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6개월 사이 3명의 감독이 영화촬영 현장에서 하차하거나 하차 압박을 받았습니다. 신인감독이 아닌 한국 영화계에서 의미 있는 활동을 해온 중견 감독들이었습니다.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등 한국 영화의 위상은 나아지고 있지만, 제작 환경을 비롯한 기본적인 시스템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입니다. <오마이스타>는 제작자 중심에서 이젠 자본 중심이 된 한국영화현장이 간과하고 있는 시스템 문제를 짚어보고자 합니다. 감독, 제작사, 투자배급사가 함께 만족하는 합리적인 영화제작시스템 마련을 기원합니다. 현상 진단을 넘어 대안까지 기사로 함께합니다. - <편집자 말>

 영화 <M> 촬영 당시 이명세 감독

영화 촬영 당시 이명세 감독 ⓒ 청어람


한국 영화판에서 이건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갑작스럽게 찾아와 상처를 입히는 게 사고라면 이 경우는 무엇이라 표현할 수 있을까. 최근 6개월 간 3명의 감독들이 일방적 하차를 당하거나 하차를 종용당했다. 그것도 신인 감독이 아닌, '필름 밥'을 꽤 먹었다는 중진급 이상의 감독들이 말이다. 감이 맞지 않았고, 제작 방향이 본래 계획과 맞지 않다며 촬영 도중 현장에서 쫓기듯 나가야 했다.

작품에 열중하던 감독들이 지금의 상황에 개탄하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오마이스타>는 6일 저녁 이현승 감독과 한지승 감독을 만났다. 올해 벌어진 이명세 감독 하차, 임순례 감독 촬영장 이탈, 박신우 감독 하차에 대한 일부 감독들의 단순한 입장이라 생각하지 말자. 두 감독은 깊은 자기반성을 안고 '모두의 문제를 함께 얘기하자'며 목소리를 높였다.

벌어진 일련의 사태를 과연 사건의 주체이자 당사자인 감독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이현승 감독은 감독조합의 1기 조합장으로서 그간 이명세 감독 사태 등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인물. 한지승 감독 역시 물심양면으로 상황 정리를 해왔고 한국 영화 시스템에 대한 고민을 함께 전했다. 그 전에 이 두 감독이 강조했던 한 마디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감독 입장의 대변도 아니고 누가 잘못했는지를 따지는 것도 아니라 투자자, 감독, 제작사 각각의 생각이 어떤지를 확인해보자는 겁니다. 사례별로 옳고 그름을 가리지 말고 부디 한국 영화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다루었으면 좋겠습니다."

 13일 오전 서울 건대입구 롯데시네마에서 열린 영화<파파> 제작보고회에서 한지승 감독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영화 <파파> 제작보고회 당시 한지승 감독. ⓒ 이정민


"감독 하차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한국 영화 시스템 문제" 

우선 이번 사태를 보는 감독들의 생각이 중요했다. 이젠 <협상종결자>로 제목이 바뀐 <미스터K>의 이명세 감독과 <남쪽으로 튀어>의 임순례 감독, 가장 최근 <동창생>의 박신우 감독의 경우는 현상은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 하나의 문제로 귀결된다는 게 이들 감독의 의견이었다.

"현장에선 '이명세 감독이 마지노선'이란 말이 있었어요. 이전에 여러 사태들이 있었지만, 이후 이명세 감독마저 무너지면 같은 일이 반복될 거란 예상이었는데 그게 맞았던 거죠. 바로 임순례 감독과 박신우 감독의 문제가 터질 줄이야.

이명세 감독의 경우는 '시나리오대로 찍지 않았다'가 (하차 이유의) 핵심인데 제작사나 투자사가 감독의 스타일을 모르고 섭외를 했을까요? 2년 전부터 기획과 준비를 했다는데 사태에 대해서 왜 감독만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하는지. 물론 촬영장에서 벌어지는 일에 감독이 책임을 져야겠지만 프리 프로덕션을 철저히 해서 불확실성을 없애야 했어요.

지금의 문제는 누가 옳고 그르냐의 문제가 아닌 시스템의 문제에요. 최악은 임순례 감독 사례죠. 이명세 감독은 적어도 갈등 이후 촬영이 중단됐지만 임순례 감독의 경우에는 감독이 현장에 없는데 촬영을 했어요.

이건 말이 안 되는 겁니다. 감독이 현장을 떠난 게 잘못일 수 있지만 계약이 유효한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제작사가 촬영을 감행했어요. 박신우 감독 역시 자르는 기준이 명백하지 않아요. 적법한 절차를 따르지도 않았고요." (한지승 감독)

감독이 현장을 떠난 상태에서 촬영을 했다는 건 엄연한 계약 위반이자 감독에 대한 불신임을 보이는 행동이 될 수 있다. 특히 임순례 감독 사태에선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일이 있었으니, 바로 특정 배우가 감독의 연출에 대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타진한 일이었다. 감독과 제작사의 갈등 이전에 감독과 배우 간 갈등이 컸고, 제작자가 배우의 의견에 힘을 실어 결국 일이 커졌다는 게 동료 감독들의 생각이었다.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만든 감독이자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KARA) 대표로 있는 임순례 감독.

