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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부자네집. 소설 '태백산맥'을 이끌어 가는 중심무대다. 정하섭과 소화의 애틋한 사랑이 이뤄진 곳이다.
 현부자네집. 소설 '태백산맥'을 이끌어 가는 중심무대다. 정하섭과 소화의 애틋한 사랑이 이뤄진 곳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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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끝자락이 숨 가빴다. 태풍도 연달아 찾아왔다. 피해도 컸다. 그 8월이 가고 이젠 9월. 가을의 시작이다. 흔히들 이 가을을 '독서의 계절'이라 한다. 가을은 또 '여행의 계절'이다. 나들이하기 가장 좋은 때다.

책읽기와 여행을 함께 할 수 있는 곳으로 간다. 전라남도 보성 벌교다. 벌교는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의 배경이다. 소설이 벌교 포구를 배경으로 쓰여졌다. 때는 여순사건이 있었던 1948년 늦가을부터 빨치산 토벌작전이 끝나가던 1953년까지다. 분단문학의 최대 걸작으로 꼽힌다.

벌교에는 소설 속의 무대가 다 있다. 소설의 중심무대였던 현부자네집이 있고 철다리와 소화다리, 횡갯다리가 있다. 김범우의집, 중도방죽, 남도여관, 진트재, 소화의집, 회정리교회, 금융조합도 있다.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 분단문학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조정래의 소설 '태백산맥'. 분단문학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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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등산길. 제석산에서 현부자네집으로 내려오는 길목이다.
 조정래 등산길. 제석산에서 현부자네집으로 내려오는 길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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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부자네집은 건물이 독특하다. 겉모습에 한옥을 기본으로 하고 일본식을 가미했다. 조직의 밀명을 받은 술도가의 아들 정하섭이 무당 소화를 찾아왔다가 숨어 지냈던 곳이다. 둘의 애틋하고 가슴 시린 운명 같은 사랑도 여기서 이뤄졌다.

철다리는 염상구가 특별한 겨루기를 했던 곳이다. 깡패 왕초인 땅벌의 제의를 받아들인 장터거리의 주도권 싸움이었다. 둘은 이 철다리의 가운데 서서 기차가 가까이 올 때까지 누가 더 오래 버티는가를 겨뤘다. 이 담력 시합에서 지는 자는 영원히 벌교바닥을 뜨기로 하고서.

이 철길도 여기에 있다. 벌교읍에서 순천 방면으로 옛 국도와 이 철길이 나란히 놓여 있다. 벌교읍에서 부용교를 건너 중도방죽 쪽으로 가면 이 철길을 건너게 된다.

철다리. 소설 '태백산맥'에서 염상구를 가장 인상깊게 그렸던 곳이다.
 철다리. 소설 '태백산맥'에서 염상구를 가장 인상깊게 그렸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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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방죽. 일본인 지주 나카시마가 벌교주민들을 강제 동원해 쌓은 방죽이다.
 중도방죽. 일본인 지주 나카시마가 벌교주민들을 강제 동원해 쌓은 방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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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핀 '명품 방죽 꽃길'... 도란도란 걷는 재미도 있어

중도방죽은 일본인 지주 나카시마가 주민들을 강제 동원해 간척지에 쌓았다. 하판석 영감도 등골이 휠 정도로 지게에 돌을 져 날랐다. 일본인 나카시마를 우리말로 표기하면 '중도'. 그래서 방죽이름도 중도방죽이다.

이런 사연을 간직한 방죽이지만 지금은 산책로가 잘 다듬어져 있다. 길섶으로 황화코스모스도 예쁘게 피었다. 명품 꽃길이고 방죽길이다. 이 방죽길을 도란도란 걷는 것도 오붓하다.

벌교역도 있다. 당시 차부와 나란히 있었다. 염상구의 형 염상진의 목이 내걸렸던 곳이다. 여기서 염상구가 "살아서나 빨갱이제, 죽어서도 빨갱이여"라고 절규하며 형의 시신을 거뒀다.

