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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흥호 씨가 설치해 놓은 대통찜란 무인판매대. 조선시대 대표적인 민간정원으로 꼽히는 담양 소쇄원의 주차장 한켠에 서 있다.
 정흥호 씨가 설치해 놓은 대통찜란 무인판매대. 조선시대 대표적인 민간정원으로 꼽히는 담양 소쇄원의 주차장 한켠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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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담양의 소쇄원 입구 주차장. 차를 세우고 소쇄원으로 들어가려는데 안내판 앞에 눈길을 끄는 게 있다. 주인 없는 무인 판매대다. 파는 것은 대통찜란. 대통에 계란을 넣어 12시간 이상 증기로 쪘다는 것이다. 잔돈을 거슬러갈 수 있도록 1000원짜리 지폐도 여러 장 대통으로 눌러 놓았다.

호기심에 대통찜란 한 통을 샀다. 가격이 3000원이다. 대통이 따끈따끈하다. 대통의 입구를 덮은 한지를 조심스럽게 뜯으니 계란 3개가 들어있다. 대통 안에 계란과 댓잎을 번갈아 넣었다. 계란 표면에 연녹색의 얼룩이 묻어 있다. 함께 넣어 쪄낸 댓잎의 흔적이었다.

계란에 온기가 유지되고 있었다. 찜란의 껍질을 하나 벗겨보니 흰자위가 댓잎색깔이다. 노른자는 연한 갈색으로 변해있다. 한 입 베어보니 맛이 좋다. 대의 향이 연하게 묻어난다. 식감도 부드럽다. 계란 특유의 비린내도 나지 않는다. 보통의 삶은 계란과 달리 팍팍하지도 않다. 간도 적당했다. 연달아 세 개를 다 먹으면서도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다.

무인판매 중인 대통찜란. 한 통에 3000원 하는데, 대통 안에 계란 3개씩 들어있다.
 무인판매 중인 대통찜란. 한 통에 3000원 하는데, 대통 안에 계란 3개씩 들어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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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에 넣고 쪄낸 대통찜란. 흰자위가 댓잎 색깔로 변해 있다. 팍팍하지 않으면서 댓잎의 향이 은은하게 묻어난다.
 대통에 넣고 쪄낸 대통찜란. 흰자위가 댓잎 색깔로 변해 있다. 팍팍하지 않으면서 댓잎의 향이 은은하게 묻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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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의 특산이면서 상징인 대와 유정란의 만남이었다. 대통밥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담양만의 먹을거리였다. 딱 '담양 스타일'이었다. 대통찜란을 만들어 무인판매하고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 궁금해졌다. 무인판매대에 적혀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해봤다.

그렇게 만난 사람이 정흥호(52·산내음 자연벗농원)씨. 소쇄원에서 그리 멀지 않는 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인암리에서 닭을 키우고 있었다. 그가 야산과 대숲에 풀어놓은 닭은 산란계 130여 마리와 재래닭 40여 마리, 병아리 80여 마리 그리고 거위와 오리, 오골계 20여 마리였다. 다짜고짜 대통찜란을 무인 판매하게 된 배경을 물었다.

"닭을 놓아 기르면서 유정란을 생산하고 있는데요. 유정란 판매가 고민이었습니다. 차별화된 판매방식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생각해낸 것인데요. 담양의 상징적인 이미지를 살릴 수 있을 것 같았고요. 대나무가 건강에도 도움이 되잖아요. 이 대나무와 유정란을 한꺼번에 쪄내면 좋겠다 싶었죠. 대통밥과 같은 방식이죠. 하지만 정성은 대통밥보다 훨씬 더 들어갑니다."

정씨의 대답이었다. 그는 대통밥의 경우 40분이면 조리가 완성되는데 반해 대통찜란은 12시간 이상 훈증으로 쪄낸다고 했다. 대통과 댓잎의 유효성분을 계란이 충분히 흡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이렇게 생산된 찜란을 주변 사람들과 함께 시식해본 결과 반응이 좋았다. 지난해 10월엔 특허출원까지 마쳤다.

정흥호 씨의 양계농원. 담양의 한 야산에 있다. 닭이 야산과 대숲에서 노닐고 있다.
 정흥호 씨의 양계농원. 담양의 한 야산에 있다. 닭이 야산과 대숲에서 노닐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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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산에서 맘껏 노닐고 있는 닭. 정흥호 씨는 이렇게 닭을 풀어놓고 기르며 친환경 유정란을 생산하고 있다.
 야산에서 맘껏 노닐고 있는 닭. 정흥호 씨는 이렇게 닭을 풀어놓고 기르며 친환경 유정란을 생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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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별난 먹을거리를 생산했지만 판매가 문제였다. 찜통을 짊어지고 돌아다니며 시제품 홍보에 나섰다. 한계가 보였다. 고민 끝에 생각해낸 게 무인판매였다. 관련기관과 주민들의 협조를 받아 소쇄원과 가사문학관, 향원당 앞에 무인판매대를 세울 수 있었다.

