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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우리 점심은 뭐 먹어요? 그리고 그제 벗어 놓은 셔츠가 안 보이는데 아직 빨래 안 했어요? 양말도 없는 거 같은데?"
"밥통에 밥 있고 냉장고에 반찬 있잖아. 차려 먹기 귀찮으면 시켜 먹든지. 엄마 지금 늦었어. 니들이 알아서 좀 먹어라."

"엄마는 뭐가 그렇게 만날 바빠요. 점심 좀 챙겨주면 큰일나나?"
"그 정도 챙겨줬으면 이젠 고만 챙겨줄 때도 됐거든. 아빠도 이젠 엄마한테 밥 차려 달라는 소리 안 하는데 이 나이에 아들 뒤치다꺼리하게 생겼니. 치사하면 독립하라니까."

아들들의 구시렁거림을 단칼에 무시하고 친구들을 만나러 나왔다. 방학이고 휴가철이라 그런지 한두 명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상황이 나와 다르지 않아 집에 있는 아이들을 챙기느라 모임을 포기한 것이다.

부모 집에서 나가지 않는 '에코 세대들'

2011년 11월 30일 오후 코엑스에서 개막한 '코스닥 상장기업 취업 박람회'를 찾은 취업 준비생들이 각 업체 부스에 상담 및 면접을 보고 있다.
 2011년 11월 30일 오후 코엑스에서 개막한 '코스닥 상장기업 취업 박람회'를 찾은 취업 준비생들이 각 업체 부스에 상담 및 면접을 보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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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희 아들은 취업시험이 코앞이고, 미숙이는 딸 방학이라고 못 나온데."
"참네~ 이젠 애들 뒤치다꺼리 졸업할 때 안 됐니. 우리 애들은 왜 그렇게 엄마를 찾는다니? 이젠 독립할 나이도 됐구먼. 점점 더 집을 떠나지 않으려고 하니 무슨 일인지 몰라."
"요즘 애들이 얼마나 약은데. 나가면 돈 들지, 몸 힘들지 불편한 것 많지, 고생이라는 거 아는데 왜 나가니? 집에 있어봐라. 집세가 드니, 밥값이 드니, 청소해줘, 빨래해줘 먹을 거 해결되지, 나갈 이유가 없는 거지."
"뉴스에 나오더라 에코세대라고. 고학력이고 개인주의적이고, 문화·소비 지향적인 성향인데다가 고생을 모르고 자라서 힘든 일은 안 하려고 하고 고생하기 싫으니 결혼도 늦게 하고 절반이상(54.2%)이 부모와 같이 살고 있데. 딱 우리 애들 얘기더라."

지난 2일 통계청은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작성한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만 47~55세) 및 에코세대(베이비부머 세대들이 낳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1979~1992년생, 만 18~31세)의 인구·사회적 특성분석'을 발표했다. 2010년 11월 현재 베이비부머는 695만명으로 전체 인구(4799만명)의 14.5%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들의 자녀인 에코 세대는 954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9.9%였다. 두 세대 인구를 합하면 전체 인구의 34.4%다.

이 자료에 따르면 에코세대는 고학력(대학 이상 75.6%)에 전문가 직종 종사자가 많으며(30%) 절반이상이 부모와 동거(54.2%)하고 있었으며 가구주일 경우 월세를 사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42.5%) 나타났다.

반면 부모세대인 베이비부머의 경우 대학이상 고학력자 비율은 12.5%로 에코 세대에 비해 월등히 낮았으며, 장치기계조작 및 조립원 비율이 높았지만 (15.1%) 평균 64.3%가 자기 집을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배우고 또 배우는 아이들... 부모는 등골이 휜다

우리 집 역시 베이비부머와 에코 세대가 함께 살고 있는 가구이며 내 친구나 남편 친구들 대부분도 아직은 자녀들이 출가하지 않아 자녀와 동거하고 있는 세대에 해당한다. 그러다 보니 에코세대에 대한 걱정이 베이비부머인 우리들의 주된 화제가 될 수밖에 없다.

에코 세대인 우리 아이들은 우리들에 비해 확실히 고학력이다. 어릴 적부터 온갖 사교육을 받고 자란 것도 모자라 대학을 가서도 스펙을 이유로 각종 자격증을 따기 위한 학원수강은 물론이고 해외 연수니 유학도 간다. 그것도 모자라 석사로 박사로, 배우고 또 배우니 필요이상의(?) 고학력자가 돼 버린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스펙 쌓기에 매진하는 동안 부모들은 등골이 휜다. 해마다 오르는 대학교 등록금에 하늘 높은 줄 모르는 학원비, 스펙 축에 끼지도 못한다는 해외연수와 발에 치일 정도로 많다는 유학파 석·박사까지.

