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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3년 친구에게 선물받았던 <장준하문집> 사상계지 수난사. 20년 만에 다시 읽었다. 장준하가 누군인지 조금 더 알게 되었다.
 1993년 친구에게 선물받았던 <장준하문집> 사상계지 수난사. 20년 만에 다시 읽었다. 장준하가 누군인지 조금 더 알게 되었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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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수형, 하나님과 그 역사 앞에 부끄럼없이 살아가도록 합시다. 어려울 겝니다. 분명히..."

1993년 2월 한 친구가 선물한 <장준하문집>-'사상계지 수난사'에 적힌 문구입니다. 솔직히 그 때까지 장준하라는 이름과 '사상계'란 이름도 처음 들었습니다.

하지만 책갈피를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친구가 왜 "부끄럼없이 살아가자"고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19년이 지났습니다.

친구가 선물한 <장준하 문집>

책이 나온 때가 1988년 8월이었으니 책 나이는 24년, 선물 받은 때를 치면 19년이 된 이 책을 다시 손에 든 이유는 장준하 선생 유골을 이장하면서 확인된 두개골 함몰 때문입니다.

언론을 통해 보도된 장 선생 두개골을 보면서 그 동안 제기되었던 박정희 독재정권이 저지른 타살 의혹이 사실에 가깝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물론 진상규명을 통해 법의학적 결론이 날 때까지 확정할 수 없지만 박정희 정권이 폭압성이 점점 드러나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장준하 문집>은 장준하 선생 10주기를 추모하면서 펴낸 책으로 김재준, 함석헌, 김성식, 홍남순, 문익환, 안병무, 계훈제, 문동환, 백기완 선생등이 위원으로 참가했습니다. 이 분들 중 김재준, 함석헌, 홍남순, 문익환, 안병무, 계훈제 선생 등은 이 땅에서 볼 수 없는 분들입니다.

<장준하문집>에서 눈에 띈 대목은 박정희가 일으킨 '5.16군사반란' 직후 나온 <사상계> 6월호 권두언입니다.

4.19혁명이 입헌정치와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민주주의 혁명이었다면, 5.16혁명은 부패와 무능과 무질서와 공산주의의 책동을 타파하고 국가의 진로를 바로 잡으려는 민족주의적 군사혁명이다. 따라서 5.16혁명은 우리들이 육성하고 개화시켜야 할 민주주의의 이념에 비추어 볼 때는 불행한 일이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으나 위급한 민족적 현실에서 볼 때는 불가피한 일이다.-본문 263쪽

"5.16 불가피한 일" 하지만 3년 후 "국민 배반"

아직도 논란이 되는 부분입니다. 군사반란을 "불가피한 일"이라고 평가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내 박정희 군사정부가 민의를 배반하고, 민정이양에 대한 신뢰를 잃자 이내 비판합니다.

우리는 군의 정치적 중립을 염원하며 정치에 의한 오염화를 경계한다. 군을 정쟁 도구로 삼는 전례를 일소하고 관권에 의한 정당 조직을 무로 돌림으로써 새 공화국을 깨끗한 기반 위에 올려 놓아야 한다. 그리고 군인답게 깨끗이 정권을 이양하고 정파에 초연한 준열한 도덕적 견제 세력이 되기를 바란다. 민주적 민간 정부의 탄생은실로 양심적이요, 민주적인 민간인의 자유로운 정치 참여에 의해서만 보장된다. 혁명 당국은 순연한 민정의 선거 관리의 소임을 다하라.(<사상계> 1963년 2월호)

특히 1964년 '김종필·오히라 메모' 논란이 일자 긴급증보판까지 내면서 "제2의 이완용이를 낼 수 없다는 심판의 숭엄함 소리를 듣는가"라며 굴욕 외교로 규정합니다. '우상을 박멸하라!'는 제목 글에서 "명목상의 6억불, 실질상의 3억불로 누란의 경제 위기를 현상유지 있다는 관념의 우상을 파괴하라! 제2이완용이 있다면 제2의 합병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그 우상을 박멸해 버려야 한다"고 분노합니다.

 광복군 장교로서 1945년 국내 진공작전을 위해 중국 시안에서 미국 정보기관(OSS) 특수 훈련을 받던 당시의 장준하 선생(오른쪽)과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가운데), 노능서 선생
 광복군 장교로서 1945년 국내 진공작전을 위해 중국 시안에서 미국 정보기관(OSS) 특수 훈련을 받던 당시의 장준하 선생(오른쪽)과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가운데), 노능서 선생
ⓒ 장준하기념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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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하 선생은 1944년 일본군의 학도병으로 중국에 파병됐으나 그해 7월 일본군 병영에서 탈출한 뒤 중국군을 거쳐 그해 11월 53명의 동지들과 함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있던 충칭까지 2400㎞ 길을 걸어 백범 김구 산하의 광복군에 합류했습니다. 이어 광복군 장교로서 국내 진공작전을 위해 미국 정보기관(OSS) 대원을 자원해 특수 게릴라 훈련을 받았던 삶에 비교하면 당연한 결과입니다.

