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기자회견에서 17회 부산영화제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는 이용관 집행위원장

10일 기자회견에서 17회 부산영화제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는 이용관 집행위원장 ⓒ 이정민


'아시아 영화계를 향한 영향력 강화, 표현의 자유를 위한 지속적인 연대, 변방 영화의 발굴과 지원의 확대' 

10일 오후 서울 아트선재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된 17회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산영화제)의 특징은 이렇게 요약된다. 올해 영화제를 통해 아시아 영화의 중심으로서 위치를 더욱 공고히 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국내 작품이 개·폐막작 중 하나로 선정되던 최근 관례와는 달리 개막작은 홍콩 영화 <콜드 워>가 폐막작은 방글라데시 영화 <텔레비젼>이 각각 선정됐다. 개막식 사회 역시 국내 영화인들이 맡던 관례를 깨고 외국배우에게 문을 열어 중국 배우 탕웨이에게 맡긴 것 등은 이런 의지를 볼 수 있는 대표적 부분이다.  

특히 일반 관객들에게 친숙하지 않은 방글라데시 영화가 폐막작에 선정된 것은 눈에 띄는 부분인데, 부산이 키워낸 감독에 대한 배려로 보인다.

<텔레비전>을 만든 모스타파 파루키 감독은 2009년 부산영화제에서 <제3의 인생>을 처음 선보인 후 해외영화제에 잇따라 초청되면서 주목을 받아 왔고, <텔레비전>은 2010년에는 영화 기획안을 투자자와 연결해 주는 부산영화제 APM(아시아 프로젝트 마켓)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부산을 통해 해외에 알려진 감독이 부산의 도움으로 작품을 완성해 돌아오는 셈이다. 

창작과 표현의 자유 제약받고 있는 이란 감독들 지원

 지난 7월 서울에서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는 모흐센 마흐발바프 감독과 아들 메이센 마흐발바프. 망명 생활 중인 이들의 신작 <정원사>가 1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다.

지난 7월 서울에서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는 모흐센 마흐발바프 감독과 아들 메이센 마흐발바프. 망명 생활 중인 이들의 신작 <정원사>가 17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다. ⓒ 성하훈


정치적 탄압을 피해 사실상의 망명생활을 하는 이란 감독들의 영화가 선보이는 것도 의미 있게 평가되는 부분 중 하나다. 바흐만 고바디 감독이 터키에서 만든 <코뿔소의 계절>과 모흐센 마흐발바프 감독이 이스라엘에서 만든 <정원사>가, 거장들의 신작이나 화제작을 소개하는 갈라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선보인다. 

이중 <정원사>는 망명 중인 감독이 위험을 무릅쓰고 만들었고, 부산영화제가 지원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들 감독은 정치적 제약으로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제한받고 있다는 점에서, 부산이 이들에 대한 연대감을 나타내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에는 연금 상태에 들어가 있는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작품을 상영해 창작 활동이 가로막혀 있는 이란의 정치 현실에 항의의 의지를 나타내기도 했다.  

탈레반 치하에서 영화 필름들이 소멸하는 가운데 권력의 눈을 피해 지켜낸 아프카니스탄의 영화 5편이 공개되고, 1946년 만들어진 아프가니스탄 최초의 극영화를 부산이 복원하기로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연대와 지원을 통해 아시아권에 대한 영향력을 넓혀가는 부산영화제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게 한다.

 17회 부산국제영화제 포스터

17회 부산국제영화제 포스터 ⓒ 부산국제영화제

영화교육기관인 아시아영화아카데미(AFA) 출신 중 이번에 작품을 들고 오는 감독들이 12명이나 되는 것도 올해 의미 있게 봐야 할 것 같다. 부산의 투자가 결실맺고 있는 부분으로 AFA 출신의 대표적 감독인 인도네시아의 에드윈은 '단편영화부분-선재상' 심사위원으로 부산을 찾는다. 부산을 통해 영화를 교육받은 그는 첫 장편으로 많은 영화제에 초청됐고, 부산의 지원으로 만들어진 작품이 올해 베를린 영화제에 초청되기도 했다.

김지석 프로그래머는 10일 "AFA나 APM, ACF(아시아 시네마 펀드) 등이 당장 효과가 나오지 않고 흐름이 쌓이면서 나오고 있다"며 "AFA 출신이 칸과 베를린 영화제 등에 진출했고, 아시아에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성과에 고무된 듯 올해는 배우 교육에까지 영역을 넓혔다. '아시아연기자아카데미(AAA)"를 신설해 배우 양성에 뛰어든다. 국내에서 7명을 선발해 영화제 기간 중 집중 교육시키고 영화제 이후에도 합숙 심화교육을 계속해 매니지먼트 전속과 캐스팅 업무까지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영화제의 영역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올해는 아시아뿐 아니라 남미지역에도 관심을 기울여 칠레, 콜롬비아의 영화들을 선보이는 것도 특징 중 하나다. 지난해 아프리카 영화들을 가져왔던 부산이 제 3세계 변방 영화들의 발굴에도 심혈을 기울이려는 모습이다. 이용관 집행위원장은 "올해 프로그래머를 세게 굴렸다며, 이수원 프로그래머가 남미와 콜롬비아에 다녀오는 고생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고문 고발한 정지영 감독 신작 <남영동1985> 첫 공개

올해 개봉한 주요 국내 영화들도 대부분 부산에서 상영된다. 한국영화 '파노라마' 섹션에는 <건축학개론>, <은교>, <화차>, <범죄와의 전쟁>, <후궁:제왕의 첩>을 비롯해 베니스 황금사자장 수상작인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 강제규 감독의 <마이웨이>, 김조광수 감독의 <두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 등 17편이 상영된다. 천만 관객을 돌파한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은 야외상영을 통해 관객들과 만나게 된다.

