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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over(러버)> 포스터, 배우 이승비(사진 왼쪽), 송영창
 <The Lover(러버)> 포스터, 배우 이승비(사진 왼쪽), 송영창
ⓒ 연극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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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가 일으키는 연극에 대한 갈증


<더 러버>(The Lover·작: 해롤드 핀터, 연출 : 오경택)에서 배우 이승비의 시선을 상대방에게 온전히 두지 않는 모습은 관능적이고 도발적으로 비친다. 여기에 지적이자 섹슈얼한 연극이라는 타이틀은 연극을 더욱 미궁으로 몰아넣는다.

남녀의 육체적인 접촉이 일어나고 있고 여자의 어느 정도의 노출이 있다는 점에서 다소 관능적이다 못해 천박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포스터 속 여자에서는 시선의 지배를 허락하지 않는 동시에 그 심중을 들여다 볼 수 없는 요부의 이미지 역시 성립한다.

연극은 영화와 달리 영화 스크린의 축소 형태로서의 영화 그대로의 축약 버전 영상이 존재하지 않는다. 연극은 현장에서의 '관객과 함께 완성되는 예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포스터는 극장에 직접 나서기 전에 이 아무 것도 채워지지도 보이지도 않는 '블랙 스크린'이 어떻게 채워질지에 대한 강한 호기심과 갈망의 근거로 작용하곤 한다.

이야기 속에 담긴 욕망

지난 7월 3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린 <The Lover(러버)> 프레스콜, 사라 역의 배우 이승비와 리처드 역의 배우 송영창
 지난 7월 3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린 <The Lover(러버)> 프레스콜, 사라 역의 배우 이승비와 리처드 역의 배우 송영창
ⓒ 김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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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말해 '러버'는 두 부부의 권태로운 결혼 생활을 그린, 나아가 현대인의 서늘한 욕망을 그리는 연극이다.

아내 사라(배우 이승비)와 남편 리처드(배우 송영창)가 거주하는 런던 근교의 가정집은 회전하는 사각 틀의 무대로 치환되고, 이 사각 프레임 위에는 이의 형태와 정확히 겹치는 철창 같은 또 다른 사각 틀의 주형이 매달려 있다. 이 주형이 내려와 무대와 맞춰지는, 완전한 '현실의 감금'은 극이 끝날 때에야 실현된다.

아내 사라와 남편 리처드 사이에는 기괴한 대화의 형태가 성립한다. 리처드가 직장에 출근할 때 사라의 애인이 온다는 것은 부부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다. 리처드는 집에 돌아와 아내와 정부 사이에서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를 묻기 시작하고, 사라는 그에 대해 차근차근 태연스레 대답한다. 사실상 두 부부 모두 애인을 두고 있지만 그들은 무대가 아닌, 거의 이들 대화에서만 확실한 존재로 등장할 뿐이다.

지난 7월 3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린 <The Lover(러버)> 프레스콜, 배우 이승비
 지난 7월 3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린 <The Lover(러버)> 프레스콜, 배우 이승비
ⓒ 김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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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의 또 다른 관계를 제지하거나 분노하지 않은 채 그것들을 확인하고자 하는 이들의 욕망은 대체 무엇일까. 우리는 보통 이야기를 할 때 그 사건을 다시 겪는 게 아니라 사건을 현재 재구성하며 그 이야기가 모두의 이야기로 퍼져 나가는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이 두 사람 사이에서의 듣기의 과정은 이 이야기의 공식을 따라 서늘해야 하고,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둬야만 한다. 곧 이야기는 이야기로서만 성립되어야 하고, 거기에 말하는 자와 듣는 자는 그 이야기를 소유하는 자가 아닌, 그 이야기를 풀어내고 또 접근하고자 하는 욕망을 지닌, 배우와 관객의 관계가 되어야 한다.

리처드는 이 이야기 속에서 사라와의 직접적인 관계 맺기를 포기한 채 아내의 '권태가 출현하지 않는 만남의 충만함과 존재의 신선함'의 다른 남자와의 관계를 확인하며 욕망을 대리 보충한다.

역할 놀이를 통한 관계 맺기

지난 7월 3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린 <The Lover(러버)> 프레스콜, 배우 송영창과 이승비
 지난 7월 3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린 <The Lover(러버)> 프레스콜, 배우 송영창과 이승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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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 둘은 이전까지 듣는 자와 이야기를 들려주는 자의 역할 놀이에 몰입하고 있었다고도 볼 수 있겠다. 이어 이들이 실제로 보이지 않던 존재들을 언급하는 것에서, 실제 자신 앞의 배우자와 관계를 맺는 역할 놀이에 몰입하게 됐을 때, 욕망의 처리는 모호하고도 어려운 과제로 작용한다.

