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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은 기억박물관이다. 발전이 더딘 탓에, 사람들 관심에서 벗어난 탓에 오래된 풍물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간혹 골목을 거닐다 1960~70년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낡았다' '고쳐서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시각이 많지만 몇 백년 전 집과 길을 고스란히 간직한 유럽이나 미국의 유서 깊은 도시들을 보면서 감탄하는 우리나라 관광객들을 보면 완전히 수긍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좀더 애정을 갖고 바라보고 가꾸면 골목은 새롭게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오랫동안 골목을 탐험하면서 발견한 보물들을 여기에 소개한다. - 기자말

인사벌레, 공벌레... 곤충과 놀던 시절

70-80년대 골목에서 보낸 어린 시절 곤충은 가장 흔하면서도 친숙한 동물이었다. 방아벌레와 쥐며느리가 인기가 많았다. 물론 사마귀는 예외.
 70-80년대 골목에서 보낸 어린 시절 곤충은 가장 흔하면서도 친숙한 동물이었다. 방아벌레와 쥐며느리가 인기가 많았다. 물론 사마귀는 예외.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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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골목에서 가장 흔하게 본 건 곤충이었다. 아이들은 몇 가지 곤충을 갖고 놀았는데 인기가 있는 건 방아벌레와 공벌레였다.

방아벌레는 잡으면 '똑딱' 하고 인사를 해서 모두들 '인사벌레'라고 불렀다. 방아벌레라는 이름은 아무도 몰랐다. 아이들은 방아벌레를 잡고 "그래, 어서 인사해봐" 하면서 명령을 내렸고, 벌레가 고개를 까딱하면 무척 재미있어 했다.

공벌레 또한 방아벌레와 비슷한 이유로 인기가 있었다. '툭' 건드리면 공처럼 '또르르' 몸을 말아서 '공벌레'라 불렸다.

공교롭게도 당시 가장 인기 있던 만화영화가 곤충 캐릭터가 주인공인 '날아라 태극호'(일본명 타임보칸)였다. 1977년 매주 수요일 동양방송(TBC)에서 방영된 만화영화를 보기 위해 오후 6시면 모두들 TV 앞에 모였다.

만화영화는 곤충을 본 딴 타임머신을 타고 모험을 하는 이야기다. 모두 세 가지 타임머신이 나오는데 풍뎅이형, 메뚜기형, 사슴벌레형 등이었다. 목적지에 따라 컴퓨터가 장비를 정하면 그 가운데 하나가 나타나 여행을 떠난다.

초등학교 앞에선 '날아라 태극호'에 나오는 타임머신 장난감을 팔았다. 내가 좋아한 건 세 개 가운데 풍뎅이형이었다. 장난감을 사서 갖고 놀다 잃어 버리면 또 사길 여러 번이었다.

어린 시절 곤충과 잘 논 게 그 만화영화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 곤충과 잘 놀았기 때문에 그 만화영화도 재밌게 본 것인지는 기억이 아스라하다. 어쨌든 그 시절 아이들은 누구나 흔하게 곤충을 갖고 놀았다.

잠자리도 인기가 있었다. 여름방학이면 방학숙제를 위해 잠자리 잡기에 나섰다. 잠자리가 얼마나 인기가 많았는지 학교 문방구마다 잠자리를 잡을 수 있는 전용채를 팔았다.

대부분 아이들은 맨손으로 잡았다. 조심조심 다가가서 두 손으로 감싸 안으며 잡았는데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다가가기 전에 잠자리가 달아나 버렸기 때문이다. 잠자리를 잡기 위해선 발소리를 죽이며 접근하면서도 잽싸야 했고, 빠르게 두 손을 겹치면서도 잠자리가 부서지지 않게 힘 조절을 해야 했다.

애초부터 그럴 자신이 없는 애들은 잠자리채를 써야 했지만, 돈이 드는 잠자리채를 살 아이들이 흔치는 않았다. 한 반에 몇 명 정도가 잠자리채를 들고 다녔고, 그 아이들은 나름 사는 아이들이었다. 가끔씩 뒷산이나 풀숲에서 보게 되는 여치도 인기가 있었지만, 도심 골목에선 보기 힘들었으니 자주 보게 되는 곤충은 아니었다.

모든 곤충이 다 인기 있는 건 아니었다. 사마귀는 인기가 없었다. 유추하자면 바이러스성 질환인 사마귀와 이름이 같아서가 아닐까 싶다. 몸에 나는 사마귀는 보기에 징그럽기도 하고 꽤 거추장스럽다. 그런 질환과 이름이 같았으니 곤충 사마귀 또한 이미지가 좋진 않았을 것이다.

