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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서는 명절음식이나 준비하는 부엌데기로 살고, 죽은 이를 기리는 제삿날조차  뒷전으로 밀려나는 차별을 받고 있는 게 여자의 실상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살아서는 명절음식이나 준비하는 부엌데기로 살고, 죽은 이를 기리는 제삿날조차 뒷전으로 밀려나는 차별을 받고 있는 게 여자의 실상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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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건데 필자는 여권 신장을 위해 활동하는 페미니스트도 아니고 그럴 만큼 오지랖이 넓지도 않은 사람입니다. 다만 살아서의 일생뿐만이 아니라 죽어서까지도 뒷전 취급을 받는 게 '여자'이기에 이를 개탄하며 고할 뿐입니다.

추석이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미리부터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만 이리저리 염려되고 걸리는 게 적잖은 게 명절을 맞이하는 며느리들, 여성들의 마음이리라 짐작됩니다.

추석을 쇠고 나면 접미사처럼 어김없이 따라붙는 게 '명절증후군'이라는 후유증입니다. 장거리 이동에 따른 고단함, 명절 음식을 준비하고 차례를 지내면서 쌓이는 육체적 피로감이야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엷어지며 잊혀집니다. 하지만 마음에 든 멍, 가슴에 생겨난 생채기는 시간을 거스르며 점자 짙어지는 게 명절증후군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명절, 살아서는 부엌데기 죽어서도 뒷전인 게 여자

과거에 비해 여권(女權)이 어느 정도는 신장됐다고 생각됩니다. 앞으로도 지속적이고 점차적으로 개선되겠지만 아직까지도 남성 우위인 게 우리네 가족제도이며 실정입니다. 게다가 제사에서 만큼은 아직도 철저하게 무시되거나 홀대당하고 있는 게 여자의 존재입니다.

살아있는 세상에서도 차별인데 죽은 다음에나 있을 제사를 놓고 뭘 왈가불가하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산 사람의 뿌리가 조상이듯이 남녀차별의 근본은 제사에서 시작된다고 생각됩니다.

제상에서 조차 뒷전으로 밀려나는 게 여자입니다.
 제상에서 조차 뒷전으로 밀려나는 게 여자입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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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차례야 합설(合設)로 제상이 차려지고 단체로 치러지는 제례니 서순에 따를 수밖에 없을 겁니다. 하지만 돌아가신 날 지내는 기제(忌祭)에서조차 지아비에게 밀려 곁자리에 앉는 지금의 제사풍습이야 말로 '여자는 죽어서도 뒷전' 취급을 받는 현실입니다.

기제는 돌아가신 날 지내는 제사로 응당 돌아가신 분이 주인공이어야 합니다. 돌아가신 날 올리는 제사니 슬픔과 기리는 마음 모두가 오롯하게 주인공 몫이 되어야 하겠지만 주인공인 여자는 제상에서조차 뒷전으로 밀려납니다. 뒷전으로 밀려난다는 말이 좀 지나치다면 아랫자리로 밀려난다고 표현하겠습니다.

집에서 지내는 할머니나 어머니의 제사를 한 번 떠올려 보십시오. 그 날 지내는 제사의 주인공은 할머니나 어머니임에도 할아버지나 아버지를 모시는 지방이 서쪽(제상 앞에서 봤을 때 왼쪽)에 모셔지고 할머니나 어머니를 모시는 지방이 동쪽으로 모셔집니다.

음양의 방위질서에서 살아있는 사람들 세계를 일컫는 '양'에서는 동쪽이 상석이 되지만 '음'에 해당하는 죽은 사람들의 질서에서는 '서쪽'이 상석입니다. 다시 한 번 차려진 제상을 떠올려 보십시오.

제사, 남자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제사, 남자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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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상의 상석인 왼쪽에 할아버지나 아버지께 올리는 국과 밥이 차려지고 할머니나 어머니께 올리는 음식은 하석인 오른쪽(동쪽)으로 차려집니다. 술잔을 올릴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엄연한 주인공을 제치고 할아버지나 아버지께 먼저 헌작을 합니다.

이런 제사, 죽어서도 여자가 뒷전으로 치러지는 제사는 할머니나 어머니에 대한 도리도 아니고 제법에 따른 '정례'도 아닙니다. 할머니 기제에는 할머니 신위 단위만을 모셔 제사 지내고, 어머니 기제에는 어머니 신위 단위만을 모셔 제사 지내야 합니다. 기제는 상(喪)의 연속으로 돌아가신 분을 주인공으로 모시고 정성껏 기리라는 의미라 생각됩니다.

