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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이 16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논문표절과 부동산투기, 업무추진비 과다지출, 장남 병역 등 각종 의혹에 대해 해명하다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 해명... 해명... 곤혹스런 현병철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이 16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논문표절과 부동산투기, 업무추진비 과다지출, 장남 병역 등 각종 의혹에 대해 해명하다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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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를 사랑하라."

예수가 말했다. 미워하는 자에게 잘해주라고. 학대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고, 왼 뺨을 치면 오른 뺨도 대며, 겉옷을 빼앗거든 속옷도 주라고 가르쳤다.

최근 한국의 인권단체 활동가들의 '원수'는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 2009년 7월 그가 인권위 수장이 되면서 시련이 찾아왔다. 이들은 '사랑'까지는 아니더라도 예수의 말에 따라 현 위원장을 대했던 것 같다. 중증장애인들을 차가운 시멘트 바닥으로 내몰아도, 살 곳을 잃어 망루에 올랐던 망자들을 외면해도, 이들은 인내하며 현 위원장이 스스로 깨닫고 물러나길 기다렸다.

청와대가 그의 연임을 결정했다. 그리고 16일 현 위원장의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렸다. 활동가들이 "청문회 할 자격도 없는 사람"이라 울부짖었지만 소용없었다. 이들은 이번 기회로 정말 그가 물러나길 바라며 다시 한 번 참았다. 용산참사 유가족과 장애인들이 청문회장 방청석에 앉아 그를 지켜봤다. 현 위원장에게 상처받은 이들이다.

현 위원장은 그 자리에서 용산참사에 침묵한 적도, 장애인들을 인권위 밖으로 내몬 적도 없다고 말했다. 왼 뺨을 때려놓고 또 다시 오른 뺨을 때리는 격이었다. 비수 같은 말들을 참지 못하고 방청객에 있던 사람들이 일어나 울분을 터트렸다. 그러나 '조용히 하겠다'는 조건으로 청문회에 참석했기에, 이들은 다시 입을 다물고 그의 말을 견뎌야 했다.

청문회 이후로도 현 위원장을 향한 인권 활동가들의 '사랑'과 '인내'는 끝나지 않았다. 다산인권센터 활동가 박진씨는 17일 현 위원장에게 줄 작은 선물과 편지를 준비했다. 다산인권센터는 1992부터 시작한 한국 인권의 씨앗 같은 곳이다. 박씨는 귀퉁이가 찢어진 '짝퉁' 명품 신발, 영화 <두개의 문> 안내지, 일식집 전단지, 인권단체 리플릿과 신문, 부동산 안내지, 한약 두 봉지를 선물상자 안에 넣었다.

선물에는 '사랑'이 담겨 있다. 현 위원장이 자신의 과오를 돌아보기를, 상처받아 온 수많은 사람들의 아픔을 이제라도 돌보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하다. 현 위원장은 뺏었지만, 이들은 주는 행동으로서 다시 한 번 기회를 주려는 것이다. 이 편지가 현 위원장을 '위원장'이라 부르는 마지막 순간이기를 바란다는 박진씨의 목소리를 <오마이뉴스>에서 전한다.

"청와대에 17번 들락날락, 참을 수 없는 분노 삼켰다"

박진 다산인권센터 활동가가 17일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에게 보낸 선물 꾸러미.
 박진 다산인권센터 활동가가 17일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에게 보낸 선물 꾸러미.
ⓒ 이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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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병철 위원장에게

오늘 당신을 인권위원회 위원장으로 호명하는 것이 이제 제발 마지막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편지를 씁니다. 인권위원장으로 재직하셨으니, 이제는 인권단체 이름 정도는 아실 것이고, 또는 인권활동가의 이름 정도는 아실 수도 있겠으나 인권의 이름으로 행한 당신의 업적으로 봤을 때, 제가 누군지 다산인권센터가 어떤 곳인지 모를 수도 있겠다 싶어 간단히 소개합니다.