생긴 모양 또한 곤충 사마귀는 귀여운 것과는 거리가  멀었고, '인사벌레'나 '공벌레'처럼 애정을 줄 수 있는 행동을 하지도 않았다. 다른 곤충들을 잡아먹고 사는 포악함도 아이들에게 미움 받은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곤충을 뺀 동물 가운데 아이들에게 인기를 얻었던 건 병아리였다. 국민학교(1996년 초등학교로 이름이 바뀜) 교문 앞에서 꽤 자주 병아리를 팔았기 때문이다.

70-80년대 초등학교 교문 앞에선 병아리를 많이 팔았다. 아이들은 주머니를 털어 저마다 병아리를 키웠다. 물론 대부분은 실패했고, 한동안 우울해했다.
 70-80년대 초등학교 교문 앞에선 병아리를 많이 팔았다. 아이들은 주머니를 털어 저마다 병아리를 키웠다. 물론 대부분은 실패했고, 한동안 우울해했다.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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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병아리는 인기가 좋았다. '복실복실'한 모양새며 노르스름한 털이 무척 귀여웠다. '짹짹' 거리는 소리도 아이들 발길을 붙들었다. 아이들이 병아리를 사지 않은 건 싫어서가 아니었다. 오로지 주머니 사정이 빈약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며칠 동안 용돈을 모은 뒤 마침내 병아리를 샀다. 나 또한 그 대열에 합류했다. 병아리를 사들고 집에 간 날 어머니는 난감해하면서 곧 큰 대야를 끄집어내오셨고, 배추와 같은 야채들을 먹기 좋게 썰어서 집어넣으셨다. 병아리들이 부지런하게 먹는 걸 보면서 흐뭇해했다.

기쁨은 하루를 가지 못했다. 한밤중 유난히 "삐약" 소리가 요란했고, 나가봤을 때 이미 대부분이 사라지고 없었다. 남아 있는 몇 마리도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어머니는 고양이 소행이라고 말했다.

아마 그 때 처음 느꼈던 것 같다.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서. 다음날 여동생과 같이 무덤을 만들었다. 무덤을 만들자니 여러 고민이 들었다. 깊이는 어느 정도 해야 할지, 넓이는 어느 정도 해야 할지, 봉분은 어느 정도 높이로 만들어야 할지, 봉분 위에 상징은 뭐로 해야 할지 등등 고민할 게 많았다.

그 뒤로 애완동물을 다시는 기르지 않았다.

병아리를 기르고 죽이는 일이 일기 쓰는 일처럼 흔하던 시절, 선생님 중에는 병아리 관련 직업을 이야기한 분이 있었다. '병아리 감별사'가 이름은 우습지만 앞으로 전망도 밝고, 수입도 만만치 않다는 내용이었다. 그 선생님의 조언은 꽤 현실상황에 맞았지만 초등학생들에게는 너무 빨랐다.

"최근 국내에서 '붐'을 일으키고 있는 매력 있는 직업 중에는 '치킨 섹서'라는 것이 등장하고 있다. 특히 외국에 유학을 꿈꾸는 유학생 희망자들에게 최고의 인기가 있다는 병아리 감별사.… 병아리 감별사가 가장 대우를 받고 있다는 미국의 경우 '치킨 섹서'의 수입은 월 2만불 정도로 변호사나 국회의원의 수입과 맞먹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매일경제>(1968년 5월 11일)

장래 직업이나 미래를 생각하기에 우리들은 너무 어렸고, 그런 우리들을 선생님은 너무 몰랐다.

다행히 초등학생인 우리들은 포기가 빨랐고 궁금한 게 너무 많았다. 병아리가 죽으면 그날 하루 열심히 슬펐지만, 다음날이면 또다시 벌어지는 일상으로 바빴다.

골목의 파수꾼 개, 대문 밖으로 뛰쳐나오지 않을까 두려워

조금씩 도시에서 자기 집을 가지기 시작하던 시절, 집을 지키는 파수꾼은 개였다. 덩치가 크고 목소리가 우렁차야 했으니 아이들에게 개는 공포였다.
 조금씩 도시에서 자기 집을 가지기 시작하던 시절, 집을 지키는 파수꾼은 개였다. 덩치가 크고 목소리가 우렁차야 했으니 아이들에게 개는 공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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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충과 함께 골목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건 개였다. 당시 개가 없었던 집은 드물었다. 경찰은 부족했고 '캡스'나 '에스원' 같은 민간보안업체는 아예 없던 시절 개는 가장 훌륭한 보안관이었다. 해서 자기 집을 가진 주인들은 의례 대문 가장 가까운 곳에 개를 묶어두었다.

