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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편견이 가장 무섭다"고 말한 한 감염인이 그동안 열심히 배운 마술을 시연하고 있다.
▲ 한 감염인이 자신이 배운 마술을 시범보이고 있다. "세상의 편견이 가장 무섭다"고 말한 한 감염인이 그동안 열심히 배운 마술을 시연하고 있다.
ⓒ 김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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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되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나를 괴롭히는 저주의 말들, '더러운 병', '문란한 병', '저런 사람은 어떻게 살았기에 저런 병에 걸린 거야?' 등 에이즈에 대한 좋지 못한 인식들이 나를 더욱 더 가슴 아프게 만들었습니다" - 감염인 여운(가명)

19일 대구 지하철 1호선 각산역 국민은행 2층 공익카페 코피스에서는 아주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올해로 2회째를 맞는 HIV(human immunodeficiency virus : 에이즈를 일으키는 바이러스) 감염인 말하기 대회가 열린 것.

이번 행사는 대한에이즈예방협회 대구경북지회(지회장 김난희)가 주최하고 대구시와 경상북도가 후원한 행사로, 국가인권위원회가 인권단체 사업의 일환으로 개최하고 있는 행사라서 그 의미가 컸다.

이날 자리에는 HIV 감염인과 그들의 가족, 대학생 자원봉사자, 협회 관계자들이 대거 참여하여 에이즈에 대한 올바른 인식확산과 감염인에 대한 편견 깨기에 나섰다.

행사는 전국에서 최초로 결성된 감염인 자조모임인 해밀봉사단의 마술쇼와 영상물 시청, 감염인 발표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에이즈 환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겹고 힘든 싸움인가를 고백해주고 있다.
▲ 한 감염인이 에이즈환자로서의 심정을 밝히고 있다. 에이즈 환자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겹고 힘든 싸움인가를 고백해주고 있다.
ⓒ 김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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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로 감염인 발표에 나선 여운씨는 자신이 에이즈에 환자라는 것을 인식했을 때 자신을 향한 세상에 곱지 않은 시선과 편견으로 자살도 여러 차례 시도했다고 고백하면서 "제발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달라"고 호소했다.

감염인 이근철(가명)씨도 "에이즈라는 병이 무서운 게 아니라 그 병을 바라보는 시선이 얼마나 무섭고 잘못되어 있는지에 대해 놀랐고, 세상의 시선이 따갑기만 하다"고 지적하면서 "저희를 이해해달라는 요구보다 세상의 편견으로 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동료가 없도록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달라"고 말했다.

감염인을 가족으로 둔것이 불편하기는 하여도 "내 동생은 감염인이 아니라 그는 바로 내 동생이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한 감염인 가족의 고백.
▲ 한 감염인 가족의 고백 광경 감염인을 가족으로 둔것이 불편하기는 하여도 "내 동생은 감염인이 아니라 그는 바로 내 동생이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한 감염인 가족의 고백.
ⓒ 김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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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초 감염대회 자리에 나서기로 했던 유일한 여성 감염인은 얼굴은 보이지 않은 채 결국 그의 육성만을 들을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 이젠 빛이 보입니다"라고 글을 읽어간 김은정(가명)씨는 자신의 처지를 설명하면서 "지금 저의 소망은 건강한 아기를 낳는 것입니다. 그래서 작년 5월부터 약 복용을 시작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에 나선 HIV 감염인 가족 김윤희(가명)씨는 "저는 여기 있는 한 HIV 감염인의 누나입니다. 제 동생은 에이즈 환자가 아닌 단지 제 동생입니다"라며 가족의 역할이 얼마나 감염인에게 용기가 되고 힘이 되는가를 알려줬다.

김윤희(가명)씨의 동생 김재희(가명)씨는 "우리 사회가 따뜻하게 보듬어준다면 우리도 사회의 일원으로서 열심히 살아갈 힘이 생기는데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자꾸 움츠러들게 되는 것 같다"고 말하면서 "감염인들이 살인을 한 것도 아니고, 죄값은 이미 그들의 몸속에 지니고 살고 있는 것이니 당당하게 세상과 맞서라"고 주문했다.

감염인들의 상담활동과 인권복지 지원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대한에이즈예방협회 대구경북지회 차명희 상담팀장은 "감염인들의 가장 큰 문제는 외부의 문제도 많지만 자기 자신을 왜곡되게 바라보는 자기편견(죄인이다, 문제있다는 등)이다"라고 설명하면서 "초기에는 정부에서도 HIV를 홍보하면서 '에이즈 걸리면 바로 죽는다', '손만 닿아도 감염된다'는 식으로 잘못 호도한 부분이 크다"고 지적했다.  

차 팀장은 "이 외에도 외부적인 요인으로 우리 사회의 이중적인 성을 대하는 잣대(문란하다, 더럽다)와 도덕적으로 죄악시하는 편견의 시각이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상 편견때문에 자살시도를 몇번이나 했다"고 말한 한 감염인. 그러나 이제는 감염인을 상담해주고 도와주는 친구같은 감염인 친구와 도와주는 사람들 때문에 살 이유가 생겼다고 말하는 한 감염인.
▲ 한 감염인의 고백 "세상 편견때문에 자살시도를 몇번이나 했다"고 말한 한 감염인. 그러나 이제는 감염인을 상담해주고 도와주는 친구같은 감염인 친구와 도와주는 사람들 때문에 살 이유가 생겼다고 말하는 한 감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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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에이즈예방협회 대구경북지회에 따르면, 에이즈 감염인은 비감염인에 비해 자살률이 10배에 이르고, 세상의 편견으로 육체적 죽음 이전에 사회적 고립으로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한다.

현재 대구경북 지역 에이즈 감염인은 300여 명, 전국적으로는 9000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또 감염인 중 52%가 가족과 친구로부터 외면당한 채 고립된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도울 수 있는 쉼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전국적으로 7곳이었던 쉼터가 2008년에 5곳이 폐쇄되고 현대 대구, 부산 2곳에서 식비 정도만 제공되고 있는 처지라고 밝히고 있다.


태그:#HIV, #에이즈, #대한에이즈예방협회 대구경북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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