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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마련된 기도실에서 무슬림 여대생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다.
 학교에 마련된 기도실에서 무슬림 여대생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다.
ⓒ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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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경희대학교 국제캠퍼스 내 한 강의실은 매주 금요일 '기도실'이 된다. 의자와 책상 대신 바닥에 커다란 카펫이 깔리고 약 80명의 무슬림 학생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는다. 코란을 암송하는 그들의 목소리가 강의실 너머로 울려 퍼진다.

금요일마다 합동 예배를 드려야 하는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공간은 강의실뿐이었다. 매번 책상과 의자를 정리해야 하지만 불만은 없다. 100명이 넘는 무슬림 유학생들이 공부하는 건물에는 그들만을 위한 '기도실'이 따로 마련돼 있었다. 하루에 다섯 번 정해진 시간에 기도해야 하는 무슬림 학생들을 위한 학교의 배려다. 그러나 20여 명 정도밖에 들어갈 수 없는 협소한 공간인 탓에 합동 예배를 위해서는 넓은 강의실을 빌려 써야 한다.

무슬림 대학생들 "한국 대학 다니며 가장 힘든 게 음식"

지난 13일 오후 2시 30분경, 기도실에는 오후 예배를 마친 3명의 무슬림 여학생들이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남녀가 각자 다른 공간에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 무슬림의 특성상 기도실 이용 시간이 따로 나뉘어져 있다. 여성 기도시간에 남성은 출입할 수 없다. 컴퓨터 엔지니어링을 공부하기 위해 파키스탄에서 유학을 왔다는 그들은 "넓으면 더 좋겠지만 학교 내 기도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2012년 4월 기준 한국 대학·대학원에서 학위 과정에 있는 무슬림 유학생(국제이슬람회의기구에 가입된 이슬람 국가에서 온 유학생으로 한정)은 약 3139명이다. 비이슬람 국가에서 온 무슬림 유학생, 한국인 무슬림까지 더한다면 국내 대학 내 무슬림 학생 수는 결코 적지 않은 숫자다. 그러나 대학 내에서 그들이 마음 놓고 기도할 수 있는 공간은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상대적으로 무슬림 학생의 수가 많은 서울대학교,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국민대, 경희대 등 몇 개 대학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학교가 무슬림 학생들을 위한 공간을 제공하지 않는다.

김태훈(가명, 25)씨는 4년 전 인터넷으로 해외 펜팔을 통해 만난 이슬람권 친구와 얘기를 나누다 이슬람에 입교했다. 시골에서 올라와 서울의 한 대학 근처 고시원에 살고 있는 김씨는 "무슬림이 소수이다 보니 학교에서 기도실을 만들어주지 않는 점은 이해하지만 학교 내에서 예배를 드리는 일은 쉽지 않다"며 "수강신청을 할 때 일부러 예배시간을 피해 시간표를 짜고 수업이 없더라도 기도는 고시원에 돌아와서 한다"고 말했다.

김씨에게 기도공간이 없는 것보다 더 큰 고민은 '음식'이다. 차상위계층인 김씨가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은 기껏해야 학교 내 구내식당.

"하루 세 끼 거의 다 학식(학생식당)으로 때우는 편이에요."

이태원 주변 상점에서 무슬림들을 위한 할랄 고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태원 주변 상점에서 무슬림들을 위한 할랄 고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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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매끼 '메뉴'를 고르는 일이 김씨를 지치게 한다. 무슬림은 원칙적으로 돼지고기를 먹을 수 없다. 돼지고기를 제외한 다른 고기의 경우 이슬람식으로 도축된 '할랄' 고기만 허용된다. 그래서 무슬림들은 음식을 먹기 전에 어떤 성분이 들어있는지 늘 확인해야 한다. 고기 성분이 들어 있는 과자나 쇠고기 다시다가 들어간 음식조차 먹을 수 없는 탓이다.

2000∼3000원짜리 저렴한 학생 식당 음식에는 보통 돼지고기가 들어 있다. 김씨가 다니는 학교 내에는 3개의 구내식당이 있다. 김씨는 식사 때가 되면 매번 고기가 나오지 않는 메뉴를 확인한다. 모든 식당에서 고기가 나오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그럴 때는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김치밖에 없어 학교 밖 식당을 찾기도 한다.

구내식당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한정적인 탓에 많은 무슬림 대학생들이 직접 요리를 해먹거나 채식 위주의 식단을 선택한다. 경희대학교에 다니는 아마 아완(28, 파키스탄)씨는 "한국 대학에 다니며 가장 힘든 점이 음식"이라며 "식당에 갈 때마다 매번 고기를 빼달라고 부탁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유학생들이 많아지는 만큼 한국 대학에서도 영국이나 미국처럼 할랄 고기를 제공하는 공간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마실 수도 안 마실 수도 없죠"... '술 권하는 문화'에 정체성 흔들

한국 대학에서 술은 빠질 수 없는 문화 중 하나다. 드라마 속 한 장면.
 한국 대학에서 술은 빠질 수 없는 문화 중 하나다. 드라마 속 한 장면.
ⓒ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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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배성준(21)씨에게 가장 힘든 건 '술'이다. "한국 대학 문화에서 어디 술을 빼놓을 수가 있나요?" 배씨는 한국이슬람학생회장으로 활동하는 등 평소에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하며 지낸다. 그는 "또래 대학생들과 어울리려면 분위기상 혼자 술을 먹지 않을 수 없다"고 토로했다.

