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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대전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대전시청 앞에서 저상버스와 특별교통수단의 법정 대수 도입을 촉구하면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 5일 대전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대전시청 앞에서 저상버스와 특별교통수단의 법정 대수 도입을 촉구하면 침묵시위를 벌이고 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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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절을 구가한 어느 코미디 프로에서 자주 나오던 말. "○○해 보셨어요? 안 해봤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일을 겪었노라고 주장하는 주인공에게 진행하는 사람이 "그게 가능하냐"고 물으면, 천연덕스럽게 되받아치며 하는 말이었다. 그 상황에서는 웃음을 터지게 만들지만, 생각해보면 삶의 진리가 고스란히 배어 있는 말이다.

지난 봄, 어이없이 발에 골절상을 입었다. '나이 먹으면 무조건 조심해라, 네 나이에 넘어지면 골절이다'라는 이야기를 귓등으로 흘려 듣다가 겪게 된 일이어서, 통증보다는 세월의 무심함과 나이 먹음에 대한 서러움이 더 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마음의 상처는 명함도 내밀지 못할 만큼 생활의 불편함이 일상을 압도했다. 평소에는 아무 것도 아닌 일들이 매번 커다란 장애물로 여겨졌다.

씻기 위해서는 다리의 기브스를 풀어야 했고, 씻고 나서는 다시 기브스를 대고 붕대를 감아야 했다. 하지만, 이런 수고는 몇 번 거듭되자 숙련되어져 그럭저럭 할 만했다. 하지만 밖으로 나가야 하는 일은 매번 엄청난 에너지를 필요로 했다. 무엇보다도 치밀한 계획을 먼저 세워야 했다. 일단은 가장 짧은 동선으로 가능한 외출을 계획하여야 했고, 가급적이면 한 번에 여러 가지의 일을 해치우고 귀가를 해야했다.

예를 들어, 물건을 구입하러 갈 때는 조금 비싸게 줄지언정, 한 발짝이라도 가까운 가게에서 구입해야 했고, 예상한 물건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한 번에 사가지고 들어와야 했다. 뭔가를 빠뜨리고 왔을 때 다시 나가야 하는 일은, 번거로움과는 차원이 다른 암담함이었다.

물리적인 거리는 심리적인 거리와 달랐던 것이다. 약속된 시간보다 훨씬 이른 시간부터 준비하고, 거리에 나서야 했다. 그리고 예전보다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그래야 다른 사람과 맞출 수 있었다. 당연히 만남이 줄고, 대인관계가 한동안 위축되었다.

그리고 부러진 뼈는 기브스로 고정되어 보호받고 있었지만, 목발을 짚고 절뚝거리며 걷노라면, 목발을 지탱하는 겨드랑이가 너무도 아파서 오래 걸을 수가 없었다. 발등의 뼈가 부러지면 겨드랑이가 아플 거라는 사실은 꿈에도 해본 적이 없었다.

후배 얼굴이 떠올라 가슴 깊이 반성을 했다. <목발 짚고 하이킥>이라는 극을 연출할 때, 사고로 다리를 잃은 인물을 연기해야 했던 후배에게 극의 대미를 비보이 댄스로 마무리해보자고 제안했던 일이 생각난 것이다. 목발을 짚고 비보이 댄스라...  공연 날이 임박해서도 그것을 연기하지 못하는 후배에게 얼마나 많은 짜증을 내면서, 의지력이 약하다며 면박을 주었던가.

걷는 것만도 중심잡기가 힘이 들고, 겨드랑이가 이렇게 아픈데... 결국 목발을 짚고 나서야 그 후배의 심정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었고, 전화를 걸어 사과를 한 것이다. 물론 사죄의 술도 한 잔 사야만 했다.

그러다가 생활의 불편 정도가 아닌 생명의 위협을 느낀 사건에 맞닥뜨리게 된다. 당연 외출이 줄고, 집에만 있는 시간이 많았던 어느 날. "○동 ○호에서 화재가 났으니, 주민들은 대피하라"는 내용의 아파트 방송이 흘러 나왔다. 그 말인 즉슨, 내가 앉아 있는 바로 위층에서 불이 났으니 살고 싶으면 얼른 도망가라는 것!

무엇을 챙기고 말고가 없었다. 내 몸 하나 추스르기에도 버거운 상황에 얼른 핸드폰과 지갑만 챙겨서 현관문을 열고 나섰다. 어디서 들은 것은 있어서 엘리베이터가 아닌, 계단 쪽으로 몸의 방향을 틀었다.

조금만 중심을 잃어도 계단에서 굴러버릴 판이었으니, 8층은 예전의 8층이 아니었다. 머릿속은 온통 터지고, 깨지고, 구르고, 날아가고 하는 화면으로 가득 찼다. 평소에 재난영화를 너무 많이 본 스스로를 탓하며 1층까지 내려왔을 때는 온 몸이 땀으로 흥건했다. 119 구조대원과 경찰차를 보며 소리를 질러 생존을 알리고 싶었지만, 아래의 모습은 너무도 평온했다.

결론적으로 그것은 잘못된 신고로 벌어진 해프닝으로 끝이 났지만, 다시 집으로 돌아오며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어떻게든 밖으로 나왔지만, 이 정도도 움직일 수 없어 누워 있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 그 방송을 들었다면...

내 몸이 불편하지 않았다면, 누가 그딴 잘못된 신고를 해서 멀쩡한 사람 개고생을 시키냐며 펄펄 뛰다가 잊고 말았을 것이다. 기브스를 하고 다니던 2개월 동안 육교나 지하도가 아닌 횡단보도의 소중함, 계단이 아닌 경사로의 필요성, 장애우를 위한 버스의 편리함을 몸으로 느꼈다.

달랑 두 달 불편하게 지내고 장애우의 인권을 논할 자격은 없다. 그러나 역지사지란 말이 있듯이,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하면 우리는 훨씬 더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런 사람이 많으면 좀 더 괜찮은 사회가 되기도 할 것이다. 당해보지 않았으면, 당한 사람 곁에서 한 번 더 생각해 볼 것이며, 그것도 하기 싫으면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

멀리서 바라만 보는 사람은, 힘들어도 본인만 열심히 노력하면 다 같이 행복한 살기 좋은 대한민국이 될 거라는 그런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대전충남인권연대 뉴스레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장애인권, #기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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