남하는 것 다 하고 남 하지 않는 것까지 찾아서 해야 겨우 바늘 구멍만한 취업의 문을 뚫을 수 있다니 부모입장에서는 종신보험을 드는 마음으로 그나마 가지고 있는 집칸마저 자식 밑으로 밀어 넣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돌아보면 베이비부머인 우리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1980년대)의 상황은 좀 달랐다. 대학만 졸업하면 어렵지 않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고 대졸자가 아니라 할지라도 눈높이만 낮춘다면 취업의 문턱이 그리 높지 않았다.

부모로부터 독립해 당당한 가정을 이루겠다는 의지로 공장근로자나 건설현장을 가리지 않았고 돈을 벌 수 있다면 중동지역 해외근로도 마다지 않은 결과 비교적 안정적인 오늘을 만들 수 있었다. 쥐꼬리만 한 월급이었지만 재형저축으로 전세 보증금을 마련하고 또 몇 년 알뜰하게 저축해 융자 낀 작은 아파트를 구입하는 것이 누구나 꾸는 작은 소망이었다.

그래서 베이비부머에게는 대학 졸업이 희망이었다. 졸업만 하면 우리가 가졌던 소박한 꿈을 이룰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수성가. 말 그대로 스스로 힘으로 가정을 이루는 것이 가능했던 세대였다.

우리 아이들이 자수성가? 불가능해 보인다

발렌타인데이를 맞아 진보신당이 지난 2월 13일 낮 서울 홍익대 지하철역 부근에서 마련한 '발렌타인데이 맞이 키스 플래시몹'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뜨거운 키스를 나누고 있다. 진보신당은 아르바이트에 바쁘고, 언제 잘릴지 모르는 비정규직, 집을 못 구해서 부모님 집에 얹혀 살면서 사랑을 나눌 공간도 구하지 못해 값비싼 모텔을 전전해야 하는 '3포 세대'(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젊은이들)에게 자유로운 연애를 허용하라는 취지로 이번 행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발렌타인데이를 맞아 진보신당이 지난 2월 13일 낮 서울 홍익대 지하철역 부근에서 마련한 '발렌타인데이 맞이 키스 플래시몹' 행사에서 참가자들이 뜨거운 키스를 나누고 있다. 진보신당은 아르바이트에 바쁘고, 언제 잘릴지 모르는 비정규직, 집을 못 구해서 부모님 집에 얹혀 살면서 사랑을 나눌 공간도 구하지 못해 값비싼 모텔을 전전해야 하는 '3포 세대'(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젊은이들)에게 자유로운 연애를 허용하라는 취지로 이번 행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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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 아이들에게는 '자수성가'를 바라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우리 아이들게는 졸업은 이미 희망을 상징하는 단어가 아니다. 졸업이 다가올수록 위축되고 불안해지는 아이들. 취업을 위해 졸업을 미루고 대학교 5학년 6학년 7학년 생활을 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어렵게 취업이 된다고 해도 그들이 받는 월급을 모아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며 한 푼 두 푼 저축해 내집을 마련하는 것이 과연 가능하기나 할까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눈치 빠른 아이들은 세상에 나가 실패를 거듭하며 절망하기보다는 비교적 안정적인 부모의 삶에 기생하며 캥거루족으로 사는 쪽을 택하는 것 같다. 어쩌면 이것은 아이들을 사랑한 나머지 아픔과 고통, 실패와 좌절로부터 격리시켜 키우려 했던 부모들, 즉 우리들의 과잉보호와 부동산투기를 앞서서 주도했던 베이비부머의 욕심이 낳은 결과일지도 모른다.

방학을 맞아 학교 기숙사에서 돌아온 큰 아들이 휴가를 맞은 작은 아들과 함께 며칠째 하루 종일 거실에서 뒹굴고 있다. 하루 이틀은 모르겠더니 사흘이 지나니 집에 아이들이 있는 것만으로도 덥고 답답하다. 아들이 객식구처럼 느껴지니 이제 진정 아들들을 독립시켜야 할 때가 온 모양이다.

나가서 살려면 원룸이라도 얻어야 하는데 감당해야 할 엄청난 보증금과 관리비를 생각하면 캥거루족으로 사는 아들이 합리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감정은 늘 이성을 앞서 불쑥불쑥 숨겨둔 진심이 튀어나와 버린다.
  
"아들아, 이제는 독립할 때가 되지 않았니? 제발 내 집에서 나가 줄래?"


태그:#에코세대, #베이비부머, #자수성가, #통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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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아줌마가 앞치마를 입고 주방에서 바라 본 '오늘의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한 손엔 뒤집게를 한 손엔 마우스를. 도마위에 올려진 오늘의 '사는 이야기'를 아줌마 솜씨로 조리고 튀기고 볶아서 들려주는 아줌마 시민기자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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