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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시민기자들이 쓰는 총·대선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이 시대 결혼풍속에 관한 <조선일보>의 걱정이 눈물겹다. <조선일보>는 지난 3월부터 기획기사로 결혼과 관련된 이 시대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집중 보도하고 있다. 그런데 그 기사 하나하나가 참으로 안쓰럽다. 많은 사람들의 구구절절한 사연들을 모아 우리 사회의 허례허식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 생생히 보여주는 기사들.

눈물겨운 사연 담아내는 <조선일보> 기획기사

<조선일보> 기획시리즈 '부모의 눈물로 울리는 웨딩마치'
 <조선일보> 기획시리즈 '부모의 눈물로 울리는 웨딩마치'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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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그 동안 <조선일보>가 실었던 기획기사 '부모의 눈물로 울리는 웨딩마치'에 등장하는 소제목들을 살펴보자. 

제1부 '돈 잔치 결혼문화' <연봉 3500만 원 청년의 5000만 원 짜리 결혼식>, <"결혼 때 부모 도움, 뭐 어때요? 떳떳하게 손 벌릴 기회잖아요">, <신혼집-예단에 갈라선 사랑… 파혼 58%가 "결혼비용 때문에…">

제2부 '작은 결혼식이 아름답다' <"애 낳고 살다 보니 하루에 1억 쓴 게 너무 아까워">, <보여주기 위한 결혼식 버렸더니… 하객과 울고 웃는 축제 되더라>, <'작은 결혼식' 위해 청와대 사랑채 빌려드립니다>

제3부 '부모 노후가 위태롭다' <"결혼시킬 때마다 재산의 20% 사라져… 노후대책? 꿈같은 얘기">, <"임신했어도 남자쪽에서 집 못 얻어주니 깨지더군요">, <"저축만으론 힘든 결혼… 부모에 기대기 미안하지만 남들도 그렇게 해">

제4부 '모두 괴로운 예단 없애자' <"친구는 벤츠 받았는데" "강북 아파트 사온 주제에">, <신랑 부모 "수억 집값 댔으니 예단 못 받으면 억울">, <시모 "자랑해야" 며느리 "밉보일까" 母친구 "뭐받아">

제5부 '고통의 근원 신혼집' <요즘 50~60대의 푸념 "애 대학 졸업 때까지 든 돈 전부 합친 것보다, 결혼 비용-집값이 더 들어">, <"집 없는 남자와 결혼하느니 차라리 혼자 살겠다"는 女>, <아들 가진 죄… "며느릿감 데려오면 겁부터 나">

이 시대의 결혼식은 결국 시대의 자화상이다
 이 시대의 결혼식은 결국 시대의 자화상이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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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제목만으로도 가슴 아픈 기사들이 아닐 수 없다. 결혼한 지 어느덧 3년이 지났건만 다시 떠올려도 끔찍한 결혼 준비 과정. 비교적 수수하게 결혼식을 치르려 했던 나도 이 정도인데, 결혼식을 폼 나게 치르려면 얼마나 많은 수고와 돈, 그리고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것일까? 그냥 결혼하면 될 것을 이 사회의 관례는 뭘 그리도 많은 걸 요구하는지. 오죽하면 '그 준비과정 때문이라도 다시는 두 번 다시 결혼하지 않겠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겠는가.

특히 <조선일보>는 위 기사들을 묶으면서 굳이 '부모의 눈물로 울리는 웨딩마치'라는 제목을 붙였는데 이는 매우 전략적이다. 어쨌든 <조선일보>의 주독자층이 50~60대인 이상 기사는 감성적으로 소비될 것이며, 그들은 신문을 접으며 어처구니없는 현실에 대해 한번쯤 더 생각할 것이기 때문이다. 고생을 모르고 커서 결혼식마저 부모에게 손벌리는 철딱서니 없는 젊은 것들과 덕분에 노후보장마저 불안정해지는 자신들의 모습.

