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성(록키체. 29)이 한국 복싱의 자존심을 살리는 값진 승리로 일본 원정 2연승을 거뒀다. 이재성은 9월 1일 오사카 스미요시체육관에서 김택민과 함께 OPBF(동양태평양복싱연맹) 랭킹전에 나서 치열한 난타전 끝에 2:0 판정승을 거뒀다.

하지만, WBA 수퍼플라이급 매치에 앞선 세미파이널 경기에 출전한 김택민(록키체,27)은 초반부터 압도적인 경기를 이끌었으나 6라운드 불의의 눈부상으로 7라운드에서 레프리 스톱에 의한 TKO로 석패했다.

 이재성이 일본 적지에서 값진 승리를 거두는 모습

이재성이 일본 적지에서 값진 승리를 거두는 모습 ⓒ 이충섭


이재성은 신인왕, 한국챔피언을 거쳐 2008년부터 미국 라스베이거스, 뉴욕 등에서 활동하다가 지난해 12월 11일 첫 일본 원정경기에 나서 마츠모토 아키히로를 1라운드 KO로 잠재우며, 2006년부터 6년 넘게 이어지던 한일전 연패의 사슬을 끊은 바 있다. 당시 마츠모토는 21살의 동양챔피언 출신으로 세계타이틀 전초전 성격으로 이재성을 제물로 삼으로 초청했으나 충격의 KO패를 당했다. 이후 마츠모토 측에서는 대전료를 3배로 내걸고 재대결을 제안했지만 이재성은 이를 거절한 바 있다. 그 후 5월 한국에서 태국의 강타자 무앙시마를 제압하고 OPBF 수퍼밴텀급 랭킹 3위에 올랐다.

이런 이재성에게 또다시 일본 경기의 기회가 찾아온 건 오사카 무토체육관 대표 다카시 에다가와의 초청 때문이었다. 본인이 주최한 나시로 노부로의 WBA수퍼플라이급 세계타이틀매치에 나서는 선수로 이재성과 김택민을 선택하여 지난 7월부터 오사카에서 무토체육관 선수들과 함께 합숙훈련을 제공했다.

 오사카 무토체육관에서 함께 훈련하는 김택민,이재성

오사카 무토체육관에서 함께 훈련하는 김택민,이재성 ⓒ 이충섭


재일교포가 가장 많이 사는 오사카에서 한국관중을 불러들이기 위한 마케팅 전략으로 한국 선수 중 가장 화끈한 경기를 펼치는 김택민과 국제 경험이 많은 이재성을 택한 에다가와 프로모터의 전략은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두었다. 경기장에 현지 교포들이 한국 선수들을 응원하기 위해 경기장을 찾았고, 일본 관중들은 한국선수들의 패기 넘치는 경기에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게다가 최근 한일 양국간 정치적 이슈도 여기에 큰 몫을 더 했다.

 이재성이 1라운드부터 코피를 흘리며 고전하고 있다

이재성이 1라운드부터 코피를 흘리며 고전하고 있다 ⓒ 이충섭


먼저 경기에 나선 이재성은 왼손잡이 오구마 요이치(32)에게 1라운드부터 정타를 허용하여 코피를 흘리며 KO패의 위기를 맞았다. 17전 13승 4패의 오구마는 수퍼밴텀급(55kg)에서는 보기 드문 181cm 의 장신에서 뿜어 나오는 원투 스트레이트로 이재성의 안면을 거세게 가격해왔다.

하지만, 이재성은 위기 상황을 장기인 영리함과 임기응변으로 오구마의 초반 공세를 잘 견뎌내고, 3라운드부터 크게 상체를 흔드는 오구마의 움직임을 읽고 스트레이트 싸움 대신 왼손 훅에 이은 라이트 어퍼컷으로 반격의 실마리를 풀었다. 초반의 일방적인 흐름에서 중반부터 일진일퇴의 난타전이 펼쳐지자 일본 관중들은 긴장하며 오구마의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이재성이 영리하게 경기를 풀어가고 있다

이재성이 영리하게 경기를 풀어가고 있다 ⓒ 이충섭


이에 맞선 이재성은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오구마를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라운드를 더해갈수록 현란해지는 이재성의 움직임에 오구마는 때리고 껴 앉는 작전을 폈지만 이재성은 짧은 훅과 어퍼컷으로 오구마의 더티플레이를 봉쇄하며 후반 흐름을 점령하며 시합을 마쳤다.

