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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노인으로 처음으로 길거리 공연을 하는 어르신들
▲ 청노실버아코디언거리 연주 충북노인으로 처음으로 길거리 공연을 하는 어르신들
ⓒ 이영미. 청노교육문화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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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읍성축제가 시작되는 날

드디어 청주읍성축제가 시작되는 주말이다. 청주의 중심 동네는 성안동이고, 중심도로는 성안길이다. 이 성안길을 중심으로 좌우에 시·도청과 청원군청 등이 근접해 있다. 옛 읍성의 한 가운데로서 서울로 치면 종로와 광화문 비슷한 곳이다.

청노실버앙상블은 수년 전부터 자조동아리 또는 음악교육모임으로 지역주민센터와 윈윈하면서 만들어져 이루어진 음악단이다. '청노'는 맑은노인을 일컬으며, 실버앙상블은 은빛 하모니로서 크로마하프, 아코디언, 우크랠래 등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청노실버앙상블이 성안길 한 가운데서 거리공연을 하기로 했다. 충북에서 실버로는 처음하는 공연이다. 공연하기 며칠 전부터 주말에 비가 많이 온다고 예보했었다. 이에어르신들은 문의가 잇따랐다. 주최측에 알아보니 비가 와도 강행한다고. 그러나 나는 우리 실버앙상블어르신들은 그날 날씨 상황을 보고 거리공연을 하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어머니 아버지 연령대의 어르신들이 즐겁게 잘 나누고, 살자고 연주하는 것인데 건강에 무리가 가면 안되기 때문이다.

기획자의 역할은 무언가 만들고 지속하고 그리고 하나의 판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의 주체가 바로 '사람'이고, 그 사람의 '몸'과 '마음'이다. 프로들이 하는 무대라면 악천후라도 공연하는 프로근성으로 대중과 공감해야 하기에 상황이 다르겠지만, 프로가 아닌 연로한 어르신들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나는 어르신들의 안녕이 우선 순위며, 내가 하는 기획의 기본 정체성은 인문학적인 상생과 안녕이기 때문이다.

주말의 저녁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다가 밤에는 폭우로 변했다. 그 다음날 아침은 다행히 날씨가 맑았다. 어르신들은 점심 먹고 바로 나와 리허설을 하면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올 봄에 작품제작실을 옮기고 아코디언반이 본격적으로 인원이 늘어나면서 연계기관에 아코디언을 들고 계단을 오르내리다 보니 왼쪽 손목인대가 늘어났다. 그래서 운반에 자신이 없어 딸과 사위에게 미리 연락해서 한시간만 봉사하라고 했었다. 그런데 도착해보니 강사선생님께서도 내가 힘들어 할까봐 남편분과 건장한 아드님까지 데리고 오셔서 물품들을 운반하셨다. 이심전심이었을까. 서로 서로 너무 고마워서 우리들은 부둥켜안았다.

어르신들은 자신의 공연을 위해서 우리가 가족들을 동원해서 뒷바라지 하는 것을 흐믓하게 보셨다. 성안길 번화한 한 곳에 주최측에서는 음향장비를 설치하고 벽면에 플랜카드와 배너를 세웠다. 그날 성안길 곳곳에서는 이러한 축제코너가 다양하게 펼쳐졌다.

한 블록 떨어진 곳에서는 민요공연과 춤판이 벌어지기도 하고, 다른 곳에서는 아티스트들의 공연도 있었고, 다양한 부대행사가 펼쳐졌다. 또, 한 블록 떨어진 곳에는 큰 특설무대를 만들고 수백 개의 좌석 의자도 만들었는데 그곳인 줄 알고 그리로 간 어르신들도 계셨다.

어색한 표정으로 거리공연을 시작하다

아코디언을 하시는 아버님들은 하얀 와이셔츠에 빨간 나비 넥타이를 두르고, 우크렐레 하는 어머니들 또한 하얀 블라우스를 입고 오셨다. 크로마하프 하시는 열한 분의 어머니들은 드레스를 준비하셨다. 거리공연이라고 말을 했는데도 거리에 큰 무대를 설치하는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라 길거리 옷가게 앞에서 공연을 한다고하니 안색이 흔들리셨다. 바로 큰 특설무대인 줄 알고 갔다가 이쪽으로 온 어머니들은 어색한 표정이셨다.

그리고 어떤 어머니가 우스개로 말씀하셨다.

"이거 우리가 연주하면 지나가다가 돈 던지는게 아닐까? 돈통을 준비해야 하나?" 

그러자 다른 분들도 머쓱하고 난처한 표정이셨다. 그러나 먼저 도착하신 우크랠래 어머니들과 아코디언 아버님들이 해밝은 표정이셨다. 나는 마음을 안심시켜 드리기 위해 너스레를 떨었다.

"외국에는 이런 음악연주가 거리에서 일상화되어 있어요. 아마 충북에서도 젊은이들은 더러 이곳에서 했는데 어르신들이 하는 것은 우리가 처음일 꺼에요. 아마 우리가 이러한 실버거리 공연의 선도적 개척자일걸요!"

