가 아팠다.

그래도 객석에서는 연신 웃음이 터져 나온다. 고인들의 말과 행동이 살아 생전과 매한가지여서 우습기도 하고, 화장장에서도 먹고 싸우고 지지고 볶는 유족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고인들의 영혼이 완전히 이곳을 떠나기까지 과연 무엇을 어떻게 보고 느낄 것인지 상상하며 시작된 이야기일 텐데, 죽은 자의 사고방식과 태도, 습관이 살아 있을 때와 지나치게 똑같아서 나는 웃을 수 없었다. 웃는 사람들이 궁금했다. 정말 재미있고 우스울까?

머리 아프게 소란스럽지만 많은 생각을 던져주는 연극

고인의 영혼들은 우선 화장로의 불길이 뜨거울까봐 걱정이다. 찜질방 정도일지, 불가마 정도일지 걱정을 하다가 중간에는 정말 뜨거워도 너무 뜨겁다며 괴로움을 호소한다. 각자 입은 수의의 가격과 품질 비교는 또 어떤지. 싸구려 나일론으로 만든 것이라고, 불효라며 욕을 해댄다. 문상객 많은 것을 자랑하고 부러워하며 저승길 노잣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물론 웃자고 하는 이야기에, 고인들에게 서운하지 않게 해드려야 한다는 기본 마음가짐이 더해진 것이겠지만, 솔직히 나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죽어서도 이 세상 살면서 욕심내고 부러워하고 비교하고 자랑하고 원망했던 모든 것을 그대로 지닌 채라면 인생이 너무 누추한 것 아닌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존재로 화(化)해서 존재하고 싶어하는 내 소망과는 다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평소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고 죽음준비를 진지하게 고민해 보려면 화장장에 가서 반나절만 앉아 있어보라고 말해 왔다. 죽은 자와 산 자의 자리가 엄연히 다르며 아무리 슬프고 아파도 먹고, 마시고, 배설하고, 쉬고, 잠 자고, 연락하고, 돈을 주고 받고, 서로 말을 해야 하는 우리들 삶의 이치가 너무도 잘 보이기 때문이다.

연극은 화장장에서의 하루, 고인은 한 줌 재가 되고 가족들은 마지막 이별을 경험하며 애통해하는 곳에서 그 시간을 온몸과 마음으로 함께 겪으며 삶과 죽음을 들여다보게 만들어 준다. 비록 소란스러워 머리가 아프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도 많은 생각을 던져주는 연극이다. 단, 나는 티끌과 먼지로 돌아가면서까지 이곳의 삶과 똑같은 감정과 인연에 매이고 싶지는 않다.

덧붙이는 글 | 연극 <연기가 눈에 들어갈 때> 원작 : 쓰쓰미 야스유끼 / 번안, 연출 : 김순영 / 출연 : 유태균, 이영석, 박승태, 성병숙, 박호석, 장칠군 등) ~ 9/23까지, 효천아트센터 그라운드씬 (02-762-3387)



태그:#연기가 눈에 들어갈 때, #화장, #화장터, #화장장,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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