그러나 그렇다고 그런 <조선일보>의 전략을 탓할 생각은 없다. 그것도 분명 사실이기 때문이다. 다만 아쉬운 건 <조선일보>가 힘겨운 개인들의 사례만 너무 많이 열거함으로써 결혼식 문화가 이렇게 형성될 수밖에 없었던 사회구조적인 원인을 충분히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학연과 지연, 혈연으로 엮여있는 사회에서 결혼식이 가지는 위상과, 천민자본주의의 상징자본으로서의 결혼식의 위상. 정작 당사자와 부모들은 불행질 수밖에 없고, 오로지 결혼과 관련된 자본만이 이득을 보는 현재의 결혼 시스템이 왜 지속되는지에 대한 고민의 결여가 아쉬울 뿐이다.

배꼽이 배보다 큰 경우가 허다하다.
▲ 결혼식에 필요한 예단 배꼽이 배보다 큰 경우가 허다하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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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최근 연재되고 있는 결혼과 관련된 <조선일보>의 기획기사는 우리의 실상을 비추는데 훌륭한 역할을 하고 있다. 비록 구조적인 접근이 아쉽지만 <조선일보>가 실은 풍부한 사례들은 훗날 이 시대의 결혼풍속이 얼마나 천박했는지 증언하는 하나의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거품 낀 집값 문제 외면하는 <조선일보>

사회적 편견과 이목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노후자금마저 털어가며 허황되게 치러지는 결혼식을 시대의 비극으로 지적한 <조선일보>.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바로 기획기사의 제5부 때문이었다. <조선일보>는 제5부에서 천문학적인 결혼비용을 조장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신혼집을 지목하고 나섰는데, 그것이 그동안의 <조선일보>의 논조를 생각해볼 때 낯간지러울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는 지적한다. 신혼집이 너무 비싸다고. 정상적으로 회사를 다니는 20~30대 젊은이들은 아무리 차근차근 돈을 벌어도 서울에서 변변한 전셋집을 얻을 수 없다고.

혹자는 저 지도가 결국 집값 지도라고 말하기도 한다.
▲ 고통의 근원 신혼집 혹자는 저 지도가 결국 집값 지도라고 말하기도 한다.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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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조선일보>는 신혼집 문제를 다루며 집이 왜 비싼지 그 원인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신혼부부가 살만한 소형 주택이 모자란 현실과, 신랑측이 집값을 대는 불공평한 관행과, 꼭 아파트에서 살림을 시작하려는 철없는 젊은이들을 지적하지만 이는 절반의 진실일 뿐, 그들은 집값에 포함되어 있는 거품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집이 주거가 아니라 투기의 대상으로 여겨지면서 집값이 천문학적으로 올라간 이 비극적인 현실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것이다.

 신혼집 기사 밑에 실린 아파트 광고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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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결국 <조선일보>의 근본적인 성격 때문이다. 그들은 부동산 시장에서 부동산 가격의 폭등을 조장하는 매우 중요한 행위자이다. 대형건설사들로부터 광고를 수주 받아야 하는 그들은 현재 우리 사회 부동산 거품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공범이다.

집값이 떨어지면 경기부양을 해야 한다고 정부를 협박하고, 정부의 대책만 나오면 지금이 기회라고 서민들에게 대출을 받아 집을 사라고 부추기는 것이 바로 그들 아니던가. 신혼집의 가격이 문제라고 지적하는 그 날짜 신문에도 아파트 광고가 실렸다.

따라서 결혼풍속을 논함에 있어서 <조선일보>는 최소한 집값 문제에 있어서는 발언할 자격이 없다. 물론 그들의 말대로 신랑만이 집값을 대는 현실도 고쳐야 하겠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신혼집에 끼어있는 거품을 제거하는 일이다. 그것이 바로 근본적인 치유책이기 때문이다.

허황된 결혼풍습에 대해 딴지를 걸고나선 <조선일보>에 경의를 표한다. 다만 자신들의 한계도 겸허히 받아들여 좀 더 건설적인 방향으로 사회적 논제를 이끌어내길 바란다. 1등 신문 <조선일보>가 가장 중요한 원인도 언급하지 않은 채 문제를 분석한다는 것 자체가 창피한 일 아닐까?


태그:#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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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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