여자 제사엔 여자가 당당하게 주인공 되는 게 '정례'

여성, 할머니나 어머니 한 분 신위만을 모셔서 제사를 지내야 한다는 게 무례하고 엉뚱한 주장이 아닙니다. 조선시대 양반들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던 '예기'와 '주자가례', '사례편람' 모두에서 기제는 한 분, 돌아가신 한 분만을 모셔서 제사 지내라고 했습니다. 그게 '정례(正禮)'라고 했습니다.

여권 신장을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억지를 부리거나 떼를 쓰는 것도 아닙니다. 그날의 주인공이 주인공으로 대접받을 수 있게끔 예법대로 제대로 하자는 주장입니다. 그렇게 하는 게 '예기'에 맞는 것이며 '주자가례'와 '사례편람'에서 말하는 정례입니다.

여자도 제사에 참석해 당당하게 아헌(두 번째 올리는 술)을 하는 게 정례입니다.
 여자도 제사에 참석해 당당하게 아헌(두 번째 올리는 술)을 하는 게 정례입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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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놓고 논쟁하듯이 산사람이 먼저냐 죽은 사람이 먼저냐를 따질지도 모릅니다. 생각이 바뀌면 행동이 바뀝니다. 죽은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살아있는 여성들이 죽은 여성들을 제대로 대접하십시오. 제상일지라도 죽은 여성이 주인공으로서 당당하게 대접을 받을 때 살아있는 여성들에 대한 생각도 대접도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해결의 키 절반은 여자들 손에 달려있어

여권을 신장시키는 지름길, 제상에서조차 뒷전으로 밀려난 여자가 당당하게 주인공 자리에 앉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대한 가늠키는 여자의 손에 달렸다고 생각됩니다.

새댁 시절에야 남자들이 큰소리치고, 남자들이 주도권을 행사하는 게 대부분이지만 '시아버지 시어머니'라는 타이틀이 붙을 정도의 나이가 된 대개의 부부들이 사는 모습을 보면 시어머니의 말발이나 주도권이 만만치 않습니다.

그런 시어머니가 기제의 정례, 여자 제삿날은 여자가 주인공인 게 정례라는 걸 이해하고 가풍에 관철시키려 한다면 어렵지 않게 정착될 수 있으리라 기대됩니다. 기제를 제대로 치르는 가풍의 수정내지 정례화야 말로 여성에 대한 대접이며 제 위치를 찾아가는 시작입니다.

휘영청 밝은 둥근달이 두둥실 떠오를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죽어서도 뒷전이 여자들이 차별에서 벗어나는 제례풍습이 하루라도 빨리 정착됐으면 좋겠습니다.
 휘영청 밝은 둥근달이 두둥실 떠오를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죽어서도 뒷전이 여자들이 차별에서 벗어나는 제례풍습이 하루라도 빨리 정착됐으면 좋겠습니다.
ⓒ 임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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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제상에서는 할머니가 주인공이 되고, 어머니 제상에서는 어머니가 당당하게 독상을 받으며 주인공으로 대접받을 수 있도록 집안 제사를 바꾸자고 하십시오. 그리고 두 번째로 술잔을 올리는 아헌관이 되어 제사를 지내는 주인공으로 당당하게 행세하십시오. 이 또한 '주자가례'와 '사례편람' 등에서 정하고 있는 정례입니다. 그런 날이 오면, 바늘에 실이 따르듯 살아있는 여성들 역시 세상 반쪽의 주인공으로 대접 받는 날이 당겨지거나 좀 더 확고해 지리라 생각됩니다.

며느리나 딸로 불리는 여성들이여!

이번 추석에는 명절음식을 준비하지 못하고 차례상을 뒤엎어서라도 중지를 모으고 담판을 지으십시오. 그렇게 하는 게 먼저 살다 돌아가신 할머니나 어머니를 후대의 여성으로서 제대로 대접해 모시는 것이며 남녀평등을 위한 디딤돌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살아서는 명절음식이나 준비하는 부엌데기로 살고, 죽은 이를 기리는 제삿날조차 뒷전으로 밀려나는 차별에서 벗어나는 제례풍습이 하루라도 빨리 정착됐으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할머니나 어머니 제삿날은 할머니나 어머니 한 분만을 모셔 추모하고 기리는 것이 제법의 정례입니다.


태그:#부엌데기, #추석, #기제사, #주자가례, #가례편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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