상대를 직접 마주하지 않고 이야기를 통해서만 대리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채워 가던 것과는 달리 현재 마주한 존재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소유될 수 없는, 또한 욕망하기 전에 체험이 전제가 되어야 하는, 그런 난처한 관계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지난 7월 3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린 <The Lover(러버)> 프레스콜, 배우 이승비
 지난 7월 3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린 <The Lover(러버)> 프레스콜, 배우 이승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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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역할이 된다는 것은 하나의 연극을 만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곧 역할 되기는 연극의 최소한의 전제이자 규칙이다. 이 일종의 극 중 극 형식 안에서 펼쳐지는 역할 놀이의 연극에서 이 둘은 배우가 된다.

사실 욕망이라는 것은 채워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동시에 우리는 하나의 정체성이나 확고한 자아로 진단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욕망은 갈증과 그 채움의 좌절과 간극에서만 비롯되며 오직 유예되거나 결여되었을 때만 작동할 수 있는 것이다. 수많은 역할의 옮겨 감은 사실상 우리의 전반적인 삶을 관통하는 작동 기제에 다름 아니다. 이 역할은 그리고 현실에서의 타인과의 관계 맺기에서 성립하는 탄력적인 장에서 비롯된다.

모호한 간접 체험의 상대방의 외도 듣기의 욕망에서 이 역할 놀이로 옮겨 감은 이 두 부부가 현실에서 도피하는 과정이라기보다 그래서 현실을 마주하는, 다시 말해 욕망을 유예하고 다른 욕망으로 그것을 채우고 있는 자신들의 모습을 마주하고, 권태에 맴돌던 이 관계를 새롭게 진작시킬 수 있는 하나의 출구로서 의미를 갖는다.

해롤드 핀터의 부조리함이란...

지난 7월 3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린 <The Lover(러버)> 프레스콜, 배우 송영창, 이승비
 지난 7월 3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린 <The Lover(러버)> 프레스콜, 배우 송영창, 이승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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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롤드 핀터의 부조리함은 이때부터 그 빛을 발한다. 이 도착(倒錯)적 관계가 현대인의 출구 없는 욕망의 다른 이름이자 비뚤어진 이름이라는 것을 단순히 언급하는 것을 넘어 정상적인 부부라는 이름의 사회적 역할이 가로 막고 있던, 필시 끊임없는 변화와 함께 지속될 수 없는, 언젠가는 권태를 낳고 마는 이 무거운 '부부'라는 이름을 역할 놀이로 새롭게 다시 쓰며 벗어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역할 놀이는 암전의 극의 전환과 함께 오는 돌아가는 무대의 입구와 출구가 뒤바뀌는, 손바닥 뒤집기와도 같은 일상의 끝없는 반복, 그 권태 자체가 감싸고 있는 형국이라 또한 공허하다.

누드가 갖는 공허함의 효과

지난 7월 3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린 <The Lover(러버)> 프레스콜, 배우 송영창, 이승비
 지난 7월 3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린 <The Lover(러버)> 프레스콜, 배우 송영창, 이승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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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암전에는 두 배우의 누드가 환영처럼 어둠 속에 은근한 살결의 잔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이는 이 연극이 야함의 연극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부분인가 라고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 오히려 이 신체는 잡히지 않는, 감각되지 않는 불투명한 신체에 가깝다.

이야기를 통해 또 역할 놀이를 통해, 각각 그들은 그들 자신이 그 상황 안에 있거나 그들 자신으로서 존재하는 것을 유예하고 있었다면, 곧 이 매개된 장치로 욕망을 안전하게 실험할 수 있었다면, 이 실재와의 마주함은 그 역할 놀이와 이야기 놀이가 하나의 환영이었음을 더욱 공고히 해 주는, 매우 공허한 하나의 순간이다.

지난 7월 3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린 <The Lover(러버)> 프레스콜, 배우 이승비, 송영창
 지난 7월 3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린 <The Lover(러버)> 프레스콜, 배우 이승비, 송영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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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버>는 그래서 포스터가 말하는 어떤 선정적인 장면들로 집약될 수 있는 연극이 아니라 욕망의 기저를 맴도는 부질없는 놀이에 빠진 두 부부의 모습을 통해 현대인의 서늘한 욕망과 공허한 삶의 순간으로 집약되는 연극이라 하겠다.

[공연 개요]
공 연 명 : <연극열전4> 세 번째 작품 <The Lover> (러버)
공연기간 : 2012년 6월 28일(목) ~ 8월 13일(월)
공연장소 :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공연시간 : 화, 목, 금 오후 8시 /  수 오전 11시 / 토 오후 3시, 6시 / 일 오후 3시 (월 쉼(8/13제외))
티켓가격 : 일반석 40,000원,  2,3층 자유석 30,000원
관람등급 : 20세 이상
관람시간 : 70분
작 : 헤롤드 핀터 (Harold Pinter)
번역 : 박혜영
연출 : 오경택
출연 : 송영창, 이승비, 김호진
제작 및 공연 문의 : ㈜연극열전
협찬 : IBK 기업은행
홈페이지 및 트위터 : www.thebestplay.co.kr / @thebestplay
예매 : 인터파크 (1544-555), SAC 티켓 (580-1300), 연극열전(www.thebestplay.co.kr)


태그:#더 러버, #이승비, #송영창, #연극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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