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더 나은 미래를 향한 동행'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신호를 기다리는 도중 '동행' 이라는 문구가 시선에 확 들어왔다. 지난 십 몇년간 매일 이 길을 왕래했지만 무심코 지나치던 곳, 울산 북구 양정동 현대자동차의 정문에는 이 문구가 크게 걸려 있었다.

23일 오전 11시경 취재차 방문한 현대차. 정문에서는 출입이 쉽게 허용되지 않았다. 하염없이 내리는 비는 지긋지긋했던 폭염을 식혀줘 좋았지만 어느새 바지의 반을 젖게 만들었다. 취재차 이곳을 방문했지만 회사 노무팀의 허락을 받지 못해 현대차 정규직노조의 도움을 얻어 30여분을 기다린 후에야 간신히 현대차 공장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현대차 정규직 노조 과연 어떤 결정할까

현대차 사내하청(비정규직) 노조가 22일 현대차 울산공장 노조사무실 앞에서 농성하고 있다. 하청노조는 현대차가 제시한 3천명 정규직화안에 반대하고 불법파견 협상을 따로 하자는 입장을 정규직 노사측에 밝혔다
▲ 현대차 노조사무실 앞 농성하는 비정규직 현대차 사내하청(비정규직) 노조가 22일 현대차 울산공장 노조사무실 앞에서 농성하고 있다. 하청노조는 현대차가 제시한 3천명 정규직화안에 반대하고 불법파견 협상을 따로 하자는 입장을 정규직 노사측에 밝혔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빗길을 뚫으며 정문 오른쪽으로 200m 가량 걸어가자 '금속노조 현대차지부' 라는 간판이, 이 건물의 왼쪽 한켠에 '현대차비정규직지회'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 현대차노조 건물앞에서 지난 22일 아침부터 비정규직노조가 농성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날 농성은 없었다. 비정규직노조는 22일 집회를 하면서 "임단협에서 비정규직 3000명 정규직화 안을 특별교섭으로 분리해달라"고 요구했고, 정규직노조는 일단 그 안을 받아들였다. 단, 정규직노조는 이 내용을 24일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어 표결에 부친다는 방침이다. 이 때문에 정규직, 비정규직이 함께 사용하는 노조 건물에는 긴장감 마저 감돌았다. 대의원 대회 결과에 따라 사태가 어떻게 진행될 지 모르기 때문이다.

정규직노조는 2층 휴게실 한편을 비정규직노조 해고자들이 사용토록 허락했다. 30여명의 비정규직 조합원들이 휴게실을 꽉 채운 채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2010년 말 정규직화 요구 공장 점거 농성 후 해고된 조합원들이었다.

이들의 고민은 24일 있을 정규직노조의 대의원 대회 결과와 그 이후 전개될 이번 파업의 향방 등이었다. 의견은 한 곳으로 모아졌다. 기존 비정규직들의 정규직화 안을 반드시 관철시킨다는 것.

한 조합원은 "지금 우리는 이미 대법원이 법으로 판정한 우리의 권리를 찾을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기로에 서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조합원은 "현대차 회사가 불법파견을 합법화 하는 기준을 만들고 있다. 이는 결사 반대다"고 밝혔다. 회사가 2015년까지 3000명을 정규직화 하겠다는 안을 두고 하는 이야기였다.

이들에 따르면 비정규직노조내에서도 다소 이견이 있었다. 힘이 센 정규직노조가 임단협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안을 다뤄야 한다는 소수 입장이 그것. 전주공장 비정규직노조에서도 이런 안을 울산공장에 전달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노조의 한 간부는 "단, 이 의견도 회사측이 제시한 2015년까지 3000명 정규직화 안이 아니라 전원 정규직화를 전제로 한 안"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다수 의견에 따라 노조의 기본 입장은 정규직노조가 임단협에서 비정규직 요구안 부분을 분리하고, 특별교섭에서 다루자는 것으로 정해졌다.

"법 만인에게 평등해야 하지 않겠나"

21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본관 앞에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 현대차 비정규직 집회 21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본관 앞에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정규직노조 휴게실을 나와 건물 왼편에 있는 비정규직노조 사무실을 찾았다. 이곳 2층에는 노조 간부 20여명이 토론 중이었다. 이들 간부는 대부분 농성 등으로 해고된 조합원들이다.

회사로부터 손해배상을 당해 어렵지 않냐는 질문에 한 노조 간부는 "10년 째 손배 소송을 당하고 있다. 그러나 견딜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 10년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내와 자녀들에겐 미안하다고 했다. 그는 아르바이트와 임시직으로 생계를 이어오다 이번에 노조간부를 맡아 노조일에 전념하고 있다.

그는 10년 동안 회사와 싸움을 계속하는 이유에 대해 "노동부와 대법원이 정규직화하라고 판결했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해야하지 않겠나. 그것을 위해 싸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법이 상식적으로 통용되는 사회가 되야 한다"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지난 20일 밤 있었던 현대차와 비정규직노조의 충돌로 상당수 언론이 비정규직노조가 죽창을 사용했다며 폭력성을 부각하고 있다.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정말 대나무를 깎아 죽창을 만들었나"고 묻자 비정규직노조 간부들은 이구동성으로 "아니다. 진짜 대나무를 뽀족하게 깎았으면 지금처럼 회사가 가만이 있겠나? 수적으로 열세인데다 그동안 폭력을 당해온 터라 만장 깃대로 사용하던 대나무로 방어를 했을 뿐이다"고 했다.

한 노조간부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보고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한다고 하더라. 하지만 납치와 폭행을 당하며 함께 있었던 비정규직들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꼭 법으로 정한 권리를 쟁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노조는 24일 오후 임시 대의원대회를 열어 올해 임금협상안에 포함됐던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요구안을 분리하는 수정 제시안을 표결할 계획이다. 현대차노조 대의원은 울산공장 264명을 포함해 모두 505명. 이날 참석한 대의원 중 과반이 찬성하면 정규직화안은 임단협 안에서 분리돼 특별교섭에서 다루게 된다. 표결 전망에 대해 현대차노조 관계자는 "가부 여부를 지금 어떻게 단정할 수 있나, 대의원 개개인 성향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내일 표결에 가봐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태그:#현대차비정규직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