미래지향적 저예산 독립영화를 존중하는 '비전' 섹션 10편의 작품은 모두 월드프리미어로 올해 칸국제영화제 비평가주간 카날플뤼스상을 수상한 신수원 감독이 <명왕성>을 내놓고 배우이기도 한 유지태 감독의 <마이 라띠마>가 공개된다. 단편영화와 충무로 조감독, 대학강사 등으로 30년간 우회하던 이공희 감독은 <기억의 소리>로 데뷔한다.

 고 김근태 전 의원을 소재로 한 정지영 감독의 신작 <남영동1985>

고 김근태 전 의원을 소재로 한 정지영 감독의 신작 <남영동1985> ⓒ 부산국제영화제


한국영화 출품작 중 가장 주목되는 작품은 '갈라 프레젠테이션'에 월드프리미어로 상영되는 정지영 감독의 <남영동1985>다. 정 감독은 지난해 <부러진 화살>을 통해 사법 권력의 오만함에 화살을 날리며 파장을 일으켰고, 부산영화제를 발판으로 저예산 영화의 성공신화를 쓰기도 했다.

<남영동1985>는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1985년 남영동 대공 분실에서 22일간 당한 고문을 극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지난해에 이어 2번 연속 '갈라 프레젠테이션' 상영이라는 점도 의미가 크다.

대선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이전 군사독재정권의 야만성을 고발하는 영화가 공개된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파문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남영동1985>는 영화제 직후 개봉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이 다른 영화제 초청 막지 않았고, 그들이 부산을 선택한 것"

한편, 올해 만들어진 주요 한국영화들 상당수가 부산영화제를 선택하면서, 이들 작품을 초청하려다 실패한 국내 영화제 관계자들이 볼멘소리를 나타내기도 했었다.

국내 다른 영화제의 한 관계자가 지난 5월 "다른 영화제에 출품하면 부산에서 초청하지 않겠다고 해 해당 영화들의 부산 초청을 거절했다"며 "큰 영화제가 작은 마음 씀씀이를 보였다"는 비판을 가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에 대해 부산영화제 측은 "사실이 아닌 초청 실패에 따른 오해"라고 부인하면서, 영화사들의 선택일 뿐이라고 말하고 이렇게 덧붙였다. 

"칸영화제에 출품한 영화가 베를린이나 베니스에 갈 수가 없다. 어디든 한 곳만 선택해야 한다. 한 작품이 칸과 베를린, 베니스를 동시에 가는 경우는 없다. 마찬가지다. 전주나 부천, 제천에 간 작품들이 부산까지 오겠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다. 그렇게 되면 영화제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국내 영화제에서 자신의 작품을 상영하고 싶다면 어는 한 곳만을 선택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그들이 부산을 선택했을 뿐이다."

17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오는 10월 4일 개막해 13일까지 10일간 영화의 전당과 해운대 상영관 등에서 개최된다.

예매시스템 이번에는 문제없을까?...예매권은 필수!

 부산국제영화제 예매권

부산국제영화제 예매권 ⓒ 성하훈

"올해 예매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걱정 안 해도 된다."

10일 기자회견에서 이용관 위원장과 김지석 프로그래머는 지난해 문제가 발생했던 예매시스템에 대해 보완을 마쳤다며 자신감을 나타냈다.

관객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은 작품이지만 전쟁이라고도 표현되는 예매경쟁은 가장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부분이다. 표를 손에 쥘 수 있냐, 없냐가 달렸기 때문이다.

포털사이트 다음을 이용하는 예매는 지난해 예매자가 폭주하면서 DDOS(디도스) 공격으로 오인 받아 예매가 중단되기도 했었다. 당시 금융시스템의 방화벽이 작동했기 때문인데, 이 과정에서 예매에 실패한 관객들의 영화제 측에 거친 항의를 쏟아내기도 했다.

부산영화제의 실무 관계자는 "위원장님 등 윗분들은 당연히 그렇게 말씀하실 수밖에 없는 것이고, 실무진에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 아니겠냐"며 "나름대로 만반의 준비를 마쳤지만 돌발변수가 있어 어떤 다른 문제가 발생할지는 아직까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만일 이번에도 문제가 생길 경우 포털사이트에서도 감당이 안 된다는 것이고, 국내에서 해결될 수 있는 방법이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예매권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예매의 '고속도로'나 '전용차로'라고 불리는 예매권은 지난해 서버가 닫히는 상태에서도 아무런 지장을 받지 않아 큰 위력을 발휘했다. 다량 구입할 경우 할인이 되는 데다, 3년 동안 사용할 수 있고 스크래치를 제거한 후에 나오는 코드를 입력하여 결제하면 돼 인기가 높다. 지난해는 이례적으로 예매권이 예정보다 일찍 매진돼 미처 구입하지 못한 관객들이 불만을 쏟아내기도 했다.

올해도 영화제를 앞두고 지난해와 같은 1만장을 한정 판매한다.  9.12 ~ 9. 20일까지 8일간 영화제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을 받으며, 9월 20일 일괄 발송한다. 영화제 측은 지난해 항의를 의식한 듯, 조기 매진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부산국제영화제 BI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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