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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시작 되기 전, 빈 운동장은 선수가 아닌 사람은 감히 들어갈 수 없는 어떤 분위기가 있다. 소년들의 땀과 노력을 싣고 누빌 공.
 경기가 시작 되기 전, 빈 운동장은 선수가 아닌 사람은 감히 들어갈 수 없는 어떤 분위기가 있다. 소년들의 땀과 노력을 싣고 누빌 공.
ⓒ 김재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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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31일, 선수단은 어제 출발하고 응원단(엄마들)은 오늘 새벽에 출발, 아슬아슬하게 도착하나 싶었는데 벌써 경기가 시작되었다. 현재 시각 오전 8시 30분. 아침부터 덥다. 몇 십 년 만에 찾아오는 더위라고 했다. 그래도 춘천, 산 많은 동네라 좀 나을까 했더니 인조잔디가 달아오르자 뜨거운 바람이 분다.

제6회 금강배리틀 K리그 전국유소년축구대회(2012년 7월 30일~8월 3일, 춘천공지천B구장)에 아들은 이번에 두 번째로 참가했다. 아들이 포함된 U-11(11세 이하) 그룹에는 전국에서 24개 팀이 참가했다. 아들은 소양조에 포함되었다. 조별 리그로 우승팀을 가리는 모양이다.

아들의 팀 성적은 1-6, 0-5, 1-2, 0-3 4전 4패다. 엄마들은 먹힌 골을 세다가 잊어버렸다. 아들의 경기수첩을 보면 이번 대회에서 4패를 한 원인은 "선수 마크를 하지 않고 수비가 너무 내려(와) 있어(서)"이고, "상대 윙이 센타링을 올리면 바로 슛으로 됐기 때문"이다. 아들의 자체 분석 결과다.

나는 이 분석결과만으로는 왜 이 팀이 4패를 당했는지 알 수가 없다. 다만 그때그때 만들어진 팀, 골키퍼가 하루 경기를 하고, 다음 날 휴가 때문에 골문을 비우는 팀, 일주일에 한 번 만나 운동하는 팀, 선수가 모자라 몇 개 학교가 만나야 만들어지는 팀, 즉 오합지졸 즉석팀이 경기에서 이기는 건 오히려 스포츠 정신에 어긋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지는 게 당연한 팀... 문제는 '아들'

유소년축구대회는 규모가 큰 대회다. 이 대회에 참가한 선수 중에 미래 축구 꿈나무가 있다는 것. 그들의 열정적인 움직임을 보고 있으면 모두 다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긴다.
 유소년축구대회는 규모가 큰 대회다. 이 대회에 참가한 선수 중에 미래 축구 꿈나무가 있다는 것. 그들의 열정적인 움직임을 보고 있으면 모두 다 꿈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긴다.
ⓒ 김재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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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지는 게 당연한 팀이다. 문제는 그 팀 소속의 아들이다. 지난 4년 동안 줄곧 지는 경기만 한 아들이다. 나는 계속 경기에 지면서 아들의 열망이 줄어들기를 바랐다. 행여 선수가 되겠다는 꿈이 커질까봐 오히려 지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들은 당연히 축구선수가 꿈이다. 이만하면 포기할 만도 한데, 아직 때가 아닌 모양이다. 사실 남편과 나는 아들이 축구를 그저 취미로 하기를 바란다. 바라는 것이 무엇이든 다 이루어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아들의 신체 조건도 축구 선수와 잘 맞지 않다는 핑계를 내세웠다.

직업 선수 되기가 어렵고 힘든 일인 줄 알기에 어쩌면 미리 겁을 먹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긴 직업 선수가 어렵다면 다른 일은 쉬운가? 이래저래 아들이 자격이 없는 게 아니라 엄마가 자격이 없다. 변명은 궁색하고 지원은 야박하다.  

나는 아들이 자신의 꿈에 골몰해 있는 모습을 지켜보는 중이다. 만약 정말 축구를 하겠다고 작정하면 어쩌나 걱정은 하고 있다. 밥벌이의 고단함으로 아들의 꿈을 막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생각과 아들의 꿈을 밀어주지 못하는 비겁함 사이에서 나는 몰래 한숨 쉬는 버릇이 생겼다.  

경기가 끝나고 아들을 데리고 오면서 차 안에서 물었다.

- 지기만 하는 데도 축구가 좋은가?
"상관 없다. 나는 우리 팀이 이기고 지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내가 어떤 게임을 했는지가 중요하다. 어제 내 게임은 별로였다. 그러나 오늘(이틀째) 게임은 괜찮았다. 골도 넣었다. 그거면 됐다."  

- 지는 게 당연한 팀이라는 엄마 말에 상처받지 않았는가?
"엄마 말이 맞다. 일주일에 한 번 연습하고 선수가 모자라는데 어떻게 이기나."

- 그래도 축구를 계속할 생각인가?
"선수로 뛰기만 한다면 어디서든 괜찮다. 생각해보라. 이렇게 더운데도 축구를 하는데, 내가 축구를 싫어하겠나."

소년은 달린다... 이것 말고 무엇이 중요한가

춘천시청에서 아이스크림을 협찬했다. 소년은 웃지 않았다.
 춘천시청에서 아이스크림을 협찬했다. 소년은 웃지 않았다.
ⓒ 김재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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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더운 날 저 노릇을 왜 하는지 모르는 엄마 앞에서 열심히 그라운드를 누비는 아들이 멋졌다고 말하지 않았다. 아들뿐만이 아니라, 지면서도 일단 경기가 시작되면 마치 송사리 떼처럼 열심히 뛰어다니는 그대들이 아름다웠다고 말하지 않았다.
너무 더워서, 주심에게 남은 시간에 상관없이 종료 호루라기를 불라고 하고 싶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소년들의 작은 심장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라 얼굴이 시뻘개지는 모습이 안쓰러웠다고 말하지 않았다. 아들은 달렸고, 졌고, 행복했다.

올림픽이 한창이다. 8일 새벽 한국과 브라질 축구 경기를 지켜본 남편은 답답해 죽을 뻔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러니 저러니 개별 통신원이 되어 나를 상대로 브리핑을 한다.

내가 누구인가. 지는 경기만 하는 소년 선수를 둔 엄마다. 어쩔 수 없이 패자에게 눈길이 간다. '내 새끼'의 엄마가 되어보면 대표 팀 선수 누구도 탓할 수 없다. 그들이 죽을 만큼 열심히 뛴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져도 아무렇지 않다. 그들은 그들의 경기를 했을 뿐이다. 그리고 지거나 이겼을 뿐이다. 그것뿐이다. 

올림픽 시작과 함께 아들의 경기는 끝났고 일상으로 돌아왔다. 다시 축구 경기가 있는 날. 날마다 올 여름 최고 온도를 기록해도 아들은 축구화를 신고 집을 나선다. 잔뜩 달아오른 흙바닥 열기에 온몸이 익어야 "엄마, 나 왔어, 오늘은 몇 골에 몇 개 어시스트! 물!" 그러면서 들어오리라.

아들은 그렇게 자꾸 자꾸 달린다. 지금 당장, 이것 말고 무엇이 중요하다는 말인가.


태그:#축구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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