도둑으로부터 집을 지키기 위한 목적이었으니 개는 크고 사나울수록 좋았다. 그 시절 들었던 개 이름은 '황구' '누렁이' '해피'였다. 털이 희면 '백구'였고, 노란색이면 '황구'였다. '흑구'는 들어본 기억이 없다. 당시엔 특이하게도 영어 이름도 많아서 '해피'나 '메리' 같은 이름을 심심찮게 들었다.

개들은 대문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 묶여 혹시나 근처를 지나치면 '왈왈' 심하게 짖었다. 대부분 덩치가 큰 개였으니 묶인 줄이 출렁거리는 소리가 컸고, 목소리 또한 우렁찼다. 그 기세란 대문을 부수고도 남았겠지만, 대문이란 게 그리 호락호락하진 않았다.

개를 묶은 줄은 항상 대문까지 미치지 못했으나 중요한 건 소리였다. 개가 낯선 사람을 보고 짖기만 하면 됐다. 오로지 주인 외에는 '나쁜놈'이라는 교육을 받은 애들이었으니, 아이들 처지에서 개와 친해지긴 어려웠다.

처음으로 개가 귀엽다고 생각한 건 어미가 낳은 새끼를 봤을 때다. 초등학교 4~5학년 때쯤이었던 것 같다. 겨울을 앞뒀을 때다. 어미개가 새끼를 잔뜩 낳았다. '복실복실' 털이 난 새끼들이 어미 품에 안겨 젖을 빠는 모습은 무척 귀여웠다. 그 중 꼭 한 놈이 젖을 빨지 못해 허둥거리던 모습이 안쓰러웠던 기억이 난다. 당시 주인 할머니는 얼어 죽지 말라고 이불을 내어놓았다. 그 노력에도 몇 마리가 얼어 죽었다.

강아지를 보면서 개가 참 예쁘다고 느꼈던 것 같다.
 강아지를 보면서 개가 참 예쁘다고 느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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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내가 그 개와 강아지들을 본 건 주인집에서 개를 키웠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개가 밥을 먹고, 놀고, 애교를 떠는 모습을 보긴 어려웠다.

그 때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골목을 여행하면서 개와 고양이들을 많이 보게 된다. 여전히 개들은 집 안에서 짖는다. 사람들과 식구처럼 지내는 반려견 숫자가 말도 못하게 많이 늘어났지만 골목에서 흔하게 보진 못했다.

고양이들을 심심치 않게 봤다. 이 녀석들은 버려졌거나 길에서 태어난 애들이다. 이 녀석들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골목엔 주로 낮은 사람들이 산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는 사람들, 굳이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싶지 않은 사람들, 높은 곳이 싫어서 떠난 사람들, 높은 곳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산다.

비슷한 처지에 놓인 동물들이 돌아다니는 걸 보면서 골목이 지닌 역할을 생각하게 된다.

버려진 개·고양이들 모여드는 골목, 재개발로 사라진다면...

요즘 버려지는 동물들이 꽤 많다. 골목에선 버려지진 않았지만 담벼락 밑에서 쉬고 있는 개와 버려진 채 쉴 곳을 찾아 돌아다니는 고양이들을 본다. 그 동물들을 보면서 골목이 주는 편안함을 느낀다.
 요즘 버려지는 동물들이 꽤 많다. 골목에선 버려지진 않았지만 담벼락 밑에서 쉬고 있는 개와 버려진 채 쉴 곳을 찾아 돌아다니는 고양이들을 본다. 그 동물들을 보면서 골목이 주는 편안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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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에서 끈이 없거나 풀린 개 또는 고양이를 보는 건 그리 반가운 일은 아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버려진 이들이기 때문이다.

2002년 전국에서 버려진 동물은 1만5958마리. 2011년엔 9만6268마리로 9년 사이에 6배가 늘었다. 매년 무척 빠른 속도다. 어린 시절이나 10여 년 전 전국 골목을 돌아다닐 때를 생각해보면 확실히 골목에서 마주치는 동물 숫자가 늘어났다.

도시 골목에서 끈 풀린 개를 거의 볼 수 없는데 반해 시골 골목은 다르다. 종종 끈 풀린 개를 보는데, 그 상태가 익숙한지 아주 얌전하게 제 할 일을 한다. 집 앞에서 볕을 쬐거나 누워 낮잠을 잔다. 끈 풀린 개들 중에서 사나운 눈을 하고 덤비는 경우를 당한 적이 드물다. 자전거를 타고 달릴 때는 물론 예외다. 하지만 천천히 걸어 다닐 때 개 때문에 위협을 느낀 적은 없다. 운이 좋아서인지 아니면 애당초 그렇게 자랐기 때문인지 판단하기 어렵지만 후자 쪽에 걸고 싶다.