남도여관. 당시 '보성여관'으로 토벌대의 숙소로 쓰였다.
 남도여관. 당시 '보성여관'으로 토벌대의 숙소로 쓰였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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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내 본정통에서 만나는 남도여관은 판자벽에 함석지붕의 전형적인 일본식 건물이다. 당시 보성여관이다. 토벌대의 숙소로 쓰였다. 지금은 새로 단장해 카페와 전시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포목상과 금융조합, 자애병원 건물도 이 거리에서 만날 수 있다. 보성군에서 이 일대를 '태백산맥 문학거리'로 이름 붙였다. 염상구와 김범우 등 소설 속 인물들의 인명판도 곳곳에 세워져 있다.

태백산맥문학거리를 빠져나가면 횡갯다리가 나온다. 세 칸의 무지개형 돌다리로 홍교다. 당시 좌·우익 모두의 즉결처형 공간이었다. 빨치산들이 주민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쌀을 몰래 놔두고 심리전을 펴기도 했다. 벌교포구를 가로지르는 다리 가운데 가장 오래됐다. 보물로 지정돼 있다.

횡갯다리. 무지개형 돌다리다. 소설에서 좌익과 우익의 즉결 처형무대로 나왔다.
 횡갯다리. 무지개형 돌다리다. 소설에서 좌익과 우익의 즉결 처형무대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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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우의집. 위압적인 담장을 지닌 고택이다.
 김범우의집. 위압적인 담장을 지닌 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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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갯다리는 '벌교'의 지명 유래지이기도 하다. 돌다리가 놓이기 전에는 뗏목을 엮어놓은 다리가 있었다. 포구를 건너려면 이 뗏목다리를 이용해야 했다. 벌교의 한자 표기가 뗏목 벌(筏), 다리 교(橋)인 이유다.

다리 건너 마을 가운데에 김범우의 집도 있다. 어른 키보다도 훨씬 더 높은 위압적인 담장을 지닌 고택이다. 당시 떵떵거리며 살았던 지주의 행태를 엿볼 수 있다. 갯바닥에 시체가 질펀하게 널렸다는 소화다리도 있다. 서민영이 야학을 열었던 회정리 돌담교회에서도 소설 속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회정리교회. 서인영이 야학을 열었던 곳이다.
 회정리교회. 서인영이 야학을 열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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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교버스터미널에서 순천방면으로 가면 왼쪽으로 태백산맥문학관이 있다. 현부자네집 앞이다. 태백산맥문학관은 국내에서 가장 큰 문학관이다. 조정래의 육필원고와 취재수첩, 만년필 등을 볼 수 있다. 작가가 직접 쓴 원고지 1만6500장도 쌓여있다. 관련 자료 144건 623점이 전시돼 있다. 전시관 밖의 옹석벽화도 볼거리다.

현부자네집 옆으로 제석산 등산로도 있다. 이른바 '조정래등산길'이다. 산과 들, 길과 건물까지 모두 소설 속의 이야기가 스며있는 곳이 벌교다. 소설의 배경무대를 걸어서 한 바퀴 돌면 8㎞정도 된다. 3∼4시간이면 돌아볼 수 있다.

태백산맥문학관. 작가 조정래의 육필원고와 취재수첩 등을 볼 수 있다.
 태백산맥문학관. 작가 조정래의 육필원고와 취재수첩 등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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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태백산맥문학관 찾아가는 길

영암-순천간 남해고속국도 벌교나들목에서 옛 2번국도(2차선도로)를 타고 순천방면으로 벌교역과 벌교버스터미널 지나면 왼편에 태백산맥문학관이 자리하고 있다. 현부자네집은 문학관 앞에 있다.



태그:#태백산맥, #조정래, #현부자네집, #철다리, #횡갯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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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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