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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는 소리다"

이아무개(55) 교수는 자신을 향한 검찰의 종북 논란을 웃기는 소리로 맞받았다. 앞서 울산지방검찰청은 23일 울산대학교에 재직중인 이 교수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 교수는 학생들에게 김일성 회고록을 읽게 하고 김일성을 찬양한 감상문을 제출한 학생에게 좋은 학점을 주는 등 종북활동을 한 혐의를 받고 있다.

하지만 이 교수와 해당 수업을 들은 학생의 설명은 검찰의 기소내용과는 달랐다. 이들은 검찰의 수사결과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어렵게 <오마이뉴스>와 연락이 닿은 이 교수는 "혼란스러웠다"는 말로 그동안의 심경을 먼저 토로했다.

그 역시도 언론 보도를 통해 자신의 기소 소식을 접했다고 말했다. 그는 "2010년 처음 조사를 받았고 그동안 가만히 있다가 2년이 지난 뒤에 터트리는 건 정치적 배경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2010년 조사를 받은 이후로 회고록을 숙제로 내지도 않고 오해 살만한 행동을 안 하려고 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에 대한 기소 배경으로 "근래에 종북몰이 분위기가 있어서 그러는 건 아닌지 나름의 판단을 해본다"고 짐작했다.

"북한 찬양하면 높은 점수? 과제물 성적은 고작 10점"

울산지방검찰청은 23일 "학점을 미끼로 대학생들에게 김일성 찬양 감상문을 제출하게 한 대학교수 기소"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울산지방검찰청은 23일 "학점을 미끼로 대학생들에게 김일성 찬양 감상문을 제출하게 한 대학교수 기소"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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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문제가 되고 있는 검찰의 기소 내용을 반박할 때는 다소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검찰은 이 교수가 김일성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를 감상문 과제로 내주고 학점을 미끼로 김일성을 찬양하게 했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검찰은 이 교수가 동료 교수들에게도 이 회고록을 보내 포섭을 시도했으며 이적단체와도 교류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검찰은 이 교수가 "김일성에 대하여 비판적인 의견을 개진하는 학생의 경우 교실에서 퇴실시킨 적도 있다는 진술도 있다"고도 밝혔다. 특히 수업시간에 학생들로 하여금 김일성을 '장군님'으로 호칭하게 했다는 검찰의 발표는 보수신문을 중심으로 다시금 종북논란에 불러일으켰다.

그는 "(김일성을) 장군님으로 부른 경우도 없고 반대 의견을 내는 학생을 쫓은 적도 없다"고 말했다. 또 그는 "회고록과 고전 시, 남한 시와 소설, 학교 밖 문화공연 감상 중에서 선택해서 학생들이 자유롭게 리포트 요건을 갖춰서 내라고 했다"며 강제성이 없음을 강조했다.

김일성을 찬양한 학생에게만 높은 학점을 줬다는 검찰의 주장에는 "선생이 제자에게 그럴 수 있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과제물 성적은 통상 10점밖에 안되고 중간·기말고사, 출석 점수 등을 합쳐 성적이 산출된다"며 "기본적으로 숙제 점수가 성적 비중에 결정적이지 않아 형식적 조건만 갖추면 기본 점수를 줬다"고 말했다.

그는 <세기와 더불어>를 선택 과제로 제시한 이유를 "그간 민족문화에 대한 책과 논문을 써왔다"며 "회고록도 주체사상으로 보지 않고 역사수필 정도로 봤고 (학생들에게) 이념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선택해서 읽으려면 읽어보라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외부로 유포하면 불법이 될 수 있다고 했고 학생들도 이해를 했다"고 말했다.

동료 교수를 '포섭'하려 했다는 검찰의 수사결과에 대한 견해를 묻자 진지하던 이 교수는 웃었다. 그는 "학교 내부 네트워크에 나보다 상식을 가진 친한 교수 두 분께 이메일을 보낸 것일 뿐 불특정 다수에게 유포한 것처럼 해놓은 것은 심한 과장"이라고 말했다.

이적단체와 교류를 했다는 부분에는 "울산에 계시는 장기수 어르신에게 어떤 노인을 소개 받았고, 이번에 조사를 하며 그분이 대구경북에서 범민련 활동을 한다는 걸 알게됐다"고 밀접한 관계를 부인했다.

"군사독재도 아니고 대학 수업으로 기소하다니"

이 교수의 이런 해명은 수업을 들었다는 학생의 설명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 교수의 수업을 4차례 들었다는 졸업생은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검찰의 수사결과와 다른 견해를 밝혔다. 

이 졸업생은 "(이 교수가) 김일성을 장군님으로 부르도록 했다는데 우스갯소리로 한 적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설령 시켰다고 하더라도 그대로 동조하는 학생 자체가 잘못된 거 아니냐"고 말했다. 김일성이나 북한에 비판적인 학생을 쫓아냈다는 검찰의 주장에도 "수업하다가 나가라고 하는 경우도 못 봤고 그런 언행을 할 분도 아니다"며 이 교수를 옹호했다.

이 졸업생은 선택 과제를 제출할 때 회고록 감상문을 낸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회고록을 일종의 팩션으로(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덧붙인 이야기) 봤고 감상문도 그렇게 써서냈다"고 말했다. 그는 "이 교수는 수업이 그리 힘들지 않고 무난하게 학점을 줘서 학생들이 편하게 생각하는 교수였다"며 학점을 미끼로 학생들을에게 종북활동을 했다는 검찰의 주장을 반박했다.

끝으로 이 졸업생은 "군사독재도 아니고 수업으로 기소를 한다는 게 시대착오적이란 느낌"이라고 말했다.

한편 해당 교수가 재직하고 있는 울산대는 이 교수를 인사위원회에 회부할 예정이다. 울산대는 학원 정관에서 '형사사건으로 기소된 자는 지위해제나 해임할 수 있다'고 정해놓고 있다. 대학은 일단 이 교수에게 소명 기회를 준다는 방침이어서 대학이 이 교수의 소명을 얼마나 받아들여 징계 수위를 결정할지가 주목된다.


태그:#울산대학교, #종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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