당신보다 한참이나 어린 나이겠지만, 당신이 인권이 무언지 생애 한 번 고민한 적도 없었을 때부터 인권현장에 16년간 있었던 박진이라는 사람입니다. 다산인권센터는 그보다 더 오래전 1992년부터 해고된 노동자, 쫓겨난 철거민, 경찰에게 맞아죽은 시민의 억울한 삶과 죽음을 지키려 달려온 인권단체입니다. 차별받고 억압받는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기 위해, 세상과 맞서 싸우기도 힘든 시간에 당신이라는 사람을 만나, 인권위를 제자리로 돌리기 위해 고생하는 인권단체들 중 하나입니다.

그러한 우리는 2000년 독립적인 인권기구, 국가인권위를 만들기 위해 명동성당 들머리에서 눈물보다 빨리 흘러내리던, 흰 눈을 보면서 새해를 맞았습니다. 인권단체들의 미약한 힘으로 막을 수 없는 폭력과 야만을, 제대로 된 국가인권기구가 만들어져 지켜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만든 국가인권위원회입니다. 당신의 연임을 결정하면서 청와대는 "국가인권위가 중립적이고 균형된 시각으로 국민의 인권을 적극 보호하는 기관으로 운영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그때 우리는 사막같은 모래 바람이 가슴에서 서걱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당신이 얼마나 편파적이었고, 인권을 함부로 대했는지 모조리 기억하는 우리는, 더 이상 갈 곳을 잃은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을 함께 느꼈습니다.

당신은 국가 공권력의 피해자들인 용산참사의 유가족과 민간사찰의 피해자, 쌍용차 노동자를 외면했습니다. 당신은 <피디 수첩> 명예훼손에 대한 검찰 수사 의견표명과 국정원의 박원순 명예훼손 의견표명 부결, 야간시위 위헌법률심판제청 의견제출 부결 등으로 표현의 자유를 후퇴시킨 정부에게 면죄부를 주었습니다. 함께 일했던 인권위원들과 직원들이 사표를 던졌습니다. 심지어 인권위가 주는 인권상 수상자들도 수상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당신은 인권위의 양심 있는 직원들을 해고하고 징계했습니다.

당신은 17차례나 청와대를 출입하면서 국가인권위의 독립성을 훼손하며 인권위가 자기 기능을 못하도록 흔들어댔던 것입니다. 어제 당신이 청문회에서 했던 무수한 거짓말을 보면서 우리는 참기 힘든 분노를 수차례 삼켰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엘리베이터를 지난 3년 동안 딱 2시간 껐다고요? 장애인들 못 올라가게 하려고 꺼버린 엘리베이터 때문에 비장애인들만 1층부터 11층까지 걸어 올라간 것이 몇 번이었는지 셀 수도 없었습니다. 난로를 안 껐다고요? 농성 중이던 우동민 활동가가 꺼져버린 난방으로 인해 결국 폐렴으로 지난 1월 2일 돌아가신 걸 보고조차 받지 못했습니까.

"침묵한 당신, 참회하라"

용산참사 유가족들이 16일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를 지켜보고 있다.
 용산참사 유가족들이 16일 현병철 국가인권위원장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를 지켜보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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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당신의 진저리 쳐지는 거짓말과 뻔뻔함을 보면서, 우리는 당신에게 선물을 보내고 싶어졌습니다. 명품이되 짝퉁인 신발 하나가 찢어졌습니다. 그것을 보내드리겠습니다. "교수로 재직한 35년 동안 발표한 17편의 학술논문 가운데 최소 7편에서 표절이 발견됐다"는 청문회의 보도를 보면서 명품이 되고 싶었던 당신을 위로하고 싶었습니다.

허위재산등록, 아들병역비리의혹, 위장전입까지 셀 수도 없는 의혹투성이인 당신의 삶이 가엾기도 합니다. 명품이 되고 싶었던 짝퉁 신발의 찢어진 귀퉁이처럼 초라한 당신의 현실을 직시하기 바랍니다.