"선후배 혹은 교수님을 만나는 자리에서 잘 어울리려면 일단 술을 먹어야 돼요. 안 먹으면 혼자 튄다고 해야 하나? 직접 강요하는 건 아니지만 분위기라는 게 있잖아요. 술자리 때문에 신앙을 지키기 어려울 때가 많아요. 한국인 대학생이라면 먹어야 하고 무슬림이라면 먹지 말아야 하는데… 먹을 수도 안 먹을 수도 없는 상황에 놓인 적이 많아서 정체성 혼란을 겪기도 했어요."

술 문화가 익숙한 한국 대학에서 고초를 겪는 건 한국인 무슬림만이 아니다. 파키스탄 출신의 아비드 하싼(28)씨는 "언젠가는 교수 한 명이 무슬림 학생들에게 술을 먹지 않으면 낮은 성적을 주겠다고 협박하듯 술을 강요한 적도 있다"며 "물론 취해서 그랬을 테고 이후에 어떤 불이익도 없었지만 그런 상황에서 굉장히 난감하다"고 말했다.

'이태원 이슬람 사원'이라고도 불리는 서울중앙성원.
 '이태원 이슬람 사원'이라고도 불리는 서울중앙성원.
ⓒ 김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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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3살 아직 대학도 마치지 않은 이재훈(가명)씨는 이제 막 두 달 된 아이의 아버지다. 사고를 친 게 아니다. 지난해 가을쯤 성원(이태원에 있는 이슬람 사원)에서 만난 무슬림 여성과 사랑에 빠진 이씨는 '만난 지 한 달' 만에 결혼했다.

"이슬람에선 결혼 후 사랑이라고 하죠. 지금 아주 잘 살고 있어요, 우린."

기독교인이었던 이씨는 유학 생활 중 만난 무슬림 친구를 통해 무슬림이 됐다. 만난 지 한 달 만에,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결혼을 할 수 있을까? 한국사회에서는 누구나 놀랄 법한 일이지만 이씨는 "무슬림들은 원래 이렇게 결혼한다"며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무슬림들은 원칙적으로 '연애'가 금지돼 있다. 여성은 바깥출입 시 '히잡'이라 불리는 머리 수건을 써야 하고 친인척이 아닌 남성과는 개별적으로 만날 수 없다. 이성과 사교 목적으로 만나는 것은 금지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결혼을 위한 연애의 과정이 생략되어 있는 것이다. 무슬림들의 결혼은 대부분 '중매혼'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최근 이슬람권 결혼 문화도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현대 사회에 걸맞게 이슬람 교리도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터키나 말레이시아의 경우 결혼 전 남녀 간 교제가 이뤄지기도 한다. 배성준씨는 "연애는 사실 원칙적으로 금지돼 있지만 이슬람 국가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나타난다"며 "순결에 대한 건 마찬가지로 동의하지만 연애는 어느 정도 개인의 문제라서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학생 김성민(가명, 22)씨 역시 "무슬림은 연애하면 안 된다고 하지만 자신이 선택하고 판단할 일"이라고 말했다.

"우리도 보통 대학생처럼 연애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그렇지만 남들에 비해 확실히 남녀관계를 쉽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요. 조심스러운거죠. 다른 애들처럼 좋다고 해서 무작정 좋다고 말할 수도 없어요. 좀 더 신중해지는 것 같아요."

무슬림으로 사는 것, 어렵지만 '행복' 위해 택한 길

"개인적 영욕을 취한다거나 성공하고 싶었다면 이슬람을 선택하지 않았을 거예요. 말 그대로 한국에서 이슬람은 '돈 안 되는 종교'니까요. 그렇지만 다른 종교인들과 마찬가지로 이슬람을 통해 행복을 느껴요. 요즘은 경제든 뭐든 계급사회잖아요. 이슬람에서는 누구나 평등해질 수 있거든요."

이슬람은 세계 3대 종교 중 하나로 세계 인구의 23%가 무슬림이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 소수종교로 자리하고 있다. 인터넷이나 유학을 통해 해외문화를 자주 접하면서 비교적 개방적이고 유연한 무슬림 대학생들도 한국 사회에서 자신의 종교를 밝히기는 쉽지 않다.

배성준씨는 "가까운 친구들은 제가 무슬림인 걸 알고 있지만 동아리 활동이나 다른 대학생들을 만나는 자리에서는 굳이 밝히지 않는다"며 "배려를 해주는 경우도 많지만 놀라거나 이상하게 보는 시선이 더 많다"고 말했다.

평소에 히잡을 즐겨 쓴다는 최아람(24·가명)씨는 "학교에 갈 때는 일부러 히잡을 쓰지 않는다"고 했다.

"히잡은 여성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도구예요. 쓰고 안 쓰고는 본인의 선택이죠. 학교에서는 이해를 못하는 친구들도 많고 오히려 남의 시선을 끄는 것 같아서 쓰지 않는 편이에요. 내 믿음도 믿음이지만 아직 이슬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한국 사회에서는 남에 대한 배려도 있어야 할 테니까요."

터키 이스탄불 블루모스크 사원을 찾아 기도하는 무슬림
▲ 기도하는 무슬림 터키 이스탄불 블루모스크 사원을 찾아 기도하는 무슬림
ⓒ 김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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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무슬림 대학생, #이슬람,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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