 이재성이 왼손훅으로 오구마를 격침시키고 있다

이재성이 왼손훅으로 오구마를 격침시키고 있다 ⓒ 이충섭


후반을 지배하긴 했지만 원정경기임을 감안했을 땐 초반의 열세로 인해 승리를 장담하지 못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장내 아나운서는 이재성의 2:0 판정승을 선언했다. 원정경기 KO승보다 더 어려운 판정승을 거두었고 관중들은 이재성의 역전 투혼과 경기력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계체량을 너끈히 통과하고 최상의 컨디션을 보였던 김택민

계체량을 너끈히 통과하고 최상의 컨디션을 보였던 김택민 ⓒ 이충섭


이어 경기에 나선 김택민은 세계타이틀 매치 직전에 열린 경기라 4천여 관중의 일방적인 응원에 맞서 펼쳐졌다. 사토시 모모타(27)는 공교롭게도 이재성이 격침시킨 마츠모토의 체육관 소속이었다. 경기 시작 전부터 선수는 물론 8개월 만에 다시 만난 세컨들간의 기 싸움이 대단했다. 파이터 김택민은 모모타와 특유의 정면대결을 택했다. 모모타는 김택민이 1라운드 시작 종과 함께 탐색전 없이 거침없는 공격을 퍼붓는 상황에 적잖이 당황하는 모습이었고 묵직한 펀치에 휘청거렸다. 모모타는 가드를 바짝 올리고 반격을 시도했지만 모모타가 접근하면 김택민은 도망가지 않고 맞불 공격을 놓는 양상이었다.

 김택민이 모모타에게 맹공을 퍼붓고 있다

김택민이 모모타에게 맹공을 퍼붓고 있다 ⓒ 이충섭


관중들은 초반부터 열광하기 시작했고 양 선수의 공방전은 라운드가 거듭될수록 불꽃이 튀었다. 6라운드에는 모모타가 김택민의 강력한 라이트 어퍼컷에 휘청거리며 KO직전까지 갔다. 몇 대의 연타만 더 이어졌어도 그대로 경기가 종료될 수 있었던 아쉬운 상황이었다.

모모타 입장에선 천신만고 끝에 6라운드를 버텨낸 휴식 시간 링 닥터가 김택민의 왼쪽 눈이 부은 것을 체크하려 코너 쪽에 와 상태를 점검했다. 그 후 7라운드가 시작되자 모모타는 김택민의 부어오른 왼쪽 눈을 부위를 집중 공격하기 시작했다. 왼쪽 눈이 부어 거리감이 떨어진 김택민은 모모타의 연타를 허용하며 코너에 몰렸고 심판은 기다렸다는 듯 경기를 중단하고 모모타의 TKO승을 선언했다. 모모타의 영리한 공격에 우직한 김택민이 말려드는 순간이었다.

 김택민이 7라운드에 모모타에 연타를 허용하고 있다

김택민이 7라운드에 모모타에 연타를 허용하고 있다 ⓒ 이충섭


김택민은 경기 후 눈 부상을 검사하기 위해 즉각 전담 병원으로 향했고 즉각적인 CT촬영과 세밀한 진단 끝에 뇌 출혈이나 안와골절 등의 부상 없는 단순 타박상으로 판명을 받고 숙소로 돌아왔다. 복싱 선진국 일본의 선수 안전관리 시스템을 엿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김택민의 경기를 직접 응원했던 에다가와 회장 (가운데)

김택민의 경기를 직접 응원했던 에다가와 회장 (가운데) ⓒ 이충섭


이재성, 김택민의 훈련을 후원하고 경기를 마련한 무토 프로모션 대표 에다가와 회장은 인터뷰를 통해 "양 선수의 경기력과 투혼은 일본 선수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다. 게다가 훈련 태도와 인성이 매우 훌륭해 체육관 동료들에게도 귀감이 되었다. 비록 김택민은 부상으로 뜻밖의 경기 결과를 얻었지만 안면 수비를 보완한다면 최고의 인기 선수가 될 것이다. 양 선수에게 기회를 더 주고 싶다. 또한, 한일간 정치적 사안과 관계없이 복싱을 통한 양국간 스포츠 교류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며 선수들을 격려했다.

 필자가 이재성 세컨으로 경기에 직접 참여했다

필자가 이재성 세컨으로 경기에 직접 참여했다 ⓒ 이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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