처음엔 우려했던 대로 대통찜란의 숫자와 수입금에서 약간의 차이가 났다. 액수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거스름돈을 따로 비치해 놓은 이후 차액이 많이 줄었다. 8월 들어선 내놓은 대통찜란의 숫자와 수익금도 완벽하게 맞아떨어지고 있다. 수입이 쏠쏠했다. 마음까지 뿌듯했다.

대통찜란의 대통 안. 댓잎과 계란이 번갈아 들어 있다.
 대통찜란의 대통 안. 댓잎과 계란이 번갈아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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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찜란 껍질이 얼룩달룩하다. 증기로 찌면서 댓잎의 흔적이 계란 표면에 묻었다.
 대통찜란 껍질이 얼룩달룩하다. 증기로 찌면서 댓잎의 흔적이 계란 표면에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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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찜란만 별난 게 아니다. 정씨의 이력도 독특하다. 그는 공군2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지난 1981년 공군소위로 임관했다. 그리고 28년 동안 직업군인으로 복무하다 공군본부 총무과장(공군대령)으로 전역을 했다. 2008년 9월이었다.

전역 이후 정씨는 충남 계룡에서 농촌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텃밭을 가꾸고 닭도 키웠다. 닭은 어려서부터 좋아하던 가축이었다. 2년의 준비기간을 거친 그는 2010년 10월 고향으로 내려왔다. 탯자리였던 담양엔 부친(4년 전 작고) 소유의 밭과 임야가 있었다.

정씨는 고향 야산에 울타리를 치고 병아리 1100마리를 풀어 놓았다. 주변엔 곰취, 산나물, 울릉도미역취, 산작약, 산당귀, 야생오가피, 산부추, 병풍취 등 산나물 씨를 뿌렸다. 닭에 먹이는 사료도 직접 만들어주고 있다.

"닭의 먹이로 풀만큼 좋은 게 없어요. 풀이 최고죠. 사료비도 줄일 수 있고 닭의 면역력도 길러주거든요. 그걸로 부족한 부분은 천연사료를 만들어 먹입니다. 내 몸이 조금 고달프긴 해도 닭한테 좋은 일이거든요. 나만 조금 고생하면 건강한 닭, 안전한 닭으로 키울 수 있잖아요."

정씨가 만드는 발효사료의 재료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쌀겨와 왕겨, 깻묵, EM균에서부터 뽕잎, 질경이, 달맞이꽃, 매실, 머위잎, 산도라지, 감자가루, 솔잎, 편백잎가루 등 부지기수다. 생선찌꺼기도 있다. 마른갈치, 멸치, 굴비 부산물도 넣는다. 건강원에서 나오는 오디와 토마토, 포도 부산물도 말려서 활용한다.

'대통찜란'을 선보인 정흥호 씨가 직접 만들어 놓은 발효사료를 보여주고 있다. 정씨는 닭에 풀과 발효사료를 섞어 먹이고 있다.
 '대통찜란'을 선보인 정흥호 씨가 직접 만들어 놓은 발효사료를 보여주고 있다. 정씨는 닭에 풀과 발효사료를 섞어 먹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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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흥호 씨가 직접 만든 발효사료를 들어보이고 있다. 정씨는 이 사료를 먹은 닭이 낳은 유정란으로 대통찜란을 만들고 있다.
 정흥호 씨가 직접 만든 발효사료를 들어보이고 있다. 정씨는 이 사료를 먹은 닭이 낳은 유정란으로 대통찜란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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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효사료 제조법은 전역 후 2년간 귀촌을 준비하면서 배웠다. 밤새 인터넷을 검색하며 자연양계를 공부했다. 자료도 뒤적였다. 그러고도 부족하다 싶으면 직접 선진 농장을 찾아다녔다. 방사닭을 키우며 친환경 유정란을 생산하고 대통찜란을 선보인 게 오랜 준비기간을 거쳐 나온 것이었다.

"올 겨울엔 황토가마솥을 설치하려고요. 지금은 대통찜란을 가스불로 쪄내고 있는데요. 앞으로는 황토가마솥에서 쪄낼 생각입니다. 무인판매대도 더 많이 늘려야죠. 그렇게 해서 대통찜란을 담양만의 독특한 간식거리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정씨의 각오다. 그는 또 "장기적으로는 대규모 친환경 방사닭과 유정란을 생산하면서 모듬쌈채 재배단지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정흥호 씨가 풀어놓은 닭이 대숲에서 노닐고 있다. 정씨는 고향 야산과 대숲에 닭을 놓아 기르고 있다.
 정흥호 씨가 풀어놓은 닭이 대숲에서 노닐고 있다. 정씨는 고향 야산과 대숲에 닭을 놓아 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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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레 찾아가 만난 정흥호씨. 야산에서 일하던 정씨의 겉옷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다.
 갑작스레 찾아가 만난 정흥호씨. 야산에서 일하던 정씨의 겉옷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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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대통찜란, #정흥호, #산내음자연벗농원, #무인판매, #귀농귀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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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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