어르신들은 그냥 분위기에 휩쓸려 리허설을 시작하셨지만, 조금 있다가 방송국에서 또는 리뷰에서 또는 다른 도시에서 기자들이 와서 사진을 찍고 촬영하자 진지한 표정으로 열심히 리허설을 하셨다. 지나가던 외국인도 멈춰서 보고 가고, 초등학생들은 동영상과 사진들을 찍었다. 

지나가던 어떤 다른 어르신은 당장이라도 배우고 싶다며 어디서 신청하면 되느냐고 물으셨다. 예고없이, 암행어사처럼 오신 관장님이신 신부님께서 거리의 한 가운데서 지켜보시며 제일 먼저 박수를 치셨다. 또, 공연이 끝날 때까지 몸과 마음으로 성원을 해주셨다. 나는 무언가 마음이 무척 따스해지고 든든했다. 그냥 그 자리에 서 계시기만 해도 함께한다는 푸근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크로마반은 '당신은 모르실꺼야'와 '오빠생각'을 비롯해 민요 등을 연주했다. 또, 아코디언반은 '사랑'과 '아침이슬' 등을 연주했다. 그리고 우크랠래반은 저녁에 새롭게 마련된 특설무대에서 비보잉들의 멋진 현란한 춤들이 끝난 후에 10대부터 40~50대 장년층과 함께 100인의 기타리스트에서도 연주하셨다. 5분의 연주를 위해 연습한 그 무수한 시간들... 공연 당일에도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 앉아 합동연습을 두 시간가량 하셨다. 멀리서 보면 그 모습에 노인이란 것이 보이지 않았다. 그냥 사이좋은 음악대 가족같았다.

세대차이가 없이 기타와 노래가 하나가 됐다. 아이들과 젊은이 장년과 노년층이 하나로 되는 것들이 참 보기 좋았다. 하나로 이루어지는 모습이 너무 좋아서 나는 피곤한 줄도 몰랐다.

소리를 못 듣는데 왜 자꾸 음악프로그램을 만드시나요?

청주읍성축제 길거리 음악공연
▲ 청노실버아코디언거리 연주 청주읍성축제 길거리 음악공연
ⓒ 이영미,청노교육문화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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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을 마치고 평소에 지팡이를 짚고 다니시는 여든이 넘은 아코디언 할아버지는 아코디언을 조그만 손으로 끄는 수레에 싣고 절룩거리시며 집으로 돌아가시고. 크로마 할머니도 시작하기 전의 그 안색이 아닌 훌훌한 표정으로 가셨다.또, 몇 분은 더러 남아 저녁에 하는 우크랠래 할머니의 공연을 남아서 지켜보셨다.

내가 음향 장비를 잘 다루거나 기획과 추진에 좀 더 능력이 있다면 한달에 한 번이라도 주말에 성안길의 한 코너에서 청노실버앙상블의 화음이 울려퍼지게 하고 싶기도 했다.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우크랠래도 같이 연주하는 모습도 시민들에게 많이 보이고 싶다. 조금씩 꾸준히 아름다운 하모니를 성안길에 울려퍼지게 하면 문화예술을 통한 노인들에 대힌 인식 개선은 물론 음악을 통한 세대와의 소통에도 효과적일 것 같다.

누군가는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이 소리를 전혀 못 듣는데 왜 음악프로그램을 계속 하느냐고. 우리 어머니는 자신이 잘 먹기위해 음식을 하고 옷을 만들지 않으셨다. 주변과 사이좋게 즐겁게 나누고 먹고 깨끗이 살아가는 그 모습이 좋으셔서 그러셨을 것이다.

아마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그러한 마음일 것이며, 세상의  멋진 요리사들이 자기가 먹기 위해 요리하지 않을 것이다. 비슷하게 나도 내가 듣기 위해  음악프로그램을 기획하지 않는다. 나는 직접 연주하지 못하지만 사람들이 연주하게 하는 기회를 만드는 것은 가능할 수 있어서 무척 좋다.

이러한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당연한 것인데 특별한 것처럼 누군가가 그런 말을 한 것은  '너'와 '우리' 보다 '나' 중심이란 것에 익숙해져 있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연이 끝난 후 달빛을 보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동네 꽃집에서 떨이로 이천 원에 파는 연보라빛과 노란빛 조그만 국화 화분을 두 개 샀다. 무척 향긋하다. 잘 때 머리맡에 두었더니 맑은 소국 향기가 가득하는 것 같았다. 오늘 눈으로 느낀 어르신들이 연주한 소리의 색깔이 뇌에 저장되었다가, 멋진 하모니가 음률로 기억되는 날이었다.

100인의 기타연주회에 아이들, 청년, 주부, 장년층과 합도연습을 하는 모습
▲ 100인의 기타 실버연습장면 100인의 기타연주회에 아이들, 청년, 주부, 장년층과 합도연습을 하는 모습
ⓒ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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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청주읍성큰잔치, #청노실버앙상블, #노인음악문화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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