당신에게 보내는 선물 중 <두개의 문> 리플렛도 동봉합니다. 극장에서 쫓겨난 영화입니다. 독재라도 어쩔 수 없다는 답변으로 당신이 침묵했던 그, 용산참사를 다룬 영화입니다. 나는 당신이 보지 못한 그 영화에 출연했습니다. 용산참사의 진상규명활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진상조사의 날들이 어땠는지 말씀드릴까요?

진실을 밝히고 싶었던 수많은 새벽, 잠 못 들면서 바라보던 하늘은 늘 서늘했습니다.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단서라도, 중요한 의견 하나라도 나타나 주길 바랐습니다. 악마가 사줄 수 있는 영혼이라면 그것이라도 팔아 진실을 밝히고 싶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힘을 가지고 있던 당신은 침묵했습니다. 보란 듯이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지요. 당신에게 꼭 이 선물들을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 것은, 그래서입니다. 당신의 몰염치함과 부도덕함과 반인권적 태도가 얼마나 많은 이들의 심장에 꼿꼿한 송곳을 찔렀는지 알려주고 싶습니다. 부디, 당신이 인간이라면, 언젠가 꼭 참회하는 마음으로 이 영화를 보기 당부 드립니다.

주고 싶은 것이 많았습니다. 아드님을 위한 제대로 된 체중계도 보내드리고, 돋보기도 보내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러한 마음만 보내겠습니다. 그리고 한 끼에 15만 원하는 농어탕과 회초밥을 즐겨 드신다고 하니, 일식집 전단지도 보내드립니다. 오사카수제초밥 전문이라고 합니다. 1억 5000만 원이나 쓰실 일 없이 저렴한 가격에 드실 수 있을 것입니다.

"기억력 감퇴 조심하시라고 보약 보냅니다"

그리고 다산인권센터를 포함한 인권단체 리플렛도 동봉합니다. 당신이 받은 강의료를 사회단체에 기부한다고 했으니, 인권단체들에게 후원할 것을 당부 드리는 마음입니다. 인권에 대해 아직도 제대로 아시는 것이 없는 듯하여,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2011년 1·2월호도 동봉합니다. 끝나지 않은 용산이 특집이군요. 아참, 이 정부의 트렌드에 맞춰 부동산을 꽤나 좋아하시는 것 같아 부동산 안내지도 넣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당신의 기억력을 걱정하여 특별하게 약봉지 두 개도 넣었습니다. 건망증이 심해진 저를 위해 엄마가 특별히 보내주신 보약입니다. 이 약을 먹고 나서 두통도 덜하고, 깜빡깜빡하는 건망증도 덜해진 듯합니다. 거짓말과 기억력 감퇴에 익숙하신 당신에게도 도움이 될 듯해서 통 큰 심정으로 두 봉지나 넣습니다. 식사 후 따뜻하게 데워 드시길 바라고, 냉장 보관하세요.

이제 줄이겠습니다. 당신이 살아온 날을 되돌아보고, 인권위에 있었던 죄 많은 시절을 참회하길 기원합니다. 한국사회가 쌓아온 인권 현실을 당신이라는 한 사람이 어떻게 무너뜨렸는지, 그런 당신 옆에 기생하며 부역하는 몇 몇 이들이 얼마나 큰 죄를 지었는지 알게 되길 바랍니다. 더도 덜도 할 것 없는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사람들이 당신의 연임을 부끄러워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눈치라도 있으면 누더기 같은 당신이 폭탄임을 알겠지요. 그렇다면 더 이상 우리는 당신을 위원장으로 호명하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그날을 기대합니다.

현병철씨, 많이 양보해서, 인권활동의 선배로서 충고합니다. 무엇보다 인간은 염치와 부끄러움을 알아야 합니다. 아시겠지요?

덧) 요즘 유행하는 '삼철이송'이라고 아시는지요. 인터넷에 검색해보세요. 꽤 유명한 분들과 동급이 되어, 우쭐해지면서 불편한 심기가 달래질지도 모릅니다. 제목은 "으라차차 내 친구 삼철이"입니다. 그리고 어느 언론사에서 잘 정리한 당신의 어록도 동봉합니다.

2012년 7월 17일 다산인권센터


태그:#현병철, #인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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