장준하 선생의 박정희 정권을 향한 비판은 계속됩니다. 1964년 5월호 권두언에서 "국민을 배신했다"며 박정희를 향해 '펜의 칼'을 겨눕니다.

혁명공약은 3년을 지나는 동안에 국민을 배신하고 스스로를 기만한 결과가 되고 말았다. 우리는 5.16의 주체만은 국민과의 철석같은 약속을 지키는 새 세력이기를 기대했고 집권 연장보다, 민주국가의 초석을 세우는 데나 결과는 너무도 비참하여 공약의 과업을 성취하기는커녕 '민주 공화국의 굳건한 토대'를 밑으로부터 흔들어 놓는 무능. 무책임의 장본인으로 전략하는 현실을 보는 것이다. - 본문 350쪽

당시 박정희 정권 부정부패가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 하나가 "최근에는 이조5백년을 망친 봉건적인 세도정치의 망령을 보게 되었다"고 까지 했습니다. 조선이 몰락한 배경이 세도 정치였는데 박정희 정권이 세도 정치와 별 다르지 않다는 분노입니다.

"한일수교, 배반자 무리가 도리어"

한일수교에 대한 비판도 계속됩니다. 1965년 6월호 권두언에서 "한일수교라는 미명 아래 집정자와 부정과 그 폭력은 최고에 달하고 있다. 배반자의 무리가 도리어 가상할 만한 군상으로 통용되고 매국하는 자가 스스로 애국하는 자라고 불러도 아무도 그를 탓하지 못하게 되는 것 같다"며 박정희 정권을 '매국정권'으로 규정합니다.

 장준하 선생은 <사상계> 1965년 6월호 권두언에서 "한일수교라는 미명 아래 집정자와 부정과 그 폭력은 최고에 달하고 있다. 배반자의 무리가 도리어 가상할 만한 군상으로 통용되고 매국하는 자가 스스로 애국하는 자라고 불러도 아무도 그를 탓하지 못하게 되는 것 같다"고 박정희 정권의 한일수교에 대해 직격탄을 날렸다.
 장준하 선생은 <사상계> 1965년 6월호 권두언에서 "한일수교라는 미명 아래 집정자와 부정과 그 폭력은 최고에 달하고 있다. 배반자의 무리가 도리어 가상할 만한 군상으로 통용되고 매국하는 자가 스스로 애국하는 자라고 불러도 아무도 그를 탓하지 못하게 되는 것 같다"고 박정희 정권의 한일수교에 대해 직격탄을 날렸다.
ⓒ 김동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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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박정희 정권에 저항을 촉구합니다.

악하고 부정하고 폭력적인 집권하에 있어서 민중은 항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항거는 한두 번의 민중봉기로써 성공을 거둘 수 없다. 좌절된 항거가 다시금 새로운 정신과 전략과 조직을 자극시켜서 좀 더 강대한 민중세력을 형성시킬 때 우리는 진보하는 민족사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중략) 봄이 온다. 꽃이 핀다. 저항의 계절에 우리는 민중의 새로운 승리, 민족사의 거대한 긍정을 다짐하자."-1967년 2월호 '저항의 자세를 적극화하자'

민중은 항거하지 않을 수 없다

장준하 선생은 박정희 정권이 아무리 폭압적이라고 할지라도 봄이 올 것임을 믿었습니다. 비록 자기 생애에는 무너진 박정희를 보지 못했지만 결국 박정희는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민주주의 봄이 오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이만큼 진보했습니다.

빛바랜 <장준하 문집>을 다시 펼쳤습니다. '광복군' 출신 장준하 선생이 '황군장교' 출신 독재자 박정희 비판이 사적인 것이 아니라 민족과 민주주의에 근거했음을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 장준하 선생 사인에 대한 진상이 규명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다시는 폭압정권이 시민을 해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장준하문집>-'사상계지 수난사'(장준하 지음 ㅣ 장준하 선생 10주기 추모문집 간행위원회 편저 ㅣ 값 3,900원 1988.08.15



민족혼 민주혼 자유혼:장준하의 생애와 사상

장준하선생추모문집간행윈원회, 나남출판(1995)


#장준하#사상계#박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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