요즘 골목에서 가장 많이 보는 동물은 고양이다. 걔들 중에는 제법 털색깔이며 상태가 좋은 애들이 있다. 잘 먹고 잘 사는 애들이거나 최근에 버려진 애들일 가능성이 높다. 전자일 경우 동네가 잘 키우는 것 같아 마음이 좋다. 고양이 평균 수명이 15년 정도인데 길고양이 수명은 3년 이하로 본다. 길고양이의 고단한 삶이 명을 줄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씁쓸하다.

길고양이는 대부분 토종 고양이라고 한다. '아메리칸 숏 헤어'를 본 따서 '코리안 숏 헤어'라고 부른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다. 줄여서 '코숏'이라고 부르는 것도. 골목을 누비면서 알게된 사실들이다.

골목에서 쉬는 고양이들이 주로 있는 곳은 담이나 지붕이다. 고양이들은 덜 깬 눈을 한 채 조심스럽게 나를 살핀다. 위협이 되는 존재인지 아닌지 관찰하면서도 휴식을 계속 이어가고 싶은 눈치였다.

길고양이들은 상황에 따라 집을 구하는데 거처가 일정치 않았다. 지붕에서도 보고, 나무 밑에서도 보고 자동차 밑에서도 봤다. 그늘이 있으면서도 밀폐된 곳을 좋아했다. 한 고양이는 파이프가 집이었다. 그 때 파이프가 굴과 비슷하면서 대량생산이 가능해 아파트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하지만 사람 또한 그렇듯이 삶이 팍팍한 고양이들에게 아파트는 사치다. 파이프더미는 보기도 힘들었고, 파이프더미에 사는 고양이도 그 뒤론 보지 못했다.

고양이는 굴과 비슷한 환경을 좋아한다. 굴 속에 숨은 고양이를 보면서 고양이 아파트를 떠올렸다.
 고양이는 굴과 비슷한 환경을 좋아한다. 굴 속에 숨은 고양이를 보면서 고양이 아파트를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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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문 경우였지만 왼쪽 귀에 V자 표시가 된 고양이를 본 적이 있다. 중성화를 했다는 뜻이다. 중성화를 해야 적게 울어서 시끄럽지 않고 다른 고양이들과 다툼이 줄어든다. 중성화수술을 한 걸 보면 누가 키우다 버렸거나, 공공기관이나 관련 기관에서 수술을 한 뒤 풀어줬다는 뜻이다.

내가 본 고양이는 왼쪽에 V 표식을 했다. 암컷이라는 뜻이다. 중성화 수술을 한 뒤 V표시를 암컷은 왼쪽, 수컷은 오른쪽에 한다. 대부분은 중성화수술이 돼 있지 않았다.

2011년 겨울 제주도에서 본 고양이무리 모습은 감동이었다. 아무리 제주도라도 12월말은 꽤 추웠다. 마침 눈까지 내린 날이었다. 나무 아래 고양이가 있었다. 처음에 형체를 알기 어려웠다. 담요를 덮은 줄 알았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고양이 일곱 마리가 뭉쳐서 체온을 유지하고 있었다. 나름대로 질서가 있었는데, 새끼를 가운데 넣고 큰 놈들이 바깥을 지켰다. 이불 한 장 없이 저렇게 겨울을 나는구나 싶어 괜히 가슴이 뭉클했다.

한겨울 제주도에서 본 고양이 무리. 눈이 '펄펄' 내리는 가운데 한데 뭉쳐 추위를 이기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해졌다.
 한겨울 제주도에서 본 고양이 무리. 눈이 '펄펄' 내리는 가운데 한데 뭉쳐 추위를 이기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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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이 사라지면 사람들은 새집이나 아파트로 옮겨간다. 원래 살던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떠나는 경우가 꽤 많다. 뿌리를 내리고 정을 붙인다는 측면에서 골목을 깡그리 없애는 게 좋은 일은 아니다.

게다가 골목에는 사람뿐만 아니라 여러 동물들이 산다. 골목이 사라지면 이들 동물들도 새로운 쉼터를 찾아야 한다. 어쩌면 사람들이 자리를 잡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지도 모른다.

개와 고양이가 사는 모양새를 보면 골목이 아파트단지가 있는 동네보다 훨씬 더 많은 생명체를 먹여 살리는 셈이다. 골목이 사라질 때 힘겨워할 생명체가 단지 사람만은 아닐 것이다. 골목에서 찍은 사진들을 들춰보니 그곳에서 살고 있는 동물들 모습이 어른거린다.


태그:#골목, #개 , #고양이, #곤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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