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금이 세계사적 전환기라고들 말한다. 인간을 파괴하고 자연을 파괴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한계에 이른 상황, 새로운 삶에 대한 모색으로 분주한 이들 사이에선 '공동체'와 '협동조합'이 핵심어로 회자된다. '무위당 장일순' 선생은 바로 이러한 흐름의 사상적, 실천적 원류라고 할 수 있다.

무위당 장일순(1928∼1994)은 먼저 깨인, 말 그대로 선각자였지만 평생을 직함 없이 '숨은 지도자'로 산 탓에 그 행적에 비해 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시인 김지하를 비롯해 <녹색평론>의 김종철, 전 문화재청장 유홍준, 가수 김민기, 목사 이현주, 판화가 이철수 등 내로라하는 당대의 지식인들은 그를 "아버지", "스승", "지도자"로 표현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생전에 리영희 선생은 "지금이야말로 무위당 선생의 삶과 사상을 연구하고 더욱 심화시켜 생활화해나가야 할 시대"라고 평가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약술하면 이렇다. 장일순 선생은 22살의 나이로 아인슈타인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세계를 하나의 연립정부로 만드는 것이 목적인 '원 월드 운동'에 참여했고, 이승만 정권 시절에는 소련과 미국의 간섭을 받지 않는 '중립화 평화통일론'을 주장했다가 옥고를 치렀다. 1960~1970년대 원주에서 지학순 주교와 함께 유신 반독재 투쟁을 벌이면서 민주화 운동의 사상적 지주 역할을 했다.

그러다 1977년 "이제까지의 방향으로는 안 된다,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며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자연을 약탈하고 파괴하는 방식에는 차이가 없다는 점을 깨닫고 공동체운동과 생명운동으로 전환하게 된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1983년 최초의 도농간 직거래 조직이자 생활협동조합의 효시가 된 '한살림'이다. 경쟁의 원리가 아닌 호혜의 원리가 바탕이 된 한살림운동은 상호협력과 공존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대안적 삶의 출발이었다.   

장일순 선생이 직접 쓴 저작은 거의 없다. '무위당 장일순'을 기리는 사람들에 의해 그의 육성과 강연, 대담 등이 몇몇 기록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언어도단의 글보다 삶 그 자체를 소중히 여긴 까닭일 것이다. 자신의 호 무위당(无爲堂)이 뜻하는 바처럼 "하는 일 없이 안 하는 일 없고, 없는 듯하면서도 있는" 사람이었던 장일순 선생은 대신 그림과 붓글씨로 동서양을 아우르는 자신의 사상적 통찰을 표현했다. 

그런 점에서 그의 생애와 사상을 돌아볼 수 있는 이번 행사는 무척이나 반갑다. 생명운동 30년을 맞은 해이자 세계 협동조합의 해를 맞아 '생명과 협동'을 주제로 '무위당 장일순의 삶과 수묵전'이 열린다. 아울러 생명운동과 협동운동 각 영역의 실천가와 함께 미래세대를 위협하는 작금의 위기상황을 공유하고 창조적 대안을 모색하는 강연, 토론장도 열린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를 참조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무위당의 예술 세계를 엿볼 수 있는 한 가지 일화를 소개하면 이렇다.

서예 방면에도 명성이 자자했던 선생이 어느 초겨울 저녁에 제자와 술 한 잔을 걸치고 길거리를 걷고 있을 때의 일이다. 약간 취기가 오른 선생이 갑자기 한 곳에 시선을 집중했다. 제자가 의아해하며 선생의 시선을 따라 가 보았다. 시선은 포장을 쳐 놓고 군고구마를 파는 어느 가난한 부부의 군고구마 통에 머물러 있었다. 군고구마 자시겠어요 하고 제자가 여쭈었더니 아니, 그게 아니고 하며 잠시 뒤 걸음을 멈추고 주시했던 것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다.

저기 '군고구마'라고 쓰인 글씨를 보게 초롱불 아래 보이는 저 글씨를 말이야. 저 글씨를 보고 있노라면 고구마가 머리에 떠오르고 손에는 따뜻한 고구마를 손에 쥐고 싶고 가슴에는 따뜻한 사람의 정감이 느껴지지 않는가. 결국 저 글씨는 어설프게 보이지만 저 글씨가 진짜이고 여태껏 내가 써온 글씨는 죽은 글씨야. 즉 가짜란 말일세. 그러니까 내 글씨는 장난친 것 밖에 아무것도 아니란 말이야.
- <좁쌀한알 - 일화와 함께 보는 장일순의 글씨와 그림>(최성현 씀, 도솔 펴냄) 중에서

9월 12~1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삶과 사상을 돌아보는 전시회와 토론회가 열린다.
 9월 12~1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삶과 사상을 돌아보는 전시회와 토론회가 열린다.
ⓒ 한살림서울

관련사진보기


9월 12~1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삶과 사상을 돌아보는 전시회와 토론회가 열린다.
 9월 12~1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무위당 장일순 선생의 삶과 사상을 돌아보는 전시회와 토론회가 열린다.
ⓒ 한살림서울

관련사진보기



태그:#무위당, #장일순, #한살림, #공동체, #협동조합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