최근 영화 <남쪽으로 튀어> 촬영 중 의견 마찰 등으로 현장을 떠났던 임순례 감독. 투자배급사인 롯데엔터테인먼트 측에 따르면 임 감독은 이후 수 일만에 다시 촬영장에 복귀해 최근엔 마무리 작업 중이다. ⓒ 유성호


"제작사의 문제도 있고 배우와의 문제도 있었다고 봅니다. 엄밀히 따지면 배우 역시 현장에서 이런 저런 조언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톱 배우는 1년에 영화 두 편은 하니까 오히려 감독보다 현장 경험이 풍부하겠죠. 하지만 그걸 전달하는 과정과 방법이 문제라는 겁니다.

좋은 조언이란 그 판단 근거가 있어서 스태프들이 함께 인정할 때 성립해요. 이번 사태는 결국 PD의 역할, 감독의 역할, 배우의 역할에 대한 공감대가 서로 부족해서 생기는 일입니다. 결국 시스템의 문제죠. 그걸 고민하지 않고 그냥 사례별로 치부하는 게 큰 문제에요." (한지승 감독)


표면적으로 드러난 문제 이면엔 깊은 불신과 비전문성 있다

'시나리오대로 찍지 않았다' 혹은 '감이 맞지 않는다'가 최근의 사태에서 표면적으로 드러난 감독들의 하차 이유였다. 언뜻 보면 투자사나 제작자 논리로는 말이 된다. 서로가 원하는 모양새의 작품이 있고 그에 따라 제작자는 감독을 선택, 투자사는 자본을 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판단할 문제가 아니다. 특히 이현승 감독은 이런 논리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투자사나 제작사에서 말하는 '시나리오대로 찍지 않아 해임했다'는 논리는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게 이 감독의 생각이었다. 시나리오대로 찍는다면 감독이 있을 이유가 없다는 게 주된 논지였다.

"글자 그대로 '시나리오대로 찍는다'는 개념은 성립이 안 됩니다. 글자를 영상으로 옮기는 게 감독의 이야기에요. 시나리오대로 찍지 않는다는 판단은 감독이 이전 기획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갈 때 말이 되는데 그때 필요한 사람이 프로듀서죠. 서로 영화적으로 나은 방향에 대해 합의를 보면서 진행하는 겁니다.

감독 몰래 (시나리오를) 바꾸는 경우는 없어요. 또 감독 계약서를 살펴보면 시나리오대로 찍어야 한다는 말도 없고요. 물론 감독 입장에선 글자 그대로 찍는 게 편하죠. 어떤 방향으로 가야하는 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지 '이건 아닌 거 같은데'라는 말만 남발하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과감하게 프리 프로덕션 단계에서 서로 치열하게 얘기를 하고 방향을 잡아야죠! 사전 기획 땐 '감독님 괜찮은 거 같아요' 하고 나서 영화를 찍는 도중에 '이게 아닌 거 같아요' 하는 건 말이 안 되죠. 마치 상점에서 물건을 사서 이미 써보고 아닌 거 같다며 환불하는 것과 같은 행동입니다." (이현승 감독)

 이현승 감독

영화<푸른소금>연출
그대안의 블루,시월애 등

6일 저녁 <오마이스타>와 인터뷰를 가진 이현승 감독. 사진은 지난해 영화 <푸른소금> 관련 인터뷰 당시 모습. ⓒ 민원기


시나리오 면에서 할리우드 영화와 우리의 큰 차이점은 바로 시간계산의 정확성 여부라고 한다. 할리우드에선 충분한 사전 기획으로 시나리오가 나올 땐 해당 장면의 러닝타임까지 정확히 계산돼 나오는 반면, 한국 영화는 찍어나가면서 조절하는 경우라고. 때문에 한국 영화에선 1분 분량의 장면이 2분이 되기도, 더 짧아지기도 하는 경우가 많단다.

"콘티대로 하고 시나리오만 정확히 지키라면 PD만 있으면 되지 감독이 왜 필요해요? 비싼 돈 주고 할 필요 없다는 거죠. 현장은 배우가 살아서 움직이는 느낌이 포착이 돼요. 책상머리에서 시나리오 쓰던 느낌과 현장은 다릅니다. 감독이라면 현장을 잘 포착해야죠!"

이현승 감독은 "기획 단계에서 각본이 문제인지 연출이 문제인지 원인을 찾지 않고 촬영을 하는건 제작자와 감독이 충동 결혼하는 꼴"이라며 최근 영화판의 문제점을 짚었다.

"명백한 하자, 계약서상 문제가 발생했을 때 (감독 하차가) 가능한 것이지 연출 감이 안 맞고, 시나리오대로 안 찍어서 그렇다는 이유는 치졸하다는 겁니다. 촬영에서 편집까지를 계산하는 게 감독인데 매 장면마다 태클을 걸려고 하면 감독은 현장에 있을 필요가 없죠."

한지승 감독과 이현승 감독이 강조한 지점은 결국 제작사, 투자사, 감독 간의 신뢰 회복이었다. 그 신뢰의 바탕은 결국 충분히 서로를 안 이후 파트너로 삼는 과정을 제대로 거치는 것이었다. 감독 역시 현장감이 떨어지지 않도록 충분히 자기 계발과 관리를 해야 한다는 게 두 감독의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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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창생 임순례 박신우 영화감독 이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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